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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호크 다운 (Black Hawk Down, 2001)

 

 

감독/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출연/ 이완 맥그리거(Ewan McGregor), 조쉬 하트넷(Josh Hartnett), 톰 시즈모어(Tom Sizemore), 에릭 바나(Eric Bana), 샘 쉐퍼드(Sam Shepard), 이웬 브렘너(ewen Bremner)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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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정치적인 정치적 의도를 가진 영화

 

 

 

진주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

브레이브 하트

멜 깁슨

리들리 스콧

쉰들러 리스트

글래디에이터

블레이드 런너

에일리언

20세기 세계의 국지전, 그 뿌리와 결과

아르투르 랭보

 

 

  리 주변에 군과 관련된 웃지 못할 이야기들 중 하나는 예비군복을 입으면 평소 얌전하던 사람도 '노상방뇨'를 뻔뻔하게 한다는 것이다. 제복이 담고 있는 의미나 상징은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제복'이란 동일한 복장 속에는 권위는 물론이고, 하나의 집단이라는 패거리 의식이 숨겨져 있다. 앞서의 예비군복 이야기처럼 군복에 가려져 '나'라는 개인은 사라지고, 거기엔 전우와 상명하복의 원칙이 있을 뿐이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에는 상당히 많은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다. 이는 단지 '리들리 스콧'이라는 감독의 권위와 더불어 그의 출신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란 짐작이 들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유명 배우들의 얼굴을 찾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어째서 그럴까?  그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이 군복 뒤에 몸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몇몇 배우들을 살펴보자. 영화 <진주만>을 통해 새롭게 떠오르는 신성(新星)이 된 조쉬 하트넷(<진주만>에선 '대니 워커'역)은 극중에서 새로 분대장을 맡게 된 맷 에버스먼(Matt Eversmann)으로, 영화 <트레인스포팅>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이완 맥그리거와 이웬 브렘너,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뒤이어 다시 전형적인 고참 GI역할을 맡았던 톰 시즈모어, <퍼펙트 스톰> 등에서 좋은 연기를 펼쳤던 윌리엄 피처 등이 출연하고 있지만 워낙 빠르게 전개되는 화면과 사건들로 인해 영화 중반에 이를 때까지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배우들을 분간하기 어려운 이유가 단지 군복에 가려진 탓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전쟁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도 역시 그래야 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 특히 배우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는 이유는 영화 자체를 일종의 기록필름처럼 제작한 탓이 크다. 물론 이 영화에도 할리우드의 낯익은 이야기 전개 방식들이 보이기는 한다. 가령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인물로 신임 분대장이 된 조쉬 하트넷과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톰 시즈모어, 에릭 바나, 윌리엄 피처 등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이들의 역할은 매우 부분적이다. 요사이 제작되는 할리우드 액션 활극류 중 성공한 작품들을 보면 대개 비슷한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다. 전형적인 블록버스터임에도 불구하고 예전처럼 전형적인 영웅상도, 고뇌하는 인물상도 그리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상대적으로 예전의 영화들에 비해 극중 인물들은 수다스럽지 않다. 그것은 영화 전체를 놓고 보아도 역시 그렇다. 이런 흐름들이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멜 깁슨이 주연·감독·제작을 맡았던 <브레이브 하트> 이후부터 하나의 흐름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왜 <브레이브 하트>냐 하면 이 영화에서 윌리엄 월레스의 연인 머론이 잉글랜드군 수비대장에게 처형당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된다. 수비대장은 별 말없이 단숨에 머론을 죽여 버린다. 이런 빠르고 단도직입적인 이야기 전개 방식은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계속되며, <블랙 호크 다운>에 가면 절정에 이른다.

 

이 영화를 홍보하는 측에서 블랙 호크 헬기가 마치 무적의 전투헬기처럼 소개하고 있는 부분이 우스울 따름이다. 물론 블랙 호크가 이전에 사용하던 병력 수송용 헬기에 비해서 생존 능력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신유고연방 폭격 당시 스텔스 폭격기가 격추된 것처럼 격추 자체가 불가능한 헬기는 아닌데(미국의 방산업체에게 뭘 얻어먹었는지도 모르지만, 흐흐) 마치 절대 격추가 불가능한 기체처럼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병사들을 하강시키고 있거나 저공 비행 중에는 적에 의해 요격당하기 쉽다(신형헬기들은 대개 7.62mm기관총탄을 막아맬 수 있는 장갑을 이용하고 있다).

 

 

 

 

 

 

 

 

 

 

 

 

 

 

이 영화에는 미국에 대한 모가디슈 시민들과 소말리아인들의 분노에 대한 이유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있다. 미군은 적대적이지 않은 민간인에겐 총을 쏘지 않는 정의로운 전통(?)을 지닌 군대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소말리아인들의 심정에 대해서 포로(인질)로 잡힌 미군 조종사과 소말리아 민병대원 사이의 짤막한 대화를 통해 상징적으로 처리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디드를 잡아서 무얼하려고 하느냐는 민병대원의 질문에 조종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민병대원은 계속 말한다. 이건 우리들의 혁명이다. 아이디드 하나가 없어진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말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장면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왜곡이 심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아니면 미국이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민병대원이 순진한 것이다(그도 아니면 영화가 우릴 속이고 있는 것이겠지만).

 

 

 

 

 

 

 

 

 

 

 

 

 

 

 

 

 

델타 부대원 제프 샌더슨(Jeff Sanderson) 역을 맡아 열연하는 윌리엄 피처(William Fichtner) - 1992년 스파이크 리 감독의 <말콤X>를 시작으로 개성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배우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과는 실패한 영화 <퍼펙트 스톰>부터 함께 했다.

 

 

 

 

 

 

 

 

 

 

 

 

 

 

 

 

 

 

 

 

 

윌리엄 개리슨(William Garrison) 장군 역을 맡은 샘 쉐퍼드(Sam Shepard) - 극작가로도 활동하는 샘 쉐퍼드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대사 부분을 직접 손보기도 했다.

 


  <블랙 호크 다운>이 그렇게 제작된 데에는 여러 까닭이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이 영화의 감독과 원작자의 의도가 정치적 주제 의식
(가령, 반전이라든지, 아니면 미국 제일주의라든지)을 지닌 전쟁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블랙 호크 다운>의 원작자인 마크 보우든(Mark Robert Bowden)은 처음부터 픽션을 염두에 두고 『블랙 호크 다운』을 집필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기록자의 입장에서 1993년 10월 3일의 사건(모가디슈 전투)을 기록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이 이 영화가 기존의 할리우드 전쟁물에서는 볼 수 없는 전투 장면과 더불어 19명의 미군 전사자와 1,000여명의 소말리아 시민들의 죽음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그러나 우습게도 비정치적인 의도가 가장 정치적으로 드러나게 만든 영화가 되도록 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인 객관적인 기록자의 자세는 동시에 영화 밖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전사 기록 필름이 되도록 했다. 가끔 순수의 의미를 곡해해서 비정치적인 의도를 드러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것이 가장 정치적인 태도임을 되새겨주고 싶은 욕구를 느끼곤 하는데 바로 이 영화가 그랬다. 

블랙 호크 다운 - 몸으로 떼운 촬영 현장

   근 비교적 흥행 호조를 보이는 한국영화를 염려하는 목소리들 중 하나는 점점 감독의 이름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가 돈 된다는 소문은 가뜩이나 투자처를 찾지 못해 거리를 헤매고 있는 방황하는 자본들에겐 좋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돈을 쏟아부은 한국영화가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건져주면서 한국판 블록버스터의 탄생도 우리는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으로 참혹했다. 흥행에 실패한 영화는 그렇다치고라도, 성공한 영화들조차 감독이 누구였더라 하는 식이 된다. 감독이 그 지경인데 시나리오(영화 대본을 '시나리오'라고 부르는 나라는 일본하고 우리밖에 없다고 하더라만) 작가를 기억할 리 만무하다. 모든 성공한 영화의 공통점이 좋은 시나리오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돈만 처바른 특수효과로 한몫 보려는 영화들이 실패하는 것은 우리 영화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특수효과에 투자하는 돈의 10분의 1만이라도 시나리오를 위해 투자한다면 결과는 매우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은 그런 점에서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대본 작업에 원작자인 마크 보든을 비롯해 켄 놀란(Kem Nolan) 등 할리우드 일급 작가들(<쉰들러 리스트>로 오스카를 받은 스티브 잘리언, <포레스트 검프>의 에릭 로스 등이 시나리오 수정작업에 투입)이 대거 달라붙었다. 할리우드의 이런 시스템은 그들이 영화를 예술이 아니라 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좋은 증거이기도 하지만, 현대에 와서 산업이 아닌 예술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어쨌든 '세계 최강의 블록 버스터 드림팀'이라는 영화 홍보 문구가 헛소리는 아니었다. 리들리 스콧은 <글래디에이터>의 촬영 현장이었던 모로코에 다시 세트장을 건설하고, 연출에 임한다. 그는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통해 디지털 영상 처리 기술이 과연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우리에게 잘 느끼게 해주었다(만약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고 그런 컴퓨터 기술의 효과를 느끼지 못한 분이라면 당신이 가장 잘 느낀 셈이다. 영화에서 그래픽 기술은 그러자고 쓰이는 것이므로). 그런 그가 이번엔 그 잘난 블루스크린 한 번 사용하지 않고, 완벽한 수공업적인 특수효과를 동원해 촬영한다.

  영화에 대해서 조금만 흥미있는 사람이라면 리들리 스콧 감독이 원래 미술을 전공했고(영국 왕립 미술대학), 감독이 되기 전까지 영국 BBC에서 방송 디자이너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게다가 그가 만들어낸 영화들의 필모그라피를 보면 그가 제작한 영화들의 그 시각적 화려함이란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들이었는지 금세 깨달을 수 있다. 오늘날까지도 최고의 SF영화와 시각 효과로 손꼽히는 <블레이드 런너>와 <에일리언>의 감독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그의 모험은 멋들어지게 성공했고, 영화는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든다.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 질서와 인도적 지원의 본질

   영화의 제작연도는 2001년이다. '문화망명지'는 원칙적으로 20세기에 국한된 컨텐츠를 주종으로 하는 사이트임에도 불구라고 명백히 21세기인 2001년에 제작된 <블랙 호크 다운>을 다루기로 한 까닭은 이 영화가 1993년에 일어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소간의 체제·군비경쟁으로 상징되는 냉전의 국제 질서는 양축을 기반으로 약소국가의 정치세력들로 하여금 출혈을 강요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소련 연방의 붕괴와 더불어 미국의 대소 봉쇄 정책은 성공리에 막을 내리고 세계는 바야흐로 미국의 일방적인 독주 체제로 급격하게 전환되어 갔다. 그 와중에 힘의 균형을 잃은 세계 각지에서는 국지전을 비롯한 인종청소, 내전, 기아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미국을 포함한 유럽연합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자국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한 사안들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조치를 취했다. 가령 그들은 코소보와 보스니아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했지만 르완다와 시에라리온에 대해서는 무심했던 것이다(좀더 자세한 내용은 세계의 국지전 편을 참조하시길).

  영화를 보면 UN이 공급하는 식량을 받기 위해 찾아 온 난민들에게 기관총을 난사하는 소말리아 민병대의 모습이 악마처럼 그려진다. 소말리아의 정치·경제 현실이나 역사에 대해 소상하게 알 수는 없지만 미국이 소말리아 내전에 개입한 것이 반드시 인도주의적인 목적 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은 명확하다. 미국은 시에라리온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당하고, 손발이 잘려나가고, 어린이들이 병사로 징집당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외면한 채 수수방관했고, 미국을 비롯한 서구, UN은 르완다와 시에라리온의 민간인 대량학살에 침묵하고 말았다. 그런데 어째서 미국은 유독 소말리아 사태에 대해서는 개입했던 것일까? 지난 1991년 아프리카의 작은 국가 소말리아는 부족 연합체가 관리하는 여러 지역의 군벌들 사이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하여 약 150만 명에 이르는 소말리아인들이 기아에 시달리게 되었다. 미국은 1992년 12월 다국적군을 구성하여 안정적 식량보급을 비롯한 구호 및 내전 종식을 위한 소말리아 내 평화유지활동에 들어갔다.

  미국의 소말리아 파병은 인도적 차원이라는 명목으로 실시되었고, 1993년 1월 20일까지 2만 여명의 미군을 투입했다. 그러나 식량수송 루트를 개척한 미군은 평화유지군에 대한 도발과 군벌 해체라는 명목으로 소말리아의 3대 군벌 중 하나이자 가장 유력한 정치세력 중 하나인 아이디드를 체포하려고 시도했다. 이것이 바로 1996년 10월 13일의 모가디슈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추락한 미군 조종사의 사체가 모가디슈 시내 길바닥을 질질 끌려 다니는 광경이 CNN을 통해 전미국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방영된 것이다. 르완다와 시에라리온에는 없지만 소말리아에는 있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째서 미국은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던 르완다와 시에라리온은 외면하면서도 소말리아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들었던 것일까? 그것은 당시 소말리아에는 미국계 석유회사 네 곳이 석유 시추 중에 있었다는 것이다. 단지 그것만은 아니었다.

아이디드는 어째서 제거되어야 했는가?

  국이 제거하려고 했던 소말리아 최대의 유력 군벌이었던 무하마드 파라 아이디드(Muhammad Farah Aydid)는 어떤 인물이었는가? 아이디드는 소말리아가 아직 이탈리아의 식민지로 있던 1930년경의 어느 날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 벨드웨이네에서 태어난 인물로 그 자신도 생일을 명확히 알 수 없어 훗날 스스로의 생일을 1934년 12월 15일로 지정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고, 1960년 소말리아가 독립한 뒤에는 대위로 진급했고, 그후 소련에서 군사 교육을 받은 뒤 출세를 거듭했다. 1969년 소말리아에서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무하마드 시아드 바레가 권력을 장악한 뒤 아이디드는 그의 수석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바레는 처음엔 친소련적이었으나 1977년엔 소련과 단교하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바레는 아이디드를 의심해 1975년까지 6년 동안 투옥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77년엔 다시 그의 군사적 수완이 필요해지자 그를 준장으로 진급시킨다. 1991년 아이디드는 다시 군사 정변을 일으켜 바레를 퇴진시킨다. 1980년대 들어 바레 정권에 반기를 든 소말리아 반정부 단체들은 부족과 지역에 기반을 둔 중부지역의 통일소말리아회의(USC), 케냐에 인접한 남부지역의 SPM(Somali Patriotic Movement:소말리아애국운동), 북부지역의 소말리아 민족운동(SNM), 중부지역 출신으로 에티오피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SSDF(Somali Salvation Democratic Front) 등의 잡다한 군벌 조직으로 분열되었다.

  그 와중에 아이디드는 그의 지지자들에 의해 대통령에 선출되었지만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다른 군벌을 지원했다. 그는 군벌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세력이었으나 미국은 아이디드를 인정하지 않았다. 어째서 그랬던 것일까? 세계사를 되짚어보면 내전에 개입한 강대국이 독자적인 힘으로도 정부 수립이 가능해보이는 정치세력을 지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강대국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이디드가 자신의 생일도 모를 만큼 소말리아는 낙후된 지역으로, 정치 현실과 역사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분쟁지역이 그러하듯 제국주의 유럽의 식민지 팽창 전략이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말리아에 이처럼 피에 피를 부르는 복수가 계속되는 이유는 영국이 수에즈 운하를 보호하기 위해 소말리아의 아덴만 일대의 해안지대를 차지하고, 내륙을 에티오피아에 강제로 복속시키면서였다. 이후 이탈리아가 침략하면서 영국과 이탈리아는 이 지역을 놓고 쟁탈을 벌였고, 그 싸움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승리하며 종결되었던 것이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영화 <하르툼>과 <아라비아의 로렌스>편을 참조하시길).

톰 시즈모어는 최근 미국의 거의 모든 블록 버스터 전쟁영화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진주만>, <블랙 호크 다운> 등 출연 횟수가 잦아지는 만큼 그의 무공 또한 점점 더 높은 사람으로 그려진다.

  일찍이 천재 시인 아르투르 랭보가 무기상인으로 활동하던 시절 그가 머물렀던 곳이 바로 아덴이었다. 미국이 70~80년대 소말리아의 바레 정권을 지원한 까닭도 역시 홍해 남단에 위치한 아덴만의 해군 항구들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아덴만은 수에즈 운하와 인도양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해당된다. 영화에서는 말해주고 있지 않지만 결국 미군이 소말리아에서 물러난 뒤 미 해군은 소말리아의 반대편에 위치한 예멘의 아덴항을 해군 기지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고, 2000년 오사마 빈 라덴은 이 지역에서 미 해군 전함 콜호를 공격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아이디드는 미국이 그를 체포하려 했던 1993년 10월 3일의 작전에서는 무사했지만 그로부터 3년 뒤인 1996년 8월 1일 모가디슈에서 암살당한다.

블랙 호크 다운 - 모랄 해저드(moral Hazard)와 바이오 해저드(Bio Hazard)

   는 <블랙 호크 다운>을 개봉관에서 보지 않고, 집에서 비디오로 보았다. 이 영화를 보고 온 친구가 다른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르다고 칭찬했지만 나는 하도 속아서 그런 할리우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결국 비디오로 보고 말았지만). 게다가 인터넷으로 알게 된 어떤 이는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이 매우 훌륭하다고 칭찬한다. 그렇게 말한 사람을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정말 이 영화는 영화 그 자체만 놓고 보자면 그다지 흠잡을 것이 없는 영화이며 마치 미군의 전투 교본(우리가 흔히 'FM'이라고 말하는 것은 야전 전투 교본Filed Manual을 말하는 것이다)을 읽는 것과 흡사할 정도로 치밀한 고증과 무기 사용 체계 등을 보여준다. 그런 대목들에 있어서 이 영화에 대한 장점은 앞서 충분히 언급해두고 있다. 이 영화의 고증에 대한 충실성은 민병대가 발사한 소련제 로켓인 RPG-7이 미군을 수송하고 있는 트럭의 옆문을 관통하고 미군 병사의 허리 부분에 박히는 장면에서도 여실히 입증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서 전세계 거의 모든 전장에 등장하는 RPG-7 로켓포는 구조가 단순하고, 사용이 간편하여 게릴라나 민병대와 같이 전문적인 군사훈련을 받기 어려운 군사집단에게는 최고의 무기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 무기는 발사 후 일정한 거리를 날아간 뒤에 신관이 작동하는 시한신관을 사용하여 근거리에서 사용할 경우 사수가 파편으로부터 부상당하는 것을 방지하도록 해준다. 영화 속에서 RPG-7이 트럭에 부딪혔을 때 폭발하지 않고, 운전병의 허리에 박힌 까닭은 로켓이 불발탄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시한신관이 작동할 수 없을 만큼 근거리에서 발사되었기 때문이다.

  혹자(딴지일보)는 이 영화에서 소말리아 민병대원이 블랙 호크에 RPG-7을 발사하는 장면을 두고 후폭풍 때문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고 있는데, 실제 실험을 해본 것은 아니지만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들도 소련의 하인드 헬기에 사용하여 격추시킨 예가 있다(물론 후폭풍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준비를 해야하겠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대공미사일보다야 격추율이 높지 않겠지만 근거리에서 발사되는 만큼 적중율은 매우 높다. 나는 오히려 이 영화를 홍보하는 측에서 블랙 호크 헬기가 마치 무적의 전투헬기처럼 소개하고 있는 부분이 우스울 따름이다. 물론 블랙 호크가 이전에 사용하던 병력 수송용 헬기에 비해서 생존 능력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신유고연방 폭격 당시 스텔스 폭격기가 격추된 것처럼 격추 자체가 불가능한 헬기는 아닌데(미국의 방산업체에게 뭘 얻어먹었는지도 모르지만, 흐흐) 마치 절대 격추가 불가능한 기체처럼 홍보하고 있다.

 

나는 이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을 보고 나서 문득 그 게임이 떠올랐다. 모랄 해자드가 '도덕적 해이'를 의미하는 용어로 쓰이는 만큼 이 말을 그대로 영어의 뜻 그대로 옮기거나 의역해 본다면 '생명의 위험, 모험, 생명경시' 정도가 될 것인데 전자오락에선 이걸 무차별 살육 게임으로 만들었다(오락이야 그럴 수 있다지만). 이것이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미군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드는 모가디슈 시민들의 모습이 나는 어쩐지 <스타 크래프트>의 악명높은 저글링 개떼들의 습격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어디 나만의 착시였겠는가? 그러나 영화가 끝나면 미군 19명 전사, 소말리아 민간인 1,000여명이 희생 당했다고 자막이 올라간다.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은 어쩌면 사람 허무하게 만드는 그 엔딩 자막이다.

 

 

 

 

 

 

관련 사이트 & 참고 도서

 시네21<영화리뷰> - 최근 영화답게 <블랙 호크 다운>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페이지들은 많지만 대개는 짤막하게 스토리 요약 정도로만 다루고 있다. <시네 21>에서 가장 상세하고 읽을 만한 거리들을 다루고 있다.

 『세계와 미국 - 20세기의 반성과 21세기의 전망』/ 이삼성/ 한길사/ 2001

 


  얘기가 약간 딴길로 샜는데 10월3일 미국의 개리슨 장군은 아이디드가 각료들과 회합을 갖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를 납치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작전은 1시간 안에 끝날 것을 예상했지만 이들의 작전은 600만 달러짜리 헬기 블랙호크의 격추와 함께 어긋나 버린다. 영화는 보우든의 넌픽션을 따라 진행되다가 이 부분에 가서 약간 사실을 왜곡한다. 아이디드의 민병대는 민간인 부녀자들을 방패처럼 이용했고, 미군은 영화 <롤스 오브 엔게이지먼트>처럼 무고한 민간인에게도 총을 쐈다. 모가디슈의 민간인들이 이에 격분하여 미군에게 맨몸으로 달려들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미국에 대한 모가디슈 시민들과 소말리아인들의 분노에 대한 이유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있다. 미군은 적대적이지 않은 민간인에겐 총을 쏘지 않는 정의로운 전통(?)을 지닌 군대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소말리아인들의 심정에 대해서 포로(인질)로 잡힌 미군 조종사과 소말리아 민병대원 사이의 짤막한 대화를 통해 상징적으로 처리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디드를 잡아서 무얼하려고 하느냐는 민병대원의 질문에 조종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민병대원은 계속 말한다. 이건 우리들의 혁명이다. 아이디드 하나가 없어진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말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장면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왜곡이 심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아니면 미국이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민병대원이 순진한 것이다
(그도 아니면 영화가 우릴 속이고 있는 것이겠지만).

  전투가 마무리된 10월4일 새벽까지 당시 미국 대통령인 빌 클린턴은 사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전투 다음날 소말리아에 대한 군사작전을 종결시켰고, 미군은 철수했다. 우리는 경제 위기를 겪으며 모랄 해저드, 소위 '도덕적 해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와는 좀 다른 부분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바이오 해저드'란 말이 떠올랐다. 이 말은 사실 무슨 특별한 용어가 아니라 전자오락 게임의 이름이다.

  화학 실험 도중 실패하여 탄생하게 된 좀비와 언데드를 비롯한 각종 기형 괴물들이 좁은 연구소 건물 안과 마을을 오염시키며 돌아다니는데 이에 첨단 무기들로 중무장한 주인공이 방마다, 건물마다 찾아다니면서 이미 사람이 아닌 괴물들을 무차별적으로 쏘아 죽이는 게임이다.

  나는 이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을 보고 나서 문득 그 게임이 떠올랐다. 모랄 해자드가 '도덕적 해이'를 의미하는 용어로 쓰이는 만큼 이 말을 그대로 영어의 뜻 그대로 옮기거나 의역해 본다면 '생명의 위험, 모험, 생명경시' 정도가 될 것인데 전자오락에선 이걸 무차별 살육 게임으로 만들었다(오락이야 그럴 수 있다지만). 이것이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미군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드는 모가디슈 시민들의 모습이 나는 어쩐지 <스타 크래프트>의 악명높은 저글링 개떼들의 습격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어디 나만의 착시였겠는가? 그러나 영화가 끝나면 미군 19명 전사, 소말리아 민간인 1,000여명이 희생 당했다고 자막이 올라간다.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은 어쩌면 사람 허무하게 만드는 그 엔딩 자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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