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자레 파베세 포토포엠 - 고향 떠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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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windshoes
	고향 떠난 사람들

	지겨운 바다. 우리는 바다를 충분히 보았다. 저녁 무렵, 바닷물이 창백하게 펼쳐지며 허무(虛無) 속으로 사라져 갈 때, 친구는 바다를 응시하고 나는 친구를 응시한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밤이 되면 우리는 어느 후미진 구석에 처박히고, 담배 연기 속에 외로이 술을 마신다. 친구는 꿈이 있다. (바다의 웅얼거림에 꿈은 약간 단조롭다.) 그 꿈속에서 바다는 하나의 거울, 섬과 섬 사이로 다채로운 들꽃과 작은 폭포들이 어우러진 언덕들이 비친다. 그의 포도주는 그렇다. 술잔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면 바다 위로 푸른 언덕들이 솟아오른다. 언덕이라면 나도 좋다. 나는 친구의 바다 이야기를 내 버려둔다. 바닷물이 아주 맑아 바위까지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내 눈에는 언덕만이 보이고, 멀리 혹은 가까이에 사면(斜面)들의 뚜렷한 윤곽과 함께 땅과 하늘이 나를 가득 채운다. 단지, 내 언덕은 황량하고, 메마른 땅 위에 힘겹게 일구어진 포도밭들이 흩어져 있을 뿐이다. 친구는 그 언덕을 야생 과일과 꽃들로 치장하고, 거기에서 과일보다 더 적나라한 처녀들을 찾으려 한다, 웃음을 흩날리면서. 그럴 필요 없다. 가장 황량한 내 꿈에도 한 가닥 미소는 있으니까. 만약 내일 아침 일찍 우리가 그 언덕들을 향해 걷게 된다면, 포도밭들 사이에서 우린 햇볕에 검게 그을린 어떤 처녀를 만날 수도 있고, 말을 건네 포도 몇 송이를 얻어먹을 수도 있으리라.

	체자레 바페세 Cesare Pavese 1908년 이탈리아 산토 스테파노 벨보에서 태어나 토리노 대학에서 영문학 전공. 1930년대 이탈리아에서 점증하는 파시즘의 억압적 상황에 대응하여 미국의 문학작품들을 번역하며 공산당 활동 1950년 이탈리아 최대 문학상인 스트레가상을 받은 지 한달 후 실존적인 불안감, 소외감, 우울증을 못이겨 20여 봉지의 수면제를 복용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음 국내에는 그의 시집 <피곤한 노동>이 번역되어 있고, 주요 시집으로 <너의 고향>, <닭이 울기 전에>, <달과 횃불>, <삶이라는 직업>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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