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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0년 39호 『하이파이저널』에 게재되었던 것입니다.)

 

 

The Messiah Will Come Again

- 바람구두

 

 

 

 

 

언더그라운드 최고의 기타리스트란
말이 무색할 만큼 유명해진 로이 부캐넌

 

 

 

 

 

  인 김갑수는 "삶이 괴로워서 음악을 듣는다" 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말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음악 장르를 말하자면 아마 블루스(Blues)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음악으로서의 블루스에는 블루스만의 어떤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블루스 음악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수(singer)의 개념은 없다. 블루스에는 오직 사람과 삶과 고통과 그로부터 빚어지는 연주(play the blues)가 있을 뿐이다. 거기에는 보컬까지도 연주로 승화되는 무엇인가가 있다. 혹자는 "블루스에서는 노래의 기교나 연주 실력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 음악을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그건 블루스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블루스를 연주한다는 것은 단순히 절규하거나 포효하는 듯 한 보컬 테크닉과 기타 줄을 목 쪽으로 구부려서 연주하는 '초킹'(choking)같은 연주 기법을 잘 쓴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블루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연주에 마음을 담아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블루스 연주 기법을 흉내낼 수는 있어도 블루스의 진정한 감정은 모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블루스 연주자 중에는 고독과 삶의 고통에 못 이겨 요절한 사람들이 특히 많다. 제니스 조플린, 스티브 레이 본 등이 역시 그랬다. 로이 부캐넌은 어떻게 보면 블루스 뮤지션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는 블루스, 재즈, 컨트리, 가스펠, 록앤롤 등 여러 가지 장르의 연주를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로이 부캐넌을 만나게 되었을까?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별로 가는 기차" 운운한 내용의 편지를 보낸 지 꼭 100년 후 별까지 가는 급행열차를 스스로 올라 탄 기타리스트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로이 부캐넌이었다. 서울 올림픽의 열기로 가득찼던 1988년 8월 14일. 내 고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여름 방학이 한참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심야방송 DJ가 전해주던 그의 죽음은 나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 무렵의 나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가담했던 운동 단체가 산산조각 나고, 그에 대한 실망과 절망감 비슷한 것들로 범벅이 된 채 내 스스로가 막장(漠場)이라고 명명한 연립 주택 지하 골방에 60촉 백열등을 하나 매달아 놓고는, 낮에는 내내 자다가 밤에만 깨어 일어나 소주 마시고, 커피 마시고, 책 읽고, 갓 배운 담배 연기에 취해 글쓰고, 찾아온 모든 손님들을 즐겁게 맞으며 객쩍게 시간을 때우던 그런 시절이었다. 학교는 매일매일 지겨웠고, 학교에 나가는 동안 거의 매일 학생 주임 선생님에게 끌려 다니느라 제대로 수업을 받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가끔 이름도 모르는 형사가 집에 와서 동향 파악을 해 가던 시절이었다.

  그의 죽음을 전해 주었던 DJ는 곧이어 로이 부캐넌의 가장 대중적인 곡이었던 <The Messiah Will Come Again>을 틀어 주었다. 암울하게 들리는 그의 기타 애드립과 멘트가 흘러나오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그 소리에 나는 죽음보다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후 한 명의 후배가 분신을 하고, 나는 계속된 방황을 청산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대학에 들어갔고, 그 때 대학에서 만난 한 친구가 있었다. 나이도 나보다 3살이나 많았고, 학번도 빨랐지만 우리는 어느새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블루스 음악을 듣는다는 것에는 단순히 같은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뭔가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한달여 앞둔 무렵 불의의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나는 다시 예전처럼 골방에 들어앉아 로이 부캐넌의 이 곡을 들었다. 모두가 너무나 빨리 별의 세계로 달려간 것이다.

  당시 나이 48세였던 로이 부캐넌은 아내에게 술주정한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되자마자 자신의 셔츠로 목을 매 어이없이 생을 마감해 버렸다. 그러나 로이의 그런 죽음 뒤에는 그에게 상업적인 성공을 위하여 그의 음악적 경향과는 상반된 연주를 강요했던 음반사와 에릭 클랩튼, 제프 백, 지미 페이지 등 유명 기타리스트들의 찬사와 인정을 받았음에도 대중들로부터는 소외당했던 그의 고독이 함께 했으리라.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던 사람은 아마 알 것이다. 음악에 추억이 실렸을 때의 그 무서운 힘을…. 결혼하면서 한때 몰두했던 오디오에 대한 욕심을 접고, "내가 사랑했던 오디오"들은 결혼 자금이 되어 사라져 버렸지만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다시 예전의 소박한 꿈들을 찾아 작은 하이파이 오디오를 구입하고 싶다. 어두운 방안을 고요히 비추는 따뜻한 진공관 불빛과 일명 맥킨토시 블루라고도 불리는 맥킨토시 앰프의 인디케이터 램프 불빛만큼 블루스 음악과 잘 어울리는 것들이 또 있을까? 로이 부캐넌의 펜더 텔레캐스터(Fender Telecaster)의 울음소리와 함께.

 

 

 

 

 

    The messiah will come again
     - Roy Buchanan

      Just a smile
      Just a glance
      The Prince of Darkness
      he just walked past
      웃고 힐끗거리고 있을 때
      어둠의 왕자가 과거로 가 버렸다.

      There's been a lot of people
      they've had a lot to say
      But this time
      I'm gonna tell it my way...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말해 왔지만
      지금 나는 나의 방식으로 말하려 한다.

      There was a town
      It was a strange little town they called the world
      It was a lonely, lonely little town
      그들이 세계라고 부르는 낯설고 작은 마을이 있었다.
      외롭고 고독한 작은 마을

      Till one day a stranger appeared
      Their hearts rejoicied
      and this sad little town was happy again
      어느 날 낯선 이방인이 나타나기까지
      그들의 가슴은 행복에 겨웠고
      작은 마을은 아주 행복했다.

      But there were some that doubted
      They disbelieved,so they mocked Him
      And the stranged He went away
      and the said little town that was sad yesterday
      It's a lot sadder today
      그러나 그들은 그를 의심하고 불신하여 조롱했다
      그가 떠나가자 마을은 점점 더 슬픔 속으로 빠져들었다.

      I walked in a lot of places I never should have been
      But I know that the Messiah,
      He will come again...
      나는 예전에 가보지 못했던 많은 곳을 가 보았지만,
      나는 그가 메시아이며 그가 돌아올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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