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잡지는 볼 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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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한당/ 2003/ 제2호>

	조선 잡지는 볼 게 없어

	바람구두

	『불한당(不汗黨)』과 우연찮게 인연을 맺은 덕에 본의 아니게 멱살잡이로 끌려나와 불한당에 대한 하찮은 평 몇 줄을 덧대는 인연까지 맺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불한당을 보면서 제 고등학생 무렵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니까 80년 언저리에 고등학교 생활을 한 탓이겠지만 그 때 저는 <늘 깨어있는 글>이라는 요새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팸플릿 수준의 언더그라운드 잡지의 발행인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삥 뜯고, 전교조의 전신인 민교협 소속 선생님들에게 알음알음 보조를 받아 십여 페이지 조금 넘는 얄팍한 종이 쪼가리를 한 부당 거금 500원씩 받고 팔았으니 시인 함민복의 시 <긍정적인 밥>에 나오는 “든 공에 비해 헐하다”라고 말할 수 없는 도적 중에도 상도적이었습니다. 그래도 때가 86년 87년 무렵인지라 본의 아닌 필화 사건에 말려들어 학생부실에서 치도곤도 당해보았죠. 그리고 지금은 계간지 편집장을 하고 있으니 저와 잡지와의 인연이란 게 있다면 꽤나 질긴 인연에 속할 겁니다. 어느 무렵부터인지 우리 사회에 인디밴드라 불리는 음악 그룹들이 제법 생기게 되었습니다. 기존의 음악 시스템에 만족하지 못하는 혹은 그에 의미를 더해 저항하고 싶은 이들이 만들어 내는 음악 창조의 형태가 아마 인디밴드일 겁니다. 그리고 지금 인디잡지라고 할 수 있는 <불한당> 창간호를 펼쳐들고 있습니다. 앞서 인디밴드가 기존 음악 시스템에 만족하지 못하는 혹은 그 의미를 더해 저항하고 싶은 이들이 만들어 내는 음악창조의 형태라고 한다면 인디잡지들은 어떤 의미를 담아내야 한다고 말할까 궁리 중입니다. 인디잡지들 역시 기존의 잡지 체계 안에서는 담아낼 수 없었던 무언가를 담아내고, 기존의 구태의연한 잡지들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 그 의미일 것입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에서 자신이 브라질에 머물며 원주민들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며 남비콰라족에게 연필과 종이를 나누어 주고 이들의 행동을 실험한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그것을 전혀 건드리려 하지 않다가 후에 글 쓰는 흉내를 내려고 애썼다고 하는데 그들 중 우두머리는 마치 자신이 문자를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행세하면서 레비-스트로스의 질문에 대해 말로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선을 그린 종이를 내밀었습니다. 그는 문자가 우두머리의 권위와 권력의 상징인 것처럼, 자신이 부족을 지배하는 정당한 힘인 것처럼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현재의 확실한 기억보다 어제의 불확실한 메모를 신뢰하겠다고 말합니다. 잡지의 속성 역시 문자로 기록되는 한 레비-스트로스의 경험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중세 귀족들과 성직자들이 이미 사어(死語)가 된 라틴어를 신주단지처럼 모셨던 이유도, 오늘날 의사와 과학자와 같은 전문가 집단이 그들만의 전문용어를 사용해 이야기하는 것도, 대학 사회에서 요구하는 글쓰기의 전범이 여전히 논문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의 함의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곧 권력이자, 권력에 대한 도전이란 속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요. 단순하게 말해서 문자의 총합이자 글쓰기인 잡지의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잡지를 의미하는 매거진(magazine)이 자동소총에 사용되는 탄창(magazine)과 동일한 철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잡지는 세상을 겨냥한 문자, 사유, 비판, 담론의 총탄을 담은 박스입니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권력을 '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타인에게 강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잡지로 이 정의를 바꿔보자면 잡지는 편집(edit)이 바로 권력을 실현하는 수단이 될 것입니다. 잡지는 선택과 배제의 정치학에 의해 그들의 의견을 세상에 퍼뜨립니다. 『불한당(不汗黨)』창간호를 받아보고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창간사를 찾아 보는 일이었습니다. 잡지창간호에 실린 창간사는 앞으로 이 잡지가 걸어갈 길이 어떤 것인지 그들의 정체성은 무엇인지를 세상에 고하는 선언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창간사를 대신한 「에디토리알」은 제 기대에는 조금 못 미쳤습니다. 창간사는 좀더 길어도 되고, 좀더 도발적이어도 괜찮았을 텐데 제 보기에는 너무 얌전하게 보였습니다. 기존의 시스템 속에서 양산되는 많은 잡지들이 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폐간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물론 자금의 부족, 영업부진 등이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존재 의의를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불한당(不汗黨)』이 일부 대학생 출신 예비지식인 집단의 정신적 마스터베이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아니 그들 자신의 마스터베이션을 좀더 적나라하게 제공하지 못한다면 『불한당(不汗黨)』의 존재 의의를 찾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자신들의 포지션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죠.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불한당은 스스로 이런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한당이다. 일선에서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활동가들과 비교한다면 우리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입만 움직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남의 땀의 소산을 빼앗으면서 오히려 다른 이들을 도적떼로 모는 파렴치한들에게 계속 입을 놀려댈 것이다. 시비를 걸 것이다. 땀의 소산은 진실로 땀 흘린 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장자』‘도척’편에 보면 공자가 도적 중에서도 상도적인 도척에게 진땀을 흘리며 곤욕을 치르는 대목이 있습니다. 대성(大聖) 공자를 욕보이는 도척의 기개가 애초에 ‘불한당’이 꿈꾸었던 역할이었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한당은 채만식의 『치숙(痴叔)』을 서두에서 뽑아들고 있는데 치숙에는 또한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소설이 모두 그렇게 재미가 있지요, 망가가 많지요, 사진이 많지요, 그리구도 값은 조음 헐하나요. 십오 전이면 바루 고 전달치를 사볼 수 있고 보고 나서는 오전에 도로 파는데요. 잡지도 기왕 하려거든 그렇게나 해야지 죄선 사람들은 제엔장 큰소리는 곧잘 하더구만서두 잡지 하나 반반한 거 못 만들어내니!”라고 합니다. 치기(稚氣)라는 말이 있지요. 저는 『불한당』이 좀더 어깨의 힘을 뺐으면 좋겠습니다. 야구에서 늘 강조되는 것이 부드러운 투구 폼, 물 흐르는 듯한 타격 폼이듯, 권투의 펀치 파괴력을 강화시킬 때 코치가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대목이 어깨에 힘을 빼라는 지적인 것처럼 저는 『불한당』이 어깨에서 힘을 좀 빼고, 좀더 상스럽고, 좀더 거칠고, 좀더 도전적이고, 시비 거는 잡지였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교지편집위원회가 아니고 ‘불한당’들이니까. 먼저 인정투쟁에서 승리하게 되길 바랍니다. 보리는 꾹꾹 밟아줘야 더 잘 큰다고 하는 군요, 이제 첫 발을 내딛은 여러분들의 건투를 빌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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