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구두가 선정한 2004년의 책과 사건-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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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 | 월간 함께 사는 길 | 2005년 1월호>

바람구두가 선정한 2004년의 책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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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가 선정한 2004년의 책과 사건

2004년 발간된 책 가운데 10권을 선정해 이야기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올해는 유난히 기억해야할 사건들이 많았고,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책을 통해 그 의미들을 되새겨 보자는 취지라 생각했다. 물론 여기 선정된 책들은 개인적인 취향에 의한 것이지만 2004년의 중요 사건들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책들을 중심으로 골랐음을 미리 밝힌다.

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교양인| 2004.

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말은 오랫동안 말뿐이었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시대를 살아왔던 이들에게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기각처분은 민주주의란 곧 법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다. 그러나 10월 21일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이란 논리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리자 우리는 헌법을 새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두식(한동대 법대) 교수는 『헌법의 풍경』을 통해 법관이 정치적 중립이고, 불편부당한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새삼 깨우치게 만든다. 시민사회의 감시 없는 헌법은 독일 바이마르 헌법처럼 히틀러의 출현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국민으로부터의 탈퇴 - 국민국가 진보 개인 | 권혁범 지음|삼인 | 2004.

국민으로부터의 탈퇴 -국민국가 진보 개인, 반양장/ 권혁범 지음 / 삼인

1970년 9월 부산출생인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이 이라크에서 살해당했다. 그는 정부와 대통령에게 구명을 호소했지만 정부는 납치 사실 확인 직후 이라크 파병은 불변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김선일 씨는 납치 확인 하루만인 6월 22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권혁범(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으로부터의 탈퇴』를 통해 개인 삶의 의의를 국가 이익의 차원에서 찾는 이념 체계인 국가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국가가 가장 우월한 존재, 국가는 절대선이란 국가주의는 인간으로써 누려야 할 당연한 가치들을 압도해버린다. 국가안보는 모든 걸 초월해 보호받아야 할 개인의 인권과 생명을 유보할 수 있게 만든다. 역사는 제주 4.3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에서 낯설고 두려운 근대의 괴물을 불러낸다. 국가라는 이름의 괴물을….

성의 역사학 - 근대국가는 성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 후지메 유키 지음, 김경자, 윤경원 옮김 | 삼인 | 2004.

성의 역사학 -근대국가는 성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후지메 유키 지음, 윤경원 외 옮김 / 삼인

『성의 역사학』은 성매매특별법이 제정, 공포되던 지난 3월 무렵에 나온 책이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우리 사회는 많은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이 책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여성의 신체, 성적 자기결정권(성과 생식)의 문제가 어떻게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되고, 통제되었는가를 밝히고 있다. 일본 역시 지난 50년대 말 매춘방지법이 시행되었으나 법 제정 이후에도 성매매로 유입되는 여성들은 줄지 않았다. 이 책은 여성을 경제적·사회적으로 소외시키는 사회체제는 고스란히 유지한 채 성매매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고, 성매매만 죄악시하는 것은 새로운 억압이라고 주장한다. “성매매 여성들의 패배는 본질적으로 여성해방운동의 패배”를 뜻한다는 것이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기광서, 김성보, 이신철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 웅진닷컴 | 2004.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김성보, 기광서, 이신철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웅진닷컴

기획 탈북이란 말이 낯설지 않았던 올 10월 미 하원에서는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이 말하는 인권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선 관타나모 미군 기지와 아부 그라이브의 포로들을 떠올려야 한다. 이 책은 북한을 연구하는 국내의 젊은 역사학자들이 만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역사책이다. 그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북한의 역사, 북한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사회를 이해하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냉전의 그늘을 벗어나려는 순간, 북한은 위협적인 존재이기 보다 발목을 잡는 애물단지가 되어가고 있다. 북한,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현대 가족 이야기| 조주은 지음| 퍼슨웹| 이가서| 2004.

현대 가족 이야기/ 조주은 지음, 퍼슨웹 기획 / 이가서

조주은의 『현대 가족 이야기』는 소위 노동귀족이라 지탄받는 "현대자동차" 노동자와 가족의 생활사를 다루고 있다. ‘가족’하면 떠오르는 대도시 화이트칼라 중산층의 삶이 아닌 노동자의 삶은 어떤 것이며, 가족의 한 축을 이루면서도 소외된 여성의 삶은 어떤 것일까.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임금 에서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다. 반면 시간급은 매우 높다는 사실은 무엇을 반증하는가. 이 말은 현대자동차의 소위 ‘노동 귀족’들이 연일 계속되는 특근과 잔업, 구조 조정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현대, 기아자동차는 각 10%의 구조조정을 실시하기로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안정대책을 요구하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정부와 언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각을 세우는 논리로 노노 갈등을 부추겨왔다. 노동자 10명 가운데 7.4명은 비정규직 노동자인 이 나라에 노동귀족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다시 태양의 시대로| 이필렬 지음| 양문| 2004.

다시 태양의 시대로/ 이필렬 지음 / 양문

지난 2월 부안에서는 참여민주주의와 에너지 문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부안방폐장유치찬반주민투표가 있었다. 오랫동안 에너지대안 문제를 연구해 온 이필렬 교수는 우리가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에너지를 소모한다면 석유는 40년, 천연가스는 60년, 우라늄조차 50년 후엔 고갈된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부안 군민의 선택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에너지 정책이 어디로 가야할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경제담론에 가로막혀 에너지 위기를 못 본 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책은 우리들에게 에너지 위기의 대안들을 제시해준다. 그럼에도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수상한 과학| 전방욱 지음| 풀빛| 2004

수상한 과학/ 전방욱 지음 / 풀빛

천성산 습지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지율 스님의 단식은 터널 공사를 6개월여 동안 지연시켰다. 최근 재판부는 환경영향평가 결과 공사를 강행해도 무리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지금까지 어떤 공사도 소위 전문가들이 실시한 환경영향평가 결과에 의해 중단된 사례가 없다. 전방욱 교수는 『수상한 과학』을 통해 과학자들, 전문가들이 얼마나 손쉽게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좌우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현대 첨단기술은 문명이 시작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걸린 전체 시간의 2천 5백분의 일보다도 짧은 시간에 발전했기에 첨단과학의 결과물들은 종종 윤리적 검토를 앞질러 버린다. 환경영향평가는 과연 믿을 만한 것일까?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정문태 지음| 한겨레신문사| 2004.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정문태 지음 / 한겨레신문사

올해 우리는 고구려사 문제, 과거사진상규명법 등 유난히 역사를 고민할 일이 많았다. 전선기자 정문태는 지난 16년간 세계의 전쟁 지역을 취재하며 늘 생명의 위협을 받는 전선에서 역사적 현장에 서 있다는 자부심, "역사가 굴러가는 현장을 직접 바라볼 수 있는 대가로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버텨왔다"고 고백한다. 역사가 E.H.카는 "역사적 사실은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사실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가 그 사실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자신의 해석에 따라 재구성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가 생과 사의 갈림길을 누비며 파헤친 세계 분쟁 지역의 기록은 후세의 역사적 사실이 될 것이다.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김동춘 지음| 창비| 2004.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김동춘 지음 / 창비(창작과비평사)

미국을 우리 사회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을까?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국가도 미국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재선 확정 직후 부시 미 대통령은 팔루자에 대한 전면 공격을 개시했다. 이보다 조금 앞선 9월엔 국가원로(?)들의 시국 선언이 있었고, 친미반공을 외치는 이들이 거리로 나섰다. 김동춘 교수의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에는 이런 국내 분위기와 놀랄 만큼 흡사한 미국이 보인다. 현재의 미국은 냉전 시대를 거치며 집요하게 애국주의, 반공 담론의 게임 속으로 국민들을 끌어내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과도한 충성심을 보여야만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시스템 속에 만들어졌다. 이런 정치시스템 속에서 1960년대 베트남 전을 경험한 기독교 근본주의(복음주의 프로테스탄트)’세력이 미국의 보수 우파들과 합세해 정치적 영향력을 증대시켜 왔고, 이번 미국 대선은 그 결과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것이 지금 광화문 네 거리에서 성조기를 흔드는 그들이 두려운 까닭이다.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Patas Arriba: La Escuela Del Mundo Al Reves,1998)|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조숙영 옮김 | 르네상스 | 2004.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조숙영 옮김 / 르네상스

"법이 지켜지지 않는 곳에서는 부정부패가 유일한 법이다. 부정부패가 이 나라를 좀먹고 있다. 미덕과 명예와 법은 우리의 삶에서 증발해 버렸다"고 말한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악명 높은 갱단 두목 알 카포네였다. 저널리스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알 카포네가 세상의 도덕을 개탄하는 뒤집혀진 언술,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를 통해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 세계화를 극소수의 승자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난 대다수의 패자들이 벌이는 무자비한 경주에 비유한다. 지난 11월 수능시험에서 많은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떠들썩하다. 방법보단 결과를 앞세우는 교육 환경, 가장 비교육적인 교육이 보란 듯이 행해지는 입시지옥에서 학생들에게 죄의식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 일일까. 갈레아노의 표현을 빌자면 학교가 거꾸로 된 것이 아니라 세상이 거꾸로 된 것이다.

진정한 부(Les Vraies Richesses, 1937) | 장 지오노 지음| 김남주 옮김 | 두레 | 2004.

장 지오노는 『진정한 부』에서 "돈에 기초해 세워진 사회는 수확을 불태우고 짐승을, 인간을, 기쁨을, 진정한 세계를, 평화를, 진정한 부를 파괴한다. 여러분은 지금 당장 수확과 기쁨과 진정한 세계와 진정한 부를 누릴 권리가 있다. 더 이상 돈의 광기에 복종해서는 안 된다. 비참이 나를 공격할 때, 정령의 속삭임만 들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힐 순 없다. 내 기쁨이 모든 이들의 기쁨이 될 수 있어야 이 기쁨은 지속될 것이다. 나는 한 송이 장미를 손에 들고 싸움터를 가로지르고 싶진 않다"라고 말한다. 여러분께 한 송이 장미 대신 열권의 책을 권해 드린다.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 | 월간 함께 사는 길 | 2005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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