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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하는 그로테스크한 세계의 이단아

 

 

 

조세희

베니토 무솔리니

살바도르 달리

 

  셔의 그림을 어디선가는 다들 한번씩이나마 보았을 것이다. 그의 그림이 내 인생에 최초로 각인된 것은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명칭이 바뀐 국민학교 방학 무렵에 나눠준 <탐구생활>이란 성격이 좀 요상한 책자에 의해서일 것이다(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그 당시 이런 과제물을 만들어주신 교육 담당위원님께 감사드린다).

  그때 에셔의 그림은 눈의 착시현상에 관한 것을 알려주기 위한 예제 그림들 중 하나로 <탐구생활>이란 책자에 실려 있었는데 내 또래의 분들은 아마도 한 두 번씩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도 있었다. 그리고 소설가 조세희 선생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은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뫼비우스의 띠>라는 말도 한 번쯤 들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에셔의 그림은 이렇게 우리 주변에 흔하게 있으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뫼비우스의 띠2

 

 

무한 원형 4(천국과 지옥) - 두 조각으로 인쇄된 목판, 1960.

 

 

 

 바벨탑, 목판, 1928, 62*38.5cm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에셔가 고집하고 추구했던 예술과 우리가 흔히 미술에 있어서 말하는 예술의 기본 관념이 달랐던 데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통 미술에서 고집하는 `예술`의 정의와 에셔의 본질 사이에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술`이란 작가가 바라본 지극히 객관적인 대상이나 세계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을 기반으로 작가 자신의 세계관이나 인간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듣고 말하는 "인간이 없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란 말도 같은 맥락인데, 에셔가 추구했던 것은 그런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라기 보다 '보편적인 시각의 구조'를 찾는 철저한 원리를 그 창조의 동기로 삼았다는 것이다. 에셔의 이런 작업 태도와 작품들로 인해 그에게 흥미를 느끼는 비평가는 있어도 그의 작품을 치밀하게 파고들었던 평론가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수학자들이나 물리학자와 같은 과학의 범주에 있는 이들이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서 에셔는 20세기 들어 가장 특이한 판화가이자, 드로잉 작품들을 보여왔음에도 오랫동안 전통적인 미술계로부터 이단시 되어 왔던 것이다.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삶

  M.C. 에셔(Maurits Cornelis Esher)는 1898년 네덜란드에서 토목 기사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미술 교사의 영향을 받아 그래픽 아트에 관심을 가졌는데 후일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갔으나(1919년) 그의 작품을 본 담당 교수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그래픽 아트에 전념하게 된다. 1922년 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탈리아로 가서 시골의 집, 산비탈의 마을, 기념비적인 옛 건축물들을 스케치해서 판화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고, 1924년에는 로마에 정착했다. 1926년 스페인 남부의 그라나다에 가서 무어 왕들의 옛 궁전인 알함브라를 본 뒤부터는 궁전의 벽과 마루를 장식한 타일의 모자이크에 완전히 심취했다. 이슬람교는 공공 건물에서 조형 미술을 금지했기 때문에 타일 장식의 무늬(아라베스크)는 추상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에셔는 모자이크를 이용한 조형 미술의 무한한 잠재력을 발견했다. 이태리는 풍경화가인 그에게 매우 좋은 소재들을 제공해 주었는데 그는 지중해 연안을 도보로 여행하면서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실루엣을 이루고 있는 마을들을 소재로 목판화 작품을 제작하였다. 에셔는 1922년 말에 스페인의 그라나다(Granada)에서 알함브라(Alhambra)궁전을 방문했을 때 그 궁전의 장식에서도 매우 감흥을 받았다. 에셔는 이곳에서의 감흥을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것은 놀랍도록 동양적이었다. 내게 기이한 것은 우아한 장식과 위대한 품위와 전체적으로 잔순한 미였다. 그들 아랍인들은 귀족이었고 오늘날에는 더 이상 발견될 수 없는 것이다. 이 무어 양식의 벽화와 마루의 장식들은 이상할 만큼 인간, 동물, 그리고 어떤 형태의 식물도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1934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가 득세하는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을 견디지 못한 에셔는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이탈리아를 영원히 떠났다. 스위스에서 2년, 벨기에에서 5년을 보낸 뒤 1941년 네덜란드로 돌아가서 뿌리를 내렸다. 이즈음 그의 작품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대부분의 작품이 그의 눈으로 관찰한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의 눈으로 얻은 영감을 그려 놓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1936년의 4월에서 6월까지 이탈리아와 프랑스 해변을 따라 스페인까지의 바다 여행을 떠났다. 에셔는 알함브라를 두 번째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코르도바(Cordoba)의 모스크도 방문한다. 에셔의 작품을 살펴보면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에서 보는 것과 같은 아라베스크 양식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은 에셔 자신이 모스크 사원을 방문하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슬람 사원의 벽면을 장식한 아라베스크 양식들에게서 풍경을 정신적 형상으로 바꾸는 전환점 마련하게 된다. 에셔는 알함브라 궁전을 철저히 관찰하고 무어양식의 벽돌의장을 드로잉하였다. 연속 무늬에 의한 에셔의 작품들의 기초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고 이 후부터 그는 작품의 체계를 완성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결국 연속무늬의 모자이크 구조에 대한 모든 체계를 만들어 내게 되었고, 그것은 그의 판화 전 분야에서 커다란 원리를 이루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이태리를 떠나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를 전전하는 1937년까지의 여행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에셔는 이제까지 자기 주변에 있는 것을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상상에 기본을 두고 내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변화하였다. 이를테면 평면의 규칙적인 분할, 무한한 공간, 공간속의 원과 회전체, 거울 이미지, 평면과 공간의 상극, 불가사의한 형체 등은 그의 독특한 시각 언어로서 작품의 핵심을 이루게 된다. 이 중에서 에셔가 죽을때까지 몰두한 법칙은 평면의 규칙적인 분할에 관한 것이다.

 

 

 참고사이트 & 참고도서

 미술과 수학이 만나는 M.C. 에셔의 작품세계/ 이인식 과학글방 13/ 지성과 패기/ 1997년

 『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 상·하』 / 까치글방 150/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지음/ 박여성 옮김/ 까치글방/ 1999년
  
- 더글라스 호프스태터는 시각적 인식과 철학의 근본 문제를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보다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을 통해 사상들 사이의 공통적인 고민을 풀어내고 있다.

 『M.C. Escher-The Graphic Work / M.C. Escher/ Taschen/ 1990년/ Germany
  
- M.C. Escher의 그래픽 작업들에 대한 작품집으로 독일에서 출판된 볼 만한 화집이다.

  브렌던(Brendan)의 에셔 사이트
  
- 다소 난해한 에셔의 그림들에 대해 많은 이미지 갤러리와 설명 TEXT들로 꾸미고 있다.(영문)

  워싱턴 국립 미술관 
  
- 에셔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워싱턴 국립 미술관(영문)

  노튼 미술관(Norton Museum of Art)

  수아의 갤러리
 
 - 수아님이 꾸려가고 있는 홈 페이지, 에셔를 주요 컨텐츠로 하고 있으며 이미지와 함께 깔끔하게 살펴볼 수 있다.(한글)

  Net Art Hall
  
- 에셔 외에도 많은 화가들을 다루고 있다. 갤러리와 아티클로 꾸며져 있는 깔끔한 홈페이지(한글)

 

낯선 불가사의의 세계 - 에셔

   셔의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세계의 견자(見者)로 하여금 논리적으로는 따질 수는 없으나 낯선 세계에 대한 묘한 불쾌감을 느끼게 한다(그것을 불쾌감이라 해야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것은 아마도 그의 그림이 매우 세밀한 선들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공간과 매우 근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에도 실제할 수 없는 공간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거울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없는 짐승들이나 혹은 거울이란 것을 처음 마주하는 아이들, 놀이공원에서 볼 수 있는 '마술의 집'에서 거울의 방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그런 기분과 흡사한 것이다.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께 할 수 없는 공간을 에셔는 만들어내고 그 긴장의 간극을 최대한 이용하여 우리들 마음 속의 세계에 침투한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그럴 듯할수록 우리는 더욱 불안해지는 것이다. 에셔의 이러한 침투 주제는 초기에는 거울, 구형의 이미지에서 시작하여 수면에 미치는 자연의 세계 속을 보여주는 반사로 표현하고 있으며 차츰 실체와 실체와의 관계를 공간속에서 상호 매입을 보여주는 초현실적인 상상력을 통하여 표현하였다.

스튜디오에서 작품에 사인하고 있는 M.C 에셔

 

   에셔의 많은 판화에서 보여주는 매력은 그것들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존재할 수 조차 없는 것을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기존 전통의 예술관 안에서도 많은 화가들이 초현실주의에 입각한 작업들을 해왔다. 이미 위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살바도르 달 리도 눈의 착시에 입각한 작품들을 우리에게 선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에셔의 작품 세계가 그들과 다른 가장 큰 이유는 일련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것이 초현실 즉 일상의 세계와 다른 것이라는 사실(비이성적 현실이라는 것)을 확연히 간파할 수 있게 하는 데 반해 에셔의 작품들은 아주 이성적으로 보인다는 데 있다. 그리고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감성에 기대어 그들의 작품을 창조한다면 에셔의 모든 환상적인 작품들은 이성적인 구조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작품을 디자이너인 알베르트 프로콘은 다음과평면위의 모든 공간적인 그림은 환상에 기초하고 그 그림에 사용되는 표면은 평평하고 이차원인데 그것은 다시 공간적이 되고, 삼차원으로 다층적으로 묘사된다. 같이 솔직하게 평하고 있다.

에셔의 작품은 약간의 수동적인 느낌을 수반하면서 그 안에 담겨진 구조를 발견하는 스릴을 안겨준다. 이것은 일상 생활의 체험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오히려 일상 체험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해주기까지 한다. 좌우상하 원근이라는 기본적인 개념마저도 상대적인 것이며 기분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좌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점과 선 면 그리고 광간의 사이에 떠 원인과 결과 사이에 있는 아주 새로운 관계를 보게 해주며, 이러한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공간구조가 한편으로는 미묘하게 보이면서도 또한 아주 실재적인 세계처럼 느껴지게도 하는 것이다.

  에셔는 강의에서나 그의 글에서나 평면의 규칙적인 분할이 그의 작품에서 다루는 어떤 주제보다 더 그의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하였다. 1936년 - 알함브라 궁전을 두번째 방문하였을 때 - 이후로 에셔는 그 자신의 체계를 발전시켜 이 분야에서의 모든 가능성을 구체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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