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장을 꿈꾸는 바벨의 언어
1. 오염된 언어와 훼손된 가치
세월호 사고가 처음 TV 전파를 타고 전해지는 순간, “전원구조”라는 자막은 우리들을 안도하게 했다. 하지만 잠시 후 이것이 언론의 오보였고, 이른바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만드는 지옥문의 개막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던 침몰 과정은 단지 국가의 재난대비 시스템 부재를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침몰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순간까지도 비록 정부의 총체적 무능과 무대책에 대해 충격을 느끼고 비탄에 잠겼을망정, 이것이 장차 진영 논리나 이념 문제와 결부될 성질의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정당한 목소리가 묻혀버리고, 유가족대책위에 색깔론을 덧씌우고, 희생자의 아버지가 이혼한 민주노조 소속 구성원이라는 언론의 악의적 왜곡과 선정적인 보도가 난무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이 나라와 언론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음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유가족들의 요구는 정치 선동으로 폄하되었고, 죄 없는(?) 대통령을 공격하는 목소리로 치부되었다. 멀리 로마에서 날아온 프란치스코 교황은 거리에서 희생자 유가족들을 위로했지만, 지근거리에 있는 대통령은 이들을 철저하게 없는 사람 취급했다. 심지어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마저 벌어졌다. 차마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었지만, 그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광화문 거리에서 자행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자”면서 단식하는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투쟁이란 것을 전개한 사람들은 그간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이하 ‘일베’)>라는 공간을 통해 활동해온 이들이다.
주로 온라인 공간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이제는 거리로 나와 태연자약하게 경악스런 일을 벌일 수 있을 만큼의 활동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조어(造語) 문화를 통해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가 체득하고 축적해온 기존의 합의와 상식에 대한 전복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민주화’와 ‘산업화’란 말의 용법이다. 단순하게 말해서 이들에게 산업화란 ‘박정희 정권 당시가 산업화 시대였으므로 이것을 대한민국의 발전과 엮어서 좋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민주화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종북이고 좌파이기 때문에 반대한다거나 나쁘다’는 의미로 쓰고 있다. 오염된 언어를 통해 우리 사회가 힘들게 성취한 소중한 가치들을 감염시키고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최승자는 <언어가 어언> 최승자, 『문학사상』, 2001년 12월호
에서 이 시대의 언어에 대해 “희망의 언어가 어언 절망의 언어가 되었다./ 절망의 언어가 어언 죽음의 언어가 되었다.”고 말한다. 오늘날 일베가 ‘민주화’는 부정적 의미로, ‘산업화’는 박정희 시대의 고도성장을 의미한 긍정의 의미로 사용한다는 현실을 앞에 놓고 보면 최승자 시인의 표현은 절묘하다 못해 뼈아픈 지적이다. 희망의 언어는 어떻게 절망의 언어가 되고, 절망의 언어는 어떻게 죽음의 언어가 되었을까?
2. 민주화의 무능이 불러낸 박정희의 망령
일베 세대의 주요 구성원들은 박정희 유신체제를 직접 경험한 세대가 아니지만, 박정희 시대를 산업화 시대로 규정하며 그 시대가 민주화 이후의 시대보다 살기 좋았던 시대로 기억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어떤 시대이든 빛과 그늘이 있는 법이지만, 이들은 어째서 박정희 시대를 그토록 좋았던 시대,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으로 기억하게 되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 신드롬이 출현한 것은 민주화 이후였다. 박정희 유신정권의 정치적 후계자라 할 수 있는 전두환 신군부 정권은 부마항쟁, 5월 광주를 경험하면서 박정희를 계승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신군부 세력을 주축으로 했던 이들은 박정희가 남긴 유신 세력이 부상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시대와 차별화하기 위해 많은 정책들을 추진했는데, 예를 들어 1980년 7월 30일 과외금지, 1982년 1월 5일을 기해 야간통행금지 해제, 1983년부터 시행된 두발 및 교복 자율화 조치 등이 그것이다. 또한 전두환 정권은 헌법에서 5·16혁명(?) 정신을 삭제했고, 유신 세력의 잔재라 할 수 있는 구 공화당 세력을 부정부패, 권력형 비리 혐의로 제거하면서 박정희 시대를 부정과 부패, 비리의 시기로 규정했다. 자신들이 정의 사회 구현 세력이 되기 위해서라도 박정희 시대와 결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품었던 섭섭함과 구원(舊怨)은 이미 지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언론에 의해 충분히 소개된 바 있다. 아이러니(irony)란 말은 표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실제와 반대되는 뜻의 말을 하는 것, ‘반어(反語)’를 뜻하는데, 정치적 후계자인 신군부에 의해 거부당한 박정희를 민주화 세력이 부활시킨 꼴이 되었다는 것이야말로 한국 정치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이들은 오늘의 청년 세대를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란 말을 모두 ‘근대화’로 바꾸어 생각해 본다면 조금은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근대화란 단순히 서구화된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근대적 가치를 성취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로 보았을 때 양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산업화는 손쉽게 수용될 수 있지만, 질적인 개념의 민주화는 일상생활의 문화로 수용되지 않는 한 그리 단순하게 성취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과연 지금의 청년들에게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하는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나라 전체가 비리투성이” <국민일보>, 2011. 6. 18. -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5069612&cp=nv
라며 개탄했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아무 정책도 펼치고 있지 않은 현직 대통령보다 나은 정치세력, 대안정치 세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IMF 경제위기 이후 이렇게도, 저렇게도 버림받아 온 청년 세대 입장에서 보면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현직 대통령과 그저 매한가지 존재일 뿐이다. 다시 말해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욕하는 상황일 뿐이다.
이런 결과가 빚어지게 된 까닭에 대해서는 수많은 분석이 있다. 어떤 이들은 박정희 시대에 일정하게 공유되었던 지배 이데올로기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정치경제패러다임을 민주화세력이 구축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변화하는 국제경쟁체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자본과 노동의 갈등을 조정하는 새로운 경제운용방식을 개발하지 못한 채 선거공학에만 치중했던 민주화 세력의 실패가 오늘의 실패를 가져온 것이라고도 말한다. IMF 경제위기 이후 정부, 기업, 사회 어디에서도 구조의 메시지를 받을 수 없었던 국민들은 떠돌이 난민이 되어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펀드 투자와 주식 배당을 통한 ‘부자되세요’ 열풍은 국민 개개인을 인민자본주의의 맹신도로 바꿔나갔다. 부자가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에 누구나 부자가 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고, 그 결과 고등학생의 47%가 ‘10억이 생긴다면 1년 정도는 감옥에도 갈 수 있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윤리연구센터가 실시한 <2013년 청소년 정직 지수와 윤리의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고등학생 응답자의 절반 가량인 47%가 ‘10억원이 생긴다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고 답했는데, 이는 1년 전 조사에 비해 3%가 증가한 수치다. <매일경제>, 2014. 2. 6.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4&no=194849
고 답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사회가 되었다.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것들조차 “얼마면 돼?”라고 묻는 사회, 그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3. 보수기득권 세력의 문화투쟁 - 언론장악
민주화투쟁을 통해 확장된 정치 공간은 민주화 세력, 노동운동 세력뿐만 아니라 그간 전두환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던 박정희 잔존 세력들에게도 활동을 재개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들은 박정희 시절의 공화당을 부활시킨다는 의미에서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했고, 지역주의 정서를 바탕으로 일정한 정도의 정치 세력화에 성공한다. 민주화 이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에 이르는 정권교체 과정은 기존 보수기득권 세력과 일정하게 야합과 타협을 통해 이루어졌다. 비록 경제 민주화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정치적으로는 꾸준한 개혁을 이뤄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대한민국의 보수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입지와 이해관계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보수기득권 세력에 의해 기획된 거대한 문화투쟁(Kulturkampf)은 언론장악을 통한 거대한 반동이었다. 이들은 김영삼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를 자학적 역사관으로 비판하면서 반공친미주의를 앞세워 권력을 장악하고, 분단을 고착화한 이승만을 대한민국의 ‘국부(國父)’이자 ‘건국의 아버지’로 부활시키는 상징조작을 통한 문화투쟁에 나선다. 이것은 이승만을 통해 자연스럽게 박정희로 연결시키기 위한 사전 포석이기도 했다. 김영삼 정권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역사 바로 세우기’는 그 자체의 의미는 무시된 채 한보 및 김현철 사건 등으로 실추된 정권의 도덕성을 만회하기 위한 전략으로 치부되었고, 기득권 세력은 그 틈새에 무능한 김영삼 정권과 대비되는 의미에서 박정희 시대를 끼어 넣어 강력한 리더십과 청렴, 자기희생과 경제성장으로 홍보하기 시작한다.
박정희 사망 이후 10년이 경과한 시점(1989.10.25.)에 실시되었던 <중앙일보>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과오보다 공적이 많았다”는 응답이 전체 61%를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는 선택적으로 기억된다는 점에서 ‘질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정치적 탄압, 인권과 민주주의의 상실은 쉽게 망각된 반면 ‘양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각종 경제지표와 생활지표들은 더 많이 부각되었다. 박정희의 과오보다 공로가 더 많이 부각될 수 있었던 밑바탕을 마련한 사람이 바로 김영삼 대통령이다. 비록 3당 야합을 통해 집권했으나 김영삼은 박정희 정권 말기의 투쟁으로 ‘민주화의 기수’란 상징성을 획득하고 있었고, 집권 초기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90% 이상의 지지율을 획득하며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3당 합당을 통한 집권이란 태생적 한계와 아들을 비롯한 측근 비리로 인한 개혁 동력의 상실 등으로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그는 이 과정에서 애초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정국 전환용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미처 준비되지 못한 채 강행한 세계화와 개방 전략으로 IMF 경제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IMF 경제위기 이후 정권을 잡은 김대중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취약한 민주화 세력의 입지를 잘 보여준다. IMF 경제위기라는 국난 상황이 아니었다면, 또 보수의 분열이 없었다면, 유신본당을 자처한 김종필과의 지역 분할 구도가 없었다면 과연 김대중 정부의 출범이 가능했을까. 출범 초기부터 불안하고 취약한 구조였던 김대중 정부는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유산과 철저하게 결별하기는커녕 도리어 박정희 기념관 건립 지원을 약속하는 등 박정희 시대에 역사적 정당성까지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표면적으로는 화해와 용서를 말했지만 그것은 ‘사과 없는 일방적 용서’였다. 김대중 정부는 출범 초부터 IMF 관리체제가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질서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은 한국 노동자정치세력의 등뼈를 부러뜨렸다. 이후 한국의 노동세력은 민주화를 위한 노동자정치는커녕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위해 투쟁하는 세력 중 하나로 전락해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 정부의 출범은 김대중 정부의 실패와 타협을 그대로 계승했지만, 정몽준 후보와의 통합과 연대를 통해 고립을 모면하려 했던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면서 집권 초반부터 홀로 고립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에겐 집권 100일의 밀월조차 허용되지 않을 만큼 보수언론으로부터 난타를 당했고, 이것은 훗날 그가 세상을 떠난 뒤까지 쉴 새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를 강제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김대중 정부의 타협과 실패를 대신해 이번엔 선제적으로 한미 FTA를 주장하는 등 앞장서 나가기 시작한다. 한편으론 복지정책을 추구하고, 다른 한편으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이중의 혼돈 속에서 신자유주의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는 한국사회에서 매우 로컬하게 수용되었다. 이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부의 양극화를 넘어 마침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까지 나오게 된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 이 말을 하던 당시의 문맥은 상생협력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지만, 언론은 물론 일반 대중들도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줄 마지막 버팀목이 정부라고 생각하던 일반 대중들에게 이것은 정부의 항복 메시지로 여겨졌던 것이다.
보수기득권 세력이 펼친 문화투쟁의 정점은 지난 2008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정권(한나라당)에 의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출범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멘토라고 불렸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이명박 정권은 과거 두 번의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원인을 방송 때문이라 보았고, 집권 직후부터 공영방송을 비롯한 공공미디어 시스템 장악을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언론 장악을 위해 이명박 정권이 경찰, 검찰, 국세청, 법원,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같은 국가기관까지 총동원하면서, 공영방송 사장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축출되었다. 이후 MB특보 출신 사장들의 투입 과정에서 불거진 언론종사자들의 시위를 통해 눈에 거슬리는 언론종사자들을 걸러내었고, 마침내 KBS와 MBC를 비롯한 공공미디어 시스템은 무력화되고 말았다. 여기에 더해 MB정권과 방송통신위원회는 종편 채널들을 각종 특혜와 편법을 통해 신설하도록 제도화했고, 이들 종편들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어르신들의 교육방송’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4. 소망의 거울을 벗어나 다시 광장으로 - 바벨의 언어를 꿈꾸며
조앤 K. 롤링의 베스트셀러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는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소망을 비춰주는 거울 앞을 떠나지 못하는 해리 포터에게 덤블도어 교장이 충고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덤블도어 교장은 해리 포터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그 거울은 우리에게 지식이나 진실은 보여주지 않는단다. 사람들은 그 거울이 보여주는 게 진짜인지 혹은 심지어 가능한지조차도 알지 못한 채, 자신들이 본 것에 넋을 잃거나, 미쳐서, 그 거울 앞에서 헛되이 시간을 보냈지.” 조앤 K. 롤링, 김혜원 옮김,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2권, 문학수첩, 1999, 78~79쪽.
오늘날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머리맡의 스마트 미디어들을 통해 더 쉽게 더 많이 더 오랫동안 사회와 연결된다. 네트워크화된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상대와 즉시 연결될 수 있게 되었다. 또 보수언론은 보수언론대로, 종편은 종편대로 어디를 가든 보수적 가치를 지닌 세대와 계층에게 그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편집해 들려준다. 이것은 이른바 ‘진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사회일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우리는 사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언론사들은 종종 이것을 뉴스거리로 재생산해내기도 한다. 이처럼 SNS를 통해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으로 시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거나 최소한의 책임을 하고 있는 것일까. 종편이 그러한 것처럼 SNS 역시 빅데이터를 이용해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뉴스를 재가공하고, 주변 사람들을 수집해 보여준다.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주요 소통의 방식은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수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끼리끼리 만나는 것이다. 우리는 TV나 라디오와 달리 SNS 같은 뉴미디어를 쌍방향미디어라고 부르면서 마치 대화를 하고 있는 듯 착각하지만, 실은 상대와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나 홀로 방송’ 중이거나 TV 시청과 별반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깊은 공감과 참여 대신 ‘좋아요’ 한 번, ‘공유하기’ 한 번으로 세상이 변한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며 광장을 지키기 위해 죽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를 경험하면서 국가가 권력을 위해 국민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2014년 4월 16일을 경험하면서 국가가 국민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였다. 1980년 5월 광주와 2014년 세월호 참사는 시차를 두고, 국가의 폭력적인 본성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비록 한 사건은 과거 군부독재 시절의 일이고, 다른 한 사건은 민주화 이후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국민들이 이른바 진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질 거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열일곱 살 고등학생 신분으로 서울 지역의 다른 고등학생들과 ‘공정한 대통령 선거와 교육민주화’를 구호로 내걸고 명동성당에서 보름여 동안 농성을 하는 과정에서 뼈저리게 배운 교훈이었다. 진실은 정의를 실천하는 필요조건일뿐, 충분조건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는 말이 통하는 사람만을 만나서 대화 아닌 글 몇 줄 읽고 ‘좋아요’를 누르고, 그것을 소통이라 착각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다시 광장에서 만나야 할 때다. 비록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파편화된 바벨의 언어들을 긁어모아 힘겨운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거부한다면 소망의 거울 앞에서 언제까지나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며 거짓 행복에 잠겨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리얼리스트(REALIST)』, 통권11호, 삶창(삶이보이는창) 2014.12.12> |
작은 시네마 천국(The Little Cinema Paradiso)<코리아나> 
바람구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