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정치선전 예술 - 아트 라이브러리/ 토비 클락 (지은이), 이순령 (옮긴이)/ 예경/ 2000년
영국의 미술사가 토비 클락이 저술한 이 책은 20세기 예술의 중요한 테제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정치와 예술의 상관관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 저술이다. 이 책의 원제인 "Art and Propaganda in the Twentieth Century"는 이 책의 한국판 이름인 "20세기 정치선전예술"과 같다. 다만, 이 책의 부제라 할 수 있는 "the Political image in the age of mass culture, 대중문화의 시대 속에 드러난 정치적 이미지"는 이 책의 내용이 어떤 것일지를 추측하는데 보다 큰 도움을 준다. 예술은 종종 시대와 사회, 정치를 초극하는 어떤 것으로 그려진다. 앙가주망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를 비롯해 우리 문화계에서도 예술의 참여와 순수를 놓고 오랫동안 논쟁이 있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 논쟁은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논쟁" 만큼이나 오래되었고, 앞으로도 형태를 달리하며 지속적으로 진행될 논쟁이다.
토비 클락은 인트로덕션에서 먼저 "프로파갠더(propaganda)"에 들씌워진 단순한 이미지인 "정치선전"이란 측면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종종 우리는 어떤 단어들에 사전적 의미 이상의 이미지를 중첩시킨다. 20세기 최고(?)의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될 백남준에게 예술은 그저 "사기이고, 사업"인데 비해,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은 예술을 지고지순한 절대진리와 자유, 미의 세계를 추구하는 진지한 탐구를 연상한다. 이 둘 사이엔 확실한 차이가 존재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진실에 접근하고 싶다면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부터 파괴해볼 용의가 있어야 한다. 가령, 어떤 이들에겐 그것이 '국가안보'일 수도 있고, '반공'일 수도 있고, '시장경제'일 수도 있고, 그 반대편에 선 이들에겐 '평등'일 수도 있고, '인권'일 수도 있고, '자유'일 수도 있다. 어떤 한 가지 추상적인 개념을 신의 지경에 올려논 뒤라면 우리는 그 절대선에 대해 회의하는 것조차 불경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까닭에 토비 클락은 우선 "예술(Art)"을 속된 것, 하비 콕스(Harvey Cox)식 표현을 빌자면 "세속화(secularization:어떤 사회에서 '신성한 것'이라고 하는 것에 의하여 만들어진 사회제도나 인간생활 전반에 걸친 구속(종교)이 세속적인 규제의 형태로 바뀌어가는 사회과정)"된 어떤 것으로 볼 필요를 느낀다. 그 반대의 의미에서 "선전"을 지나치게 세속화된 어떤 것에서 좀더 객관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로 교정해놀 필요를 느낀다. 즉, 예술은 절대선이 아니며, 선전이 절대악은 아니란 것이다. 특히 선전이 일상화되어 있는 대중사회의 문화 속에선 더욱 그렇다. 그래서 토비 클락은 본래 "선전"이란 말이 중립적인 의미의 단어였음을 그 어원에서 찾아 설명해준다. 그것을 독자가 납득해주어야만 토비 클락의 저술은 '본래의 힘(객관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토비 클락의 이 저술은 읽는 이가 어떤 이념을 가졌는가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가슴 아플 수 있다. 정치적인 좌우파를 막론하고 선전전술은 효과적으로 이용되어 왔고, 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다. 선전은 때로 TV에서 벌이는 정치토론과 흡사한 느낌을 대중에게 전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의 주장에 대해선 무비판적으로 혹은 동류에 속한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는 반면, 그 반대편 입장에 선 사람의 입장에선 매우 비판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가시처럼 여겨진다. 최치원의 "토황소격문"이나 제갈량의 "출사표" 역시 매우 정치적인 선언 혹은 선전이다. 선전이란 이렇듯 명분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 대중을 선동하여 자신들의 입장에 동조하게 만들기 위한 활동을 의미한다. 사회는 마음을 조작한다는 점에서 선전은 엄격히 관리되고, 통제될 필요를 느껴왔다.
이 책은 20세기 전반기로부터 시작해서 에이즈 시대에 이르는 20세기 후반기까지를 모두 5장의 구분으로 다루고 있다. 제1장인 "혁명과 개혁 그리고 근대성, 1900~1939"에서는 주로 소비에트 건설이란 결과로 완성된 20세기 전반기의 중요한 급진적 이념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전파했는가를 보여준다.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로부터 페르낭 레제의 사회주의, 그리고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까지를 이 장에서 다루고 있다. 여기에는 루이스 하인과 같은 사진예술이 어떻게 사회계몽(다른 의미에서는 분명히 '선전'인)에 이바지했는지와 같은 예술과 기술의 발전 관계를 함께 다룬다.
제2장은 "미술과 선전, 그리고 파시즘"에서는 정치적 좌파의 성공에 대한 우파의 두려움이 산출해낸 정치체제인 "파시즘"이 어떻게 그들의 이념을 선전해냈는가를 다룬다. 파시즘은 극우파적인 정치질서를 의미하지만 국가, 민족의 차이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지만 나치즘이 국가사회주의를 의미하는 것처럼 궁극적으로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교묘한 결합을 뜻한다. 이때 사회주의의 이상은 거세되며 수단만 채용되고, 민족주의의 전근대적 속성은 교묘히 은폐된 채 피에 종속된 열광과 명예만 강조된다.
이것은 매우 계급적인듯 보이면서 동시에 사회 내부의 갈등 요소인 계급을 봉합하고, 계층간의 결합을 극적(테러와 린치)으로 이뤄낸다. 토비 클락에 따르면 사회주의와 전체주의를 극명하게 구분하는 근거 중 하나는 전자는 감성에 호소하는 동안에도 이것이 철저하게 계몽적인(합리주의) 정치철학임을 강조하는 반면에 전체주의는 이것이 이성이 아닌 철저히 감성에 의존(반합리주의)한 정치철학이라는 점이다. 레니 리펜슈탈이 감독한 작품 "의지의 승리"는 그런 프로파갠다 예술의 표상이 된다. 레니 리펜슈탈은 "의지의 승리"를 통해 파시즘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선전해낸다. 파시즘은 설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대상을 압도하고자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엄청난 군중과 일치단결된 환호성, 고함, 절규는 마치 중세 마녀들의 신비한 회합에 참가한 흑마술 신봉자들처럼 이성을 마비시키고, 그 자체로 압도당해서 기계인형처럼 상대의 의지에 종속되고 만다.
제3장 "공산주의 국가의 선전"편에서는 "혁명"이란 말 자체가 인간의 의식을 변혁시키는 지속적인 과정임을 설파하고 있다. 의식혁명이 아니라 혁명 그 자체가 인간의 의식을 변혁하는 것임을 의미한다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공산주의는 단순히 정치경제질서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의 의식을 공산주의적 인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탓에 공산주의에서의 '자아비판'은 중세 교회의 '신앙고백(confession of faith)'과 흡사한 면모를 지닌다. 초기 기독교도들을 탄압하기 위해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십자가를 땅바닥에 놓고 이것을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믿지 않는 이에게 이것은 단순히 나무 토막 두 개를 서로 포개어 논 것에 불과하지만 기독교도들에게 이것은 신앙 그 자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된다. 그런 까닭에 기독교도들은 이 나무 토막을 밟지 못하고 결국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스탈린 지배하의 소련에서는 이런 류의 자아비판이 횡행했다. 예술가(말레비치)는 스스로 "나는 자신을 무의 상태로 변화시켜서 쓰레기로 가득 판 아카데미 미술의 늪에서 스스로 빠져나왔다"고 고백한다.
토비 클락은 단지 사회주의 리얼리즘 혹은 공산주의의 프로파갠다만 비판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현대예술의 거장 중 한 사람으로 추앙하는 인물인 잭슨 폴락의 추상예술 역시 사실은 고도의 프로퍼갠다였다고 주장한다. 붓에 물감을 잔뜩 발라 흩뿌린 작품에서 어떤 정치성을 읽을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되물을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작품 자체가 지닌 정치성 때문이 아니라 냉전의 상대방인 소비에트 리얼리즘이 추구한 현실성의 반대 측면에서 저항하기 위해 미국 CIA가 비밀리에 이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재정적으로 후원했다는 점에서 이것은 정치적 프로파갠다가 되는 것이다. 마치 스파이영화의 한 장면처럼 어떤 예술가는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 이미 국가의 선전도구가 된다. 사회주의가 직접적인 신앙고백을 필요로 한다면, 자본주의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조작함으로써 그들의 체제가 좀더 우월하다는 것을 선전하게 만든다. 그것은 광고의 작동원리와 동일한 것이다.
제4장 "전시의 선전"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베트남전쟁에 이르는 기간 동안 국가 단위에서 이루어진 선전예술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때 다뤄지는 주된 장르는 역시 미술이지만 앞서 루이스 하인의 예에서 보여지듯 다른 인접 장르들인 사진과 영화 역시 빼놓지 않는다. 1945년 영국은 셰익스피어 원작의 영화 "헨리5세"를 제작한다. 이것은 영국민들 스스로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영화였다. 로렌스 올리비에는 전쟁 발발 이전엔 미국 할리우드에서 주로 활동했으나 전쟁이 발발하자 즉시 영국으로 귀환한다. 그는 U보트의 위험이 가득한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귀환하여 즉시 애국 활동을 시작한다. 그가 훗날 기사 작위를 받게 된 것은 단순히 연기만 잘한 탓은 아니었다. 20세기 가장 대중적인 장르로 평가받는 영화는 이렇듯 국가의 선전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었고, 독일의 괴벨스 역시 전시 기간 동안 독일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영화들을 제작했고, 소련은 에이젠쉬쩨인을 동원해 러시아 역사상 유명한 애국지사들을 영화화하도록 했다. 토비 클락은 징병포스터들에서 사회의 변화되는 모습을, 전후 건설되었던 기념관들을 통해 사회(상부구조)가 전쟁을 어떻게 인식하길 원하는 지를 보여준다.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전쟁을 회피하지 못하는 사회공동체의 커다란 숙제이다. 죽음이란 지극히 사적인 체험으로 대개의 경우 개인의 죽음을 기리는 방식은 사적인 영역에서 죽은 이와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이들에 의해서 치뤄진다. 그러나 어느 경우엔 죽음 자체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추모하는 일을 국가나 사회 단위에서 독점하는 예가 있다. 바로 전사한 이들이다. 죽은 이들을 기리고, 희생을 추모하는, 그것을 기념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국가는 이런 죽음을 독점(좀더 엄밀하게 말하면 죽음의 의미와 상징성을 부여하는 권리를 독점)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으로 사회를 통제하려고 한다. 국가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경우엔 죽음에 상징성을 부여하고, 그들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죽음의 의미가 발전해나가는 것을 통제하고 싶어한다. 최근의 사건들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을 기리는 방식을 놓고 시민사회와 국가가 갈등을 빚는 양상을 지켜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국가 공권력은 시민사회가 추모하는 효순이 미선이 기념비를 임의로 철거한다. 죽음을 추모하는 행위 역시 국가에 의해 통제당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행위이다.
토비 클락은 그 한 사례로 마야 린이 설계한 "베트남전 기념관"을 든다. 이 기념관이 세워진 곳은 백악관에 인접한 지역으로 거대한 오벨리스크인 워싱턴 기념물과 링컨기념관 등 미국의 유명한 기념물들이 수직으로 높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마야 린은 이곳에 기념비를 제작하면서 무수한 반대를 겪는다. 왜냐하면 베트남전 기념관에 국가와 미국의 패트리어트들이 원하는 애국심을 고취한다거나 그들의 자긍심을 부추겨줄 그런 상징성을 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야 린은 "상실이라는 뼈 아픈 현실을 인식하게 될지라도, 상실감을 극복하는 것은 어차피 각 개인의 몫이다. 죽음은 결국 개인의 사적인 문제이며, 따라서 이 기념물의 내부 공간은 개인의 명상과 심판을 위해 마련된 조용한 장소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관이 미국식 애국의 선전물이 되기를 거부했고, 미국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긴 베트남전의 상처와 과오를 직시하는 장소가 되길 원했다.
그런 까닭에 이 기념물은 1959년에서 75년 사이 베트남에서 실종되었거나 사망한 5만 8천여 명의 이름만이 기록되어 있는 검은 돌담벽으로 조성되었다.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침묵 속에서 자신의 얼굴이 비춰보이는 검은 돌담벽에 새겨진 죽거나 실종된 사람들의 이름을 바라본다. 마치 "통곡의 벽" 앞에 선 것처럼 그들은 이 자리에 서서 어떤 국가의 상징이나 공동체의 이념 따위 보다는 죽은 이들의 이름과 대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제1장에서 제4장에 이르는 부분이 정치선전의 기원과 역사, 그 방법들에 대한 이야기라면 제5장 "저항미술:베트남 전쟁에서 에이즈까지"는 이런 정치선전예술에 대한 저항의 방식과 의미에 대해 논하는 장이다. 암암리에 혹은 공공연히 저항할 수 없는 정치선전 혹은 광고에 노출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답답함을 느끼게 된 독자를 위해 이에 저항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파리의 68혁명부터 제3세계의 영화의 선언 "카메라는 소총이다"란 주장처럼 지배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수단에서 이에 저항하는 수단으로서의 예술은 모두 예술 그 자체를 무기로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토비 클락은 설파한다. 즉, 예술이 제 아무리 정치와는 무관한 순수한 어떤 것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예술은 단지 소총일 뿐이다. 소총은 그 자체로 대상을 적으로 인식하지 않지만, 그것을 쥔 사람에 따라 지배이데올로기를 사수하는 소총일 수도 있고, 지배이데올로기에 균열을 가하는 소총일 수도 있다. 토비 클락은 예술을 더이상 정치와 무관한 어떤 공허한 이미지로 사고하지 말도록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 책은 미술사와 관련한 매우 뛰어난 저작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정치학 서적이고, 또한 대중문화의 속성에 대한 탁월한 비판서이다. 20세기를 다루고 있는 여러 예술 서적 가운데서도 독특한 시각과 함께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읽을 만한 가치를 획득한 몇 안 되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 1997년 영국에서 처음 발표되었고, 국내에는 지난 2000년 초판이 발행되었다. 그런 까닭에 최근 세계 예술 조류에 대한 이해도 함께 얻을 수 있다. 이 책과 함께 에릭 홉스봄의 책 "아방가르드의 쇠퇴와 몰락"을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