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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 분은 “내가 쓰는 동화는 슬프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듯이 권정생 선생의 동화와 시들은 참 슬픕니다. 슬픔에 겨워 슬프고, 슬픔에 기대어 슬프고, 슬픔을 이겨내는 안간힘이 슬프지요. 그런데 땀에도 진땀이 있고, 식은 땀이 있듯이 그의 이야기 속 슬픔은 그냥 슬픈 건 아닙니다. 마냥 슬픈 것도 아닙니다.
그의 이야기들 속에는 권정생 선생님의 삶이 또한 그러했듯 슬프지만 기댈 수 있고, 슬프지만 이겨내야 하는 그런 마음들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이 분의 동화를 처음 접하게 된 건 그러니까 지금 제 집사람이 된 대학의 어린 동생으로부터 받았던 한 권의 책 덕분이었지요. 세상, 조그만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그보다 더 잘 노래한 작가도, 시인도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37년 일본 도쿄의 뒷골목에서 가난한 노무자의 아들로 태어나 소작농인 아버지와 행상 하는 어머니의 밑에서 초등학교를 겨우 마친 그는 이후 전국 각처를 떠돌며 점원노릇을 했다고 하지요. 그의 마음 속에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탓이었는지 그분 자신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던 탓인지 그는 그렇게 떠돌면서도 신문연재소설로부터 시장바닥의 삼류대중잡지에 이르기까지 걸신들린 듯 읽었다고 합니다.
그런 오랜 객지 생활 끝에 늑막염과 폐결핵을 얻은 권정생 선생은 유랑걸식을 하다 안동 조탑리. 함석지붕의 조그마한 시골 예배당 문간방에서 정착하게 됩니다. 예배당 종지기로의 삶을 시작한 그는 한 여름 소나기가 쏟아지면 구멍난 창호지 사이로 개구리가 뛰어들어오고 겨울이면 아랫목으로 생쥐가 파고들어 발가락을 깨물고 달아나는 문간방에서 자신의 삶 속에 유일한 희망인 동화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발표된 작품이 1969년에 발표한 데뷔작 <강아지똥>이었죠.
비 오는 어느 여름날 처마 밑에 굴러다니는 강아지똥을 보고 쓴 동화라고 합니다.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 않아 이리저리 채이던 강아지똥이 자신의 몸을 녹여 민들레꽃을 피운다는 이 짧은 이야기는 당시 한국 아동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요. 제 개인적으로도 참 좋아하는 동화입니다.
<본문 중 일부를 옮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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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렸습니다.
봄을 치장하는 단비가 촉촉히 골목길을 적셨습니다. 강아지똥 바로 앞에 파란 민들레 싹이 하나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너는 뭐니?"
강아지똥이 내려다보고 물었습니다.
"난 예쁜 꽃이 피는 민들레란다."
"예쁜 꽃이라니! 하늘에 별만큼 고우니?"
"그럼!"
"반짝반짝 빛이 나니?"
"응, 샛노랗게 빛나."
강아지똥은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어쩌면 며칠 전에 제 가슴 속에 심은 별의 씨앗이 싹터 나온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네가 어떻게 그런 꽃을 피울 수 있니?"
물어 놓고 얼른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그건 하느님께서 비를 내리시고 따뜻한 햇볕을 비추시기 때문이야."
민들레는 예사로 그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역시 그럴 거야. 나하고야 무슨 상관이 있을라고·····.'
금방 강아지똥의 얼굴이 또 슬프게 일그러졌습니다.
그러자 민들레 싹이,
"그리고 또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하고는 강아지똥을 쳐다보며 눈을 반짝였습니다.
"·····?"
"네가 거름이 되어 줘야 한단다."
강아지똥은 화들짝 놀랐습니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너의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 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서 예쁜 꽃을 피게 하는 것은 바로 네가 하는 거야."
강아지똥은 가슴이 울렁거려 끝까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 과연 나는 별이 될 수 있구나.!'
그러고는 벅차 오르는 기쁨에 그만 민들레 싹을 꼬옥 껴안아 버렸습니다.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온 몸을 녹여 네 살이 될게."
비는 사흘 동안 계속 내렸습니다.
강아지똥은 온 비에 맞아 자디잘게 부서졌습니다. 땅 속으로 모두 스며들어가 민들레의 뿌리로 모여들었습니다. 줄기를 따고 올라와 꽃봉오리를 맺었습니다.
봄이 한창인 어느 날, 민들레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향긋한 내음이 바람을 타고 퍼져나갔습니다.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엔 귀여운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가득 어려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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