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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 초퍼(Meat Chopper)무비의 선구자, 폭력의 피카소

 

 

 

피카소

오우삼

스티브 맥퀸

철십자 훈장

와일드 번치

 

  나는 좀 삐딱한 심성을 가지고 있는 탓인지 유혈이 낭자한 영화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사실 느와르 영화 혹은 특별한 장르로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전쟁(액션물이 아닌)영화를 즐기는 그 동안의 내 영화보기 취향은 사실 대중적인 영화보기 취향 아니면 매일 마누라들과 비디오 선택권을 놓고 다투는 이 땅의 많은 기혼남들과 같은 영화보기 취향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호불호(好不好)가 액션이 얼마나 장쾌하냐, 피를 얼마나 많이 흘리는가에 있지 않고 전쟁이나 그외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얼마나 리얼하게 그려냈느냐 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그 아저씨들과 좀 다르다면 다른 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퀜틴 타란티노 같은 감독을 극도로 싫어한다. '미트초퍼무비' - 이 말은 아직 어느 영화평론가도 쓰지 않은 나만의 신조어이다. 일명 '고기 다지는 영화'란 뜻이 될 터인데 그만큼 유혈이 낭자하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아주 살벌하게도 거기에 어떤 사무라이풍의 낭만은 철저히 배제된 영화들을 말한다. 정육점 주인이 고기를 칼로 다지거나 갈아줄 때 거기에 어떤 낭만을 기대할 수 없는 것과 매한가지이듯 내가 생각하는 미트초퍼무비란 것도 살육 장면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리얼하게 잡아낸 영화들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웅본색>류의 영화들은 미트초퍼무비에서 배제된다. 얼마전 개봉에서 우리나라에서도 큰 히트를 쳤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같은 영화의 전반부 상륙작전씬 같은 장면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제임스 코반과 윌리엄 홀덴은 샘 페킨파 감독의 페르소나를 대변하는 배우였다.

 

 

 

샘 페킨파 감독 유일의 전쟁영화였던 <철십자 훈장> -  전쟁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지금까지 제작된 그 어떤 영화보다 사실적으로 전쟁을 묘사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샘 페킨파 감독의 대표작 <와일드 번치>에 크레딧 장면중에서 윌리엄 홀덴

 

 

 

수정주의 서부극의 대명사, 웨스턴의 대미를 장식하는 영화로서 그리고 샘 페킨파 감독의 하드 보일드 미학의 절정을 장식하고 있는 영화가 바로 <와일드 번치>이다. 샘 페킨파 감독은 너무 늦게 재조명된 영화 작가로 평생 불운했다.

 


제임스 코반과 샘 페킨파

  일명 폭력의 피카소라 일컬어지는 샘 페킨파는 어린 나에게 최초로 이 미트 초퍼 무비란 느낌을 안겨준 감독이다. 명감독들에게는 그들이 특별히 사랑하는 배우가 있다. 가령, 마틴 스콜세지에게 로버트 드니로가 그의 아우라를 대변해주는 배우라면 페킨파에게는 제임스 코반이 그런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어플릭션(Affliction)>에서 주정뱅이 아버지 역을맡아 제71회 아카데미영화상 조연 남우상을 수상한 제임스 코반(70)은 그동안 8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나 단 한번도 아카데미상 수상자 후보에 오른적이 없었을 만큼 아카데미로부터 소외된 인물이었다. <위대한 탈출>, <황야의 7인> 등의 영화에 출연했던 코번은 이번에 러셀 뱅크스의소설을 영화화한 <어플릭션>에서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술로 세월을 보내며 가족들과 마찰을 빚는 초라한 아버지역을 열연해 마침내 아카데미상을 거머쥐었다.

 

제임스 코반과 막시밀리안 쉘 주연의 영화 <철십자> - 샘 페킨파 감독 유일의 전쟁영화이다.

  코반은 수상자로 발표되자 “반생동안 연기를 해왔는데 마침내 제대로 된 것을하나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케리 그란트와 오드리 헵번이 주연했던 `샤레이드'에 조연으로 출연하기도했으며 `던디소령'(65년), `팻 가렛과 빌리더 키드'(73년) `철십자가'(76년) 등 폭력미학의 거장 샘 페킨파가 만든 영화에서 주로 터프가이를 연기했다. 코반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주정뱅이역은 페킨파 감독에서 영감을 얻었다면서 영감을 준 것은 “그가 자신의 알콜중독을 보여준 방법이 아니고 그것을 보여주지 않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관절염으로 지난 79년부터 10년동안 연기생활을 하지 못했던 코번은 90년대 들어 `매버릭'(94년), `너티 프로페서'(96년) 등에 나오기도 했다. 흔히 페킨파의 대표작이라고 하면 <와일드 번치>나 <팻 가렛과 빌리 더 키드>를 꼽는데 영화사적으로는 그럴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와일드 번치>와 <17인의 프로페셔널>을 들고 싶다.

  <17인의 프로페셔널>이란 다소 영화와는 별관계가 없는 제목을 어떻게 만들 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 원제는 철십자 훈장(Cross of Iron)였다. 아마도 일본에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던 모양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처럼 - 어렸을 때 KBS 명화극장에서 몇 차례 방송해주는 것을 보며 어린 나이에 제법 충격을 받았다. 실제 전쟁에 참전해본 적은 없지만 실전이라면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하도록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나중에 추가하기로 하고 이만 접는다.

마이너리티 정신의 반항아. 샘 페킨파

  샘 페킨파는 처음엔 TV시리즈의 대본 작가로 시작한다. 그후 영화 감독, 대본작가로 활동했지만 실상 그의 영화의 전성기는 극히 짧았고, 그가 남긴 영화들은 걸작 칭호를 서슴치 않고 받을 만한 영화도 거의 없는 폭력으로 가득 찬 서부극 감독으로만 기억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작가주의 정신을 찾아보기 힘든 미국 헐리우드 영화의 역사 속에 1960~70년대를 쓸쓸하지 않게 만든 대표적인 감독이며 그가 남긴 영화의 정신이 후대에 이르러 어떤 형태로든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장의 칭호를 받을 만하다. 샘 페킨파는 앞서도 말했지만‘폭력의 피카소’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폭력미학이다. 특히 1968년의 <와일드 번치>가 유명한데 이 작품은 샘 페킨파의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다고 할 만큼 그의 영화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반드시 보아두어야 할 영화이다.

  그의 영화 세계를 통틀어 특별한 선인도, 악인도 없다는 점은 그의 영화 이전의 서부극들이 존 웨인은 거칠지만 언제나 우직하고 선하며 그의 상대역들인 인디언들은 언제나 악인으로 그려지던 세계에선 개벽할 일이었을 것이다. <17인의 프로페셔널>에서도 역시 선과 악의 개념은 지극히 모호하게 나타난다. 수정주의 서부극의 대표작인 이 영화 <와일드 번치>는 총격전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슬로모션을 사용해 죽음의 처절함에서 묘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그뒤 슬로모션은 샘 페킨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지만 그후 그의 후배 감독이자 그에게 지극한 오마쥬를 바친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 등의 영화에서 슬로모션은 고스란히 계승된다. 그의 경력은 <건스모크(Gunsmoke)>, <서부인 (The Westerner)>, <라이플맨 (Rifleman)>같은 TV서부극의 대본 집필과 감독으로 시작해서 영화 <지독한 동료 (The Deadly Companions)>(1961)로 영화 감독에 데뷔했으며, 이후의 작품 <대평원 (Ride the High Country)>(1962), <던디 소령 (Major Dundee)>(1965)에서 웅장한 서부의 경관, 신사도가 사라진 서부를 떠도는 원한에 찬 인물, 특히 무시무시하고 사실성이 돋보이는 절묘한 총싸움 등과 같은 공식이 이미 형성되었다.

  그러나 페킨파는 타고난 반골 기질 때문에 세 번째 영화인 <던디 소령>을 만들 때 헐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헐리우드 영화 제작 시스템 그 자체를 말한다고도 할 수 있다.)와 충돌을 빚고 그는 할리우드를 떠난다. 그런 페킨파의 재기를 알린 작품이 바로 <와일드 번치>인 것이다. 자동차가 막 등장하던 무렵의 서부 과거 총잡이들과 무법자들이 설쳐대던 서부가 해체되던 시기에 충성심, 명예, 단결, 영웅주의와 같은 낡아빠진 남성들의 윤리를 위해 싸우는 총잡이들의 모습을 장렬하게 묘사한 이 폭력 서부극은 페킨파를 일약 폭력미학의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 만년에 마약과 알콜중독에 빠져들기도 했던 페킨파가 헐리우드 시스템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으로 엉망진창이 되다시피 한 그의 개인사와 페킨파가 그 근본을 흔들어 놓았던 미국 영화사의 두 가지 측면에서 전개되고 있다. 간결하면서도 적절한 구성으로 매우 읽기 쉽게 씌여졌지만, 페킨파와 헐리우드 시스템간의 관계를 조명할 때는 뛰어난 분석을 제공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그외에서도 그의 영화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와일드 번치 (The Wild Bunch)>(1969)는 그의 대표작이며 <팻 가렛과 빌리 더 키드 (Pat Garret and Billy the Kid)>(1973)는 그의 작품 가운데 특히 유혈이 낭자한 영화로 유명하다.

  그뒤 페킨파는 <케이블 호그의 발라드>, <주니어 보너> 등의 영화를 만들면서 짧은 전성기를 맞았지만 70년대 중반 이후에는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비판을 들으며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러나 페킨파의 모든 영화는 세상의 주류 질서를 삐딱하게 보는 관점(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곧 사라질 인물들이거나 주류 질서에 대해 반항적인 인물들이다.)과 강력한 남성중심주의, 폭력미학의 강한 매력을 발산한다. 샘 페킨파 감독은 미국 현대사와 헐리우드의 절대적 권위에 도전했던 영화작가였다.

  폭력을 서정적 리얼리즘 내에 위치시킨 연출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영웅주의적 신화를 재고찰하고 여성 캐릭터가 갖고 있던 전통적 코드를 뒤엎으며, 마침내는 손댈 수 없던 미국사와 영화사를 정면으로 공격했던 페킨파가 이류감독 대열에 남았던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외의 영화들인 <스트로 도그스 (Straw dogs)>, <게터웨이 (The Getaway)>(스티브 맥퀸과 알리 맥그로우 주연 - 얼마전 리메이크 되었었다.), <17인의 프로페셔널 (Cross of Iron)>과 같은 비()서부극들도 전편에 걸쳐 폭력이 난무한다. <케이블 호그의 발라드 (The Ballad of Cable Houge)>와 현대 서부의 애조 띤 모습을 그린 영화 <주니어 보너(Junior Bonner)>는 또다른 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페킨파의 영화는 국내에 <와일드 번치> <어둠의 표적> <게터웨이> <관계의 종말> <킬러> <철십자 훈장> <콘보이> <오스타맨> 등이 비디오로 출시 돼 있다.

폭력의 피카소, 샘 페킨파

 

 

 참고사이트 & 참고 도서

 『시네21 영화감독사전』 / 한겨레신문사/1999년

  
  
- 영화평론가 이효인이란 사람을 혹시 아시는지. 인터넷으로 현실에 뿌리내린 대안 공간을 꿈꾸던 이들이 모여 만들었던 <자객>사이트와 흡사한 이미지의 홈이다. 사실상 같은 이들이 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반드시 알아두시라. 피가 되고 살이 되리니.(한글)

  The Films of Sam Pekinpah 
  
- 페킨파 감독이 연출한 영화 포스터들을 다량 볼 수 있다. 그외에도 다양한 링크들을 제공하고 있다.(영문)

  LAST OF THE DESPERADOES
  - Dueling with Sam Peckinpah
  
  
- 참 멋진 말이다. 마지막 데스페라도(무법자, 불량아 등등)라! 샘 페킨파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와 그의 연출작들에 대한 간략한 아티클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영문)

 



<참고자료> - 밑의 글은 <와일드번치>의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해 <한겨레>신문에 게재되었던 글을 퍼왔습니다.

<와일드 번치>
(The Wild Bunch)/ 샘 페킨파/ 1969

  <와일드 번치>는 개봉 당시 격렬한 폭력장면들 때문에 비평가들과 대중 사이에 논란을 야기했다. 서부영화 가운데 이 영화처럼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은 영화는 없었다.  페킨파 감독은 오프닝 시퀀스를 창조적으로 극화된 프롤로그로 연출했다. 영화가 시작되면 기병대 복장의 사나이들이 말을 타고 나타난다. 그들은 개미떼에게 전갈을 먹이로 던져주고 괴롭히며 놀고 있는 한 무리의 아이 들을 지나쳐 마을로 향한다. 마을에는 금주를 위한 기도회가 열리고 있고 , 군인들은 급료지불 사무소쪽으로 다가간다. 건너편 건물의 지붕꼭대기 에는 무장한 총잡이들이 난간 뒤에 숨어 웅크리고.

  군인으로 위장한 파이크(윌리엄 홀덴) 일당이 사무소로 향하는 쇼트가 보여질 때는 행진곡 리듬의 드럼 소리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사무실 안에 들어선 파이크가 인질들을 상대로 “움직이면 쏴버려!”라고 외치는 얼굴 클로즈업 에서 프리즈 프레임(freeze frame)되며 감독 이름이 떠오르고 비장한 음 악이 강조될 때까지 5분35초 동안 지속되는 이 오프닝 크레딧은 프레임들이 19번이나 주기적으로 정지되었다가 마치 가족앨범에 들어 있는 낡은 사진들처럼 흑백으로 바뀐다.철도회사에 고용되어 현상금을 노리는 손턴(로버트 라이언) 일당이 잠복 해 있음을 눈치챈 파이크 일당이 사무소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옥상에서 총알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일대접전이 벌어진다. 갑작스런 대혼란 속에 기도회가 끝나고 시가행진 중이던 마을사람들은 무차별 총격전에 희생되고 파이크 일당은 사방으로 흩어진다. 이러한 폭력행위에 앞서 사무소 안의 파이크 일당과 옥상 위의 손턴 일당의 긴장된 모습이 번갈아 보여질 때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는데, 이 소리가 누구의 심장이 뛰는 것 인지 특별히 지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파이크 일행이나 손턴 일행이 일을 수행하는 데 따르는 긴장을 나타내는 그들 모두의 심장소리일 것이다.

   잔인한 대학살이 끝나고 파이크 일당이 마을을 빠져나갈 때 페킨파는 아이들이 전갈을 불에 태우며 노는 모습으로 오프닝 시퀀스를 마무리한다. 페킨파는 이렇게 아이들의 순진무구함과 폭력을 대비시켜, 순진무구함까지도 야수적인 욕망과 폭력적인 본능을 품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과 악당들, 무고한 구경꾼까지 모두 죽고 멕시코 마을이 완전히 파괴되는 무자비한 전투장면도 아주 복합적이고 역동적이며 강렬한 몽타주 시퀀스이다(장편 극영화가 평균 약 6백여개의 쇼트인 데 비해 <와일드 번치>는 3천6백42개나 되는 쇼트로 구성됐다). 피로 얼룩진 소름끼치는 죽음의 순간들은 슬로 모션, 빠른 줌 쇼트, 카메라 움직 임 등 다양한 촬영기법을 통해 아름답게까지 느껴진다. 이 폭력장면들은 동시에 파나비전·미첼·아리플렉스 등 여러 기종의 6대 카메라를 가지고 서로 다른 속도로 촬영했고, 광각렌즈, 망원렌즈, 줌렌즈 등 다양한 렌즈를 이용해 탁월한 시각적 효과를 보여준다.

  <와일드 번치>는 서부의 상실이라는 주제로 일반적인 선 대 악이 아니라 악 대 악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 서부는 더럽고 혐오스러우며 폭력적인 곳으로 묘사된다. 그것은 서부영웅에 대한 신화의 파괴일 뿐만 아니라, 악당에 대한 영웅의 폭력의 정당성을 이상화하는 것의 파괴이기도 하다. 범법자들과 기존 공권력 모두가 사악한 살인자이며, 그들이 사용하는 폭력은 똑같이 독단적이며 파괴적이다. 페킨파는 폭력을 남자다움의 상징으로 묘사함으로써 고전 서부영화와 달리 삶보다는 죽어가는 남자를 더 부각시키며 그 영웅성을 강조한 것이다. 신강호/ 영화평론가·중앙대 영화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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