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퓨굿맨(A Few Goodmen, 19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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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퓨굿맨(A FEW GOOD MEN, 1992, 미국 )

감독/ 로브 라이너(Rob Reiner),
출연/ 톰 크루즈(Tom Cruise), 잭 니콜슨(Jack Nicholson), 데미 무어(Demi Moore), 케빈 베이컨(Kevin Bacon) 등

Inner Link

전쟁을 경험한자 자와 그렇지 못한 자.

호세 마르티

체 게바라

와일드 기스

에어리어 88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스티븐 킹

우리는 지금까지 할리우드 영화 혹은 실제 생활에서도 제섭 대령과 같은 인물들을 숱하게 만나왔고, 앞으로도 만나야 할 것이다. 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전쟁과 같이 참혹한 현실을 경험해보길 원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러나 이미 경험한 이들에겐 그것을 경험치 못한 사람들과는 분명 다른 사고를 가질 수밖에 없게 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실례들을 한국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에게서, 혹은 베트남전을 경험한 이들에게서 볼 수 있다. 특히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미군들을 다룬 할리우드의 진지하지 못한 액션 영화들은 그것을 고통스럽게 회상하는 투에서 벗어나 그 전쟁에서 미군이 - 그리고 실제 전투에서는 용감하게 싸운 자신을 포함한 전우들 - 패한 이유를 자신들을 이용한 정치가와 무책임한 언론의 탓으로 돌린다. 또 베트남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여러 시민단체들의 노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참전 군인들이 보이는 태도 역시 "당신들이 전쟁에 대해 뭘 알아"와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분명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절반의 진실밖에 담고 있지 않다.

- 사진 설명 : 쿠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의 X-레이 캠프에 수용돼 있는 아프가니스탄 포로 중 한 명이 2일 미군 조사단의 심문을 받기 위해 들것에 실려 옮겨지고 있다./ 관타나모=AP연합

어퓨굿맨과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
그리고 메인호 사건

우리에게도 관타나모는 아주 낯선 지명은 아니다. 그 이유는 학생 때 누구나 한 번은 배우고 불러보게 되는 노래 <관타나메라>가 바로 '관타나모의 여인'이란 뜻을 지닌 노래였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쿠바의 독립 영웅 호세 마르티가 전래 민요에 시를 붙인 것이다. 관타나모가 서양인들에게 최초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494년 4월 30일 콜럼버스가 관타나모만에 상륙하면서였다. 그는 이곳을 중국의 일부로 여기고 황금을 얻고자 했지만 포기하고 이곳을 떠났지만, 관타나모는 카리브해의 악명높은 허리케인을 피할 수 있는 천혜의 항구로서 신대륙을 찾는 이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관타나모가 군사적인 요충지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741년 멕시코의 산티아고 장군과의 전쟁을 위해 영국의 웬트워스 장군이 이끄는 3,000여명의 영국군인들이 이곳에 상륙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이곳이 다시 스페인에서 미국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 것은 1895년 무렵 쿠바에서 스페인 통치에 반대하는 독립 혁명의 열기가 분출되기 시작하자 그 전부터 쿠바의 가치에 눈독을 들여온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결과였다.

미국의 언론은 쿠바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열기를 지지하는 논조의 기사와 더불어 스페인의 압제를 보도했으며 1840년대 자신들이 주장했던 '명백한 운명'에 대해서도 다시금 언급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쿠바에 있는 미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군함 메인호를 쿠바 아바나항에 정박시켰다. 그런데 이 메인호가 의문의 사건으로 격침되고 만다. 훗날 이 사건은 스페인과의 전쟁을 도발하기 위해 미국이 스스로 벌인 일임이 밝혀진다.

1898년 4월 11일 미국의 윌리엄 맥킨리 대통령은 하바나항에서 일어난 원인 미상의 미 군함 폭발사건을 빌미로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하고 같은 해 6월 10일 미 해군 1개 대대가 관타나모에 상륙해 기지를 건설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운 '미·서 전쟁'이다. 이 전쟁의 결과로 미국은 쿠바와 필리핀을 사실상 식민지화 할 수 있었고, 일본과는 카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일본은 조선을,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화하는 것을 승인해주었다.

1903년 2월 23일 테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관타나모 기지 임대에 관한 계약을 쿠바와 체결했고, 이 기지는 현존하는 미군의 해외 기지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때부터 20세기 전반기 동안 관타나모는 미국이 중남미 전략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다. 이 기지의 중요성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이 기지를 방문하고 장병들을 격려했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6월 18일 관타나모 기지는 '미합중국 해군기지(United States Naval Base, Guantanamo Bay, Cuba)'라는 명칭이 붙여지게 되었다.

20세기 전반기 동안 쿠바와 미국의 관계는 매우 순조로왔다. 그러나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이끄는 게릴라들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미국과 쿠바의 관계엔 결정적인 금이 가고 만다. 혁명이 성공한 뒤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과 쿠바군 사이에는 긴장이 흘렀고, 기지 주변엔 28마일 철책이 둘러쳐졌다. 이전까지는 자유롭게 출입하던 쿠바인들의 미군 기지 출입이 통제되었고 서로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미국과 쿠바 사이의 국교 단절된 이후에도 관타나모 기지는 계속 유지되었다. 관타나모 기지에 최고의 긴장감이 흘렀던 것은 1962년 10월에 발생한 쿠바 미사일 위기 때였다. 미국은 즉시 관타나모 기지에 해병 2개 사단을 증파했고, 1964년엔 쿠바측이 기지에 물공급을 중간하기도 했다.

미국은 매년 금화 2,000개(약 4,085달러)의 기지 사용료를 지불하는 대신에 미국이 원할 때까지 기지를 이용한다는 계약을 맺어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달도 아닌 일년 사용료가 불과 4,000달러라니 어지간히 불평등 계약이다. 영화 <어퓨굿맨>에서 미군과 쿠바군 사이의 긴장은 이런 배경을 두고 있다. 이후 냉전이 종식되면서 관타나모 기지의 중요성도 많이 떨어져 한때 500명 정도의 군인이 주둔하는 사격훈련장으로 이용되기도 했으나 200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로잡은 탈레반과 알카에다 포로들이 이곳에 억류되면서 세인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들을 경비하기 위해 다시 1,000여명의 미군이 증파되었고, 특히 1월 중순 이들 150여명이 수용된 ‘캠프 엑스레이(X-Ray)’에서 전쟁포로로서의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비인도적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해서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인권단체들과 유럽 각국의 인권 비판이 제기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미군이 포로로 잡은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가혹행위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캐피 중위는 제섭 대령을 흥분시켜 결국 그의 입에서 '적군을 지척에 대면하고 있는 내가 목숨을 걸고 지켜 선물한 평화의 담요를 깔고 자는 너희들이 감히 나를 심판할 권리가 있느냐. 그런 놈은 해병이 아니야. 죽어도 싸. 그래 내가 죽였어. 내가 다 명령했어'라는 자백아닌 자백을 거침없이 쏟아내도록 만들었고, 제섭 대령은 법정 구속되고 만다.

로브 라이너(Rob Reiner, 1947 - , 미국)

로브 라이너의 아버지 칼 라이너는 1950 - 60년대 미국 텔레비전 코미계의 대부격의 인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배우, 극작가, 영화감독이었고, 로브 라이너 역시 그런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는 탓인지 배우로서 영화에 입문해, 극작가, 감독, 프로듀서, 영화사 캐슬록의 사장 등 다양한 방면으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뉴욕 브롱크스 출생인 그는 UCLA에서 드라마를 전공했고, 이 때 리차드 드레이퓨스와 즉흥극단을 결성했고, 텔레비전 쇼의 방송작가 겸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의 첫번째 부인 페니 마샬(<빅>, <그을만의 리그>의 감독)이었다.

1984년 <이것이 파이널 탭이다>로 처음 감독 데뷔한 이래 로브 라이너는 탄탄한 이야기 구성력을 갖춘 감독으로 로드 무비(<스탠 바이 미>)부터 록 다큐멘터리(<이것이 파이널 탭이다>) 등의 폭넓은 장르를 넘나든다. 그러나 그가 감독으로서 가장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순간은 역시 로맨틱 코미디 부분(감독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 <대통령의 연인>(1995)이라고 할 것이다. 상업적 성공과 더불어 비평가들로부터도 주목받았던 <스탠 바이 미>(1986년)에서 그는 원작자인 스티븐 킹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으며 요절한 배우 리버 피닉스, 키퍼 서덜랜드를 처음 주목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스티븐 킹의 원작을 각색한 <미저리>(1990)에서 여배우 케시 베이츠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주기도 한다(엔드 크레딧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 영화에서 헬기 조종사로 출연하기도 했다). 미 해군과 연루된 군사재판을 다룬 애론 소킨의 희곡을 각색한<어퓨 굿 맨>(1992), 미시시피 유역에 서 흑인 인권운동가의 죽음에 둘러싸인 미스테리를 추적한 <미시시피의 유령>(1996) 등 로브 라이너의 영화들은 대중의 기호를 적절히 반영하면서도 메시지를 담아내는 데 소홀하지 않은 영화들이다. 현재 로브 라이너는 스티븐 킹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지명을 따온 영화사 캐슬록의 대표로 있으며 9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흥행과 작품성 모두를 놓치지 않는 감독,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제섭 대령은 베트남전의 영웅이자 적지 한 가운데 외롭게 고립된 기지를 지키는 군인정신이 투철한 사령관이다(어쩌면 정전이 아닌 휴전 상태에 놓인채 휴전선 155마일이란 전선 아닌 전선에 둘러싸인 우리의 현실과도 닮아 있는). 그는 조만간 대통령 직속 기관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로 영전이 예정된, 즉 출세가 보장된 군인이기도 했다. 그에게 맡겨진 산티아고 일병은 전선에 가장 먼저 투입되고 가장 늦게 빠져나온다는 명예스러운 전통을 지닌 해병대에 어울리지 않는 병사였다. 그는 제섭 대령의 관점에서 보자면 구보에 낙오하고, 꾀병이나 피우며 전출을 요구한 문제 사병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는 동료와 상급자를 협박해 자신이 원하는 전출을 얻어내고자 했던, 끈끈한 전우애를 좀먹는 더러운 배신자였다. 산티아고 일병은 9개월동안 14차례나 전출을 요청했지만 이것이 먹혀들지 않자 쿠바군에게 먼저 사격을 가한 부대의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했다. 제섭 대령은 그를 전출시키는 대신 '관타나모에서 부적합한 사람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이므로 바로 여기서 잘 훈련된 프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그를 다른 부대로 전출시키자는 부관의 견해를 묵살하면서까지 소대장으로 하여금 그를 손 봐주라고 지시한다. 그것이 바로 해병대의 악명높은 전통, 코드레드(Code Red)였다.

전쟁이란 개인의 체험 이상의 것이다

영화 속의 제섭 대령은 자신들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쿠바군들과 불과 400야드(미터로 환산하면 한 440m 가량)의 거리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는 현실을 역설한다. 이것은 제섭 대령 한 개인의 현실 인식이 아니다. 그것은 자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을 동반자의 개념이 아닌 경쟁자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이자 동시에 늘 적이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군대라는 집단의 특성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주적 개념'을 놓고 국방부와 안보 제일주의자들의 강경론에 밀린 현실을 생각해보아도 이것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상은 드러나는 것과는 다른 내용을 갖고 있다(Le monde ce n’est pas ce que non voynez)." 는 말이 있다. 냉전 체체의 붕괴는 다른 말로 하자면 미국의 군수 산업체, 정보 기관, 군대를 비롯해 '전쟁'이란 안보상품을 팔아 먹고 살았던 많은 이들이 실직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냉전 종식 이후 90년대 초반 전세계적으로 군비 감축, 감군 논의가 진행되었고, 재래식(재래식이란 말에서 마치 예전의 군불 피우던 아궁이를 상상하지 마시라, 이 역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무기 체계이지만 '핵'이란 무시무시한 파괴력에 비해 '재래식'이란 말장난일 뿐이다.) 군비를 포함한 핵전력 감축까지 합의된 상태였다.

그 자신도 전쟁 영웅이자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1961년 퇴임연설에서 미국의 "군산복합체(軍産複合體, Military-Industrial Complex)" 즉, 군부와 산업체의 제휴가 민주 세계의 잠재적 위협 세력으로 대두되고 있음을 경고했다. 이후 미국이 벌이는 침략 및 전쟁 행위를 설명하고자 할 때마다 "군산복합체" 개념이 동원되곤하는데, 이런 위험은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더 한층 강화돼 현재는 "MAGIC(군정산학복합체: Military-Academic-Governmental-Industrial Complex)" 체제가 되었다. 즉, 군과 정부, 대학을 포함한 연구단체가 군수산업의 이득을 위해 움직인다면 이들의 폭주를 막아낼 방법이 과연 존재할 수 있겠는가?(이에 대해 좀더 자세한 내용은 앞으로 영화 <와일드 기스>, <에어리어88>,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등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전쟁엔 영웅이 있고, 피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때론 전쟁의 영웅이 동시에 피해자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대의 전쟁이란 참전했던 당사자들만이 공유하는 경험이 되기엔 그 피해가 너무 큰 것이다. 과연 전쟁이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입 꾹 닫고 있어야 할 그런 사안일까. 전쟁이란 역사상 거대한 사건은 개인의 영웅적 희생이나 고통이란 덕목쯤은 단숨에 삼켜 버릴 만큼 복잡한 사건이다. 전쟁이란 개인의 체험 이상의 것이란 뜻이다.

진지하고 신념에 가득찬 전쟁 영웅과 날티 나는 풋내기 법무관

처음엔 매우 명백해 보이는 사건이었지만 파고들수록 숨겨진 흑막을 감지한 캐피 중위는 이 사건을 타협하기 보다는 법정에서 밝혀야 할 사건으로 느끼게 된다. 거기엔 갤로웨이 소령의 노력도 있었지만 제섭 대령 못지 않게 군인정신에 투철한 해병의 우직함도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은 상관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한 이상, 자신들은 무죄이며 유죄를 인정할 경우 자신들에게 더할나위없는 영광이자 자랑인 해병대를 불명예스럽게 떠냐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2명의 병사는 자신들의 직속 상관인 캔드릭스의 비공시적인 명령을 받은 것뿐이라 주장하지만 캔드릭스나 제섭 대령은 이를 부인하고, 이를 밝혀줄 증거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 때 제섭 대령의 사관학교 동기이자 기지 부사령관인 마킨슨 중령이 근무지를 무단이탈하여 워싱턴으로 날아온다. 그는 캐피에게 "전출명령은 없었다, 다음날 비행기 시간도 속인 것"이라며 제섭 대령이 산티아고 이병의 전출요청을 묵살하고 코드 레드를 발동하도록 명령했다고 제보해준다. 그러나 그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상관을 법정에서 고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군대라는 조직 뿐만 아니라 내부고발자가 된다는 것, 즉 증인이 된다는 것은 순교자가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영어로 증인(證人)이란 말의 어원에는 순교자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이는 진실을 증언을 하기 위해선 순교와 박해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함의일 것이다)이다. 마킨슨 중령은 그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며 산티아고 일병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혹독한 기합을 막지 못한 잘못을 사죄한 뒤 권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이제 사건의 명백한 진실을 밝혀줄 유일한 증인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전투경험이 있는 남녀 장교 9명으로 구성된 배심원 앞에서 군법회의가 열린다. 유력한 증인을 잃은 캐피 중위와 갤로웨이 소령은 제섭 대령을 증인으로 소환하려 하지만 잘못하면 유능한 해병장교를 모함했다는 누명을 쓰고 오히려 처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조사관들은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기지 내부와 관계자들을 탐문하며 다니지만 그들은 겉으로만 깍듯할 뿐 속으로는 그들을 경멸하고 조롱했다. 전투를 위해 몸바치고 있는 자신들과 비교하자면 사무실에 앉아 타이프라이터나 두들기는 해군 법무관 따위는 또한 군인도 아니었으며 조국을 위해 몸바쳐 충성하는 자신들을 괴롭히는 자들에 불과했다.

법정 드라마 최고의 묘미는 역시 법정에서 원고측과 피고측의 첨예한 공방 그리고 증인과의 긴장에서 드러나게 된다. 제섭 대령은 법정에서 산티아고 일병이 사망하기 전날 전출을 허가했다며 그 증거로 전출서류를 제시한다. 그러나 캐피 중위는 그가 실제로는 전출을 승인하지 않았으며 모든 서류가 산티아고의 죽음 이후 조작된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기지의 피해자 옷장에 사물이 그대로 있었다는 것은 전출명령을 받지 못했던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정황 증거에 불과한 것이었다. 캐피 중위는 자신을 형편없는 군인으로 생각하는 제섭 대령의 심리와 군인 기질을 역으로 이용해 자신이 명령한 것을 법정에서의 실토하도록 만드는 작전을 짠다. 군법회의 법정에서 제섭 대령은 흥분한 나머지 자제력을 상실하고 캐피 중위의 유도신문에 넘어가 그를 훈계한다는 것이 그만 자신의 잘못을 자백하고 만다.

약자를 보호하지 않은 죄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Howard Zinn)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기 승무원으로 독일 상공을 비행했다. 그는 훗날 자신이 폭격했던 지역을 여행하며 공중에서 내려다 볼 때는 다만 한 개의 점으로 보였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는 군인 신분으로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었지만 그가 떨어뜨린 폭탄이 민간인이 거주하는 도시에 떨어져 일반 시민이 사망했다는 사실에 깊은 충격을 받은 것이다. 산티아고 일병에게 코드 레드를 가하란 명령을 받아 이를 수행한 두 명의 해병 도슨 상병과 다우니 일병은 20년형이란 처벌을 받는 대신 전역처분을 받는다. 이들은 다만 명령에 충실히 따랐을 뿐인데 유죄를 받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다우니 일병은 도슨 상병에게 묻는다, "왜 우리가 유죄란 말입니까. 명령만을 따른 우리에게 유죄라니요? 도슨 상병, "우리는 유죄야, 왜냐하면 산티아고 같은 약자를 보호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하워드 진과 같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 임무 참여한 병사들은 폭격기 날개 밑에서 터지는 고사포탄의 검은 색 구름을 제외하면 자신이 누군가를 죽이고 있다는 생각은 물론 적진을 비행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확실히 유태인들에 대한 최종해결책을 수립한 나치 수뇌부의 명령에 따라 그들을 죽음이 기다리는 강제수용소로 수송할 계획을 짰던 독일 관료들은 그들이 한 민족을 절멸시키는 데 동원된 것이 아니라 다만 이들을 수송하는 열차가 좀더 원활하고 합리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자신이 가진 전문 지식을 동원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인류의 발달된 현대 문명은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아이들, 형제, 자매를 죽이고 불구로 만드는 일(전쟁)'을 자신이 직접 칼로 찌르거나 총구를 겨냥해 자신의 정면에 서 있던 사람의 팔다리가 떨어지고, 내장이 배 밖으로 쏟아지는 광경을 직접 보지 않아도 되는 형태, 힘들여 팔다리를 휘두르는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형태로 진화하도록 해주었다(물론, 여전히 그런 형태의 전투 방식으로 전쟁을 치르기도 하지만 대량살상무기를 동원하면 좀더 손쉽게, 좀더 많은 인명을 살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은 흙먼지가 날리는 야전 천막에서 총검을 들고 전투에 임하기 보다는 냉난방 시설이 구비된 전투 사령부에서 마치 사무원이 사무를 보듯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다. 완벽한 공기 정화와 순환구조를 갖춘 사무실에 앉아 동료가 리필해온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모니터상에 점멸하는 한 점(point)을 향해 피스키퍼(the Peacekeeper: 핵을 장착한 대륙간 탄도 미사일인 MX미사일의 별칭)의 발사 버튼을 누를 때 병사는 과연 그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느낄 수 있을까? 그는 다만 당신이 일상에서 그러하듯이 엔터 키를 한 번 눌렀을 뿐인데…. 앞으로의 전쟁은 그 자체가 비인격적인 것이 될 것이다.

여기 한 명의 병사가 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가두리 양식장을 일군 효자였고, 군에 입대한 지 불과 6개월 남짓, 이틀 후면 나가게 될 첫 휴가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가 돌아갈 집에서는 장남의 첫 휴가를 기다리는 백발이 성성한 부모가 있었다. 그런 그의 부모에게 국가는 어느날 갑자기 당신의 아들이 M-16 소총을 가슴에 두 발, 입 속에 한 발 발사하여 자살했다고 통보해왔다. 당신이라면 이런 통보를 납득할 수 있겠는가? 그 병사의 부모는 아들을 차마 땅에 묻지 못하고 진실을 밝혀 내기 위해 여러 국가 기관에 탄원도 하고, 진정도 넣어보았지만 군 당국은 그에게 "백번 천번 탄원해도 소용없다. 몸조심이나 하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최근 의문사 진상 규명위원회에서 이 사건이 조작된 사건임을 밝혀내기 전까지 무려 18년간 진실은 은폐되어 있었다. "비록 소수지만 정의로운 자 A Few Good Men"들은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그들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 대목에서 우리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 전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제국의 멸망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의 책임 -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이야기』에서도 누누이 밝히고 있듯이 로마인에게는 종교도 매우 실용적인 것이었는데 기독교의 침투로 말미암아 로마의 시민의식이 붕괴되어 로마인의 특성인 실용적인 기풍과 전투 의지를 약화시켜 그 결과 로마가 붕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로마인들은 로마라는 국가 자체를 위대하다고 생각했는데 기독교는 그것을 부인하고 모든 영광을 신의 것으로 돌렸으므로 - 이라는 역사가들의 논리에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관련 사이트 & 참고 도서

『극단의 시대:20세기의 역사』상·하/ 에릭 홉스봄 지음/ 이용우 옮김/ 까치/ 1997년 -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과거는 20세기이다. 그러나 가깝다는 것은 그만큼 잘 보기 어렵다는 뜻인가. 에릭 홉스봄의 이 저서는 그런 점에서 과거의 역사를 다룬 책이자 동시에 미래의 사가들을 통해 사료가 될 것이다. 역사가가 하나의 관점을 갖는다는 것이 독자로 하여금 얼마나 행복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지 이 책은 잘 알려주고 있다. 필독을 권한다.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 규명위원회 - 가끔 예전에 참조했으므로 링크를 걸어두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인터넷 사이트들이 있다. 지난 2002년 9월 16일 의문사 진상 규명위원회는 그 효력을 다하고 말았다. 좀더 많은 시간과 권한을 주었더라면 밝혀질 수도 있었던 진실들이 외면당했다. 국회의원들은 당리당략에 어두워 자명한 진실에 눈감았으며 우리들은 그것을 막지 못했다. 의문사 진상 규명 활동은 영구히 계속되어야 한다. 나치 전범 추적이 그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정의를 빼버리고 크게 보면, 왕국이 범죄집단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범죄집단도 조그만 왕국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범죄 집단은, 한 지도자의 지휘 아래에서, 협약에 따라 약탈품을 나눠 가지는 결사체에 의해 묶인 사람들의 모임이다. 만약 이 악행집단이 부도덕한 무리들로부터 많은 지원자를 획득하여 영토를 획득한 후 거점을 구축하고, 도시들을 탈취하여 사람들을 복속시킨다면, 그 집단은 공개적으로 그 자신을 왕국이라고 사칭하고, 침략의 비난이 아니고 정당성을 획득하여 그 왕국은 세계적으로 인정된다. 알렉산더 대왕에게 사로잡힌 해적이 알렉산더 대왕에게 한 재치있고, 사려깊은 대답을 보자. 왕이 그에게 자신에게 대항할 때의 네 생각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해적이 대답하기를 '세상을 정복할 때의 당신의 생각과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그마한 배로 그것을 하기 때문에 해적이라 불리고, 당신은 강력한 해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복자라고 불립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에서 보자면 국가와 해적 집단 사이에는 규모의 차이를 제외하고 도덕적인 차이는 없었다. 두 집단 모두 성공을 위해 내적 조화와 조직에 의존하고, 다른 이들의 생명과 재산을 취하고 파괴하는 그들의 능력에 의해 성공여부를 평가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의 안식처를 ‘인간의 도시’나 ‘땅 위의 도시’(즉, 국가)에서 찾지 말고 신의 도시, 즉 우주적이고 초월적 가치의 도시에서 찾으라고 조언하였던 것이다. 그는 이에 덧붙여 "그러나 당분간 우리는 양쪽의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삶과 역사에서 국가와 전쟁, 그리고 부당함의 회색빛 그늘 속에서 순수성을 위해 투쟁해야만 한다. 또한 우리가 시간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신의 도시를 알기는 하되 ‘때’가 되기 전에 마치 우리가 완전히 그 도시의 시민인양 살려고 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국가가 나와 내 가족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기도할 것인가? 아니면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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