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블랑카 ( Casablanca, 1942, 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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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 ( Casablanca, 1942, 미국 )

감독/ 마이클 커티즈(Michael Curtiz), 출연/ 험프리 보가트(Humphrey Bogart)-리차드 릭 블레인(Richard 'Rick' Blaine),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일자 룬트 라즐로(Ilsa Lund Laszlo), 폴 헨라이트(Paul Henreid)-빅터 라즐로(Victor Laszlo), 클로드 레인(Claude Rains)-경찰서장.르노(Louis Renault), 콘라드 바이트(Conrad Veidt)-슈트라세 대령(Heinrich Strasser) 등

Inner Link		불후의 명작. <카사블랑카>는 신파다.

비틀즈 장 르노 프리츠 랑 윌리엄 와일러 오즈의 마법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만 빌리 와일더 오손 웰즈 로널드 레이건 오우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멤피스 벨 시민 케인 엘라 피츠제랄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쿠르트 바일과 로테 레냐 마르크 샤갈 자드킨 오십 살바도르 달리 페르낭 레제 피에트 몬드리안 베르톨트 브레히트 어니스트 헤밍웨이 베르너 폰 브라운 샤를 드골		창세기의 이브가 아담을 배반(?)한 이래 수많은 이브의 후손들이 아담의 애간장을 태웠다. 어쨌든 여성의 출산을 단순히 성서적으로 이해한다면 남자들은 이브에게 경배를 드려도 시원찮을 판이긴 하지만 영화 <카사블랑카>의 기본적인 스토리 구조는 수많은 아담들이 평생을 두고 고민하게 되는 문제 중 하나인 자신을 떠난 이브를 구원해줄 것인가? 아니면 그냥 버릴 것인가?를 놓고 갈등하는 아담의 이야기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매우 진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늘 이야기하듯이 모든 '불후의 명작'이란 결국 낯익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신파'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다만 '명작'은 신파에서 한 단계 올려놓을 만한 그럴 듯한 요소들이 잠재해 있다는 점에서 신파와는 격이 다르다는 점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영화 <카사블랑카>에 대해서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을 필요가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 어딘가에서 '비틀즈'의 노래가 흘러나오듯 어느 나라의 어느 극장일지, 비디오 테크일지는 몰라도 <카사블랑카>는 돌아가고 있을 테니 백 가지 이야기를 듣기 보다는 영화를 직접 보는 편이 훨씬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나에게 '불후의 명작'이란 것은 일부 고상한 관객들만 보고 만족하는 그런 작품이 아니라, 보고 또 봐도 지겹지 않은 이야기를 의미한다. <카사블랑카>보다 그런 의미에 적절히 부합하는 영화도 없을 것이다. 무성영화 시절 변사의 어투를 흉내내 한 마디 해본다면 "그러므로 아직도 이 영화를 보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해들이여, 빨리 구해보시라."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 남쪽으로 90km 떨어진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모로코 최대의 상업도시이다. 포르투갈인들이 바닷가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모습을 보고 '카사비앙코'라 한 것을 다시 스페인인들이 지배하게 되면서 '하얀집' 이라는 의미의 '카사블랑카'로 개명해 부른 것이 오늘날 이 도시의 지명이 되었다. 그러나 영화 <카사블랑카>와 모로코의 도시 '카사블랑카'는 사실상 전혀 관련이 없다. 이 영화는 전 장면이 할리우드의 세트장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에 험프리 보가트나 잉그리드 버그만은 실제 '카사블랑카'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개의 북아프리카 해안 도시들이 그렇듯이 '카사블랑카' 역시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 15℃, 여름 24℃의 쾌적한 기후를 자랑해 연중 안개 끼는 날이 거의 없다고 한다(배우 '장 르노Jean Reno'가 이곳 출생이다). 아마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 중엔 '카사블랑카'를 연상하노라면 버티 히긴스가 부른 동명의 애절한 노래가 떠오를지 모른다. 실제 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가사이긴 하지만 실연 당한 남자의 애절한 심정(이 노래를 부를 당시 버티 히긴스는 실제로도 실연당한 상태였다고 한다)만큼은 영화의 내용과 일맥 상통하는 바가 있다. 영화 <카사블랑카>는 그 유명세 만큼이나 수많은 일화를 가지고 있는 영화다. 그중 대표적인 것 몇가지만을 소개한다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모로코를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모로코에서 촬영된 장면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카사블랑카>는 <오즈의 마법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이 할리우드의 고전적 스튜디오 시스템이 만들어 낸 걸작 중 하나다)이 그렇고, 원래 캐스팅하려 했던 배우가 로널드 레이건과 미셸 모르강이었다는 이야기도 유명한 일화 중 하나이다. 감독 역시 원래는 윌리엄 와일러로 예정되어 있다가 윌리엄 와일러의 돌연한 군 입대로 마이클 커티즈로 변경되었다. 1942년 5월 25일 첫 촬영이 시작되는 순간까지도 촬영 작업을 진행할 스튜디오도 결정되지 않은 것은 물론 세트장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고, 그보다 더한 것은 시나리오조차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진행되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이 영화가 만들어 낸 신화의 광채를 더한다. <카사블랑카>가 겪은 우여곡절들 우리나라에서 영화 <카사블랑카>가 개봉된 것은 1957년의 일이었는데, <카사블랑카>가 미국에서 한참 제작되고 극장에서 개봉될 무렵만 하더라 우리는 아직 일본의 식민지였다. 이 영화는 시대 배경이랄 수 있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되던 중에 제작된 영화다. 1941년12월 7일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미국은 나치 독일이 전유럽을 석권할 때까지 관망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물론 대통령 루스벨트는 독일의 침공에 저항하고 있는 영국에 대해 우호적이긴 했지만, 미국민들에게는 전통적으로 유럽에 대해 불간섭 원칙을 지키며 사태를 관망하자는 정서가 깊었다. 게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국 역시 전쟁에 대한 적지 않은 환멸을 느끼고 있었고, 국민들 다수는 파시즘에 대해 반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은 먼 유럽의 일이었으며 그들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로 보고 있기도 했다.
릭의 카페는 온갖 종류의 망명자로 득시글댄다. 돈밖에 모르는 사기꾼에서 항독투사에 이르기 까지. '카페 아메리카'는 누구에게나 공개된 곳이자 아무나 빠져나갈 수 없는 곳이다. '우가르트'는 두 명의 독일군을 죽이고 얻어낸 통행증 두 장을 릭에게 살 사람이 나설 때까지 맡아달라고 한다. 그러나 릭은 맡지 않겠다고 한다. 그는 곧 체포되고 감옥에서 죽고 만다. 릭의 카페에 체코 출신의 거물급 투쟁가 '빅터 라즐로'와 그의 아리따운 부인 '일자 라즐로'가 등장하는 것은 이 무렵의 일이다. 돌리 윌슨이 직접 출연해 연주하며 부르는 as time goes by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기억에 남을 만 하다. as time goes by는 이후 인기 있는 스탠더드 재즈곡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재즈뮤지션이 as time goes by를 연주한 것으로는 테너 섹소폰 연주자 텍스터 고든의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앨범 night at the keystone에서 이 곡을 연주한다. <카사블랑카>는 영화 막판까지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않아 일자는 최후의 순간까지 누구를 선택하는 지 모르는 체 연기를 해야했고, 너무나 엉성하게 제작된 세트를 가리기 위해 일년 내내 안개라고는 한 번도 끼지 않는 '카사블랑카' 공항에 억지로 안개낀 공항이라는 설정을 택해야 했다.(공항 세트장은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판자로 엉성하게 만들어졌다.) "If she can stand it, I can. Play it." 만일 그녀가 그 노래를 견딜 수 있다면 나도 그럴 수 있어. 내게 그 곡을 연주해 주게. 샘! 스페인 시민 전쟁에 참전했던 릭은 나치즘이 번져오는 유럽에서 일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두 사람의 행복은 오래 갈 수 없는 것이었다. "릭, 당신과 함께 갈 수도 당신을 다시는 볼 수도 없어요.이유는 묻지 마셔야 해요. 다만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믿어 주세요. 안녕히 가세요. 신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일자." 쏟아지는 빗방울 속에 글자가 젖어 번져간다. 릭이 풍기는 상처받은 염세적인 남자의 이미지는 이후에도 험프리 보가트를 규정하는 코드가 된다. 사실 다소 긴 얼굴의 결코 미남이랄 수 없는 험프리 보가트를 한 시대를 규정하는 스타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한 데에는 유난히 시대의 굴곡이 심했던 20세기의 전반기의 풍파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영웅이 되기에는 너무 연약하고 때로 무능해 보이며 심지어는 통속적이고, 세상의 풍파에 찌든 남자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좋은 음악을 선물하는 것은 사랑하는 이의 젖가슴에 연비를 새기는 방법보다 더욱 확실한 화인(火印)을 남기는 법이다. 비록 선물받은 음반은 사라져도 음악은 거리를 걷다가 방송을 듣다가도 무심결에 귓속으로 흘러든다. 그래서 실연 당한 사람에게는 금지곡도 많은 법이다. 포르투갈행 비자를 구하기 위해 릭을 찾은 일자. 두 사람 사이의 오해가 풀리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나 릭은 일자를 떠나보내기로 결심한다. 파리에서의 추억만을 간직한 채. 원래 흑백으로 제작되었지만 훗날 컬러를 덧 씌워지기도 했다. 역시 <카사블랑카>는 흑백으로 볼 때 가장 아름답고 멋있다.		그런 중에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했고, 히틀러는 추축국에 대한 의리를 지킨답시고 미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다. 이제 미국은 본인들이 원컨 원치 않건 간에 직접적으로 전쟁에 개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은 공공연히 영국을 지원하고 있었으므로 히틀러의 선전포고가 순전히 의리로만 결정된 일은 아니었다. 이 무렵부터 독일은 U-보우트를 이용해 미국 동부 해안과 카리브해 연안에 출몰하며 화물선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미국은 참전을 결정했고, 미국민들은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할리우드는 잇달아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영화들을 제작하여 속속 개봉하기 시작했고, <카사블랑카> 역시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고자 제작한 영화였다. 애초에 워너사의 마케팅팀은 '카사블랑카'라는 이름이 마치 멕시코에서 판매되는 맥주 이름처럼 촌스럽고, <카사블랑카>의 원작인 머레이 버네트와 진 알리슨이 쓴 희곡 <모두들 릭의 가게에 모이다 Everybody comes to Rick's>가 흥행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대에 올려진 적조차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의 사주인 '잭 워너'가 이 제목을 고집했다. 그러나 때마침 이 영화의 촬영이 완료되고 LA에서 상영될 무렵 루스벨트와 처칠이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 모여 회담을 갖고 연합군의 항전을 촉구한 협정에 서명하면서 영화 <카사블랑카>는 생각지도 않았던 엄청난 PR효과를 얻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또 한편의 걸작 영화가 제작되어 개봉되었는데 그것은 어네스트 헤밍웨이 원작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였다. 워너 측의 <카사블랑카>를 의식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파라마운트 측 역시 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배가시키기 위해 미리 예약을 받고 영화를 상영하도록 하는 전략을 세워 결국 전쟁이 끝나는 1945년까지 상영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은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스페인 시민전쟁(내란)'부터였던 것이다. 일자 역에 캐스팅되었던 미셸 모르강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액수랄 수 있는 5만 6천 달러의 출연료를 요구했다. 하지만 제작자인 '할 월리스'는 주제 파악도 못 하는 이 배우에게 그만한 액수를 지불할 용의가 없었고 때마침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캐스팅에서 탈락한 스웨덴 출신의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이 나타났다. 그녀는 미셸 모르강이 요구한 출연료의 절반도 안 되는 액수인 2만 5천 달러에 출연할 것을 약속했다. 원래 제작자인 할 월리스는 평소에 말썽많고 고집센 마이클 커티즈 감독 대신 윌리엄 와일러를 감독으로 기용하고자 했다. 그런데 윌리엄 와일러가 덜컥 군대에 가 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마이클 커티즈를 기용한다(이 때 윌리엄 와일러는 군에서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한 다큐멘터리 필름들을 촬영하고자 했다. 결국 이때 그가 촬영한 기록필름들 중 일부는 훗날 그의 딸인 캐서린 와일러가 데이빗 퍼트냄과 공동제작한 영화 <멤피스 벨>에서 다시 사용되었고 전쟁 중에는 영화관에서 상영되며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원래 릭 블레인의 술집인 <카페 아메리카>에서 노래를 하기로 한 엘라 피츠제랄드는 그때 인기 최절정의 상황인지라 스케줄이 꽉 차 있었다. 결국 엘라를 대신해 기용된 가수가 둘리 윌슨이었는데 그는 피아노도 칠 줄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일자 역에 캐스팅된 잉그리드 버그만이 전형적인 북구 미인이라 키가 엄청나게 컸던 것이다. 그래서 신장차를 극복하기 위해 로널드 레이건(그렇다, 미국의 제40대 대통령. 바로 그 사람이다)을 주연으로 캐스팅하려고 했지만 험프리 보가트가 나무 상자 위에서 연기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감독이 결정되고 캐스팅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이 영화가 겪어야 할 모든 난관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너무나 엉성하게 제작된 세트를 가리기 위해 일년 내내 안개라고는 한 번도 끼지 않는 '카사블랑카' 공항에 억지로 안개낀 공항을 연출한 것은 그래도 이 영화가 겪어야 할 여러 우여곡절 중에서는 비교적 나은 편에 속한다. 여러 난관 끝에 캐스팅된 이 영화 남녀 주인공은 최후의 순간까지 수정되고 번복되는 시나리오 때문에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골머리를 썩혀야 했다. 무려 7명의 시나리오 작가가 참여한 대본 작업은 진행되는 내내 말썽을 일으켰고, 영화 마지막까지도 여주인공 일자가 릭과 빅터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어쩌면 그 덕분에 잉그리드 버그만의 연기가 그토록 리얼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명대사가 넘치는 <카사블랑카>의 명대사 중에서도 압권이랄 수 있는 일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대사는 작가들의 변덕에 질려 버린 험프리 보가트가 자기 맘대로 지어서 말해 버린 것이다. 감독은 일부 장면들을 재촬영하고 싶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마리아 역을 다시 따낸 버그만이 머리를 잘라버렸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제16회(1943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등을 수상하며 '불후의 명작'이란 말을 듣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각색상을 수상한 영광의 일부는 분명히 험프리 보가트에게도 있는 셈일 것이다. 생각하기도 끔찍한 일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프랑스 여배우 미셸 모르강이 연기한 일자와 로널드 레이건이 연기한 릭 블레인을 볼 뻔 했다. 어쨌든 "As Time Goes by"를 부르는 엘라 피츠제랄드를 못 보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하마터면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범작에 머물 뻔했다. 카페 아메리카(Cafe America)를 찾은 망명자들 나는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를 만들면서 실제로 존재했던 몇 군데의 시공간을 염두에 두었었는데 사실 그 중 한 곳이 바로 <카페 아메리카(Cafe America)>였다. 영화 속의 카페 '아메리카'가 실제로는 미국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라는 점이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카페 아메리카>가 주는 공간 그 자체의 매력은 참 대단한 것이었다. 국적도 제각각이고, 그들 가슴에 새겨진 상처도, 사연도 모두 제각각인 사람들이 외부 세계의 추적을 피해 릭의 카페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곳을 지키는 주인 역시 실연의 상처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냉정한 척 자신을 속이는 인물이라는 설정 자체가 <카사블랑카>의 진정한 매력 중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제작될 당시 미국엔 나치의 압제를 피하기 위해 찾아든 망명자들로 가득했다. 1930년부터 1941년까지 10년간 2만 5천명의 예술가, 음악가, 작가, 과학자, 인문학자들이 나치를 피해 독일과 유럽을 탈출해 미국을 찾았다. 또 몇 천명은 영국을 마지막 피난처로 택했다. 독일과 유럽의 입장으로는 '두뇌와 재능이 유출된 10년'이었고, 미국과 영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만큼 풍요로운 10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미국을 찾은 망명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작가로는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발표해 나치의 미움을 받아온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베르톨트 브레히트, 앙드레 모로와, 리온 포이히트방거,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엔리코 페르미, 한스 베테, 제임스 프랑크, 음악가로는 브레히트와 함께 활발한 활동을 해온 쿠르트 바일과 로테 레냐, 오토 클렘페러,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아르투르 토스카니니, 에리히 라인스돌프.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 루드비히 미스 반데어 로에, 가구디자이너 마르셀 브로이어, 화가 살바도르 달리, 게오르크 그로스, 자울 시타인버크, 요제프 알버스, 자드킨 오십, 이브 탕기, 막스 에른스트, 마르크 샤갈, 페르낭 레제, 앙드레 브루통, 피에트 몬드리안 등등이었다. 이런 상황은 영화쪽도 다르지 않아서 <카사블랑카>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의 상당수가 역시 독일에서 탈출한 사람들이었다. <카페 아메리카>에서 비밀리에 중립국인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으로의 탈출을 꿈꾸거나 미국행 비자를 기다리는 망명자들은 물론 이들을 쫓는 역할을 맡았던 나치 군인들까지도 실제 미국으로 망명한 유태계 독일배우들이 연기했다. 빅터 라즐로를 추적하는 슈트라서 대령 역의 콘라트 바이트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 출연했던 독일 영화계의 스타였다. <카사블랑카> 가 촬영되던 무렵, 촬영 현장에 매일 출근하다시피했던 빌리 와일더 감독은 “독일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 꼭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괴벨스가 흠모해 마지 않았던 프리츠 랑조차도 독일을 떠나 할리우드에 정착하여 독일 표현주의와 필름 느와르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다. 이 때 유럽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 수많은 유럽 출신 예술가들은 미국의 문화와 학문에 풍성한 자양분이 되어 주었고, 이후 미국이 정치·경제·군사면에서 뿐만 아니라 문화라는 측면에서도 세계 질서를 주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인슈타인과 페르미 등은 미국의 '맨해튼 계획'을 도와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게 해주었고, 종전 후 미국으로 건너간 베르너 폰 브라운 등은 V-2로켓에서 축적한 기술을 통해 냉전 기간 동안 소련과의 달 탐사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미국을 도왔다. 그러나 카페 아메리카가 모든 이에게 풍요로운 낙원은 아니었다. 브레히트를 비롯한 유럽 출신의 진보적 지식인들과 유럽의 전통에 충실한 예술가들은 전쟁이 끝나자 곧 바로 유럽으로 돌아갔고, 일부 미국에 남아있던 이들도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급속한 팽창과 패권주의의 길로 들어선 미국의 사회 분위기와 때마침 불어닥친 매카시즘의 광풍을 피해 유럽으로 돌아갔다. 또한 미국은 나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이들 중에서도 그들의 이익에 부합되는 인물들에 대한 역사적 심판을 유보하거나 묵인했다.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Here's looking at you, kid) 흔히들 영화 <카사블랑카>를 가리켜 영화사상 두 번째 좋은 영화라고 소개하곤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첫 번째로는 늘 <시민 케인>을 꼽는다. <시민 케인>이야 비록 천재 오손 웰즈를 파산시키는 데 일조하기는 했지만 영화사상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일개 대중영화에 불과한 <카사블랑카>를 일컬어 영화 역사상 두 번째로 좋은 작품이라는 평을 들을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카사블랑카>를 훌륭한 작품이 되도록 만든 원인들은 앞서 살펴본 바대로 우연과 우연이 겹치면서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슬쩍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할 것이다.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듯 만들어질 뻔한 <카사블랑카>를 구원한 것은 다행히도 연속해서 겹치는 불운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단지 그것 때문만이었다고 한다면 <카사블랑카>에 대한 모욕이 될 것이다. 거기에는 감독인 마이클 커티즈의 고집센 장인(Artisan) 정신 역시 일조를 했기 때문이다. <카사블랑카>의 최고 매력은 다음 두 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거의 완벽한 구성과 플롯으로 짜여진 스토리의 완결성, 두 번째는 흡인력을 갖춘 배우가 연기한 매력적인 캐릭터(릭 블레인, 일자 라즐로)이다. 오늘날까지도 가장 이상적인 스토리 구성 중 하나로 여겨지는 <카사블랑카>의 흡인력은 많은 팬들에게 극적인 러브 스토리의 한 전형처럼 여겨지도록 만들었고, 많은 이야기들이 <카사블랑카>의 엇갈림을 흉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카사블랑카>의 스토리는 전형적이다. 1941년 12월. 프랑스의 식민지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전유럽을 석권한 독일은 전격전이라는 기동력과 화력을 결합시킨 전술로 아직까지도 제1차 세계대전의 앉은뱅이 전쟁을 염두에 둔채 참호전을 예상한 프랑스를 일거에 무너뜨린다. 독일의 공격을 견딜 수 없었던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의 영웅 페탱 원수를 국가 수반으로 하여 독일에 항복하고 비시정부를 통해 프랑스를 통치하게 된다(여기에서 묘한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데, 드골 장군은 프랑스의 굴욕적인 항복을 거절하고 자유 프랑스 망명정부를 영국 런던에 세운다. 어쨌든 페탱 정부는 분명 프랑스의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정부이면서 동시에 나치 독일의 동맹국인 상황이었다. 순전히 법적으로 따지자면 드골은 국가반역자인 셈이었다). 프랑스의 동맹국이자 점령자인 독일은 모로코에도 진출해 있었지만 동맹국 프랑스의 비위를 상할 필요는 없었으므로 형식적으로나마 프랑스 경찰이 치안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릭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미국인으로 스페인 시민전쟁에 의용 참전해 파시스트들과 전쟁을 치렀던 인물이었다. 그는 파리에서 일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스페인에서 입었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평화는 그리 길지 않았고,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하자 그는 더 이상 파리에 머물 수가 없었다. 그의 반(反)파시스트 투쟁 경력은 나치스 치하의 유럽에서는 매우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일자와 함께 유럽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일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역에 나타나지 않았고, 그에게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편지 한 통만을 전한다. 간신히 프랑스에서 탈출한 릭은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 '카페 아메리카'를 연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그가 세상과 경계를 지은 일종의 비무장지대랄 수 있는 '카페 아메리카'에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해 온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었다(그런 점에서 오우삼이 홍콩을 떠나기 직전에 제작한 영화 <화평본위> 역시 <카페 아메리카>와 흡사한 구조라 할 수 있다) . 이곳에는 단순한 사기꾼부터 나치를 피해 망명온 레지스탕스 운동가까지 국적불문, 이유불문하고 모여들어 포르투갈행 비자와 각종 정보를 거래하는 장소였다. 하지만 릭은 그런 거래나 정치적인 활동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늘 "나는 아무도 도와주지 못한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낸다. As Time Goes By 릭이 풍기는 상처받은 염세적인 남자의 이미지는 배우로서 험프리 보가트를 규정하는 중요한 코드 중 하나이다. 이전에는 주로 필름 느와르 물에 출연했던 그의 이미지는 이후에 조금 더 다양해지기는 하지만 사실 다소 긴 얼굴의 결코 미남이랄 수 없는 험프리 보가트를 한 시대를 규정하는 스타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한 데에는 유난히 시대의 굴곡이 심했던 20세기의 전반기의 풍파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영웅이 되기에는 너무 연약하고 때로 무능해 보이며 심지어는 통속적이고, 세상의 풍파에 찌든 남자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험프리 보가트의 그런 이미지들, 퉁명스러움 뒤에는 자상함이, 통속적인 모습 뒤에는 동정심을, 무능함 뒤에는 실패한 자만이 지닐 수 있는 경험이 녹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일자의 출현 이전부터 릭 블레인이 어째서 자신은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하는지, 그가 위악을 강조하는지 알 수 있다. 그 자신도 나치에 쫓겨 이곳까지 왔으며,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게다가 그는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돈이 떨어져 자신의 정조를 팔려는 부인을 도와주고, 카페에서 '라인강을 보라'를 방자하게 부르는 독일군 장교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주기 위해 '라 마르세이유'를 연주하게 한다. 이 때 '우가르트'라는 남자가 나타나서 두 명의 독일군을 죽이고 얻어낸 통행증 두 장을 릭에게 살 사람이 나설 때까지 맡아달라고 한다. 그러나 릭은 맡지 않겠다고 한다. 그는 곧 체포되고 감옥에서 죽고 만다. 릭의 카페에 체코 출신의 거물급 투쟁가 '빅터 라즐로'와 그의 아리따운 부인 '일자 라즐로'가 등장한다. 그는 카사블랑카를 통해 중립국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탈출하려는 속셈이었다. 나치는 그의 탈출을 방지하기 위해 슈트라세 소령을 파견한다. 일자는 샘에게 그 곡을 연주해달라고 말한다. 실연을 당하면 모든 유행가가 내 노래가 된다고 하던가?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 영원히 남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음반을 선물하는 것이다. 좋은 음악을 선물하는 것은 사랑하는 이의 젖가슴에 연비를 새기는 방법보다 더욱 확실한 화인(火印)을 남기는 법이다. 비록 선물받은 음반은 사라져도 음악은 거리를 걷다가 방송을 듣다가도 무심결에 귓속으로 흘러든다. 그래서 실연 당한 사람에게는 금지곡도 많은 법이다. 그날 밤 릭은 위스키를 연거푸 마시며 진한 외로움을 느낀다. 릭은 샘에게 말한다. "Of all the gin joints in all the towns in all the world, she walks into mine." 세상의 하고많은 도시의 하고많은 술집 중에 그녀는 내 술집으로 들어왔어. (그리고는 샘에게 '그 노래'(As Time Goes By)를 불러달라고 말한다.) "If she can stand it, I can. Play it." 만일 그녀가 그 노래를 견딜 수 있다면 나도 그럴 수 있어. 연주해 줘. (위스키에 취하면서 파노라마처럼 파리에서의 옛 추억이 떠오른다. 파리가 함락되기 전 릭은 파리에서 작은 카페를 경영하고 있었다. 릭은 그때 일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릭은 아름다운 일자를 바라보며 건배를 하곤 했다.) "Here's looking at you, kid." 당신의 모습에 건배, 꼬마 아가씨. 영화 <카사블랑카>에 회상씬이 없다면 관객들은 릭과 일자의 관계, 릭의 상처와 일자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Richard, I cannot go with you or ever see you again. You must not ask why. Just believe that I love you. Go, my darling, and God bless you. Ilsa 릭, 당신과 함께 갈 수도 당신을 다시는 볼 수도 없어요. 이유는 묻지 마셔야 해요. 다만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믿어 주세요. 안녕히 가세요. 신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일자. 이 미친 세상에서 동시에 세 사람이 행복해질 수는 없는 법 릭의 '카페 아메리카'는 미국의 축소판이면서 동시에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구명정(Life Boat)'이다. 그래서 릭의 카페는 적과 아군의 구분없이 아무나 찾아올 수 있지만 동시에 아무나 떠나갈 수 없다. 빅터와 일자는 떠나가기 위해 릭의 카페를 찾았지만 릭은 일자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고 아직까지도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다. 일자는 자신의 두 사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게 된다. 한 남자에게는 존경의 마음을 다른 한 남자에게는 사랑의 마음을 품고 있다. 그리고 두 남자 모두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릭이 일자로 인해 받은 마음의 상처가 크면 클수록 앞으로 릭이 보여줄 자기 희생의 모습은 더욱 큰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자신의 모든 존재를 걸고 사랑했던 여인을 떠나보내야 하고, 자신의 목숨을 거는 모험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영화의 결말을 알고 있지만 <카사블랑카>는 볼 때마다 여전히 관객의 가슴을 조리게 만든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는 것일까? 과연 일자는 정말 릭을 사랑한 것일까? 만약 일자가 떠나지 않고 릭의 곁에 머문다면 어떨 것인가를 두고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만약 릭이 잃었던 사랑을 되찾는다는 식의 해피엔딩이었다면 우리들은 이 영화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을까? <카사블랑카>는 신파적인 구성이지만 결코 릭을 성자로 만들지 않으며 그의 선택을 합리적인 것으로 몰아가지도 않는다. 그리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결말을 선택하는 서투른 해피 엔딩을 택하지도 않았다. <카사블랑카>는 릭의 명대사처럼 "이 미친 세상에서 동시에 세 사람이 행복해질 수는 없는 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비행기가 무사히 이륙하자 르노는 "당신은 감상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이제는 애국자가 됐소"라고 말한다. 릭은 "글쎄요. 어쨌든 이제부터는 좋아질 것 같소"라고 대답한다. 르노와 릭이 짙게 깔린 안개 속으로 걸어가면서 나누는 대화는 릭이 프랑스 레지스탕스를 위해 일할 것임을 암시한다.
관련 사이트 & 참고 도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가지 플롯/ 로널드 B.토비아스 지음/ 김석만 옮김/ 풀빛/ 1997년 - 이런 책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모르겠다. 창작 지침서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문예 이론서라고 해야할지 그도 아니면 창작과 관련한 문예 에세이로 보아야할지. 그런 모호한 경계에 서 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책이 있고, 그와 같은 이유로 실용서 혹은 본래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는 책들이 간혹 있다. 이 책의 경우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이란 제목에도 드러나 있듯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플롯의 여러 종류를 주제별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 플롯들이 실제 작품들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준다. 아카데미영화제 - 오스카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1927-1993. 상권/ 이경기 지음/ 세광음악출판사/ 1993년 - 소위 '꿈의 공장'이라 불리는 미국 할리우드.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만의 1년을 결산하는 모임이자 축제랄 수 있는 '아카데미 영화제'는 어느새 전세계인의 축제 혹은 가장 상업적인 볼 거리 중 하나가 되었다. 상하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필요한 부분들은 대개 상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상권만을 구입했다. 일종의 '아카데미 연대기'랄 수 있는 아카데미 영화제에 대한 학술적인 접근이라기 보다는 매년 개최된 영화제의 여러 사건과 경향을 보여주는 데 치중하고 있지만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이 잘 입증하고 있듯이 풍성한 볼 거리, 읽을 거리들로 가득하다. 시네21 해외 뉴스 - 한겨레의 베를린 통신원 진화영 씨가 <카사블랑카>의 뒷 얘기를 소개하고 있는 글이다. 물론 이전에도 여러 경로를 통해 소개되고 있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빌리 와일더 감독의 이야기는 이 글을 통해서 처음 접했다.		포르투갈행 비자를 구하기 위해 카사블랑카의 여러 경로를 조사한 빅터와 일자는 릭이 비자를 갖고 있다는 정보를 얻는다. 라즐로는 릭에게 비자를 팔라고 하지만 릭은 거절한다. 그날 밤 라즐로가 비밀 회합을 위해 몰래 나가자 일자는 릭을 찾아와 비자를 내 달라고 말한다. 릭이 거절하자 일자는 릭을 향하여 권총을 겨눈다. 하지만 일자는 릭을 쏠 수 없었다. 일자는 파리에서 처한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는다. 릭과 떠나기로 한 전날 밤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 빅터가 탈옥해 그녀를 찾아왔다. 일자는 빅터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그를 버릴 수 없었다. 릭과 일자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We'll always have Paris." 우리는 언제나 파리의 추억을 간직할 거야. 눈물 가득한 일자의 아름다운 눈동자에 대고 릭은 술잔을 든다. "Here's looking at you, kid." 릭은 경찰서장 르노를 협박반 협조반으로 설득하여 빅터와 일자를 무사히 비행기에 태워보낸다. 순간 이를 저지하려는 슈트라서 소령을 쏘아죽이는 릭. 이 때 그의 부하들이 추격해 오고 슈트라서 소령의 시체를 발견한다. 순순히 체포되려고 하는 릭을 대신해 르노가 말한다. "Round up the usual suspects." 평소에 용의선상에 올라있던 자들을 검거해. 릭의 희생이 속물 르노의 마음을 변화시킨 것일까. 르노는 경찰서장을 그만두고 '레지스탕스' 운동에나 투신해야겠다고 말한다. 일자와 빅터는 릭의 희생 덕에 자유를 찾아 리스본으로 날아갈 수 있었다. 릭이 보여주는 반전의 묘미는 안개낀 공항에서 떠나기를 주저하며 릭의 곁에 남겠다고 고집하는 일자에게 "이 미친 세상에서 동시에 세 사람이 행복해질 수는 없는 법"이라며 그녀를 떠나 보낸다. 이 영화 <카사블랑카>는 전쟁에 참여하기를 주저하는 국민들에게 던지는 가장 매력적인 '출사표(出師表)'임에 틀림이 없지만 구호에 매몰되지 않고,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역시 불후의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의 본질 중 하나는 불행히도 '희생'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리히 프롬은 삶에 기술이 필요하듯이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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