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Movie > Gattaca02 > Gattaca01  

 

 

 

 

 

 

 

 

 

 

가타카 ( Gattaca, 1997, 미국 )

 

 

감독/ 앤드류 니콜 Andrew Niccol
출연/ 이단 호크 Ethan Hawke(Vincent Freeman), 우마 서먼 Uma Thurman(Irene Cassini), 주드 로 Jude Law(Jerome Eugene Morrow), 고어 비달 Gore Vidal(Director Josef), 알란 아킨 Alan Arkin(Detective Hugo) 등

 

 

 Inner Link

 

오리지널과 리메이크의 차이 - 아우라

 

 

 

알랭 들롱

태양은 가득히

죽은 시인의 사회

제라르 드파르뒤에

테오도어 드라이저

유리병편지

아돌프 히틀러

찰스 다윈

 

 

   마 전 우연히 두 편의 영화를 비슷한 시간차를 두고 보게 되었다. 하나는 우리 안주인 마님이 대여 비디오를 반납하러 비디오 숍에 갔다가 빌려온 <리플리 The Talented Mr. Ripley> (1999)였고, 다른 하나는 TV에서 방영해준 <가타카>였다. 잘 알려진 대로 <리플리>는 패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 원작의 <태양은 가득히 Plein soleil> (1960)를 리메이크한 필름이다. 나는 워낙 <태양은 가득히>를 좋아하는 축이라 <리플리>를 통해 망가지는 <태양은 가득히>가 싫어서 안주인에게 화까지 냈는데(저만 안 보면 그만이지 왜 화를 냈을까) 결론은 역시 화날 만 했다. 만약 우리 안주인님이 알랭 들롱이 주인공을 맡았던 <태양은 가득히>를 보고, 이 영화 <리플리>를 보았다면 나처럼 화가 나지 않았을까. 할리우드는 이렇게 외국 영화들을 자기들 식으로 리메이크하는 데 익숙하다. 일설에는 자막 나오는 영화를 보기 싫어하는 미국 관객의 취향이 크게 작용했다고 하는데, 가령 안느 빠릴로 주연의 <니키타 Nikita>(1990), 제라르 드파르뒤에 주연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 The Return of Martin Guerre>(1982) 같은 영화들이 브리짓 폰다의 <니나 Point of No Return>(1993), 리차드 기어의 <서머스비 Sommersby>(1993)로 탈바꿈한다. 그냥 외피만 달라졌다면 원작의 아우라(Aura)를 어느 정도 변질시키는 정도(성공한다면 새로운 아우라를 창조해냈겠지만)에서 그쳤겠지만 원작 소설이 있거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결말까지 바꾸어 놓는 거의 훼손 상황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미래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DNA 염기 배열이다. 우주선을 발사하는 회사 <가타카>를 출입하기 위해 본인 확인을 하려면 매일 약간양의 혈액을 엄지 손가락으로부터 뽑아내야 한다.

 

 

 

 

 

빈센트 프리먼은 오늘날 우리들이 태어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태어난 '신의 아이들'이었다. 빈센트의 부모는 어째서 사회적 부와 지위가 있음에도 무책임하게 빈센트에게 아무런 유전자 조작도 없이 태어나게 만들었을까?

 

 

 

 

 

나는 <가타카>를 보면서 이렌느와 빈센트의 사랑이나 이해보다는 이렌느가 빗에서 발견한 프리만의 머리카락 한 올을 들고 가서 DNA검사를 받을 때, 호들갑스럽게 달려와 조금 전에 키스한 자신의 입술에 남은 체액을 통해 상대 남자의 사회적 신분을 확인하려 한 여자의 모습이 다가온다. 자본주의 아래서는 사랑조차 신분질서를 초월할 수 없다.

 

 

 

 

 

제롬 유진 머로우(Jerome Eugene Morrow)역의 주드 로(Jude Law) - 최근 나의 눈에 띈 젊은 배우 중에서 게리 올드만 만큼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배우였다. 내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를 배경으로 독·소간의 저격수들의 대결을 그린 <에너미 앳 더 게이트>가 처음이었지만 <리플리>, <A.I>, <로드 투 퍼디션>을 거치면서 '주드 로'라는 배우에게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타카>에서는 <리플리>와 다소 겹치는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그의 연기는 이단 호크의 모호한 연기를 압도하고 있다.

 

 

 

 

 

빈센트 프리만(Vincent Freeman)역을 연기한 이단 호크(Ethan Hawke) - 피터 위어 감독의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감수성 예민한 어린 소년을 연기한 이단 호크는 이후 <비포 선라이즈>에서 줄리 델피와 하룻밤의 아름다운 연애담을 연기했다. 섬세하고 병약한 듯한 인상 뒤에 숨겨진 불온함이 드러나야 하는 프리만역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연기했다고 생각한다.

 

 

 

 

 

이렌느 카시니(Irene Cassini) 역을 연기한 우마 서먼(Uma Thurman) - 솔직히 우마 서먼에 매료당한 적이 없는 지라 <가타카>에 그녀가 등장한다는 사실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가타카>에 이르면 우마 서먼에게 더 이상 매력적인 배역은 주어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긴 그것이 어디 우마 서먼의 탓이겠는가. <가타카>에서 이렌느 역은 성공을 위한 가도에 등장해 주인공이 잠시 쉬었다 가는 벤치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워 보였다. 

 

 

 

 

 

이루지 못할 꿈은 차라리 악몽이다. 빈센트에게 꿈과 너무나도 가까운 현실 역시 그런 악몽이었다. 결국 빈센트는 비밀리에 유전자 브로커를 만나(브로커까지 있다는 것은 암암리에 이런 비밀 거래가 종종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완벽한 유전자를 지닌 사내를 소개받게 된다. 그가 바로 전직 수영선수 제롬(Jerome Morrow)였다. 현실에 좌절하고 있던 두 인간이 만난다. 한 인간은 완벽한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사고를 당해 미처 그 꿈을 펼쳐 보이지도 못하고 시들어 가고 있었고, 다른 한 젊은이에게는 그 꿈을 펼쳐보일 기회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이 영화 <가타카>도 어떤 면에서 보자면 그런 리메이크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우성 인자만을 유전적으로 전수 받은 오리지널과 비교하자면 형편없는 수준의 유전자를 보유한 한 인간의 '우성 유전자 리메이크 하기' 혹은 '위변조하기' 정도가 될까. <가타카>를 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선 SF영화인 이 영화의 이야기 구조가 매우 낯익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심장하다는 것이다. 낯익은 것들은 아마 테오도어 드라이저(Theodore. Dreiser)의 『아메리카의 비극 An American Tragedy』을 원작으로 한 <젊은이의 양지>를 비롯해 앞서 이야기했던 친구를 살해하고 신분을 위조해 계급 상승을 꾀하는 젊은이의 빗나간 야심을 그린 <태양은 가득히>,  남의 신분을 위조하다 못해 마누라까지 가로채고, 아이를 둘씩이나 낳은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마르탱 게르의 귀향> 등에서 익히 들은 이야기들을 그 저본(底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이야기를 다소 낯설게 보이도록 만드는 장치들은 바로 유전자에  의해 구분되는 신분사회의 디스토피아적인 전망에 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차근차근 그 이야기를 풀어 가보도록 하자.

신의 아이들을 차별하는 사회

   간이 생명을 창조하는 사태에 대한 경고는 하늘에 닿고 싶다는 욕망을 경고한 바벨탑 붕괴 신화 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가깝게는 프랑켄슈타인으로부터 멀게는 골렘에 이르기 까지 생명 창조에 대한 호기심은 그 경고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상상되었고, 시도되었다. 유태인의 전설에 등장하는 골렘이 한 줌의 흙으로 빚어진 인간의 육신에 신의 숨결이 닿으면서 이루어졌다는 창세기의 구절을 바탕으로 하고 있듯이 프랑켄슈타인은 17세기의 기계론적 유물론에 그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 시기의 인류는 다가오는 산업혁명의 토대가 될 각종 자연과학 상의 발견들(토리첼리와 보일은 공기압력의 존재를 증명, 뉴턴은 만유인력 및 운동 법칙, 라이프니츠는 미적분학 등)과 기술력을 축적해 가고 있었고, 그 자신감은 오늘날 우리들이 문명개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는 확신 못지 않게 도를 넘쳐 때로 라 메뜨리 같은 철학자는 "인간도 또한 한 대의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체의 여러 부위를 잘라냈다가도 다시 접합하면 인간의 부활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18세기에 이르러 백과전서파의 홀바하 같은 이들은 "자연에는 불가사의한 것, 신의 기적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하며 우리가 신의 기적이라고 믿는 것들은 단지 우리들의 무지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런 말들의 옳고, 그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난 세기를 오늘날의 관점으로 돌이켜 볼 때 인간은 좀더 겸손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가까운 미래의 어느 시대. 여자들은 더 이상 자연적인 출산의 고통을 감내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선택된 유전자를 이용해 안전하고 확실한 방식인 시험관 아기를 생산해내기 때문이다. 영화 <가타카>는 그런 설정에서 출발한다. 그 시점이 매우 가까운 미래라는 것도 생각해볼 만한 설정이고, SF영화임에도 그 흔한 특수 효과 한 번 사용하지 않았다는 부분도 감독의 의지를 높이 살 만한 부분이다(무릇 SF영화란 특수효과를 처바르는 블록버스터일 것이다라는 선입견만 제거한다면 이 얼마나 훌륭한 자세인가). 주인공 빈센트 프리먼(이단 호크)은 부모의 자연스러운 사랑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 시대가 자연스럽게 태어나는 '신의 아이들'보다는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의 아이들'을 우대하는 사회라는 데 문제가 있다. 사랑으로 아이를 잉태하는 일은 열성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태어나게 만드는 바보같은 짓이며 그런 아이를 태어나게 만드는 부모는 자식의 미래에 대해 도통 고민해본 적이 없는 우둔한 부모다. 게다가 이 사회가 신의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인간의 아이들과 경쟁하도록 하는 사회가 아니라 적격자(valid)와 부적격자(invalid)로 신분이 고정된 틀 속에서 살아가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심을 품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은 인류가 고정된 신분사회로 살아왔던 시기가 그렇지 않았던 시기보다 더 길며, 지난 20세기만 하더라도 실제로 우생학, 인종학적 근거에서 신분적 차별 심지어는 절멸시키려는 시도까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결정된 미래 - 유전자 조작

   SF를 바라보는 관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의 관점은 SF가 내적 완결성을 지닌 세계라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SF가 다루고 있는 가상의 세계가 비록 현실 속의 세계는 아니더라도 그 안에서는 그런 가상의 설정들이 나름대로 논리적인 일관성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 된다. 고도의 내적 완결성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판타지는 SF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영화의 제목이자 빈센트가 어려서부터 꿈꾸어 오던 우주 항법사의 길을 가능하게 만들어 줄 회사인 가타카(GATTCA)라는 이름은 DNA의 염기 배열 인 구아닌(G), 아데노신(A), T( 티민), C(시토신)을 조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성공하고 인간 배아 복제 및 유전자 조작 기술이 확립되어 자연 출산의 고통 없이 부모는 태아의 성별, 기본적 성향, 유전 결함까지 완전히 통제된다. 이제 사회에서 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신분과 대우는 모두 개인의 유전적 우열에 의해 결정된다. 명확히 구분되는 유전적 질서에 의해 한 개인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른 전 과정이 통제된다.

  완벽한 신분 사회였던 중세 봉건제 사회 아래에서 만들어진 무수히 많은 계급 상승의 전설(가령, 공주를 구한 이름없는 기사나 왕자의 눈에 들어 엄격한 신분적 통제와 금기를 넘어선 사랑)들이 증명하듯이 신분사회의 억압과 통제가 강하면 강할수록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기어 오르려는 야심찬 시도 역시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빈센트는 부모의 낭만적인 판단착오로 말미암아 선천적인 심장 질환과 근시, 다소 폭력적인 성향 등으로 인해 31세쯤에는 사망할 것이라는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 사실을 깨우치게 된 어린 빈센트가 부모에게 감사할 이유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미래가 단지 유전적 정보만으로 결정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예전에 게시판에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아버지는 매독환자이고 어머니는 결핵환자입니다. 이들 부부 사이에서 출산했던 아이들은 현재까지 네 명인데 그 중 맏이는 장님으로 태어났고, 둘째는 사산했고, 셋째는 귀먹어리, 넷째는 결핵을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부부는 다섯번 째 아이를 임신했습니다. 의사는 이들 부부에게 아이를 출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를 들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아이를 낳아야 할까요? 아니면 아이를 낳아선 안되는 것일까요?" 여러 종류의 대답이 있었지만 이렇게 해서 태어난 아기가 '루드비히 반 베토벤'이란 사실을 알고 나서는 다들 충격을 받았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명 피아니스트는 유전적인 조작에 의해 손가락이 열둘이었지만(물론 관객에게 충격을 주기위한 방편으로 선택된 것이지만) 역사상 불후의 명피아니스트로 불린 사람들의 손가락은 대개 열개였다.

빌린 사다리 - 야곱의 사다리로부터 유전자의 사다리까지

  시 영화의 줄거리로 돌아가서 그렇게 유전자의 우열로 구분되는 신분사회에서 꿈꿀 수 없는 꿈을 가지고 있는 빈센트에게 허락된 일은 가타카의 초현대식 건물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거의 매일같이 발사되는 로켓을 바라보며 분루를 삼킨다. 유전적으로 뛰어난 엘리트들만 선발하는 가타카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이 로켓을 탈 수 있는 현실 속에서 빈센트에겐 이미 모든 가능성의 출구가 막혀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봉건제 사회에서도 우연한 기회에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탄 인물이 있듯이(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신분상승의 이야기는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야곱은 형인 에서에게 장자의 권리를 속임수로 얻게 되고 그 결과 장자의 권리를 빼앗긴 에서가 야곱의 목숨을 노리자 야곱은 사막으로 도망쳤다가 그곳에서 하늘까지 연결된 사다리를 보게 된다. 이 사다리를 통해 야훼를 만나게 된 야곱은 야훼에게 축복의 말을 듣는데 이것은 장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았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물론 이로부터 '사다리'가 신분상승의 한 상징처럼 쓰이게 되었고, 이 영화에서도 '빌린 사다리'라는 이름으로 유전자 감식을 피해 신분상승을 꾀하는 방법으로 지칭된다.) 빈센트 프리만(Freeman 이란 이름은 역설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역시 빌린 것이긴 하지만 '야곱의 사다리'를 오른다.

   이루지 못할 꿈은 차라리 악몽이다. 빈센트에게 꿈과 너무나도 가까운 현실 역시 그런 악몽이었다. 결국 빈센트는 비밀리에 유전자 브로커를 만나(브로커까지 있다는 것은 암암리에 이런 비밀 거래가 종종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완벽한 유전자를 지닌 사내를 소개받게 된다. 그가 바로 전직 수영선수 제롬(Jerome Morrow)였다. 현실에 좌절하고 있던 두 인간이 만난다. 한 인간은 완벽한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사고를 당해 미처 그 꿈을 펼쳐 보이지도 못하고 시들어 가고 있었고, 다른 한 젊은이에게는 그 꿈을 펼쳐보일 기회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어느 것이 더 괴로울 것인가를 따지는 것은 호사가들의 몫으로 남겨놓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벌써 이 부분만 놓고 보더라도 이 사회가 얼마나 어리숙한가를 알 수 있다. 이 사회는 장애인에게도 역시 냉담하다. 자동차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온 제롬에게도 역시 정상적인 사회 활동의 길은 막혀 있다. 이것은 마치 히틀러가 장애인들을 최종해결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이 된다. 사실 이 영화가 논리적·영화적으로 꼬이는 부분이 한 두군데가 아니긴 하지만 가장 결정적으로 꼬이는 부분은 여기부터가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빈센트는 제롬의 타액, 혈액, 머리카락, 체액, 비듬 등을 빌려 가타카에 취직하려고 결심한다. 빈센트는 컬러 콘택트 렌즈, 다리 길이를 늘이기 위한 수술, 제롬의 혈액을 주사한 가짜 손가락 피부(가타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혈액을 채취해 백혈구 핵 속의 DNA를 분석해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제롬으로 신분을 위장해 가타카의 타이탄행 우주 비행사 후보가 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동료 아이린(Irene Cassini)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제롬의 행동에 의심을 느끼고 있었고, 그의 빗에 묻어 있던 머리카락을 몰래 가져가 DNA 테스트를 해보기도 한다(물론 이 머리카락은 제롬이 일부러 남긴 것이었다). 어쨌든 영화는 평소 제롬을 의심하던 가타카의 연구원이자 중역이 무참하게 타살당하고, 이러저런 우여곡절 끝에 빈센트 아니 제롬이 그 살해범으로 지목받다가 누명을 벗고 타이탄행 로켓을 타고 지구를 출발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반신 마비로 지구에 남겨진 제롬은 우주로 떠나가는 빈센트를 바라보면서 가스 난로 안으로 들어가 한 줌의 재도 남기지 않고 스스로 타오르는 길을 택한다. 실수로 흘린 속눈썹 한 개 때문에 살인 용의자 리스트에 오르고 실제로는 자신의 친동생인 형사에게 추궁받는 빈센트를 바라보면서 관객들은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아마도 대개의 관객들은 빈센트와 제롬에게 동시에 연민의 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지금 당장의 현실은 아니더라도 가까운 미래에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실제 현실에선 절대로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가타카의 현실은 유전자 조작이란 부문만 빼놓고 보면 정확하게 우리 현실과 부합된다.

제롬과 빈센트 - 한 사람은 우성 유전자를 주입받아 태어났지만 후천적인 사고를 통해, 다른 한 사람은 열성 유전자를 타고난 탓에 도전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을 탓할 뿐 이것이 사회 문제라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정말 너무나 착한 젊은이들이 아닌가 말이다, 바보가 아니라면.)

 

 

 

 

Home > Movie > Gattaca02 > Gattaca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