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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카 ( Gattaca, 1997, 미국 )

 

 

감독/ 앤드류 니콜 Andrew Niccol
출연/ 이단 호크 Ethan Hawke(Vincent Freeman), 우마 서먼 Uma Thurman(Irene Cassini), 주드 로 Jude Law(Jerome Eugene Morrow), 고어 비달 Gore Vidal(Director Josef), 알란 아킨 Alan Arkin(Detective Hugo) 등

 

 

 

 

가타카의 현실은 과연 먼 미래의 일인가?

 

 

분명 빈센트는 그에게 허용될 수도 있었지만 금지된 사회의 터부에 도전했다. 그가 타인의 유전자를 빌린 것은 단지 도전할 자격을 얻었다는 것 뿐이지 우주선을 타게 된 것은 순전히 그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빈센트의 도전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가난한 집 자식이 밤새워 노력한 끝에 일류대학에 수석 입학한 것과 같은 일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빈센트 역시 밤 9시 뉴스에 인간승리의 산 증거로 등장할 일이고, 이 사회가 좀더 간교한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같은 어려움 속에서 그런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이들의 게으름을 탓하는 설교조가 될 것이다. "자, 봐라!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본인이 노력하기만 한다면 우리 사회는 당신에게도 상류 계급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얼마든지 열어두고 있다"고 말이다.

 

 


후손은 생명공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호주 대륙 남쪽에 경상남북도를 합한 크기의 섬, 타스마니아가 있다. 타스마니아에는 약 5,000명의 타스마니아 원주민이 만년 전 이래 터잡아 살아왔는데 최근 유럽인들이 들어가면서 인종 분포에 대격변이 초래되고 말았다. 호주 본토 인종에서 분리되었지만 본토 인종과 달리 조악한 무기와 부메랑도 없이 구석기 문명에 머물러 있던 그들은 현재 지구상에 없다. '문명의 충돌' 때문이었을까?

원주민 혈통이 섞인 일부 주민들이 원주민 권익단체를 만들어 활동한다지만 그들은 이미 유럽화 되었고 순수 혈통의 원주민은 사라졌는데, 사라진 원주민들에 대한 박해 경위는 설명하는 사람에 따라 다소 다른 것 같다. 유럽인들에 쫓겨, 유럽인들의 질병에 노출되어, 유럽인들에게 살해되어 그랬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최근 발간된 「도도의 노래」(데이비드 쾀멘, 1998년 푸른 숲)에서 저자는 열악한 환경의 원주민 보호 수용소에서 모두 사망하게 되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백인들의 시각이다. 원주민 권익단체에서 보는 시각은 다르다. 완벽한 사냥의 결과로 해석한다. 유럽인들의 거주지에 나타나는 원주민은 살해 대상이었다. 일부 인도주의를 자처하는 자들은 '유럽인들에게 복종적이고 신을 두려워하는 3등 식민지 신민'으로 개종시키고자 총구를 들이 대고서라도 보호시설로 원주민들을 옮기고자 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싶을지 모르나, 가축 우리보다도 못한 보호소로 격리시키기 위해 '성인을 생포하면 두 당 5파운드, 어린아이는 2파운드' 이런 식으로 현상금을 붙였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발령된, 백인이 키우는 양을 잡아먹는 육식 동물 타스마니아울프 사체의 현상금보다 그다지 많지 않은 액수였다. 생포되어 수용소에서 최후를 마친 200여 명은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 당시 성공회 대주교를 대표로 하는 위원회는 "잡아 노예로 팔자", "독을 먹여 가두자", "개를 이용해 추적해 잡자"는 안을 검토하다가 "현상금을 노리는 기마경찰대를 이용해서 말살하자"는 안을 심의했기 때문이다.

차별에 의한 인종의 대규모 학살은 타스마니아에 그치지 않는다. 면역이 없는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유럽인들의 병균이 묻은 옷을 입게 하여 집단 살해한 행위(슬픈 열대, 레비스트로스, 박옥즐 역, 1998년 한길사)는 차라리 애교에 불과하다. 아프리카를 무대로 한 노예사냥은 얼마나 잔혹했던가. 백인의 시각으로 '서부개척'이라 한껏 미화된, 아메리카 대륙에서 있었던 대규모의 원주민 학살극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각, 이 지구상에 인종차별은 없을까? 그렇다고 확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사라질까?

프린스턴 대학 분자생물학과 교수인 리 실버는 자신의 최신 저작 「리메이킹 에덴」(1998년 한승)에서 앞으로 10 세대가 지난 2350년의 섬뜩한 미래상을 펼쳐 보인다. 모든 사람들은 두 가지 계층으로, 즉 과거 세대의 유전자를 전통 방법으로 이어받을 수밖에 없는 '자연인'과 고가의 최신 인공유전자를 주입 받아 탄생한 '부유유전자 계층'으로 양극화한다는 이야기다. 오랜 세월 두 계층 사이에 결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 유전적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자연인'이 '부유유전자 계층'으로 승격되는 경우도 거의 사라지면서 급기야 두 계층 사이에 임신이 불가능해지는데, 현재 사람과 침팬지 사이에 이성적인 감정이 생기지 않는 것처럼 그 때가 되면 두 인간 계층은 별종으로 치달을지 모른다고 상상한다. 리 실버는 이런 현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거의 단언한다. 20세기의 과학기술이 돈을 마다하지 않는데 어찌 피할 수 있을 것인가!

리 실버는 '부유유전자 계층'에 의한 '자연인'의 박해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떨까.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가 같은 두 종은 동일한 환경에서 공존하기가 불가능한데 2류 인종은 온존할 수 있을까? '부유유전자 계층'의 은총을 잃은 '자연인'의 최후는 어떤 모습이 될지 리 실버가 굳이 밝히지 않는다 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의 경험은 이미 차고 넘친다.

머리를 좋게 하는 유전자, 노화를 방지하는 유전자, 금발 유전자, 초록빛 눈동자의 유전자 등, 이미 많은 유전자를 '좋은 유전자'라는 인식 하에 속속 밝혀 내고 있다. 돈 많은 국가의 유수한 연구실마다 사람의 유전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밝혀 내겠다는 이른바 '휴먼 게놈 프로젝트'라는 연구도 절찬리에 수행 중이다. 이미 30% 이상 밝혀 내었다는 '휴먼 게놈 프로젝트'로 다가오는 밀레니엄에는 도장이나 신분증 대신 유전자 지문이 일반화되리라고 장담한다. 그 무렵 눈부시게 발전된 생명공학은 유전자의 추출과 삽입을 자유롭게 할 것이 거의 틀림없고, 임신하기 전부터 태어날 아이의 유전 특징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미래의 과학기술은 아이의 '나쁜 유전자'를 '좋은 유전자'로 바꿀 것을 강력히 권고할 텐데, 어떤 부모가 마다할 수 있을까?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아이의 희비가, 아니 운명이 좌우될 것이 틀림없다. 이와 같은 과학기술은 복음인가? 생명공학이 다음 세대에 복음으로 다가올 것인가?

박병상(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 이 글은 계간 황해문화 1998년 겨울호(통권21호) <특집/ 과학, 테크놀러지 그리고 민주주의> 편에 수록된 <후손은 생명공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중 일부를 수록한 것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앞으로 유전자 과학이 좀더 발전하게 되면 영화 <가타카>가 예상하고 있듯이 유전자 조작에 의해 유전적 질병의 요인이나 그외 여러 가지 요소들을 조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우리가 현재 발달된 의료 과학의 혜택을 골고루 받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미래 사회에서도 선택된 소수에게만 그런 혜택이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과학은 결코 중립적이지도 않으며 비정치적이지도 않다.

 

   마전 모 스포츠전문지가 국내에서도 일부 불임부부가 명문대 여대생들의 난자를 비밀리에 구매하려고 한다는 기사를 보도한 적이 있다. O형 혈액형이 특히 고가에 팔린다고 한다는데 나중에 이렇게 해서 아기를 낳은 부부가 이혼하게 된다면 이 아이는 누구의 아기가 되어야 할지와 같은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종족을 남기고자하는 인간의 욕망이 다른 동물보다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떠나 현실은 더욱 가혹하다. 유전자 조작이란 문제를 떠나서 우리들은 어렷을 때 누구나 이런 상상을 한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지금의 내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 나의 친부모는 어딘가 먼 곳에서 매우 부자로 살고 있는데 지금의 내 부모가 나를 납치했거나 우연히 주워서 자식삼아 데리고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상상 말이다. 부모가 우리를 선택해서 나은 것이 아니듯, 우리 역시 부모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가족이란 불가항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팔자소관 탓을 하면서도 그냥 견디고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위와 같이 어렸을 때의 상상이 TV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비련의 주인공들처럼 정말 신분이 뒤바뀐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신분상승의 이야기는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일 것이다. 여기에서 야곱은 형인 에서에게 장자의 권리를 속임수로 얻게 되고 그 결과 장자의 권리를 빼앗긴 에서가 야곱의 목숨을 노리자 야곱은 사막으로 도망쳤다가 그곳에서 하늘까지 연결된 사다리를 보게 된다. 이 사다리를 통해 야훼를 만나게 된 야곱은 야훼에게 축복의 말을 듣는데 이것은 장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았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물론 이로부터 '사다리'가 신분상승의 한 상징처럼 쓰이게 되었고, 이 영화에서도 '빌린 사다리'라는 이름으로 유전자 감식을 피해 신분상승을 꾀하는 방법으로 지칭된다.

  예전 <유리병편지>에서 "세계가 만일 100명의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면"이란 글을 보낸 적이 있다. 우리는 그 글을 통해서 '동시대성'이란 것을 고민해보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북한이 아닌 남한에서 태어난 것, 유럽이 아닌 아시아에서 태어난 것, 아프리카와 같이 기아와 가난에 시달릴 확률이 큰 대륙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태어난 것이 운명인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사회 역시 어느 부모를 만났는가 하는 문제로 미래의 운명이 결정된다. 나는 그런 점에서 <가타카>의 세계가 유전자의 우열이란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보다 오히려 수긍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스운 생각을 해본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교육환경의 불균형이나 교육기회의 균등 문제를 한 번 따져보자. 매년 대학입시가 끝나면 방송사마다 대학 입시에서 최고 성적을 낸 수험생을 찾아가 인터뷰를 한다, 공부법을 물어본다 난리 부르스를 친다. 어쩌다 그 학생의 부모가 매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자식 하나 잘 키웠다고 한다면 대개의 부모들은 제 자식들에게 '저 봐라, 쟤도 저렇게 어려운 현실 속에서 공부해서 전국 수석을 먹지 않았니'라고 말한다. 자식된 입장에서 따질 수도 없고, 억울한 고충이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반대로 삼류 대학의 인기없는 학과를 졸업해도 나중에 잘될 수 있지 않느냐와 같은 항변은 씨알머리도 먹히지 않는다.

  어째서 그런가? 우리 부모들은 그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살아보니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삼류 대학의 인기없는 학과 나와도, 일자 무식의 무학자라 할지라도 잘될 수 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학력이 전무한 사람도 위인이 된 경우는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부모들이 원하는 것은 자식이 위인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다만 사회에 나가 밥 굶지 않고,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평생동안 커다란 우여곡절 없이 안정된 직장에서 밥 잘먹고, 애 잘 낳고 그렇게 살아주길 바란다. 물론 한 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상류층이 되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고, 그런 신분상승의 사다리로 교육을 바라본다. 그런데 우리들도 당신들의 그런 꿈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강남 애들하고 도저히 경쟁이 안되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렇게 지지리 가난한 집 자식이 일류대 수석입학하는 게 그리 흔한 일이라면 어째서 저녁 시간에 온국민이 바라보는 뉴스에 톱으로 등장하겠는가? 그것이 뉴스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이 그만큼 흔치 않은 일이라는 증거다.

영화 <가타카>의 치명적인 약점

  <가타카>가 지닌 최고의 약점은 바로 그 부분을 좀더 날카롭게 파고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빈센트의 부모가 내린 판단은 일회적이고 충동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빈센트에게 우수한 유전자를 타고나도록 시술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그 증거로 빈센트의 동생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우성 유전자를 지닌 자식으로 태어났다. 이 말을 바꾸어 표현해보자면 자식이 공부하는 데 혹은 출세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교육환경과 여건을 필요로 하는 데 부모가 순전히 낭만적이고 개인적인 교육관을 지닌 탓에 큰 아들에게는 참고서나 과외 공부, 학원 보내기를 일체 하지 않고, 학교 교육과 집에서 혼자 독학을 하라고 강요했으면서 동생에게는 온갖 과외와 학원 교육을 병행하고 게다가 강남의 교육 일번지로 이사간 것과 맞먹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빈센트나 제롬의 경우엔 분명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우연과 사건에 의해 사회에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잃긴 했지만 제롬의 경우엔 우연한 사고에 의해 빈센트는 부모가 베풀어줄 수 있었음에도 순간적인 판단 착오로 자신의 미래를 그르친 경우이니 만큼 사회를 탓할 이유는 별로 없다고 할 것이다. <가타카>가 지배하는 세계에 대해 빈센트나 제롬이 터뜨리는 분노가 공허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데 만약 빈센트의 부모가 찢어지게 가난한 탓에 자식에게 우성 유전자를 심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감독 앤드류 니콜은 이 부분에서 슬쩍 한쪽 발을 빼낸다. 자칫하면 진지한 사회드라마가 될 뻔한 이야기를 변죽만 울린 채 앞서 이야기했듯이 성서에 등장하는 에서와 야곱 형제의 장자권 쟁탈전으로 탈바꿈시킨다. 성서에서는 동생 야곱이 형의 권리를 빼앗았지만 <가타카>에서는 형 빈센트가 부적격자로 구분되어 신분상승의 기회를 제약받긴 하지만 제롬의 도움을 통해 야곱에게 내려진 사다리를 자신도 빌린다. 회사 '가타카'에서 쏘아올려지는 로켓은 신에게 이르는 야곱의 사다리이며 동시에 잃어 버린 장자의 권리를 되찾는 행위로 뒤바뀌고 만다. 현재의 현실 세계에서 한 인간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단순히 그가 어느 가문 출신이냐, 그의 부모가 지닌 재력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 부유한 집안의 자식이 가출을 하거나 잘못된 길로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 영화 <가타카>에서 우성 유전자를 타고나 적격자로 분류되는 제롬이 우연한 사고로 적격자로서의 자격을 행사할 수 없게 된 것처럼 흔히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것은 어쩌다 우연히 발생하는 사고일 뿐이다. <가타카>에서 다른 대다수 부적격자들이 사회의 하층계급을 이루며 살고 있는 것처럼 적격자들은 사회의 상층부를 점유한 채 살고 있다. <가타카>는 어떻게 그들이 사회에서 그런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던지지 않는다.

   분명 빈센트는 그에게 허용될 수도 있었지만 금지된 사회의 터부에 도전했다. 그가 타인의 유전자를 빌린 것은 단지 도전할 자격을 얻었다는 것 뿐이지 우주선을 타게 된 것은 순전히 그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빈센트의 도전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가난한 집 자식이 밤새워 노력한 끝에 일류대학에 수석 입학한 것과 같은 일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빈센트 역시 밤 9시 뉴스에 인간승리의 산 증거로 등장할 일이고, 이 사회가 좀더 간교한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같은 어려움 속에서 그런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이들의 게으름을 탓하는 설교조가 될 것이다. "자, 봐라!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본인이 노력하기만 한다면 우리 사회는 당신에게도 상류 계급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얼마든지 열어두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의 교육에 대한 이상 과열 현상은 결국 경제력의 유무에 의해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이미 유전자에 의해 신분이 결정되는 <가타카>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반으로 갈린 한반도의 남쪽 귀퉁이에서도 서울이냐, 지방이냐. 서울에서도 강남이냐 강북이냐 같은 강남 지역에서도 부모의 교육에 대한 열의가 어느 정도냐, 지원은 어느 정도냐에 따라 한 아이의 미래는 이미 어느 정도 결정된다.

형사 휴고는 빈센트와 친형제였음이 드러난다. 유전자 배열은 좀 다르지만 어쨌든 하나의 자궁에서 나왔으면 형제다.

간교한 작동에 의한 사회 메커니즘, 자본주의

   20세기의 역사를 돌이켜 본다는 건 때로 매우 잔인한 경험이다. 중세를 지배했던 무지한 광신적 열정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념이라는 인간의 신념 역시 종교화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배웠다. 마찬가지로 20세기와 21세기엔 그런 종교와 이념의 역할을 과학이 대신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학이란 이름 아래 인류를 전멸시킬 수 있는 살상 병기가 개발되었고, 얼토당토 않은 우생학과 인종학이라는 사이비 학문을 통해 다른 인종과 민족을 절멸시키는데 이용당했다고 해서 과학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견이 있다면 나는 그 의견에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 마찬가지로 과학이 비정치적이며 모두에게 중립적인 학문이란 환상에 대해서도 나는 이와 똑같이 반대한다.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의 사촌인 프란시스 골턴(1822-1911)은 지능검사(I.Q. Test)를 창안한 과학자이며 범죄추적에 유용하게 쓰이는 지문검사를 만들어 낸 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가 악명높은 우생학의 창시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부모가 남겨준 유산을 이용해 세계를 여행했다. 그가 특히 감명을 받은 곳은 아프리카였는데 그의 눈에 아프리카 흑인들은 지능지수가 매우 낮은 저능한 인종으로 보였다. 그는 지능이란 신체적인 특질들과 마찬가지로 유전되며 이렇게 결정된 유전인자는 후천적인 요인인 영양보다 인간의 성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종의 사회진화론인“코카서스인들은 유색인들보다 우월하고, 부자가 빈민보다 유전적으로 월등하다”와 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의 이런 주장들은 아돌프 히틀러 같은 이들에게 위험한 방식으로 수용되었고, 바다 건너 미국으로 넘어간 뒤에는 그보다는 좀 덜 위험한 방식으로 수용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날 받고 있는 I.Q.테스트이다. 이를 받아들인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루이스 터먼 교수 같은 이는 I.Q.테스트를 미국식으로 고쳐 실시했는데 그가 만든 지능검사 테스트에서 늘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점수를 보이자 여성에게 이로울 수 있다는 느낌이 드는 항목을 죄다 삭제해 버렸다. 그는 여성이 결코 남성보다 우수할 수 없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런 성적 편견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종적 편견도 매우 강했다. 트랜지스터를 발명하여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쇼클리(1910-1989)는 백인의 지능이 흑인의 지능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한때 IQ가 높은 미국 여성에게 노벨상 수상자의 정자를 분양하자는 사업이 미국에서 전개됐을 때, 제일 먼저 정자를 제공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바로 쇼클리였다.

 

관련 사이트 & 참고 도서

가타카 공식홈페이지 - 영화 <가타카>의 공식 홈페이지이다. 사진 등 기타 읽을 거리들이 많이 있다.(영문)

무비웹 가타카 페이지 - 인터넷무비데이타베이스(IMDB)는 영화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들을 입수하는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곳이긴 하지만 이미지 자료들은 좀 빈약한 편이다. 영화 자체의 스틸 컷들보다는 배우들의 공식행사장 사진이 더 많기 때문인데 무비웹은 그런 면에서 IMDB보다 좋은 사진 자료들을 많이 공급해주는 사이트이다.(영문)

『총, 균, 쇠』/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문학사상사/ 1998년 - 문화에 과연 우열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그 사람은 아마 제국주의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문명간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 질문한다면 쉽게 대답하기 곤란하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문명간의 불평등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가를 묻고 있다. 좋은 책이다.

『파우스트의 선택』/ 박병상 지음/ 녹색평론사/ 2000년 - 오랫동안 생명공학의 위험성을 지적해온 재야 소장 학자인 박병상 박사의 저서이다. 생명공학이란 결국 돌연변이의 유포 기술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21세기 최첨단의 굴뚝 없는 산업 - 생명공학이 과연 누구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다소 비장미가 넘치기는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한다면 어쩌면 이것도 약과인지 모르겠다. 필독해보시길.

 


  과학은 날로 발전해가고 있다. 최근 외신 뉴스를 보면 앞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에겐 그들의 유전적 질병의 유무는 물론 앞으로 발병할 가능성이 있는 질병까지 체크할 수 있는 유전자 분석 결과가 한 장의 CD-ROM에 담겨 제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다만 그 기술이 좀더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CD 한 장의 가격이 수 천만원을 호가할 것이라는 것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앞으로 유전자 과학이 좀더 발전하게 되면 영화 <가타카>가 예상하고 있듯이 유전자 조작에 의해 유전적 질병의 요인이나 그외 여러 가지 요소들을 조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우리가 현재 발달된 의료 과학의 혜택을 골고루 받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미래 사회에서도 선택된 소수에게만 그런 혜택이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과학은 결코 중립적이지도 않으며 비정치적이지도 않다.

   맬더스가 "가난한 이들이 사는 거리의 상하수도 시설을 엉망으로 하고, 골목의 폭을 좁혀 거주 환경을 나쁘게 하여 그들 사이에 전염병이 유행할 수 있도록 조장해야 한다"는 초기 자본주의자들의 의식이나 주장은 가난을 한 개인의 게으름으로 치부하는 것에 비하자면 그만큼 잔인하기는 하지만 소박한 의식이다. 19세기 유럽의 하층 계급들 사이에는 아이들이 결코 신이 내려준 축복이 아니었다. 가난은 '신의 아이들'들에게 당밀과 아편을 반죽해 만든 '신의 축복'이란 환약을 부모의 손으로 먹이도록 했다. 아이들은 부모가 마른 젖 대신에 물에 타서 먹인 아편 섞인 환약을 먹고 안락사 당했다. 자본주의가 풍요로운 부를 약속하는 현대에 이르러 우리들은 여러 분야에서 평등을 이루고 있다. 부유한 계급이나 가난한 계급이나 같은 뉴스를 보고, 드라마를 보며 함께 눈물짓는다. 코카콜라를 마시고, 맥도날드 햄버거를 사먹는다. 우리는 같은 하늘을 짊어지고 살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저서『총, 균, 쇠』에서 8억의 제3세계 인구가 처음부터 굶주렸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랜 세월동안 자급자족해 오던 그들의 생활 터전을 제국주의자들이 파괴하고, 부존자원을 강탈 해간 이후부터 굶주리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도 모르는 가운데 생명공학은 제2의 녹색혁명을 꿈꾼다. 유전자 조작에 의한 식량 공급은 미래 세계의 꿈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다. 과거 제국주의를 통해 그들을 착취했던 이들은 이제 유전자공학을 통해 종자를 장악하고 있다. 과연 인류는 제2의 녹색혁명을 필요로 하는가? 지금 인류는 결핍 때문에 굶주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분배 때문에 굶주리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아이들과 후진국의 아이들이 같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고 해서 그들에게 같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것처럼 한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미래 역시 공급이 아니라 분배의 문제에 덜미가 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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