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5세 ( Henry Ⅴ, 1989, 영국 )

헨리 5세 ( Henry V, 1989, 영국 )

감독 : 케네스 브래너(Kenneth Branagh)
출연 : 케네스 브래너(Henry V), 데릭 자코비(Derek Jacobi, 내레이터), 이안 홀름(Ian Holm - Fluellen), 엠마 톰슨(Emma Thompson, Katherine), 시몬 셰퍼드(Simon Shepherd, Gloucester), 제임스 라킨(James Larkin, Bedford), 브리안 블레시드(Brian Blessed, Exeter), 크리스찬 베일(Christian Bale, Falstaff's Boy), 쥬디 덴치(Dame Judi Dench, Mistress Quickly), 폴 스코필드(Paul Scofield, French King Charles VI) 등
기타 : 윌리엄 셰익스피어(원작), 케네스 브래너(각본), 케네스 맥밀란(촬영), 패트릭 도일(음악)

아쟁쿠르 전투 - 프랑스 귀족과 영국 평민의 대결

지금 헨리 5세(케네스 브래너)가 짊어지고 오는 소년은 극중에서는 왕세자 시절 어울리던 팔스타프 무리의 소년이다. 이 아역 연기는 이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태양의 제국>에서 아역으로 등장했던 크리스찬 베일이다. 영화에서 팔스타프의 주막을 운영하는 여인 퀴클리로 등장하는 주디 덴치는 피어스 브로스넌 주연의 007 시리즈 MI6의 새로운 국장 M으로 출연하고 있다.

장궁의 발명 시기는 다른 고대 무기들이 대체로 그런 것처럼 명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2세기 후반 영국의 웨일즈 지방에서였다. 웨일즈인들은 가장 탄력이 좋고 억센 나무 중 하나인 주목(朱木)의 심재와 변재 부분이 맞닿은 부분을 이용하여 최상의 유연성을 발휘하도록 했다. 장궁용 화살은 대략 94cm정도의 길이로 화살촉은 활공 길이와 관통력울 높이기 위해 원뿔형 쇠침을 달았고,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깃털을 후퇴익으로 잘라 붙였다.

중세 군사조직의 중추는 누가뭐래도 봉건제에 기반을 둔 기사였다. 보다 많은 기사를 가진 나라가 우수한 군사력을 갖춘 나라였다. 그러나 기사 한 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었다. 기사는 아무런 생산적인 활동도 하지 않는 직업군인이었다. 왕실이 직접 기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들었으므로 귀족들은 병역의 의무를 지고, 왕실은 이들에게 봉토(장원)를 주어 경제적 기반으로 삼도록 했다. 그러나 중세는 끝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특권을 유지시켜줄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인 장원은 도시의 성장에 밀려나고 있었고, 그에 발맞추어 귀족만의 특권 중 하나였던 전장에서의 우세 역시 장궁의 출현으로 일반 시민군으로 이루어진 보병에 의해 역전되고 만다.

국가는 시민들을 훈련시킴으로써 적은 비용으로 기사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쳤고, 실제로 시민들을 조직하여 훈련시킴으로써 그렇게 했다. 영국은 모든 스포츠를 금지시키고 오로지 장궁만을 연습하도록 했으며, 심지어는 어떤 노동도 금지되었던 중세의 안식일에도 장궁 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허용되었다. 장궁은 프랭크족의 전투 도끼처럼 단순히 투척하는 무기가 아니었다. 장궁을 능숙하게 사용하기 위해, 기사단의 돌격이라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참아내면서 대오를 지키고, 기사들을 겨냥해 화살을 쏘아 맞추기 위해서는 장시간의 훈련이 필요했다. 영국의 시민사회는 이런 과정을 거치며 형성되었고, 영국의 민주주의와 젠트리 계급의 형성 역시 이런 군사적 상비군 제도의 도입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헨리 5세의 실제 초상

로렌스 올리비에의 <헨리 5세>

헨리 5세(Henry V, 1944, 영국)

감독 : 로렌스 올리비에
출연 : 로렌스 올리비에 , 펠릭스 애일머 , 로버트 헬프만 등

제2차 세계대전은 총력전이었다. 나치 독일은 전유럽을 석권한 뒤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로렌스 올리비에는 할리우드에 진출해 있었다. 그는 전쟁이 발발하자 고통에 처한 영국 국민들을 위로하는 라디오 방송을 했고, 위험에 처한 영국으로 귀환했다. 그는 영국 국민들의 사기를 높일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하자는 제의를 받아들여 <헨리5세>를 제작했다. 미국은 <카사블랑카>를 비롯한 일련의 애국심 고취 영화를, 영국은 <헨리 5세>, 소련은 <알렉산더 네프스키>, 나치 독일은 영화광이었던 괴벨스와 히틀러가 앞장 서서 반영, 반미 정서를 고취시키는 선전영화들을 제작했는데 1942년에 제작된 <대왕>이란 영화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였다.

최신식 갑옷을 갖춰 입고 말 위에 올라타 말고삐를 거머쥔 프랑스의 귀족들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영국군 병사들의 몰골이 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이 병력이나 무장에서 월등한 우세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의 기사들도 자신들을 위협하는 보병들의 무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우리가 활의 명수로 생각하는 윌리엄 텔이 사용했던 석궁이 그것이다. 그러나 석궁은 우리의 전통 활인 맥궁처럼 복합재료들을 사용하는 탓에(철갑상어를 이용한 아교를 포함한) 제작비가 비싸고, 활시위를 당기는 힘이 많이 들어 1분에 1-2발을 발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는 전선을 기사들이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돌파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2-3분이면 족했으므로 석궁을 들고 있는 궁수들이 2-3분 혹은 길어야 5분 동안 날릴 수 있는 화살 역시 두세 발 혹은 그보다 적을 수밖에 없었다. 기사들이 방패를 높이 들고 전선을 돌파하는 동안 화살을 맞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중무장한 말과 쇠도리깨를 흔들며 달려드는 기사단의 기세 앞에 주눅 들지 않고, 진영을 갖춘 채 침착하게 활시위를 당기기란 여간한 배짱과 훈련 없이는 불가능했다.

전투 개시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대오를 갖춘 프랑스 보병대가 전방으로 나섰다. 전투의 시작은 보병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무자비한 돌격으로 영국군 진영에 다다르며 영국군의 진열을 흐트러뜨림과 동시에 기사단이 쇄도해 들어가며 패닉 상태에 빠진 적군을 일거에 도륙하는 작전이었다. 프랑스 보병대는 영국군이 진을 치고 있는 전방 200야드(대략 183m - 당시 활의 최대 사거리 인근)까지 전진하여 일제히 돌아서서 몸을 굽히고 경멸의 표시로 엉덩이를 까보였다. 그 순간 영국 궁수대는 일제히 화살을 쏘아 올렸다. 프랑스 보병들은 자신들이 화살의 사거리 밖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영국 궁수대는 그 거리 정도는 능히 화살을 날려 보낼 수 있는 최신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바로 장궁(長弓, longbow)이었다. 장궁은 에드워드 1세가 웨일즈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기병대를 이끌고 출동했을 때, 웨일즈 반군들이 사용하여 그의 기사들에게 치명상을 입히면서 새롭게 발견한 무기였다. 장궁을 집단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운용하는데 비용이 많이 드는 기사들을 대체할 수 있다는 효용성을 발견한 영국 왕실은 이후 모든 놀이를 금지하면서까지 국민들로 하여금 장궁을 익히도록 했다. 사실, 장궁은 이전부터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존왕 시절의 로빈 후드가 사용한 무기도 바로 장궁이었다). 다만, 장궁을 전술적으로 운용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지 않았고, 설령 그 효용성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당시는 귀족들이 지배하는 중세봉건사회였다. 기사들을 상대로 치명적인 무기로 알려진 석궁도 교황청이 ‘반기독교적인 무기’라 규정하여 저주의 형벌을 내리면서 이 무기를 이교도들을 대상으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1139년 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했던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거기에 숨어 있는 뜻은 이런 것이었다. ‘귀족은 오로지 귀족의 손에 의해서만 영예롭게 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중세의 신분질서 속에서는 전쟁이라 할지라도 평민이 적국 귀족의 목숨을 노릴 수 없었다.

그러나 영국은 일찌감치 평민세력이 성장했고, 프랑스와 같은 유럽 지역에 비해 왕의 권력이 귀족 세력보다 강성했다. 그런 까닭에 영국은 평민들로 하여금 감히 귀족의 목숨을 겨냥하는 당시로서는 파렴치한 무기인 장궁으로 무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장궁은 무엇보다 가벼웠고, 구조가 간단해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게다가 영국의 평민 궁수들은 본국에서 이미 오랫동안 장궁 사격을 연마해 왔던 탓에 1분에 15발이라는 경이로운 발사를 가능하게 했다. 그야말로 영국 궁수대가 쏴 대는 화살은 하늘을 비 오듯 뒤덮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장궁이 제 아무리 하늘을 비 오듯 뒤덮었다 하더라도 중무장한 기사들의 갑옷을 뚫을 수 없었다면 영국 궁수대는 공연히 헛힘만 뺀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궁은 독일제 최신 철갑으로 무장한 기사들의 몸을 200야드 거리에서 꿰뚫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헨리 5세의 영국군 보병이 프랑스 기사단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헨리 5세의 영국군은 아쟁쿠르에서 그야말로 학살에 가까운 전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학자들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프랑스군은 1만에 가까운 전사자와 1,000여명에 이르는 포로를 남기고 퇴각해야 했지만 영국군은 단지 113명의 병사만 잃었다. 어떻게 이런 엄청난 대승을 거둘 수 있었을까? 셰익스피어는 그의 희곡을 통해 프랑스의 쾌락과 사치에 젖은 분위기에 비해 영국의 건실한 정신력, 단합된 사기, 헨리 5세의 군주로서의 뛰어난 자질을 부각시키고 싶어 한다. 로렌스 올리비에는 이에 덧붙여 하늘을 뒤덮고 메뚜기처럼 날아가는 영국 궁수대의 화살 세례를 부각시키고, 케네스 브래너는 병목처럼 입구가 좁은 지형 조건 아래 보다 많은 수의 병력을 일제히 돌격시킨 프랑스군의 우둔한 전술을 탓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영국 궁수대는 어떻게 프랑스의 우세한 병력과 우수한 무기를 이겨내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까?

물론 전략이나 전술의 개념으로 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군은 월등히 우세한 사거리를 가진 장궁을 효과적으로 운용·배치하여 강력한 화망을 펼친 채 대기하며 적군을 유인해낸 뒤 병목 효과를 빚어 혼란에 빠진 프랑스군을 궤멸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프랑스군은 무기나 수적인 우세만 믿고 단순한 돌격전술을 반복함으로써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말았다”고 말이다. 사실 겉으로 드러난 전투의 결과만 놓고 보자면 이 모든 판단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부분들이 이 전투에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영국은 평민들을 전투에 대거 동원하였고, 이것이 가능한 국가구조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군의 사기를 고취시키는 지휘관의 역할, 무기, 전술, 지형, 날씨 등이 모두 작용한 결과 영국군은 대승을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때로 역사학자들조차 도외시하거나 간과하는 부분이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당시 프랑스와 영국이 처한 국가구조의 질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영국은 오래전부터 스코틀랜드, 웨일즈 등의 강력한 독립심을 가진 지역을 정복하였고, 평민 세력과 손잡은 왕은 귀족 세력을 억누르며 왕권을 강화하였다. 왕은 스스로가 정복한 지역의 왕자임을 자처하는 등 국민통합에 앞장섰고(영국의 황태자는 전통적으로 ‘웨일즈의 왕자price of wales’로 불린다), 그 결과 영국군은 하나의 단일한 집단으로서 일사불란한 명령체계를 갖춘 군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프랑스는 수적으로 월등한 규모의 병력을 갖췄으나 그들은 아직 지역별 귀족 세력에 소속된 군대였다. 각 지역에서 다급하게 모아들인 군대는 지역별(귀족)로 지휘관이 달랐다. 게다가 그들은 골수 깊숙이 중세의 귀족정신으로 무장된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자신을 죽음으로 이끈 존재들이 미천하기 그지없는 평민 궁수란 사실에 더 억울해 했을 것이다. 그들을 죽인 것은 그들처럼 갑옷을 갖춰 입은 귀족이 아니라 누더기를 걸친 영국의 농부들처럼 하층계급이었다. 그런 까닭에 프랑스 지위 높은 기사들은 이미 지난 “크레시(Crecy) 전투(1346년)”에서 영국 궁수대의 장궁에 호된 패배를 맛보았음에도 그들의 전술을 변경할 수 없었다. 이들에게 기득권은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중세의 기사들은 그들만이 특수한 전투 집단으로 존재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으므로 새로운 전술을 받아 들 일 수 없었다. 이것은 지극히 현대화된 오늘날의 군대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문제이다. 입으로는 늘 군현대화를 부르짖는 대한민국 군대가 실제로 군 감축을 실시하기 보다는 새로운 작전사령부를 신설하여 군 고급 장성들의 진급에 활용하고 있는 숨은 뜻도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아쟁쿠르 전투 그 이후의 영국과 프랑스

헨리 5세는 1415년 아쟁쿠르 전투 뒤로도 1417년부터 1420년까지 노르망디 정복 사업을 지속시킨다. 노르망디와 그 주변 지역은 헨리 5세의 치세 기간 내내 전쟁의 주된 무대가 되었다. 아쟁쿠르 전투에서 승리한 헨리 5세는 프랑스의 궁녀 캐더린과 결혼하게 되는데 이때 프랑스의 샤를 6세와 맺은 것이 “트루아조약(Treaty of Troyes - 1420년 5월 체결한 조약)이다. 조약의 주요내용은 헨리 5세가 프랑스 왕녀 캐더린과 혼약을 맺고, 결혼지참금으로 왕국의 일부를 증여하며, 헨리 5세는 샤를 6세의 재위 중에는 섭정의 권리를 인정받고, 왕이 죽은 뒤에는 그 계승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승리한 영국은 캐더린의 오빠이자 왕세자였던 샤를을 왕위계승권자의 지위에서 제외시켰다. 이 조약은 프랑스 내 귀족 세력을 크게 분개시켜 샤를 7세 및 그를 지지하는 아르마냐크파는 이 조약을 인정하지 않고 항전을 계속하였다. 결국 1429년 잔 다르크(Jeanne d'Arc)의 출현으로 프랑스측이 군사적 우위를 회복하면서 조약은 사실상 무효가 되었다. 어쨌든 이 조약으로 헨리 5세는 프랑스의 왕세자 대신 프랑스의 섭정이자 발르와 왕조의 상속인이 되었다.

케네스 브레너의 <헨리 5세>는 이전의 작품들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재미를 주는데, 이를테면 헨리는 프랑스의 왕녀 캐더린에게 서툰 프랑스어로 구혼하고, 캐더린 역시 서툰 영어로 대답한다. 캐더린역으로 출연한 엠마 톰슨은 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만 하더라도 케네스 브래너의 실제 아내였다.

이 이례적인 조약은 한 세대도 넘게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를 결정지었지만, 헨리 5세는 프랑스의 왕이 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1422년 프랑스의 샤를 6세보다 한걸음 먼저 세상을 떠났다기 때문이다. 헨리 5세가 급서하자, 그와 프랑스 왕녀 캐더린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갓난 아들이 왕이 된다. 헨리 6세는 영국의 왕이자 동시에 프랑스 국내의 친영파(親英派) 귀족들에게는 프랑스의 왕 앙리 2세였다. 헨리 5세와 그의 뒤를 이어 프랑스 주둔 영국군 사령관이 된 동생 베드퍼드(Bedford)공 존은 1417년과 1429년 사이에 노르망디의 경계를 동쪽과 남쪽으로 더욱 넓혔고, 1415년 아쟁쿠르, 1423년 크라방(Cravant), 1424년 베루뇌이(Verneui)에서 잇따라 프랑스군에게 승리했다. 이때가 영국 세력이 프랑스에서 최대의 판도를 가졌던 시기였다. 프랑스의 왕위를 계승하고자 한 영국의 전략은 1429년 잔다르크의 등장에 힘입은 프랑스 세력이 되살아나면서 샤를 7세가 랭스(Rheims)에서 대관식을 치르며 물거품이 되었고, 파테이(Partey)에서 패배한 뒤로는 더 이상 판도를 넓히지 못하게 된다.

케네스 브래너

1960년 12월 1일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공장 지대 주변의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난 케네스 브래너는 그의 나이 열 살 무렵에 이미 소문난 셰익스피어 광이었다. 그가 왕립연극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연극무대에 섰던 20대 무렵에 그는 이미 연극비평가들로부터 '새로운 올리비에'라는 호칭을 얻었다. 23살에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에 들어가 1984년 공연된 <헨리 5세>의 주역을 맡음으로써 그는 로렌스 올리비에의 뒤를 잇는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로 두각을 나타냈다. 1987년 케네스 브래너는 영화 <한창 때>에서 조연을 맡고, <시골에서의 한달>의 주연을 맡으며 영화계에 데뷔한다. 이 무렵 그는 데이빗 파핏과 함께 르네상스 씨어터 컴퍼니를 창립하여 <햄릿>을 공연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고, <리어왕>을 새로운 각도에서 재해석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는 연기자로서만이 아니라 직접 극본을 쓴 <퍼블릭 에너미>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1989년 그는 르네상스 씨어터 컴퍼니의 운영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서전 『시작 (Beginning)』을 출판했다. 같은 해 그는 처음 감독 데뷔작으로 <헨리 5세>의 영화화를 시도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로렌스 올리비에의 계승자였고, 그에 대한 도전자였다. 그는 언제나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배우들과 자신이 비교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로렌스 올리비에나, 오손 웰스’가 아니라 케네스 브래너 자신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감독 데뷔작으로 1944년 로렌스 올리비에가 감독과 타이틀 롤을 맡았던 <헨리 5세>를 택했는지 모르겠다. 전쟁 중 국민들의 사기앙양을 위해 영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이루어진 영화 <헨리 5세>와 달리 케네스 브래너의 <헨리 5세>는 매우 저예산으로 만들어졌다. 설령 그 자신이 로렌스 올리비에처럼 하늘을 뒤덮는 화살 세례를 촬영하고 싶었다고 하더라도 그에게는 그럴 만한 자금이 없었고, 설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로렌스 올리비에의 시대와 케네스 브래너의 시대는 달랐다. 케네스 브래너의 시대는 애국적인 분노에 휩싸여 있던 로렌스 올리비에 시대의 전쟁은 사라지고, 단지 오래전에 자국 영토였다는 이유만으로 이역만리 떨어진 아르헨티나 앞바다의 섬 하나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영국 젊은이들과 아르헨티나 젊은이들이 죽어야 했던 전쟁을 치른 직후였다.

케네스 브래너는 우국충정의 전쟁 스펙타클보다는 음산하고 침울한 분위기로 백년전쟁 중 일어났던 아쟁쿠르 전투를 재현해내고 있다. 그는 비장한 대사들과 현실 역사에 기댄 해석을 통해 <헨리 5세>를 재현해냄으로써 비평가들의 많은 주목을 받았고, 뉴욕비평가협회를 비롯해 유럽 전역의 감독상을 휩쓴다. 영화 <헨리 5세>를 통해 아카데미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던 케네스 브래너는 이후 엠마 톰슨과 결혼해(결혼은 6년간 유지되었다) 할리우드로 직행한다. 그는 공공연히 셰익스피어가 자기와 같은 시대에 살았다면 틀림없이 희곡 대신 시나리오를 썼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1991년 <환생>을 감독하고 주연배우로 출연하고, 1992년엔 영국으로 돌아와 코미디 드라마 <피터의 친구들>을 감독했다. 그는 시시때때로 할리우드의 주류 세계 속에 편입되고 싶은 열망을 숨기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들은 ‘할리우드’적이기엔 너무 ‘셰익스피어적’이었다. 그는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며 결국 셰익스피어로 돌아왔다.

1997년 케네스 브래너는 희곡 『햄릿』을 4시간짜리 <햄릿> 영화로 옮겼다. 그는 자신의 은퇴작으로 자신이 직접 감독, 주연을 맡은 <리어왕>을 촬영하고 싶다는 열망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 그는 우선 좀더 늙어야 할 것이다. 물론 늙어가는 중에도 여전히 할리우드 작품들에 출연하며 재능을 축낼 것이고, 몇 번의 실패와 성공을 거듭할 것이다. <리어왕>은 그런 뒤에야 비로소 가능할 테니까.

Filmography

1989년 헨리 5세 (Henry V)
1991년 환생 (Dead Again)
1992년 피터의 친구들 (Peter's Friends)
스완송(Swan song) - 단편
1993년 헛소동 (Much Ado About Nothing)
1994년 프랑켄슈타인 (Mary Shelley's Frankenstein)
1995년 햄릿 만들기 (In The Bleak Midwinter)
1996년 햄릿 (Hamlet)
1999년 베티 쉬멜 이야기(The Betty Schimmel Story) - 다큐멘터리
2000년 사랑의 고통이 사라지다 (Love's Labour's Lost)

관련 사이트 & 참고 도서

옥스퍼드 영국사/ 케네스 O. 모건 엮음/ 영국사학회 옮김/ 한울아카데미/ 1999년

영화로 본 새로운 역사 - 첫째권/ 마크 C. 칸즈 외 지음/ 손세호 외 옮김/ 소나무/ 1999년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어니스트 볼크먼 지음/ 석기용 옮김/ 이마고/ 2003년

무기의 역사/ 찰스 바우텔 지음, 박광순 옮김 / 가람기획 / 2002년

씨네21 영화감독사전/ 씨네21 엮음/ 한겨레신문사/ 1999년

2001 키노 201감독/ 키노편집부/ 키노/ 2001년

독일의 전시 생활 - 라이프 제2차 세계대전사/ 찰스 파이팅/ 타임-라이프 편집부/ 1990년

이후 노르망디 사람들이 외국인 통치자들에 대해 점점 더 불만을 품게 되었고, 영국과 동맹 관계에 있던 브르타뉴와 부르고뉴의 태도가 흔들리면서 영국이 전쟁을 지속시키기엔 재정적 부담 역시 매우 커졌기 때문이다. 1435년 베드퍼드가 죽고, 1440년 부르고뉴가 영국에 등을 돌린다. 영국은 프랑스와 화평을 주선시키고자 아쟁쿠르 전투에서 포로로 잡았으나 돌려보내지 않은 오를레앙공을 석방하였으마 효과는 미미했다. 평화를 요구한 헨리 6세는 부왕의 영광을 기억하고 있던 대영주들(그들은 프랑스에 영지가 있었다), 젠트리로부터 지지를 얻어내지 못했고, 평화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프랑스군은 1449년 신무기인 대포를 동원하여 노르망디를 공략한다. 결국 영국군은 루앙과 포미니(Formigny)에서 패배하였고, 1450년 8월 말에는 노르망디 공령으로부터 완전히 물러나게 된다. 헨리 5세와 프랑스 공주 캐더린 사이의 아들 헨리 6세와 랭카스터 왕조는 이런 실패 때문에 신망을 잃게 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영국에서는 요크가와 랭카스터가 사이의 ‘장미전쟁’이라 불리우는 왕조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헨리 6세는 폐위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잠시 복위되었다가 런던탑에서 죽는다(역사학자들은 살해당한 것으로 추측).

헨리 5세, 민족국가 형성기의 영웅

"도저히 안 되겠느냐?" 바비도는 말없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스미스필드의 창공에는 다시 연기가 오르고 장작더미는 불을 토했다. 이따금 일어나는 군중의 고함소리에 섞여서 한결 높은 폭소도 들려왔다. 한 생명은 연기와 더불어 사라지고, 구경에 도취한 군중이 흩어진 뒤에도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윗글은 1956년 제1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김성한의 소설 「바비도」의 마지막 장면이다. 주인공 바비도는 영국의 평범한 재봉직공이었는데 영어로 된 성서를 읽었다는 이유로 이단에 몰려 불에 타 죽는다. 작가 김성한은 역사적 실존 인물인 바비도(실존 주인공의 이름은 원래 '바드비(Badby)'였는데, 작가의 착오로 '바비도'가 되었다고 한다)를 통해 부당한 종교적 억압에 저항한 한 개인의 존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드비가 헨리 5세 당시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헨리 5세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 국왕이었다. 영국의 왕이니 전제 왕정 시대의 영국 작가가 그의 업적을 높이 찬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어를 사용하는 작가로서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헨리 5세를 각별히 아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헨리 5세는 영국의 세종대왕이었다. 헨리 5세는 그의 숙부인 윈체스터 주교 헨리 보퍼트의 손에서 자랐다. 그는 어린 시절 영어로 읽고 쓰는 법을 먼저 배운 사실상 최초의 영국 왕이었으며, 영어를 궁정어의 지위로 승격시킨 왕이었다. 헨리 5세의 부왕이었던 헨리 4세는 1399년 의회에 나가 영어로 연설하였고, ‘영어를 지나치게 조잡하거나 이상한 용어로서 사용하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이해될 수 있는 용어로 사용함’으로써 소통의 어려움을 제거하고자 했다. 헨리 5세는 대외적으로는 프랑스의 왕위를 요구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정부와 지식인 사회에서 프랑스어의 사용이나 프랑스적인 풍속을 억눌렀다. 이제 영어는 더 이상 ‘정복당한 사람의 언어가 아니라 정복한 사람의 언어’가 되었다.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가 영어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 1387년 - 1400년)』를 집필한 것이 이 무렵이 인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이제 영국은 점차 민족국가로서의 국가성(nationhood)을 획득하고 있었다.

실제 전투는 분명 영화 <헨리5세>가 보여주는 장면들보다 훨씬 더 잔혹했을 것이다. 로렌스 올리비에의 우국충정에 불타는 <헨리5세>에 비해 확실히 케네스 브래너의 영화는 요즘 감각에 맞게 보다 잔인해졌다. 인류는 그 사이에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거듭되는 테러와의 전쟁,그리고 영국은 프클랜드 전쟁을 겪었기 때문이다. 왕이 제 아무리 명예를 높이 외치더라도 죽은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실제 아쟁쿠르의 전장에선 많은 프랑스군들이 포로로 잡혔다. 영국군은 이들 지체높은 귀족 출신 포로들에게 몸값을 받아 경제적 이득을 챙길 욕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세의 다급함에 쫓긴 헨리 5세는 포로들을 살해하도록 명령했고, 혹시 돈욕심에 눈이 어두워 포로를 살려두는 부하가 있을까 두려워 별도로 200명의 궁수대를 보내 확인시키고, 독려하기까지 했다. 전세가 확실히 영국의 우세로 매듭지어질 동안 포로 학살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영화 어디에서도 그런 장면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프랑스군에 의한 비무장 영국 소년(기사를 따라나선 종자)들의 죽음만 비출 뿐이다.

에드워드 3세와 헨리 5세의 잦은 외국 원정은 본의든 아니든 국왕 자신이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제대로 굴러갈 수 있는 안정적이고, 집중화된 행정력의 육성을 필요로 했고, 이를 더욱 부추기는 효과를 가져왔다. 정부와 정부 기구는 더욱 커졌고, 행정력은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정규적으로 세금을 거둬야했으므로 사무는 보다 조직적이고, 신속하게 처리되어야 했고, 왕국 전체에 걸쳐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감독해야 했으므로 권한 또한 커졌다. 헨리 5세는 왕권을 강화하고, 백성의 신망을 얻기 위해 나치의 선전상 괴벨스 보다 훨씬 이전 시대에 국민을 상대로 이미지 조작을 실시한 정치가였다. 아쟁쿠르 전투에서 승전한 헨리 5세는 영국으로 귀환하면서 런던시가 개최한 환영회에서 스스로를 프랑스에 맞서 십자군에 나갔다가 돌아온 병사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다. 이것은 혹시라도 헨리 5세가 단순히 영토확장의 욕구나, 재정적 이득을 위해(사실은 그런 목적이었지만) 프랑스를 침공한 것으로 의심할지도 모르는 신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런 대의명분을 설득하고, 자신의 빛나는 전과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많은 문서들을 제작해 널리 유포시켜 대중들에게 알렸으며, 그는 곧바로 국민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되었다. 그는 당시의 인기 있는 작가 토머스 호클리브(Thomas Hoccleve) 등을 섭외해(당시 작가들은 자발적으로 집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대개 보상을 받는 조건으로 집필했다) 아쟁쿠르 전투와 영국군의 루앙 포위를 찬양하는 시를 짓도록 했다. 헨리 5세는 승전을 통해 대중들에게 이끌어낼 수 있는 호전적인 애국심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1944년 독일의 침공을 받은 영국에서 전심전력을 기울여 <헨리 5세>를 만든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훈족 독일의 침략에 맞선 소련은 세르게이 에이젠쉬쩨인을 통해 그들 러시아 민족의 영웅인 <알렉산더 네프스키>(1938년)를 영화로 만들었고, 영국에서는 로렌스 올리비에가 브리튼족의 영웅인 <헨리 5세>(1944년)를 부활시킨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영국인들은 헨리 5세의 집권기를 거치면서 영국, 영국인, 영국적인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고, 상대적으로 외국에 대해 적대적으로 변모했다. 아쟁쿠르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온 것은 귀족과 기사뿐만 아니라 당시만 하더라도 미천한 신분이었던 젠트리 계급과 궁사들이었다. 이런 영국인들을 관찰한 한 관찰자는 1373년 이런 말을 했다. “영국인들은 그들 자신이 위대하다는 생각에 가득 차 있고 또한 커다란 승리를 너무나 많이 거두어 왔기 때문에, 그들이 결코 패배할 수 없다고 믿게 되었다. 온 세상 사람들 가운데 싸움터에서 가장 확신에 차 있는 국민은 바로 영국인이다.” 그들의 이런 자부심은 대영제국 시대까지 이어졌고, 멋진 외국인을 보았을 때 그들이 “그는 영국인처럼 보이는군.”이라고 하거나 “그가 영국인이 아닌 건 참 딱한 일이야.”라고 덧붙일 수 있게 만들었다. 1414년-1417년에 열린 공의회에 파견된 영국 대표단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네이션(민족국가 혹은 국민국가 ‘nation’)이라는 것이 함께 살아온 습관과 혈연관계로 말미암아, 또는(하느님의 법과 인간의 법 모두에서 하나의 네이션임을 가리키는 가장 확실하고도 절대적인 징표이자 본질인) 언어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별되는 한 무리의 사람들로 이해되든 …… 아니면 네이션이라는 것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프랑스 민족의 영토와 같은 하나의 영토로 이해되든, 잉글랜드는 참다운 하나의 네이션이다….”

영국은 이런 정신,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스코틀랜드, 웨일즈를 통치하였고, 끝끝내 굴복하지 않은 아일랜드 인들을 돼지 취급했다. 영국은 이를 바탕으로 대영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지만, 민족주의는 부메랑이었다. 그들 자신이 퍼뜨린 민족주의는 가깝게는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에서는 잔다르크에 의해, 그들이 오랫동안 통치했던 인도에서는 네루와 간디에 의해, 이집트에서는 낫세르에 의해 되돌려졌고, 제국이 붕괴한 뒤인 오늘날까지 아일랜드 문제(영화 "마이클 콜린즈" 참조)는 두고두고 영국의 골머리를 썩이는 존재가 되었다. 마거릿 대처 이래 영국이 유럽통합에 가장 지지부진한 자세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도 분명 이런 정서에 기인하는 바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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