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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의 유리병편지>
N0.237. 우영우를 통해 본 우리 사회의 장애
● 오는 토요일 7월 23일 MBC 시선집중 <토닥토담> 코너에서 방송되겠지만, 저도 남들 다 하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해 이야기해볼 시간이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드라마로서 갖춰야 할 ‘흥미, 재미, 의미’의 삼박자를 두루 갖춘 “웰-메이드 ‘판타지’ 문제작”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웰-메이드 ‘판타지’ 문제작”이라고 규정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IQ164에 서울대 법대 수석 졸업, 로스쿨 수석 등 탁월한 스펙을 가지고 있지만, 타인과 교감하기 어려운 장애(장애 스펙트럼 증상)가 있는 ‘우영우’, 귀엽고 심지어 사랑스럽기까지 한 캐릭터의 주인공이 매회 흥미진진한 소재의 법정드라마를 펼치고, 단지 능력만 뛰어난 인물이 아니라 장애라는 한계조차 비장애인 법조인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인간미로 생각될 정도로 성실하고, 정직한 법조인이라는 설정, 그리고 그와 같은 우영우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인물들이 하나 같이 ‘판타지’란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드라마적 완성도, 배우의 연기와 기타 등등의 요소들을 보면 ‘판타지’가 아니라 그야말로 ‘판타스틱’합니다.
제가 이 작품을 문제작이라고 이야기하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사회적으로 고민해보고 성찰해야 할 여러 가지 요소들,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C)의 문제를 드라마 곳곳에 코드화하여 배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이 드라마의 2화 <흘러내린 웨딩드레스> 편에서 우영우는 “아빠는 ‘미혼부’라 결혼한 적이 없으니까 자기가 결혼하게 되면 아빠한테 부케를 주겠다”고 말합니다. 이 대사 하나, 설정 하나를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아빠가 딸을 신랑에게 넘겨주는 결혼식 형식에 대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우영우의 아빠 우광호가 ‘미혼부’란 설정을 통해 미혼부 문제에 대해, 신부가 결혼을 거부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동성 파트너의 손을 잡는 장면에서는 동성 간 혼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합니다.
실제로 ‘미혼부’ 문제에 대해 저는 올해 초에 <토닥토담> 코너에서 ‘미혼모’ 문제와는 또 다른 가혹함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고, 장애 스펙트럼 증상이 있는 우영우가 그렇게 훌륭한 스펙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스쿨 졸업 이후 6개월여 동안이나 취업을 못하다가 사실상 아버지의 학연을 통해 거대 로펌에 취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이처럼 다양한 사회적 쟁점과 문제들을 다루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인기를 누린다는 것을 보면 이 드라마가 얼마나 잘 만들어진(‘웰-메이드’) 드라마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정치나 연설과 다른 대중적 스토리텔링이 지닌 힘이자 예술의 당의정(糖衣錠) 효과이겠죠.
● 이 지점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란 용어가 무엇인지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저는 의학자도 아니고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서 관련 논문과 책들을 좀 찾아서 읽어봤습니다(사실, 이래서 방송출연해도 남는 것은 책뿐입니다).
발달장애, 이른바 ‘자폐’ 진단은 관찰 가능한 최소 여섯 가지의 발달 및 행동적 특징이 있어야 하고, 만 세 살 전에 이러한 문제가 발현하며, 다른 유사 증후군과 혼동되지 않는 것이라야 합니다. 자폐장애, 전반적 발달장애(PDD-NOS) 및 아스퍼거 증후군 등 여러 가지 유형을 통칭해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라고 하는데, 이런 증상을 학계에 처음 보고한 사람은 1943년 미국의 존스흡킨스대학병원 소아과 과장이자 ‘소아정신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레오 캐너(Leo Kanner, 1894~1981) 박사였습니다.
그는 병원을 찾은 아이들 중에 신체는 건강하지만 보통 아이들과 달리 주변 상황에 관심이 없고, 말이 거의 없으며, 특히 부모에게 애착이나 애정, 친밀감을 드러내지 않는 아이들의 사례를 모아 “외부세계의 자극을 최대한 외면하고, 스스로를 차단하는 정신적 고립”이란 의미에서 ‘auto(자신)+ism(증상)’, ‘오티즘’이라고 이름 붙였고, 국내에서는 이 말을 ‘자폐’라고 번역했습니다. 여기에 ‘스펙트럼’이란 말이 따라붙는 이유는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 발달장애에는 매우 다양한 임상 양상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어느 한 범주도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신에 이 장애들은 공통적으로 사회적 소통능력에 어려움을 겪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증상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해서 ‘스펙트럼’이란 말이 붙게 되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어떤 자폐인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단지 그 사람에게 나타나는 자폐증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것이다.”
● 우리 모두 각자의 개성이 있는 것처럼 장애에도 많은 종류가 있으며, 장애인이 처한 환경과 조건 역시 모두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장애를 비롯해 15개의 법적 장애유형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처럼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에 따라 장애가 중첩될 수도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표현되기도 했지만, 자폐 스펙트럼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입니다. 이 증후군은 1944년 오스트리아 빈의 아동재활병원에서 일하던 한스 아스퍼거(Hans Asperger, 1906~1980가 발견한 것으로 그의 이름을 따서 ‘아스퍼거 증후군’이라고 부릅니다. 이 경우엔 언어능력이나 지능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자폐증과 달리 사회생활에 큰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때에 따라서는 자신이 가진 비범한 재능 덕분에 특정 분야의 권위자가 되기도 합니다. 연구자들 중에는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캐빈디쉬, 음악가 바르토크,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같은 이들이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았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이란 ‘다운증후군’을 처음 학계에 보고했던 영국의 의사 존 랭던 다운(John Langdon Down, 1828~1896)이 발견한 증상으로 지능은 비장애인보다 낮지만, 특정 방면에 천재적 재능이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서번트 증후군을 다른 말로 ‘idiot savant’라고 합니다. idiot은 바보를 뜻하는 말이고, savant는 천재나 석학을 가리키는 말이죠. 우영우가 자신의 이름 ‘영우’를 가지고 ‘영리할 영’과 ‘어리석을 우’가 함께 있는 이름 같다고 말하는 대목 때문에 우영우를 서번트 증후군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우영우는 아스퍼거 증후군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 지점에서 이 드라마의 문제적 요소 중 하나가 드러납니다. 실제로 발달장애인 중 위와 같은 고기능성 장애라고 하는 분류에 속하는 경우는 그 범위를 아무리 넓게 잡아도 10퍼센트가 훨씬 안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발달장애 전문가들은 드라마 <굿닥터>나 <우영우> 같이 내용상으로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해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대중의 인식에 긍정적 역할을 하는 작품이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특히 발달장애)이 처한 실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일종의 판타지라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드라마로서 그냥 재미있게 즐기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변호사님도, 정훈이도 똑같은 자폐인데 둘이 너무 다르니까 비교하게 되더라고요.”란 대목이 있는 것은 드라마 대본을 집필한 작가가 그만큼 영민한 계산을 하고 - 이때의 계산이란 나쁜 의미는 아닙니다만 - 비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뜻이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영우’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고기능 자폐인’은 그야말로 극소수이고, 이 드라마가 자폐인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장애인 일반은 물론 발달장애에 대해 대표성을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어쩌면 시청자들 중 일부는 이런 드라마를 통해 자폐성 장애인의 상당수는 제대로 발견하고 키워주지 못해서 그렇지, 특별한 부분에 분명 천재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장애는 ‘질병’이나 ‘질환’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의 대상도 아니지만, 치료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증상이 완화될 수 있습니다.
●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능력주의’에 대한 문제입니다. 비장애인의 경우에도 최근 이른바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데, 장애인에게조차 그와 같은 능력주의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것이죠. 물론, 드라마는 대중문화이고, 대중예술, 다시 말해 상업성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스토리텔링, 캐릭터 구성 측면에서 대중이 원하는 바를 제공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영우’는 우리 사회가 원하는 영웅 캐릭터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영우 캐릭터가 지닌 문제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드라마 <우영우>가 장애를 천재화하거나 특별한 능력자로 만드는 것 ‘신화 만들기’를 통해 대중에게 감동을 주려는 드라마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그 지점에서 우리는 이 드라마를 칭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드라마에서 판타지에 가까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그 주변의 선량함이 넘치는 인물들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우영우를 둘러싸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주목할 수 있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면 말이죠.
우영우를 이상한 사람, 특별한 사람이 아닌 나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깨달음을 줍니다. 그것은 아마도 이 드라마의 대본을 쓴 문지원 작가가 영화 <증인> 때부터 줄곧 이 문제를 고민해온 사람이란 의미일 겁니다. 이처럼 드라마 <우영우> 이전에도 발달장애를 다룬 작품들이 제법 여러 편 있었습니다.
장애인을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활용할 때,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장애를 극복하라는 메시지를 담는 경우입니다. ‘장애극복신화’ 속에는 장애가 극복할 수 있는 것이란 시선을 기본적으로 내포하고 있고, 선의에 의한 거일지라도 논리적으로는 다른 대다수 장애인들은 그런 노력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 또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기 때문에 장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습니다.
요즘엔 장애를 비방하거나 비하하는 경우가 많이 줄고는 있지만, 간혹 그런 경우를 만났을 때 이를 비판한다면서 “장애를 욕하다니 니가 바로 장애인이야. 악플러인 너야 말로 마음속에 장애가 있는 거야.”란 식으로 비판을 가하는 것은 비판 과정에서 도리어 ‘장애’를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됩니다. 무엇보다 장애는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고 장애인은 동정하거나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 발달장애를 다룬 작품 중 대중에게 인기를 끌었던 <말아톤>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발달장애증상이 있는 초원이 역할을 맡았던 조승우 씨는 연기도 연기지만, 연기 이후 <시네21>가 가진 인터뷰에서 자폐아 연기가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자폐(自閉)’란 말 대신에 ‘자개(自開)’란 말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꾸밈없는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과 만난다는 점에서 그래요. 달리 어떤 패턴이나 정의로 자폐아로 묶는 건 엄청난 오해라는 걸 깨달았죠.” “성장하면서 배우는 자기 검열이나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 안의 반응만 솔직하게 표현한다는게 오히려 편했어요. 연기하면서 이만큼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것도 처음이에요.”
그는 자신이 발달장애인 연기를 하면서 타인의 감정이나 관계보다 그 자신의 감정에 더 충실한 연기를 하게 되는 경험을 했다면서 자폐증상이란 도리어 나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집중하는 어린이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초원이가 아니라 초원이의 어머니(김미숙)란 생각을 했습니다. 초원의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하지요.
“초원이가 저보다 하루 먼저 죽었으면 좋겠다.”
이 대사는 초원이 엄마의 소원이지만, 어쩌면 발달장애인의 어머니 또는 그 가족이 느끼는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자폐가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하고 복합적이라서 어느 한두 가지를 딱 집어서 이것이 원인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잘못된 인식 중 하나가 부모와 자식을 깊이 연관시키는 것입니다. 간혹 자녀의 발달장애(ASD)를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이나 애정결핍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아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어렵고, 안 그래도 자책감을 품고 계신 분들인데, 그런 오해 때문에 더욱 큰 고통을 감수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인식이 퍼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레오 캐너(Leo Kanner) 박사가 자폐증이 자녀에게 애착을 갖지 못하는 어머니 때문에 생기는 증상이라는 잘못된 주장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서 부모의 애정결핍이나 양육방식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자폐는 부모의 애정결핍이나 양육방식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초원이의 마라톤 코치는 어머니 경숙에게 자식 사랑과 집착을 혼동하지 말라면서 초원에게 마라톤을 시키는 것이 어쩌면 당신의 사랑이 아니라 집착 때문이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비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발달장애에 대해 조금이라도 제대로 알고 싶은 분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을 추천하고 싶었습니다. 그 책은 지난 25년간 특수교육과 발달장애인 관련 분야에서 헌신해온 김성남 선생님이 쓰신 『나는 당신의 숙제가 아니에요』란 책입니다. 이 책에서 김성남 선생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거나 그게 안 되면 패배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부모는 아이의 삶에서 중요하고 꼭 필요한 부분과 전투를 벌이는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함정을 피하려면 부모가 먼저 자기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그 친절함을 아이와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책은 굳이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분들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분들도 읽어보시면 여러모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 국민 대다수는 “스스로 장애인을 차별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높지만, 질문을 바꿔서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냐?”고 물어보면 67% 정도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차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 사회, 이율배반이 가능한 사회라는 것이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식이 개선되지 않고, 장애인 정책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당장에 저만 하더라도 명대사도 많고, 훌륭한 장면도 많았던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 중 하나로 회전문 앞에서 우영우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내게는 이처럼 당연한 것, 너무나 익숙하고 편리한 문(門)이 누군가에게는 진입 장벽(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선사하려는 성찰이 아닐까하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장애인에 대한 정의가 국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알콜중독자를 장애인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경우엔 의사소통이 어려운 외국인도 장애의 범주에 포함합니다. 이처럼 장애인에 대한 정의가 국가마다 다르다는 것만 생각해봐도 결국 장애란 그 나라가 어떤 국가냐, 어떤 사회이냐에 따라서 장애인이 되기도 하고, 비장애인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장애는 일차적으로 손상에서 비롯됩니다. 코가 있기 때문에 안경을 코에 걸칠 수 있고, 귀가 있기 때문에 안경을 귀에 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이미 코와 귀가 있기 때문에 안경은 귀에 걸고, 코에 걸치는 형태의 디자인을 갖추게 되었겠지요. 장애 역시 이처럼 특정한 사회적 환경과 조건 속에서만 이 손상이 장애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는 개인의 책임이 아닌 손상을 장애라는 상태로 만드는 사회적 환경과 구조에 있다고 생각해야 하고, 사회가 이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요?
재미있게도 한국은 OECD 31개 국가 보다 장애인 비율이 낮은 국가입니다. 한국에 등록된 장애인은 262만 명(261만8,918명) 정도로, OECD 31개 국가 평균[장애인 평균출현율(24.5%)]보다 장애인 비율이 낮습니다. 우리가 장애인 비율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실제로 적은 것이 아니라 ‘장애인등록제’ 때문입니다.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장애를 등록해야 하고, 정부는 이에 따라 장애등급을 나누어 심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도 문제이지만, 이런 장애인정책에 숨어있는 국가의 철학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선제적이고 능동적인 최대의 복지가 아니라 수동적이고 관료적인 소극적 복지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니까요. WHO가 우리나라에게 장애등록제 폐지를 권고한 이유,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에 기초하는 정책과 제도, 법령 정비 및 시행 등이 필요한 까닭도 거기에 있습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장애인 단체에서 이와 관련한 대선 공약을 양당에게 요구했고, 당시 윤석열 선대위 측(국민의힘)에서도 장애인의 실질적인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과 공약을 마련 중이라고 답변한 적이 있지만, 이것이 언제 정책화되고, 언제 실현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겠죠.
● 드라마 <우영우>의 인기가 무색하게도 올해 들어서만 벌써 8명의 발달장애인 가정에서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지난 3월 2일 시흥과 수원에서, 지난 23일 서울 성동구에 사는 40대 어머니가 발달장애가 있는 6살짜리 아들을 안고 아파트에서 투신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같은 날 인천 연수구에서는 60대 어머니가 대장암 진단을 받은 발달장애와 뇌병변 중복장애가 있는 30대 딸에게 다량의 수면제를 먹여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고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처럼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가 부모에게 죽임을 당하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원인은 우리 국가와 사회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 책임을 부모와 가족에게만 전가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나라에도 법이 있고, 정책이 있습니다. 지난 2014년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2018년엔 ‘제1차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도 마련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책에 따른 예산이 제대로 책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책만 있고, 예산이 없는 것이죠.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전체 발달장애인의 약 80%가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고, 이중 41%는 거의 24시간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지난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발달장애 자녀를 돌보기 위해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응답이 전체 20.5%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그나마 이용할 수 있었던 서비스마저 이용할 수 없게 되면서 발달장애인 가족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은 마라톤을 그만두었고, 현재는 독립해서 생활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실업자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으로 장애인 고용률이 60% 미만이고, 장애인의 월평균임금은 비장애인의 70%(71.7%) 수준입니다. 장애인 임금근로자의 43%가 고용불안정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장애인 빈곤율이 35.6%에 달합니다. 이것은 비장애인 빈곤율(14.6%)과 비교하면 2.4배가 높은 것이고, OECD국가 장애인 빈곤율 평균(22.1%)보다 1.6배나 높은 수치이기도 합니다.
● 궁극적으로 저는 우리 사회가 이제 ‘장애’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려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알콜 중독을 장애의 범주에 포함시킨 것처럼, 스웨덴에서 의사소통이 어려운 외국인을 장애의 범주에 포함시킨 것처럼 장기적으로 한국 사회 역시 고령자와 간병노동, 돌봄노동 역시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할 장애의 범주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우리 모두 언젠가 늙게 될 것이고, 한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게 친화적인 문화와 사회가 될 때,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정책이 수립되고, 예산이 제대로 배정될 때, 비로소 비장애인의 삶도 함께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장애와 장애인은 극복의 대상도, 동정의 대상도 아닌 우리 자신이 함께 살아야 할 세상의 문제,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는 차별하지 않아’라는 인식에서 스스로 벗어나 이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기 문제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 드라마는 현재 시점에서 완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뒷이야기에서 어떤 결말을 내릴지에 대해선 현재의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