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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르툼(Khartoum, 1966, 미국)

 

 


감독/바실 디어든(Basil Dearden)
출연/ 찰톤 헤스톤(Charlton Heston), 로렌스 올리비에(Sir Laurence Olivier), 리차드 존슨(Richard Johnson). 제작/ UA

 

 

 

 Inner Link

 

영국 빅토리아 제국의 순교자,  고든 총독

 

 

 

갈리폴리

북경의 55일(55 Days at Peking)

엘 시드(El Cid)

아라비아의 로렌스

나이팅게일

서태후

가말 압달 낫세르

로렌스 올리비에

 

너무 늦었다! 너무 늦었다! 허무하게, 구출은 허무하게 실패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삶은 영국의 영광, 그의 죽음은 영국의 긍지가 되었다! - 알프레드 테니슨

  오늘 이 글을 읽게 될 여러분 중 혹시 이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앞으로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면 이 영화를 보았고 기억할 만한 사람을 찾는다는 것, 그리고 이 영화 <하르툼>이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의 조회수를 올려주는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나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보았던 대개의 영화들이 결국 비슷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리란 것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영화를 소개하는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까닭은 이 영화가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비롯한 몇몇 영화들과 함께 식민지를 바라보는 서구의 시각을 잘 보여주는 영화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실제 인물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며 그 인물이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 개척사 혹은 식민지 경영사라는 측면에서 비중있게 다뤄지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총독 관저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고든 총독은 최후를 각오한 표정으로 총독의 예복 정장으로 갈아입고 허리에는 번쩍이는 기병도 사브르(saber)를 찼다. 그는 모든 마음의 준비가 끝났는지 한 손에는 군용 권총을 쥐고, 관저로 밀려오는 토민병들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관저로 밀려들던 토민병들은 백인 총독의 위엄있고, 의연한 모습에 일순 움찔하며 긴장했다.

 

 

 

 

 

 

 

무하마드 아마드(알 마디)역의 로렌스 올리비에(중앙)와 고든 총독역의 찰톤 헤스톤

 

 

 

 

 

 

 

 

하르툼에 세워진 고든 기념 대학(The Gordon Memorial College). 1902년 사진 - 위,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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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북경에서의 55일>의 한 장면 - 이 영화에서 찰톤 헤스톤은 의화단 사건의 와중에 베이징에서 고립된 유럽의 외교관들과 자국 외교관을 지키는 미국 해병대 무관으로 등장한다. 우연치고는 묘하게도 찰스 조지 고든의 행로와 얽힌 역사적 배경의 영화에서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가 두 편이나 된다.

 


그 사람은 수단의 총독이었던 찰스 조지 고든(Charles George Gordon) 경이다. 1833년 1월 28일 영국에서 태어나 1885년 1월 26일 수단의 수도인 하르툼(Khartoum) 총독 관저에서 수단의 토민 반란군이 던진 창에 찔려 죽은 사람이었다.

1885년 1월 26일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는

  1885년 1월 26일, 아프리카의 오지 수단의 도시 하르툼에는 새벽 미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이집트를 대표하는 총독. 찰스 조지 고든(찰톤 헤스톤)은 하르툼 성내에 마지막까지 머무르고 있던 마지막 백인이었다. 옷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허름한 천쪼가리들을 몸에 두른 수단의 토민병들이 성곽을 넘어 하르툼 성내로 진입해 들어왔고, 여기저기서 총성과 함께 불꽃이 일었다. 총독 관저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고든 총독은 최후를 각오한 표정으로 총독의 예복 정장으로 갈아입고 허리에는 번쩍이는 기병도 사브르(saber)를 찼다. 그는 모든 마음의 준비가 끝났는지 한 손에는 군용 권총을 쥐고, 관저로 밀려오는 토민병들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관저로 밀려들던 토민병들은 백인 총독의 위엄있고, 의연한 모습에 일순 움찔하며 긴장했다. 고든 총독의 깊게 패인 눈 자위에서 푸른 눈동자가 번뜩이며 기세좋게 밀려오던 토민병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디선가 터번을 두른 토민병 하나가 던진 창이 의연하게 서 있던 영국인 백인 총독의 가슴을 꿰뚫어 버렸고, 불가사의한 위엄과 카리스마로 넘치던 푸른 두 눈은 끝내 감기고 만다. 고든 총독은 그 자리에서 절명했고, 이 때 그의 나이 51세였다. 이것이 그의 최후를 묘사하고 있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수단의 토민병들은 고든 총독이 그 자리에서 쓰러지자 우르르 몰려들어 고든의 가슴을 난자했고, 총독의 머리를 베어 높은 장대에 매달아 둔다. 잠시 후 길었던 26일의 하루가 지나가고 저녁 태양 사이로 말 위에 올라 탄 장군의 청동 동상을 희미하게 비추며 어두워지는 화면 위로 자막이 올라가면서 해설자의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고든 같은 인물이 사라지고 나면 세상은 다시 사막으로 변할 것이다"라고….

영화 "하르툼"의 시대적 배경

  영화가 시작되면.
  윌리엄 힉스 대령을 비롯한 영국군 장교들이 말 등에 올라탄 채 피로와 더위에 찌든 아랍인 보병과 낙타 군단을 향해 명령을 내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1883년 11월 나일강에서 2천 마일 정도 떨어진 카이로 남쪽의 오베이드라는 코르도판 주의 주도(州都) 부근에서 윌리엄 힉스 대령이 이끄는 영국군(아랍인들이 주종을 이루는) 8천여 명은 1881년 9월 이집트의 불안한 정정을 틈타 수단에서 발생한 회교혁명을 빌미로 수에즈 운하의 보호 및 총독으로서의 권리라는 이유로 수단의 회교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이곳까지 진군해 왔다.

  그러나 현대적인 무기로 무장한 영국군은 이곳에서 회교혁명의 주동자 마디(무하마드 아마드, Mahdi)를 추종하는 8만여 반란군들에게 몰살당하고 만다. 영국군을 섬멸한 수단의 회교혁명군은 이곳에서 대포 5문을 비롯하여 레밍턴 연발식 소총 10만정을 노획하고 무장을 강화했다. 당시 영국 수상은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민주주의를 빛낸 수상. 글래드스톤이었다. 그는 아편전쟁을 반대했던 인물로 널리 알려졌던 것처럼 당시에도 수단인들을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민족"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기껏해야 창칼과 돌로 무장한 오합지졸들에게 어떻게 현대적인 무장을 한 현대식 군대가 섬멸당할 수 있는지 설명해 보게. 그것도 대영제국의 장교가 지휘하는 군대를 말일세."라고 말하는 것으로 나온다. 글래드스톤 영국 수상이 수단인들을 어떻게 평가했던지 간에 이 문제는 영국 국내에서는 팍스 브리타니카를 위협하는 중대한 사건으로 취급되었고, 글래드스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단인들의 회교혁명은 어쨌든 진압되어야 했다.

  1884년 이집트가 지배하고 있는(그런 이집트는 사실상 영국이 지배하고) 수단의 행정수도 하르툼은 마디가 이끄는 병사들에 의해 위협받고 있었고, 영국 정부는 위기에 빠진 하르툼에서 유럽인들과 이집트인들을 철수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이곳에 파견되었다. 그러나 하르툼에서 유럽인들과 이집트인들을 철수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도착한 고든 총독은 본국의 명령을 따를 의사가 전혀 없었다. 그는 이런 명령을 따르는 대신 이곳 수단에 영국의 영향력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하르툼을 지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두고 있었던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인, 콜로니얼(colonial) 타입의 인간 - 고든

  고든은 스코틀랜드 하이랜더(고지부족) 가계에 속하는 군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울리치의 군사학교에 입학한 고든은 졸업 후 근위공병연대에 임관된다. 그가 경험한 첫 번째 전쟁은 크림전쟁(빅토리아 시대의 또 다른 중요 인물 중 하나인 나이팅게일이 활약한)이었는데, 이 때 그는 부상을 당하고도 개의치 않으며 발라크라바 전투에 임하는 용기를 보임으로써 주변의 인정을 받게 된다. 크림 전쟁 후에는 코카서스와 베사라비아 등지에서 러시아와 터키간의 새로운 국경선을 결정하는 작업에 특별히 발탁되는 데 이런 그의 경력은 앞으로 그가 정규군 장교로서의 역할보다는 비유럽 지역에 파견되어 외국 정부와 군사적 교섭에 종사함으로써 영국의 국익을 지키는 역할을 맡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의 강성은 스페인의 몰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런 승리를 이끌었던 인물들 중 상당수는 프랜시스 드레이크를 비롯해 훗날 콜로니얼 타입이라고 불리는 거칠고, 다소 경박해 보이기는 하지만 활발한 별종들이었다. 그러나 고든은 제국관료로서 콜로니얼 타입들이 주로 종사하는 일을 하면서도 전형적인 콜로니얼 타입의 인간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젊었을 때 기독교 근본주의 복음 신앙에 입문하면서 평생을 구도자와 다름없는 청빈한 생활을 했다. 그의 이런 삶의 방식은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인 속물형 인간 타입과는 정반대인 크롬웰 시대의 청교도적인 면모였다.

  그는 생애를 마치는 그 순간까지 매일 아침 기도를 했고,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도록 했다. 그는 행군 중에도 매일 1시간 동안은 반드시 기도를 했는데 그의 텐트 밖에 손수건이 걸려 있는 동안에는 설령 생사가 걸린 보고라 할지라도 뒤로 미루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의 이런 행동들은 영화에서는 특별히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가 마디와의 사이에서 두 차례의 만남을 갖는 동안 이 두사람의 그런 광신성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두 사람은 기독교 문명 vs 이슬람 문명, 제국인 vs 식민지인, 문명 vs 야만의 구도로 서로 갈등을 빚어내고 있다.

차이니스 고든의 전설 - 애로호 사건과 태평천국의 난

  이 무렵 영국은 아편전쟁으로 쇄국 정책을 포기해야 했던 중국의 문호와 시장을 좀더 개방하고자 했다. 그 와중에 발생한 영국의 구미에 맞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애로호 사건이었다. 중국인 소유의 상선이었던 애로호의 물건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게양되어 있던 영국의 국기 유니언 잭이 강제로 끌어내려진 사건인 애로호 사건은 영국인들에겐 중국이 그들의 존재를 아직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뜻이자 동시에 문화적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고집센 중국을 강제로 무릎 꿇리게 할 호재로 보였다. 고든은 당시 대위의 신분으로 극동 출정 길에 올랐다. 그는 북경에 도착하자마자 엘긴 휘하의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서태후가 축조한 원명원(圓明園)을 약탈하고 파괴하는 데 참여했다.

  평생 동안 '제국주의(imperialism)'란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찰스 조지 고든 대위에게 이런 행위는 문명이 야만에게 행하는 응징 및 구제의 행위였다. 어쨌든 원명원 약탈 사건 이후에도 고든은 4년간 중국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이때 고든의 명성을 본국인 영국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할 큰 사건이 벌어진다. 그것이 바로 '태평천국의 난(?)'이었다. 무능한 청조가 지배하던 중국은 아시아의 지도적 국가의 위치에서 한낱 종이호랑이만도 못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무능한 만주족의 지배계급과 외세의 수탈에 견디다 못한 중국의 농민들이 홍수전을 중심으로 조직화하여 일으킨 반청 반외세의 혁명운동이 바로 '태평천국의 난' 혹은 '태평천국 운동'이었다.

  이 운동을 주도한 홍수전은 '그리스도의 아우'를 자칭하며 계급과 수탈없는 사회를부르짖었다. 그러나 이런 그의 급진적인 주장은 당시 중국에서 새롭게 획득한 이권을 보장받고 싶었던 외세 열강과 중국의 전통적인 지배계급이었던 향신(鄕紳) 계급이 등을 돌리게 된다. 태평천국의 지도부 역시 그들을 지지하는 주요 계급인 농민들의 절대적 요구인 토지개혁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등 내분에 휩싸여 결국 14년간 지속되다 진압당하고 만다.

  이 와중에 열강들은 증국번, 이홍장 등이 주도한 향신 계층의 반혁명 의용군을 지원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자 직접적인 군사행동에 나서는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상승군(常勝軍)'이었다. 미국인 프레드릭 워드가 지휘를 맡았던 상승군은 그들의 이름답게 태평천국군을 진압하는데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중도에 워드가 죽자, 상승군을 지휘하는 임무가 우연하게도 고든 대위에게 맡겨졌다. 이렇게 하여 불과 29세의 나이로 찰스 조지 고든 영국군 대위는 청조로부터 '대장군'이란 칭호를 받고 일약 세계사의 무대 한 복판에 서게 된 것이다. 그의 뛰어난 군사적 지도력 덕이었는지, 태평천국의 내분 탓이었던지 그도 아니면 상승군의 신식 무기 덕이었는지는 몰라도 고든이 지휘하는 상승군은 여러 곳에서 놀라운 전과를 거두며 예상을 뛰어넘는 승리를 거두었고 결국 태평천국의 난은 진압되고 만다.

  상승군을 지휘하던 중 그의 휘하에 있던 중국인 부대가 반란을 일으킬 것 같은 불온한 조짐을 보였다. 그는 이 때 홀홀단신으로 수만의 병사들 앞에 나서서 그들을 굴복시켰다. 이 때 그의 경험은 훗날 수단의 하르툼에 이르기까지 그의 중요한 경력이자 경험이 된다. 어쩌면 그는 이때 유럽 문명의 우월함과 자신의 카리스마에 대한 과신을 얻었는지 모른다. 승리를 거둔 뒤 청조는 그에게 과등(戈登)이라는 이름을 주었고, 그는 상승군을 지휘하던 무렵의 문서들을 모아 '과등문서'라 이름 붙였고, 이때의 자료들은 현재까지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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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조지 고든(Charles George Gordon) 총독의 초상화

 

하르툼의 키치너 의과 대학(Kitchener School of Medicine)의 모습, 1924.

 

 

 

찰스 조지 고든(Charles George Gordon) 총독 - 열렬한 기독교도이자 유럽 문명, 대영제국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바칠 용의가 있었던 고든의 죽음은 당대의 영국 국민들에게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 그 결과 영국의 제국주의는 더한층 강화되었고, 결국 영국은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참고사이트 & 참고 도서

『대영제국 쇠망사』/ 나카니시 테루마사 지음/ 서재봉 옮김/ 까치/ 2000년 -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매우 기쁜 마음으로 단숨에 읽어 버린 책이다. 몇몇 대목에서 일본인 저자의 일본적인 시각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대영제국의 역사를 흥성과 쇠망이란 관점에서 예리하게 관찰하고 있는 좋은 책이다. 특별히 일본적인 관점이라고 여겨지는 대목은 처칠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적으로 돌려 국력을 소진한 것이 대영제국 쇠망의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하고 있는 대목에서이다. 일본인 학자들이 국제 역학 관계를 냉철하고 철저히 power라는 측면에서 분석하는 대목은 나에겐 늘 경이로운 부분이긴 하지만 거기에 최소한의 도덕률도 적용시키지 않는다는 대목은 늘 안타까운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로 본 새로운 역사』- 상권 / 마크 C. 칸즈 외 지음/ 손세호, 김지혜 옮김/ 조합공동체 소나무/1998년
  - 모든 예술은 당연한 말이지만 '시대의 자식'이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 책은 영화가 다루고 있는 역사를 말한다. 단순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들을 검증함으로써 영화적 재미를 위해 희생된 역사적 진실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있다.

 


팍스 브리타니카, 제국주의의 정점에 서서

  태평천국의 난을 통해 왕조의 멸망을 경험할 뻔한 청조는 승리를 거둔 고든에게 막대한 포상을 내렸지만 고든은 이를 모두 거부하고 다만 그의 공적을 기록한 순금 메달 하나만을 챙겨서 본국인 영국으로 돌아갔다. 고든은 그가 군인으로 재직하던 당시에도 받은 월급의 거의 전부를 빈민 구제를 위해 썼고, 나중에는 이 메달까지 기증해 버렸다. 그가 수단의 하르툼으로 떠날 때도 그는 거의 빈털털이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신 그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1884년 1월 런던 차링크로스역 플랫폼에서 수단의 임지로 떠나는 그를 배웅하는 이들은 고든이 수단에서의 철수를 거부하고 그곳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다 죽으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은 오로지 한 사람, 고든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시기의 영국의 위상은 가히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위엄 그 자체였다. 1851년 런던 만국 박람회는 이런 영국의 위상을 세계 만방에 떨치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 문명은 바야흐로 '무한의 진보'와 '번영'을 약속받고 있었고, 영국은 1850년부터 1870년에 이르기 까지 20년 동안 세배의 대외 무역 신장을 기록하고 있었다. 바로 그런 시기에 세상의 가장 오지라고 여겼던 수단의 사막 도시 한 가운데에서 이들에게 저항하는 반란의 봉화가 오른 것이다. 고든은 수단에서의 철수는 결국 이집트에서의 철수를 의미하며 이는 제국의 중요한 교통로인 수에즈 운하의 유지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수에즈 운하의 유지가 어렵다는 뜻은 결국 인도와 아시아 지역에서의 패권을 잃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고든은 스스로를 위험에 방치함으로써 수단 철수를 계획했던 영국의 글래드스톤 내각을 압박하고, 영국의 영웅인 그를 구원하라는 국민들의 여론에 굴복하도록 했다. "고든을 구원하라"는 목소리는 더욱 커져서 나중엔 "이집트를 포기하지 마라! - 수에즈를 우리 손 안에"로 이어졌고, 뒤이어 "아일랜드는 영원히 영국의 것"이란 이성을 잃은 제국주의, 국수주의적인 맹목적 애국심과 합류했다. 글래드스톤은 이런 목소리에 저항했지만 결국 고든 총독을 구원하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파병한다. 그러나 고든 총독은 하르툼에서 반란군에게 목숨을 잃고, 글래드스톤은 정권을 잃고 만다. 고든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영국의 조야는 깊은 슬픔에 젖었고, 테니슨 같은 시인은 "너무 늦었다! 너무 늦었다"라며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시를 읊었다.

숙적, 무하마드 아마드(Muhammad Ahmad) - 알 마디

  19세기초 수단은 명목상 이집트의 통치 아래 있었다. 이집트의 통치자들은 수단을 포함한 나일 강 유역 전체를 1개의 주(州)로 통합하여 지배하려 했다. 이집트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1821년부터 수단에 대해 지속적인 군사원정을 감행했고, 결국 1874년엔 수단의 전지역을 정복했다. 당시 이집트는 짧은 시간 안에 근대화를 이룩하기 위해 유럽의 은행으로부터 막대한 차관을 빌렸고, 다시 이런 차관을 갚기 위해 이집트와 수단의 민중들에게 막개한 세금을 부과했다. 동시에 이집트의 총독 이스마일 파샤(1863∼79 재위)는 수단 서부와 남서부 지역의 노예무역을 장악함으로써 차관 상환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이집트의 가혹한 수탈과 파샤들의 부패는 북부 아랍 지역의 노예무역을 전담하고 있던 이 지역 본래의 지배계급과 마찰을 빚었다. 그들은 이집트인들에게 빼앗긴 노예무역의 주도권을 되찾길 바랬고, 그 와중에 무하마드 아마드(알 마디)가 등장하게 되었다. 독립을 향한 열망과 이집트의 압제, 영국 자본의 침투로 인한 수단의 경제 붕괴는 수단 민중들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기독교 문명의 침투 역시 그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이때 무하마드 아마드(로렌스 올리비에)는 이집트와 영국 연합군을 수단에서 몰아내기 위한 성전(聖戰, 지하드)을 촉구했다. 그의지지자가 점점 늘어나자 이집트 정부는 1881년 11월 나일강의 한 섬에 피신해 있던 그를 체포하기 위해 보병 1개 중대를 보내지만 그들은 오히려 아마드의 지지자들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이 사건은 이집트 정부는 물론 그 후견인 역을 하던 대영제국을 경악케 만들었다. 결국 아마드는 스스로 구세주(마디)라고 자칭하며 터키인·이집트인·유럽인의 추방을 호소하고, 스스로 성전(聖戰:지하드)을 일으켰다. 그는 지지자들을 규합하여 1883년 이집트군을 격파하였고, 1885년에는 하르툼에서 수단 총독 고든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저주처럼 알 마디 역시 고든과 같은 해 죽었다. 어떤 이들은 고든의 저주로 죽은 것이라 하지만 하르툼 시내의 방치된 시체들이 썩어가며 전염병인 발진티푸스가 창궐하여 그 병에 감염되어 죽은 것으로 추측된다. 반란군의 10/1이 발진티푸스로 죽었다. 알 마디는 이슬람 정통 교리를 따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이슬람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시아파의 빈부평등론 등을 도입하여 성자숭배(聖者崇拜)·주술(呪術)·술·담배·음악을 금하였다.

  알 마디와 그의 지지자들이 하르툼을 함락하고 고든을 죽인지 이틀 후 드디어 영국의 대규모 구원군이 도착했지만 하르툼은 이미 함락된 뒤였다. 1898년 호레이쇼 키치너가 이끄는 영국군은 수단 중동부의 옴두르만(Omdurman) 평야에서 알 마디의 후계자인 칼리파 압둘라의 군대를 맥심 기관총을 동원해 전멸시키는 데 성공한다. 하르툼 함락과 고든의 죽음 뒤 13년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영화 <하르툼>이 말해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이 영화의 제작자 줄리안 블로스타인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무기 하나와 의상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신뢰성과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심지어 알 마디의 손자에게 이 영화의 대본을 보내 검토하도록 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 이 영화는 역사적 고증이 상당히 잘된 편에 속한다. 그러나 고증이 잘 되었다고 해서 이 영화가 팍스 브리타니카의 통치 정책이나 알 마디가 이끄는 수단 민중들의 고통과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 가서는 영국이 결국 이집트를 그들의 수중에 장악하였고, 1956년 독립한 이집트의 낫세르 대통령이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다시 이곳을 장악하기 위해 군대를 파병하여 전쟁을 벌였던 사실에 대해서도 알려주지 않는다.

  또한 고든의 죽음이 유럽 문명의 수호자, 순교자로서의 죽음으로 추앙받았고, 그 결과 영국의 제국주의 정책이 더한층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음도 말해주지 않는다. 키치너 경이 이끄는 영국군의 수단 점령이 사실은 동진을 획책하는 프랑스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도 말해주지 않는다. 옴두르만 평야에서의 승리 이후 영국은 그 여세를 몰아 파쇼다에서 프랑스군을 저지하는데 성공한다. 그 결과 영국은 다시 한 번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패권을 전세계에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영국은 곧이어 남부아프리카에서 보어인들의 격렬한 저항에 휘말려 들었고, 명분도 없는 비도덕적인 전쟁에 군대를 파병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갈리폴리 반도의 터키군이 대영 제국 해군 함대의 위용만으로도 제압당할 것이라 생각하여 무리한 작전을 수행하다 격퇴당한다.

  팍스 브리타니카의 깃발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미 서서히 하강하고 있었지만, 그 종막을 알린 것은 역시 1956년 수에즈에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패권국가의 등장,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56년 드디어 독립국이 된 수단은 몇 번의 짧은 의회 민주주의 기간을 거쳐 긴 군사 정권의 통치를 겪었다. 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기간에는 남부(기독교)와 북부(이슬람교) 지역이 내전을 치뤘고, 내전에 벗어난 뒤에는 기근에 시달렸다. 그리고 기근 뒤에는 미국이 수단에 생화학무기 제조 공장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오늘날 영국이나 수단에서 찰스 조지 고든을 영웅이나 순교자로 기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으며 그를 기억하는 이조차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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