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대지
문효섭 지음 / 길찾기 / 2004년 11월
생일 선물로 받은 책 가운데 하나가 문효섭의 "강철의 대지-Another World War 2 Part 1"이다. 친구 녀석이 관련 직종에서 일하다 보니 종종 이렇듯 특이한 컨셉의 책들을 가져다 주곤 하는데 이 책의 경우에도 역시 그런 케이스에 속한다. 사실 내가 알고 있기로 국내에서 "문효섭" 같은 작업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는 드물다. 언더그라운드 쪽에는 상당수 존재하지만 실제 출판 시장 안에서는 존재를 확인하기 어려울 만큼 드물다.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나름대로 상당한 팬을 확보한 이는 "권신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작업을 열심히 했어도 출판해줄 출판사가 없고, 출판사가 없다보니 대중에게 알려질 기회를 얻기가 어렵다. 출판 혹은 잡지의 영역에서 일러스트 작가들의 필요성은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실제 작업에 들어가기 위해서 거쳐야 할 여러 문제들, 가령, 단가 문제나 컨셉, 스타일 등의 문제로 인해 적당한 일러스트레이터를 찾기가 어렵다. 게다가 일러스트가 아동문학 출판을 중심으로 형성되다보니 광고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감히 고비용의 일러스트 작업을 이용하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문효섭의 등장은 상당히 참신하다. 그것도 내러티브 구조를 갖추고 있는 작품짐을 통해 등장한 작가란 점에서 말이다. "강철의 대지"는 부제가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이란 실제 전쟁의 역사에서 일어난 일들을 만화적 설정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들이다. 그렇다고 조류, 파충류 등 온갖 종류의 짐승들이 캐릭터화되어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주로 개과 짐승들이 주인공들이다.
첫 작품인 제1화 "Last Dreaming"은 강철의 대지란 제목에 어울리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실제로 사용되었던 연합군과 독일군, 소련군의 전차들이 경주를 벌이는 설정이다. 각국을 대표하는 전차들, 예를 들어 독일군의 타이거 전차, 소련군의 T-34전차 등이 로드 레이스를 펼치는데, 우승이 어렵게된 독일군 전차병들은 우승 상금을 털어 조국의 재건을 위해 달아난다. 제2화 "Escape"는 사막의 여우 롬멜과 영국군 사이에 벌어지는 북아프리카 전선의 토브룩 쟁탈전을 배경으로 한다. 극화체 그림을 하고 있으나 동물이 주인공인 캐릭터 설정에서도 알 수 있듯 피가 튀고, 살점이 흩어지는 장면 보다는 유쾌하게 각각의 메카닉 설정을 즐겨가며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만화적 설정인 탓에 일본식 아니메들에서 엿볼 수 있는 정교한 메카닉 디자인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설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작품집은 몇 가지 아쉬움을 남긴다. 우선,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어중간함에 있다. 밀리터리 매니아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선 좀더 정교하고, 성인층을 겨냥한 스토리 텔링을 지향해야하는데, 문효섭 자신의 취향이 작용한 탓이 크겠지만, 남성 독자들을 만족시키기엔 다소 싱겁다. 그렇다고 여성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만큼 귀여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느냐 하면 그렇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남성적이다. 로더(loader)와 같은 메카닉의 경우에도 "문효섭"만의 독특함이 보인다기 보다는 일본 아니메들을 통해 이미 익숙해진 개념 이상으로 진화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문효섭의 메카닉들은 전차와 기타 군용기의 표현 등에서 알 수 있듯 살상무기의 느낌 보다는 동글동글 완구 캐릭터의 느낌을 주면서도 기계의 표현이란 면에서 충분히 재미를 줄 만큼 졍교한 표현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다루는 솜씨에서 스토리 구조는 산만하고, 낯익다. 예를 들어 제1화의 경우엔 할리우드전쟁 영화 가운데 이미 여러 차례 변주되며 등장한 바 있고(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도 있고, 걸프전을 배경으로 했던 "쓰리 킹즈(Three Kings)" 등에서), 제8화 "마지막 공격"은 영화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Wild Wild West)"와 닮아 있다.
문효섭의 등장은 매우 반가운 일이나 좀더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좀더 기발하고 발칙한 상상력을 제시하거나 리얼리티를 살리는 방향 둘 중 어느 하나를 택하는 전략의 구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두 권째 권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다음 책을 기대해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