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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14-05-12 15:20:41, Hit : 2812, Vote :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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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오 - 철학에세이(동녘)

철학 에세이- 개정4판
l 동녘선서 1
조성오 (지은이) | 이우일 (그림) | 동녘 | 2005-06-30 | 초판출간 1983년

과거 동녘에서 나온 책 중에 "철학에세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습니다만, 과거처럼 많은 이들이 읽고 있진 않지요. 하지만 1983년 이 책의 초판이 나온 직후에는 상당한 베스트셀러였고, 제가 알기론 그 시절, 동녘을 먹여살린 책 중에 J. M. 데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다음쯤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동녘이 펴낸 "철학에세이" 초판에서 저자는 '편집부 지음'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 나온 개정2판(1993)부터 이 책의 저자가 당시 변호사 '조성오' 선생이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히지요.

왜 그랬을까요?

지금이야 고등학생 논술교재로도 쓰인다지만, 과거엔 대학생들의 변증법 입문서(의식화 도서) 구실을 하던 책이었습니다.

1978년 6월 26일 광화문에서 유신 치하 최초의 '예고시위'가 있었습니다. 정권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긴급조치 9호 시대' 대학 캠퍼스에는 학생 반, 기관원 반의 시대였으며 요시찰 학생들은 맨투맨으로 감시,사찰당하고 가택수색이 영장 없이도 마음대로 일어나던 시절이었습니다. 믿었던 후배가 알고보니 기관의 쁘락치이던 시절이었지요.

어쨌든 이 시위가 있을 당시만 하더라도 서울대 법대의 별명이 이른바 '유신 법대'였다고 합니다.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뒤 문리대가 해체되고 단과대별로 쪼개지면서 문제학생들과 섞일 일이 줄어든 탓도 컸으리라 합니다. 그런 저런 이유로 워낙 학생운동의 맥이 연결되어 있지 못하던 상황이라 서울대 법대를 주변에서 '유신 법대'라고 비아냥댔던 것이죠.

당시 법학과 77학번이었던 조성오 학생은 학생운동권과는 무관한 학생이었다고 합니다(솔직히 믿을 수가 없어요. 당시 그의 형 조성두(74학번)는 75년 흥사단아카데미 사건으로 구속 상태였는데). 어쨌든 그런 연유가 있었기 때문에 당시 시위현장에 단순가담하기 위해 나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1975년 10월 흥사단아카데미 사건으로 구속된 조성두(현 한국조폐공사 감사, 서울공대 항공학과 74학번)의 동생 조성오(현 법무법인 이산 변호사). 법학과 77학번인 그는 형과 달리 모범적인 법학도였다고 합니다. 대전고 출신인 그는 고교 시절 서울 선배들로부터 '데모 무용담'을 듣고 막연하게 학생운동을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서울법대 입학 후에는 '유신 법대'(운동권이 워낙 약해 당시 그렇게 불렸다)의 분위기에 휩쓸려 운동권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조성오는 6월 26일 광화문에 나갔다가 시위가 시작되자마자 5분 만에 강제연행되고 맙니다. 당시 광화문 시위로 연행된 학생은 대략 70명 가량이었는데, 이 가운데 19명이 구속되고, 22명이 구류처분을 받았습니다.

조성오의 말을 들어보면....

"순진한 학생이 다 구속됐다. 학회 친구들은 조사받을 준비가 돼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시위 정보를) 듣고 나왔다'고 곧이곧대로 진술했지만 그들은 '책 사러' 또는 '데이트하러'라고 둘러댔다. 구속 기준이 시위를 할 의사를 갖고 있었느냐는 것이었는데, 시위 정보를 알고 나왔다든가 노래를 따라 불렀다고 정직하게 말한 친구들이 나처럼 '구속'으로 분류됐다."

다시 말해 당시 조금이라도 운동에 몸을 담았던 이들은 연행되거나 체포되었을 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다들 훈련을 받은 상태였던 터라 그렇게 둘러대고 나올 수 있었는데, 조성오 변호사는 솔직하게 다 말했기 때문에 구속되고, 학교에서도 제적당했단 말이지요.

이후 조성오 변호사는 6개월 정도 내무부 대학(감옥살이)에 다녀오게 되었고, 1980년 '서울의 봄' 무렵 유화국면에 복학하지만, 1980년 5.17 확대비상계엄 사태 후 전에 구속되었었다는 이유만으로 별 이유도 없이 다시 구속되었다가 제적됩니다. 당시 신군부가 대학별로 구속-제적자 할당제를 실시한 까닭이었습니다.

아무 잘못도, 한 일도 없이 또다시 구속당하게 되자 그는 이제부터 정말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됩니다. 그는 1983년부터 인천으로 들어와 10년간 노동운동을 하다가 1993년에야 복학해 미뤄두었던 학업을 마치게 됩니다. 애초 법대에 입학할 때부터 사법시험을 통해 법관이 되고자 했던 사람이 광화문 한 번 나간 덕분으로 무려 15년 동안 그 꿈을 유보시킨 채 살아야 했던 것이지요.

"철학 에세이"는 그렇게 해서 태어나게 된 책이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제적당한 뒤 '낙골야학'이란 곳에서 교사로 활동하면서 그곳 교사들 대여섯명과 함께 철학 강독 공부를 합니다. 그걸 정리해서 책으로 내보아야겠다고 해서 쓴 것이 바로 이 책이지요.

"야학교사 생활을 하다보니 어려운 철학 개념도 실감나는 얘기로 풀어 말하는 경험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러니까 <철학 에세이>는 야학공동체 속에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죠."

(내버려두었더라면 착실하게 공부해서 법관이 되었을 사람도 운동권으로 만드는 세상을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박원순' 변호사도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