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 이성형 지음/ 까치/ 2003년
이 책의 저자 이성형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라틴 아메리카 전문가이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여서 영어 발음을 보다 그럴 듯 하게 만들기 위해 어린 아이들의 혀 밑을 절단하는 열성을 보이면서, 정작 그 나라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찾으려면 어려움을 겪는 나라다. 해마다 7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화를 해외 서비스를 구매하기 위해 지불하면서 - 이때의 서비스는 주로 교육 서비스를 의미한다 - 도 그 나라에 대한 학위를 가진 사람은 드문 나라다. 우리들 자신도 외화벌이를 위해 외국에 나가 갖은 고생을 경험했으면서도 국내의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차별을 행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서구 보다 더욱 서구적인 마음을 지닌 황인종의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 책은 잘 알려진대로 이성형 선생이 <한겨레>에 연재하던 칼럼들을 엮은 것이다. 책으로 엮는 과정에서 보다 가필이 이루어졌고, 훨씬 정교한 짜임새를 갖게 되었다.
이 책은 서구의 라틴아메리카 침략사이면서 동시에 서구의 심장을 지닌 우리들을 비춰보는 거울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의 타자들, 아시아인, 흑인, 그리고 우리 자신을 타자화하는 시선을 지니게 되었다. 그 원인은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대로 서구가 발명한 훌륭한 시각 교정자들, 바로 역사학자들이다. 역사학자들은 동양이 서양의 역사 형성 과정에 끼친 지대한 공로들을 역사에서 삭제해버리거나 애써 축소한다. 세계사는 서구의 역사학자들에 의해 새롭게 쓰여진다. 그 과정에서 르네상스의 도서관 구실을 한 이슬람을 삭제하고, 정화의 남해 원정을 축소시킨다.
우리는 동양의 얼굴로 태어나지만 서양 사람으로 자라난다. 늘 백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 오락을 즐긴다. 서양의 정의를 우리들 자신의 것으로 보고 익힌다. 그런데 이 책은 그 관계를 역전시킨다. 우리 앞에 가려진 서구 중심의 왜곡된 필터를 거두고, 굴곡진 렌즈를 교정해주고, 역사의 장막을 거둔다.
이 책은 조셉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와 같은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듯 많은 동양의 미덕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어째서 그렇게 오랫동안 서구 중심의 역사관을 지니게 되었는지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을 답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들의 몫일지도 모르겠다. 라틴 아메리카인의 지혜 - 옥수수를 생석회물에 담가 니아신 결핍을 보충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 에도 불구하고, 결국 서구인들에게 지배당하게 된 원인, 그들을 끝끝내 떨쳐 버리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물론 오늘의 관점에서 리오리엔트를 말하는 것은 우리들의 시각 교정을 위해 매우 바람직하고 훌륭하다. 그럼에도 결국 남는 아쉬움은 인디언들이 침략해 들어오는 백인들에게 맞서 싸우기 위해 결국 백인들의 무기인 윈체스터 소총을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과 같다. 과거 역사 속에서 뒤틀렸던 자부심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까지도 세계는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과연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경제적 남과 북의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가 함께 공존번영해 나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물론 이성형 선생이 그에 대해 답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갈증은 남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