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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사라진 동물들/한상훈 옮김, Mike Jepson 삽화, NHK위성방송 '생명의묵시록' 제작팀/도요새/2002년 11월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우리가 지구상에서 존재하는 사회성 종의 목록을 작성한다고 할 때 마치 다른 혹성으로부터 온 동물학자처럼 박물학적 관점에서 인간을 보기로 하자. 거시적 관점에서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은 각각 생물학의 한 분야로 볼 수 있고, 역사, 전기, 그리고 픽션은 인간사회학에 대한 조사서가 되며, 또 인류학과 사회학은 단 한 종의 영장류에 관한 사회학이 된다"고 말합니다. 때로 윌슨이 주장하는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은 다른 학자들로부터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모든 것을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려 드는 인간의 독선에 대한 가장 탁월한 독설 중 하나로 기억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단순한 독후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여러 각기 다른 책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비중은 "지구에서 사라진 동물들"(도요새, 2002)이란 책에 두겠지만, 윌슨의 독설을 잘 해석해준 만화 책 한 권과 이와 관련된 다른 책들도 같이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책 "기생수"(학산문화사. 2003)입니다. 히토시의 만화 "기생수"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날 하늘에서 유성 무리가 지구상으로 떨어집니다. 유성과 함께 일본 거리에 쏟아져내린 것은 '기생수'라는 패러사이트들입니다. 이들은 인간의 체내로 들어가 대뇌를 파먹고 대신 인간 행세를 하며 살아갑니다. 여기까지는 다른 SF호러물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인간을 식용으로 이용한다는 겁니다. 평범한 학생인 신이치의 오른손으로 들어와 신이치의 뇌를 향해 달려가던 기생수는 갑자기 깨어난 신이치가 길목을 막아서자 뇌를 장악하지 못하고 결국 오른손에 기생하며 묘한 공존관계를 이룹니다.
신이치의 오른손을 장악한 기생수는 위에서 윌슨이 말한 외계의 동물학자처럼 인간에 대해 박물학적 관점에서 인간들이 만들어 논 온갖 지식들을 흡수하기 시작합니다. 오른손이는 다소 제멋대로이기는 하지만 신이치와 공생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대뇌를 장악한 다른 기생수들은 도처에서 비밀리에 인간을 사냥하고 잡아 먹습니다. 이 장면들은 가히 하드 코어 무비에 버금갈 만큼 폭력적이고 잔혹합니다. 갑자기 입이 열십자로 쩌억 갈라져 인간의 머리를 한 입에 삼겨버린다든지 칼날같이 날카로운 촉수는 인간의 몸을 사정없이 절단해버립니다. 그런 장면들이 끔찍하기는 하지만 기생수들은 사회의 소수자들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점차 이 사실을 깨닫고 비밀리에 그들을 연구하여 하나둘씩 그들을 박멸해 나갑니다. 인간이 지구상 최고의 포식자로 등극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협업 구조와 더불어 잔혹함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요? 기생수들도 무시무시하지만 이들에 대처하는 인간의 생명력 역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인간과 기생수들은 묘한 공존을 이룩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겉으로 보아 인간과 거의 다를 바 없는 기생수들을 통해 인간이 식육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X-파일의 결말처럼 실종된 인간들은 외계인의 식료품이 되기 위해 사라진 것일지도 모르고, 지구란 별 자체가 외계인들의 농장으로 개발되었을지도 모르고, 우리 보다 더욱 거대한 외계 생명체가 영화 "M.I.B"처럼 은하계를 가지고 구슬치기를 할지도 모릅니다. 다시 에드워드 윌슨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지요. 에드워드 윌슨은 "생명의 다양성"(까치, 1995)에서 30억 년에 이르는 생명의 역사에서 여섯 번째로 닥쳐온 대멸종기의 시작을 경고합니다. 그러나 앞선 다섯 번의 대멸종에서는 물론 수천만년이 걸리기는 했어도 다양성의 수준이 원래대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에 의한 여섯 번째 대멸종에 대해서 그는 "아마도 자연은 그렇게 회복될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의미하는 동시대의 어떤 시기 내에서는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침묵의 봄"(에코리브르, 2002)에서처럼 어느 날 우리는 온갖 생명의 소리가 사라진 고요한 침묵의 봄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멸종의 방아쇠는 이미 바짝 당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말하려는 "지구에서 사라진 동물들"은 엄밀히 말해 신간은 아닙니다. 이미 2000년에 한 차례 출판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책에 비해 다소 가격이 높아지기는 했으나 판형이나 컬러 도판 등을 보강했으므로 전혀 다른 책이라고는 할 수 없으되 높아진 가격만큼의 값을 하는 책입니다. 아니, 돈과 상관없이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 삶의 자세를 되돌이켜 보아야 할 겁니다. 이 책은 우리 인류가 산업혁명, 기술혁명을 일으킨 20세기에 사라진 동물 91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다고 여길 수도 있고, 적다고 여길 수도 있으나 여기에 수록된 것들은 그나마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고, 이야기라도 할 수 있는 대상들이지 이것이 전부는 결코 아닙니다.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생명종들이 그간 인간에 의해 지구상에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종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멸종동물들에 대한 백과사전이다. 그렇다고 중국 "산해경"(민음사. 1996)에 등장하는 상상 속의 동물 이야기이거나 보르헤스의 "상상동물이야기"(까치, 1994)처럼 인간이 머릿속으로 상상해보았던 그런 동물들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이 책에 담긴 생명체들은 바로 얼마전까지 지구상에서 인류와 함께 살아갔던 실제 동물들입니다. 이 책에는 바바리 사자, 캄차카 자이언트 불곰 같이 덩치 큰 짐승들로부터 극락잉꼬, 초승달 발톱꼬리 왈라비, 불혹주머니 찌르레기 처럼 작은 생명들까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가 "시튼 동물기"로 잘 알고 있는 커럼포(Currumpoe)의 늑대왕 로보와 같은 종인 네브라스카 늑대들의 멸종 이야기도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다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멸종해간 짐승들은 때로 인간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이유로, 인간에게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사냥당했고, 때로는 단순히 모자에 깃털 꽂는 것이 유행했기 때문에 무자비하게 사냥당하고 사라졌습니다. 이 책은 일본 NHK위성방송이 지난 1995년부터 1년간 방송한 자연 다큐멘터리를 다시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이때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20세기 생물의 묵시록"이었습니다. 프랑수아 플라스의 동화 "마지막 거인"(디자인하우스. 2002)에 대한 독후감도 쓴 적 있는데 거기에 적힌 최재천(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의 추천 글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힙니다.
"자연에게 길은 곧 죽음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저 검푸른 열대 곳곳에 휑하니 길을 뚫고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저 깊은 숲 속에서 수백 년 동안 행복하게 잘 살던 거대한 나무들이 실려 나옵니다. 나무들이 사라진 벌거벗은 대지에는 더 이상 동물들이 살지 못합니다. 길은 우리 인간이 자연의 가슴에 내리꽂는 비수입니다."
저는 근본주의적 환경주의자, 극단적인 생태론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문명, 기술적 진보란 것이 과연 우리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는지 우리가 후손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연과 자원, 추억마저 미리 가불해서 소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20세기가 막 시작되던 지난 1900년의 세계 인구는 대략 16억 3천만 명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 인류는 60억 명이 되었습니다. 과연 문명의 발달은 현생 인류에게 지구상에 살았던 그 어떤 생명체보다 월등한 힘과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엄청난 부와 편리를 우리는 모두와 공평하게 누리고 있는 걸까요? 환경학자 도넬라 메도스(Donella Medows)는 "세계가 만일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국일미디어, 2002)에서 "마을에 사는 사람들 100명 중 20명은 영양실조이고, 1명은 굶어죽기 직전이고 그러나 15명은 비만입니다. 이 마을의 모든 부 중 6명이 59%를 가졌고, 그들은 모두 미국 사람입니다. 74명이 39%를, 20명이 겨우 2%만 나눠가졌습니다. 이 마을의 모든 에너지 중 20명이 80%를 사용하고 있고, 80명이 20%를 나누어 쓰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후손들의 자원까지 끌어당겨 쓰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골고루 나눠주는 법을 모릅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자연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지만 자연을 혹사시키고,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일 하나는 우리가 살 수 있는 별은 전우주에서 지구 하나뿐이지만,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가 오직 인간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작은 별의 다양한 생명체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친구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빼앗아선 안 됩니다.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으로 우리들 스스로가 변화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이상 지구별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아니, 아무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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