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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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1998)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각본/ 로버트 로댓(Robert Rodat), 출연/ 주연 : 톰 행크스(Tom Hanks), 맷 데이먼(Matt Damon), 톰 시즈모어(Tom Sizemore) 등

Inner Link

거장이 되기로 작정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전쟁영화

지상최대의 작전

스탈린그라드&에너미 앳 더 게이트

블랙 호크 다운

쉰들러 리스트

철십자 훈장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콜세지

샘 페킨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로버트 카파

프란시스코 프랑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우습게 보는 일은 매우 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무시하는 비평가나 관객에 대해 동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스필버그 감독이 토해내는 일련의 실패작들조차 그가 절대로 형편없는 감독이 아니란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동시에 스필버그 감독에게 '거장'이란 칭호를 헌납하기엔 뭔가 아쉽다. 설령 그가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통해 아카데미 작품상 혹은 감독상을 거머쥐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아직 <E.T>를 못보았지만, 아마 본의던 아니던 내가 본 영화들 중 그 갯수로는 단일 감독 중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의 작품이 틀림없이 그 상위에 랭크될 것이다(<E.T>를 무지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앞으로도 보게 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어쩌다보니 그리 되는 영화들이 있는데 맥 라이언이 주연했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란 영화도 나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스필버그 감독은 어려서부터 전쟁 놀이 장면을 필름에 담으며 감독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전쟁 영화를 감독하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일단 그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E.T>를 비롯해서 그의 작품들에 쏟아지는 찬사들은 그 주제를 다루는 솜씨는 비록 탁월하다고 할지라도 그 주제 자체의 문제이거나(대표적 상업 영화들인 <죠스>, <인디애나 존스> 등) 혹은 진지한 주제라 할지라도 그의 손에 닿으면 어쩐지 뭔가 결핍되어 있는 듯(<칼라 퍼플>, <태양의 제국>) 여겨졌다. 물론 훌륭한 장르 영화 제조기로서 그는 훌륭한 흥행성적을 올리는 감독이었고, 그의 손이 닿는 작품들은 마치 마이다스의 손길이 스친 것처럼 되었다. 그러나 그가 '작가'로서 인정받고자 시도한 작품들은 비록 관객의 찬사가 있었더라도 비평가들로부터는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작심하고 만든 <칼라 퍼플>과 <태양의 제국>이 실패한 뒤 스티븐 스필버그 역시 마틴 스콜세지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되길 포기한 듯이 보였다. 그는 자신을 피터팬 증후군 환자처럼 취급받게 하는 수모를 겪게 만든 <후크>의 실패 이후 이번엔 컴퓨터 그래픽을 잔뜩 입힌 <쥬라기 공원>으로 다시 성공을 거두지만 사람들은 이 작품의 원작자인 '마이클 크라이튼'을 좀더 기억하는 듯이 보였다. 이후 스필버그가 드디어 작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게 만든 작품은 자신의 뿌리이기도 한 유태인 문제를 다룬 <쉰들러 리스트>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작가로서 자신의 위치를 좀더 확실하게 다지는 계기를 만든 작품이 바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였다.

1944년 6월 6일 미군의 상륙 지점 중 하나였던 오마하 비치는 비에르빌 쉬르 메르와 콜빌 쉬르 메르의 두 읍 사이의 약 6.5km에 달하는 황량한 해안이었다. 오마하 해안은 상륙하기에 매우 부적당한 장소였다. 해안 안쪽 끝은 30m의 높은 벼랑이 막고 있었고, 썰물시에는 270m에 달하는 개펄이 드러났다. 독일군은 연합군의 상륙을 방해하기 위해 '벨기에의 문'이라고 불리운 높이 3m 정도의 수직 철제 기둥을 바다를 향해 세워 두었다(위의 사진에 보이는 철골 구조물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상황이 나빴던 것은 상륙 주정의 문이 열린 뒤 해안을 향해 돌격해 들어가는 상륙군이 해안의 야트막한 언덕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독일군 해안 포대와 요새화된 토치카의 기관총 세례로부터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 놓인다는 것이었다.

상륙 부대는 해안 멀찍이 정박한 상륙지원함(원래는 13km 이내까지 진입한 뒤에 주정을 내리기로 했으나 실제로는 18km~19km 밖에서부터 거친 파도와 독일군의 포격에 시달리며)으로부터 상륙 주정으로 갈아탔다. 그 덕분에 제 1사단을 지원하기로 되어있던 미군의 몇 대 안 되는 전차들은 해안에 도달하기 전에 파도에 휩쓸려 수장되고 말았고, 보병 부대는 전차의 지원없이 자신의 몸만 가지고 독일군 해안기지를 무너뜨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상륙 작전 당일 오마하 해안에 상륙한 여러 부대 중 밀러가 이끄는 부대는 레인저 부대(특수부대)였다. 그들은 벼랑 위에 포진하고 있는 독일군 포대를 침묵시키는 임무를 맡았었다. 이 공략 임무를 맡았던 제 2 레인저 대대 225명 중 작전이 완료된 후에도 계속 총을 들 수 있는 병사의 수는 90명밖에 남지 않았다. 상륙군 중 가장 운이 없었던 제16연대 소속 병사들은 독일군 토치카 바로 정면에 상륙 주정의 문을 여는 바람에 주정에 탄 채로 거의 전멸 당하는 일도 벌어졌던 것이다. 이 날 하루동안 미군은 오마하 해안에서 3,000여명의 병사를 잃었다.(만약 위의 사진처럼 많은 수의 탱크들이 작전에 쓰일 수 있었다면 희생자수는 보다 적었을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개봉된 뒤 읽어 본 평론 중에는 밀러 대위가 손을 떠는 이유로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장면을 목격한 그의 도덕적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보았는데, 정말 웃기는 해석이었다. 도대체 누가 그걸 안다는 말인가? 나는 이런 장면을 삽입한 까닭은 극중의 밀러의 역할이 지나치게 교훈적인 영웅의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관객들은 <하이눈>의 게리 쿠퍼같은 영웅상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거나 현실적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나는 밀러 대위를 좀더 인간적인 결점을 가진 인물로 그리기 위한 설정이라고느꼈다. 나중에 밀러 대위의 직업이 '교사'로 밝혀지는 것도 역시 그럴 법한 장치이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손을 떤다는 것은 지휘관으로서 때로 치명적인 결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밀러 대위가 손을 떠는 행위가 벌어지는 것은 대개 격렬한 전투의 와중이거나 혹은 전투의 직전 직후가 된다. 그가 불만을 가진 분대원을 다독이며 설득하거나 포로로 잡힌 독일군 포로를 살려주는 행위가 비현실적이라고 여겨지지 않고 받아들여지는 이유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상당히 고증이 잘 된 영화에 속한다. 그러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독일군 Tiger전차는 실제 전쟁 당시 사용되었던 것이 아니라 이와 흡사하게 제작된 소품이다. 이 영화는 6,700만불이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사용되었다.

역사 속의 설리번 형제와 영화 속의 라이언 형제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을 때 진주만에서 미국은 전함 5척 침몰, 3척 파손, 소함정 10척 침몰, 2,400여명의 병사들이 전사했다. 전사자 중 한 명이 아이오와주 프레데릭스버그 출신의 윌리엄 볼이었다. 12월 7일 전사한 수천의 병사 중에서 그의 이름만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의 같은 고향 친구로 가까운 워털루에 살던 설리번가의 형제 다섯 명(조제프, 프랜시스, 앨버트, 매디슨, 조지)이 이 사실을 전해 듣고 해군에 자원입대 했기 때문이다. 친구의 원수를 갚겠다고 이들이 지원한 것까지는 좋은 일이었지만 이들 5명의 형제는 같은 함선에 탈 것을 희망했고, 미 해군은 이들의 바램대로 순향함 주노에 배치해 주었다. 문제는 그후에 발생했다.

1942년 11월 14일 이들이 탄 순양함 주노는 솔로몬 군도 과달카날 앞 바다에서 적함의 공격으로 침몰한다. 그로부터 2개월이 지난 뒤 설리번 형제의 부모는 미 해군성에서 특별히 파견한 통보관에 의해 아들 5형제의 죽음을 통보받게 되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 가족에서 이렇게 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은 1864년 남북전쟁에서 보스톤의 리디어 비그스비 부인이 아들 5명을 잃었던 사건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해군은 전사한 이들 형제를 기리는 뜻에서 퍼플 하트 훈장을 추증하고, 새로이 건조된 구축함을 '더 설리번즈'라는 이름으로 명명했다.

미국 정부와 언론 매체는 이들 가족의 희생을 대대적으로 널리 알렸고, 설리번 가족의 유일하게 남은 자식 제네비에브도 해군에 여성 예비 부대원(WAVE)으로 입대한다. 이들의 일대기는 전쟁 기간 중에 영화로도 제작되었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이런 역사적인 사실들을 영화 속 곳곳에 유효적절하게 삽입해두고 있다. 격렬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 장면이 지난 뒤 사령부에서 전사자 유가족에게 전달할 전사통지서를 작성하면서 우연히 라이언 형제의 4명 중 3명이 전사한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부터 중반부가 시작된다.

앞서 설리번 형제 이야기와 더불어 라이언 형제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마샬 장군은 노르망디의 야전사령부에 지시를 내려 연락이 두절된 라이언 형제의 막내 제임스 프랜시스 라이언 일병을 구하라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어렵다는 참모들의 조언을 듣고, 리디어 비그스비 부인의 편지를 꺼내 읽어 준다. 이런 설정들 때문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실화로 착각하는 이들도 보았다.

우리는 영화 내내 '업헴'이라는 인물을 통해 일종의 자기 동일시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행정병으로 전투는커녕 소총 한 번 제대로 쏘아본 적 없는 그는 프랑스어, 독일어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차출된 병사였다. 우리는 그런 업헴이 전투의 와중에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살려주자고 했던 독일군이 전우들을 살해하지만 도와주지 못하고 비겁하게 숨죽이고 있는 장면에 공감한다(이 영화를 제작한 스필버그 감독조차 업헴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라고 고백한다). 이 영화를 보는 대개의 관객들 역시 전투는커녕 생쥐 한 마리 죽여본 적 없는 사람들일테니 비범한 영웅보다는 비겁한 '업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미트초퍼무비(meat chopper Movie)?

전에 샘 페킨파 감독의 영화 세계를 언급하면서 소위 "고기 다지는 영화(meat chopper movie)"라는 나만의 영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한 적이 있었다. 전쟁이나 살인의 액션 장면을 멋이 아니라 냉정하게 다루는 샘 페킨파 감독만의 독특한 미장센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그 와중에 벌어지는 전투 장면을 그리고 있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경우 영화 초반부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그리고 있는 장면을 보면 '미트초퍼무비'라고 할 만한 장면들이 넘쳐난다. 이 정도면 '헤모글로빈의 시인'이라는 페킨파 감독도 울고 갈 정도의 명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시종일관 그런 긴박한 장면들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초반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반부는 라이언 일병을 찾아가는 부분, 마지막 부분은 라이언 일병을 만나 독일군의 대공세를 막아내는 부분이다. 영화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부분을 넘어가면 새롭다기 보다는 낯익은 장면들이 연이어 쏟아진다.

이전에 수없이 제작된 할리우드 전쟁영화의 관습적인 영웅주의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물론 애초에 이 영화는 영웅의 이야기이다. 물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람보처럼 놀랍지만 말도 안 되는 전투력을 보이는 그런 영웅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긴 <람보>조차도 처음 제작된 것은 그렇게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었고, 오히려 적당히 진지하기 까지 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영화 후반부에 이를수록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전투 장면은 잔혹하긴 하지만 전반부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전투 장면에 비하면 아쉬워진다. 페킨파의 유일한 전쟁 영화인 <철십자훈장>은 매우 냉정한 영화이다. 물론 패전을 목전에 두고 있는 독일군이 그 주인공들이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끝까지 냉정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철십자 훈장>처럼 철두철미하게 반전을 다루고 있다기 보다는 할리우드 영화들이 보여주는 기존의 가치관들을 적절하게 다시 포장해서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치관이란 소박한 이상을 위한 가치있는 희생, 가족의 중요성, 평범한 사람들의 고결한 행동이란 미국식 이상의 표출이다. 살아남은 제임스 프랜시스 라이언(James Francis Ryan, 맷 데이몬)이 영화 마지막에 자신을 위해 목숨을 버린 존 밀러 대위를 찾아 국립묘지를 찾는 장면은 <쉰들러 리스트>의 마지막 장면과도 겹치는 부분이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을 한 로버트 로댓(Robert Rodat)은 <아름다운 비행( Fly Away Home)>, <패트리어트 - 늪 속의 여우(The Patriot)>의 시나리오도 작업했다. 잘 알다시피 <아름다운 비행>은 혼자 된 아버지와 사는 어린 소녀가 어미를 잃은 야생 오리를 길러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는 내용을 다루고 있고, <패트리어트>의 경우에도 혼자 된 아버지가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영국군에 대항한다는 내용이다. 어떤 의미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가족 영화처럼 보인다. 우리는 군에 입대한 친구나 친지의 훈련소에서 정훈장교들이 말하는 것을 익히 들어왔다. 그들이 사회의 부모를 대신해 국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자제들의 부모형제를 대신하겠다는 위로가 그것이다. 이런 순간에 국가는 혈연을 초월한 좀더 큰 어머니와 아버지의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자, 그러면 이제 우리의 형제 라이언 일병을 구하러 가보자.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오마하 비치

지상최대의 작전이라 불리운 오버로드(Overlord) 작전은 동부전선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쟁의 운명을 바꾼 걸출한 작전이자 승리로 기록된다(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는 <지상최대의 작전>편에서 자세히 다룰 것을 약속드린다). 제2차 세계대전 초반, 전차와 기동화된 보병부대를 이용한 전격전을 앞세운 독일은 전유럽을 석권한다. 유럽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스웨덴(중립국)과 파시스트 프랑코가 지배하는 스페인, 영구중립국인 스위스와 섬나라 영국을 제외하고 모든 지역이 독일의 지배 아래 들어간다. 독일은 영국과 협상을 통해 자신들의 유럽 지배를 고착화하기 위해 덩케르크에서 영국군을 비롯한 연합군의 철수를 용인하지만 영국은 끝까지 저항할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무렵만 하더라도 제1차 세계대전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한 미국은 '영예로운 고립'이라는 그들의 정책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참전은 자명한 일이었다. 몰락해가는 제국, 영국의 국력만으로는 도저히 전세를 되돌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동부전선에서는 소련만이 독일군을 상대로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소련의 스탈린은 영국의 처칠과 미국 루스벨트에게 하루빨리 유럽에서 제2전선을 구축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었다. 이 무렵 연합군은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을 패퇴시키고, 이탈리아에 상륙해 있었다. 미국은 압도적인 생산력을 앞세워 대규모 선단과 폭격기, 신형 전차를 생산해 영국 전체를 거대한 군수기지로 만들었다. 이것은 모두 유럽의 어디엔가로의 상륙 작전을 목표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연합군은 엄청난 보안 유지와 기만 작전을 통해 독일의 최고 작전 사령부로 하여금 최후의 순간까지 상륙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도록 만드는데 성공한다. 독일군은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한 직후까지도 그들의 최종 상륙지가 칼레 해안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군도 그동안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 연합군의 침공이 예상되는 해안 일대에 소위 '대서양 방벽'이라는 방어 시설을 구축해두고 있었다. 더구나 오랜 작전 준비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규모 작전에는 피치 못할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이었다.

그중 하나가 영화 초반 존 밀러(John Miller, 톰 행크스) 대위의 제1사단이 원래의 작전 지역에서 벗어나 막강한 독일군 화력이 건재한 오마하 비치에 상륙하게 된 일이었고, 라이언 일병이 속한 '스크리밍 이글(울부짖는 독수리)' 미군 101 공정사단이 목표지점을 찾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버린 일이다. 그러나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전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상륙작전이자 자칫 전멸할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깨고 커다란 성공을 거둔다. 이후 연합군은 아르덴느 숲에서 독일군의 역습을 받기 전까지 몇 차례 어려움을 겪기는 하지만 승승장구하게 된다. 1944년 6월 6일 미군의 상륙 지점 중 하나였던 오마하 비치는 비에르빌 쉬르 메르와 콜빌 쉬르 메르의 두 읍 사이의 약 6.5km에 달하는 황량한 해안이었다. 오마하 해안은 상륙하기에 매우 부적당한 장소였다. 해안 안쪽 끝은 30m의 높은 벼랑이 막고 있었고, 썰물시에는 270m에 달하는 개펄이 드러났다. 독일군은 연합군의 상륙을 방해하기 위해 '벨기에의 문'이라고 불리운 높이 3m 정도의 수직 철제 기둥을 바다를 향해 세워 두었다. 무엇보다 가장 상황이 나빴던 것은 상륙 주정의 문이 열린 뒤 해안을 향해 돌격해 들어가는 상륙군이 해안의 야트막한 언덕에 도달하기 전까지 독일군 해안 포대와 요새화된 토치카의 기관총 세례로부터 완전 무방비 상태에 놓인다는 것이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연상케 하는 상륙작전 장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치고는 드물게 컬러 화면을 사용하고 있다. 촬영감독 카민스키는 <쉰들러 리스트>의 경우에도 잔혹한 장면이 많다는 이유로 흑백화면을 매우 미려하게 사용했는데, 어째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는 칼라로 촬영했을까?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제면에서나 실제로 나찌의 잔학상을 다룬대부분의 영화가 흑백으로 찍혔다는 점에서 흑백필름이 적당했어요. 하지만 칼라로 촬영된 2차대전 당시의 다큐멘터리들도 수없이 많죠. 사실 잘 알려진 감독인 조지 스티븐스도 종군카메라맨이었고 많은 영화를 칼라로 찍었어요. 스필버그와 저는 라이언 일병을 흑백으로 찍고 싶지는 않았고, 저는 또다른 2차 대전 영화를 그런 방식으로 찍는데 대해 약간의 자부심도 있었어요."

마치 다큐멘터리의 화면을 보는 듯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가 종군하여 오마하 비치의 생생한 전투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내 우리들에게 흑백 사진으로는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하다. 이것은 스필버그와 촬영감독이었던 야누시 카민스키(Janusz Kaminski)가 애초부터 의도했던 효과였다. <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 1993>를 촬영한 카민스키는 <쉰들러 리스트>를 통해 이미 다큐멘터리 기법을 훌륭하게 보여준 적이 있었다. 카민스키는 대부분 핸드 헬드 카메라(hand-held camera)를 사용했는데, 카메라 렌즈에서 보호막을 벗겨내 1940년대의 느낌을 살리고, 배우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연기자들의 움직임에 사실감을 더했다.

평범하지만 비범한 영웅들의 일대기

톰 행크스가 연기한 밀러 대위는 <하이눈>에 등장하는 보안관 '게리 쿠퍼'처럼 보인다. 정오 무렵의 어느 날 보안관은 이제 보안관 뱃지를 반납하고, 은퇴해서 행복한 신혼 생활이 기다리고 있는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그때 날아온 한 통의 전보, 그가 잡아넣었던 악당들이 풀려나 마을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보안관으로 봉직해온 그는 마을 사람들의 협조를 얻어 악당들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자 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악당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보안관을 도와주지 않는다. 홀로 남게 된 보안관은 혼자의 힘으로 악당들을 처치하고 마을을 떠난다. 밀러 대위는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분대원들(8명)의 불만을 다독인다. 만약 <하이눈>의 시대였다면 밀러 대위는 손을 떨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개봉된 뒤 읽어 본 평론 중에서 밀러 대위가 손을 떠는 이유가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장면을 목격한 그의 도덕적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보았는데, 정말 웃기는 해석이었다. 도대체 누가 그걸 안다는 말인가? 나는 이런 장면을 삽입한 까닭에 대해서 관객들로 하여금 <하이눈>의 게리 쿠퍼 못지 않게 교훈적인 인물인 밀러 대위에 대해 인간적인 느낌을 받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고 느꼈다. 나중에 밀러 대위의 직업이 '교사'로 밝혀지는 것도 역시 그럴 법한 장치이다. 손을 떤다는 것은 지휘관으로서 때로 치명적인 결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밀러 대위가 손을 떠는 행위가 벌어지는 것은 대개 격렬한 전투의 와중이거나 혹은 전투의 직전 직후가 된다. 그가 불만을 가진 분대원을 다독이며 설득하거나 포로로 잡힌 독일군 포로를 살려주는 행위가 어색하게 여겨지지 않는 까닭은 그 역시 약점(손을 떠는)을 지닌 인간이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영웅이 영웅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평범한 인물이냐 아니냐는 것이 아니다. 그의 행위가 비범한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영화 내내 '업헴'이라는 인물을 통해 일종의 자기 동일시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행정병으로 전투는커녕 소총 한 번 제대로 쏘아본 적 없는 그는 프랑스어, 독일어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차출된 병사였다. 우리는 그런 업헴이 전투의 와중에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살려주자고 했던 독일군이 전우들을 살해하지만 도와주지 못하고 비겁하게 숨죽이고 있는 장면에 공감한다(이 영화를 제작한 스필버그 감독조차 업헴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라고 고백한다). 이 영화를 보는 대개의 관객들 역시 전투는커녕 생쥐 한 마리 죽여본 적 없는 사람들일테니 비범한 영웅보다는 비겁한 '업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병사들은 라이언 일병이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구출할 만한 인물이냐는 것에 의구심을 표한다. 영화는 죽음의 전장에서 자신만을 구출해가려는 레인저 부대원들의 출현과 형제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현실에 처한 라이언 일병이 자신의 전우들을 버리고 떠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그 역시도 훌륭한 한 명의 젊은이임을 강조한다. "왜 나만 돌아가야 하는가. 나의 전우들도 나와 다를 것이 없다. 그들도 다 집에 가고 싶어한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뒤 우리는 소위 영화비평가들이 말하는 또 하나의 전쟁 걸작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블랙 호크 다운>이다. 라이언 일병 하나를 구하기 위해 8명의 분대원이 희생되는 것이 미국의 휴머니즘이라면, 독재자 한 명을 체포하기 위해 미군 레인저 부대와 델타 포스가 투입되고, 원래 한 시간의 작전 시간을 예정하고 시작된 작전이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봉착해서 15시간 동안 싸워 19명의 미군 병사가 사망하고, 소말리아인 1천여 명이 사상당한 이 사건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물론, 그 결과 수많은 소말리아인들이 목숨을 건졌을까? 아니 천만의 말씀, 미군은 황망히 부대를 철수시키고 말았다.) - 은혜를 원수로 갚는 독일군. 그러나 되돌이켜 생각해보자. 당신이 포로로 잡혔다가 다시 풀려난다면 적진을 향하겠는가? 동료들을 향하겠는가? 이솝 우화의 한 토막이 생각난다. 뱀을 구해준 토끼가 뱀에게 잡아먹히며 "이 은혜도 모르는 놈!"이라고 한다. 그러자 뱀이 말한다. "이것이 나의 천성이야."라고. 예를 들어 어느날 미군의 특수부대 헬기가 청와대에 긴급 투입되어 우리 대통령을 잡아가려고 든다고 해보자. 당신이라면 그냥 집에 가만히 있겠는가? 만약 참지 못하고 뛰쳐나간다면 당신은 영화 <블랙 호크 다운>에 엑스트라 총알받이로 출연하게 되는 것이다.

관련 사이트 & 참고 도서

『유럽 제2전선- 제2차 세계대전』/ 라이프 편집부/ 한국일보/ 1990 - 한국일보에서 지난 80년대부터 미국의 유명한 시사주간지였던 <라이프>지가 단행본으로 출간했던 역사 시리즈물들 중 하나다. 어려서 이 책들을 보고 모두 갖고 싶었는데 최근에서야 전질을 다 갖출 수 있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편을 주로 다루고 있다.

『미국의 전시생활- 제2차 세계대전』/ 라이프 편집부/ 한국일보/ 1990 - 한국일보에서 지난 80년대부터 미국의 유명한 시사주간지였던 <라이프>지가 단행본으로 출간했던 역사 시리즈물들 중 하나다. 어려서 이 책들을 보고 모두 갖고 싶었는데 최근에서야 전질을 다 갖출 수 있었다. 미국의 전시하 생활들을 다루고 있으며 진주만 기습 이후 미국인들의 생활이 어떻게 전시 체제에 맞게 변화해갔는지를 보여준다.(설리번 형제 이야기는 이 곳에서 발췌한 것이다.)

참, 영화 속 라이언의 계급장은 일병이 아니라 이등병(private)이다. 일병의 영문 표기는 "private 1st class"라고 해서 계급장 작대기가 둘인데, 영화 속 라이언의 팔을 보자. 작대기가 하나다. 영화수입업자들이 여러분에게 사기를 친 것이다.

전장에서 피어난 휴머니즘의 승리, 뛰어난 반전영화. 글쎄, 난 아니라고 봐!

라이언 일병을 그의 부모 곁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동원되었던 병사들이 하나둘씩 죽어가고 전투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앞서 병사들이 투덜댔던 장면을 이해하게 된다. 여덞 명이 한 명을 구하러 간다는 어리둥절한 사실을 앞에 두고 병사들이 "세상에 이런 이상한 산수가 어디 있지"라고 투덜대자 밀러는 대답한다. "라이언은 착한 사람일 거야. 우리가 구해야 할 가치가 있을 만큼." 밀러 대위는 죽어가면서 라이언 일병에게 말한다. "나는 네가 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기를 바란다." 그는 앞서 전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자신의 고참병 중 하나인 호바스 상사에게 자신은 부하 병사 한 명이 죽음으로써 백 명, 천 명의 사람들이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고 말한다. 영화 마지막에 가서 늙은 라이언이 자신의 일가족을 데리고 밀러의 묘비 앞에 서서 경례를 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는 자신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도 이 대목에 가면 갑자기 말이 많아진다. 대개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하필이면 막바지에 가서 성조기가 펄럭이는 장면이 나온다는 것이다.

미국 영화에서 성조기가 휘날리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 영화에서 혹은 프랑스 영화에서 그 나라 국기가 휘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걸 가지고 뭐라고 한다는 것은 사실 좀 우스운 일이라는 것이다. 정작 내가 화가 나는 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뛰어난 반전영화 혹은 휴머니즘의 승리로 보는 시각이다. 이 영화의 어느 부분도 전쟁에 반대하는 대목은 보이지 않는다. 전반부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부분의 인상이 너무 강렬한 탓일까? 이 영화는 전쟁에 반대하기는커녕 그 안에서 싹트는 영웅적인 행위와 미국의 희생이 결국 세상을 구하고, 우리들은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들 덕으로 살아남은 '업헴'과 '라이언'이 되도록 한다. 이제 우리는 미국에게 감사해야 할 일만 남은 셈이다.

그 자체로야 별로 탓할 바 없는 서양의 휴머니즘(즉, 인본주의)이 인간을 세상의 가장 중심에 놓은 까닭에 자연은 결국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고, 그 속에 속한 다른 수많은 생물종이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멸종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휴머니즘은 미국으로 하여금 한 명의 미국 병사를 구하기 위해 세계 도처에서 말도 안되는 전쟁을 치르도록 한다. 그리고 더욱 역겨운 일은 스스로 그 상처에 아파하며 그것을 위로하는 영화를 만들고, 그것을 천연덕스럽게 잘 포장해서 전세계 영화 시장에 팔아먹는다는 것이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뒤 우리는 소위 영화비평가들이 말하는 또 하나의 전쟁 걸작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블랙 호크 다운>이다. 라이언 일병 하나를 구하기 위해 8명의 분대원이 희생되는 것이 미국의 휴머니즘이라면, 독재자 한 명을 체포하기 위해 미군 레인저 부대와 델타 포스가 투입되고, 원래 한 시간의 작전 시간을 예정하고 시작된 작전이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봉착해서 15시간 동안 싸워 19명의 미군 병사가 사망하고, 소말리아인 1천여 명이 사상당한 이 사건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물론, 그 결과 수많은 소말리아인들이 목숨을 건졌을까? 아니 천만의 말씀, 미군은 황망히 부대를 철수시키고 말았다.)

만약 밀러 대위 식의 산술이라면 미군 병사 19명이 죽었으니 어디선가 1,900여 명의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건졌어야 하는데 일부 무장한 민병대를 제외하고는 돌멩이 빈 몸뚱이만으로 저항한 모가디슈 시민 1,000여명이 생떼 같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지난 6월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에 의정부에서 두 명의 여중생이 꽃다운 나이에 미군 장갑차에 압사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지만 미군은 그들에게만 안락한 SOFA를 배경으로 유유자적하고 있다. 미국의 휴머니즘에 우리가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것이 보편적인 휴머니즘이 아니라 그들에게만 해당하는 편협한 휴머니즘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은 구할 가치가 있는 사람만 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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