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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3-01-18 10:18:44, Hit : 4567, Vote :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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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A.I.(Adult Inadaptability = 성인부적격)

* 아, 제가 작년에 d님 홈에 올렸던 글이었군요.
난 d님이 너무 좋아요. 흐흐.

A.I.(Adult Inadaptability = 성인부적격)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여러 기능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끔 기억과 인간의 영혼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나는 기억이란 것이 나라는 영혼의 존재 가치를 긍정하게 해주는 최소한의 안전판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어쩌면 기억 = 영혼일 수도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스탠리 큐브릭의 오랜 유지를 받들어 제작한 영화라는 점에서 AI는 주목받았고, 그 결과는 다소 의외의 혹은 다들 당연히 예상한 듯 대단한 흥행에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하긴 스필버그가 대신 꾸어준 큐브릭의 꿈이란 영 어색할 수밖에 없는 기묘한 흥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이 영화가 어째서 꽝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최근 읽은 구절 중에 수잔 손탁(사진 비평 쪽에서는 이 아줌마를 젖혀두고는 한 발짝도 못 나갈 인물이다.)의 거 뭐시더라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비평이란 결국 작품 읽기에 방해만 된다는 뭐 그런 내용의 글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남이 겪었던 그 어떤 아픔도 당신 자신이 지금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을 대체할 수 없다. 도대체가 당신이 누군가를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서 그 누군가가 겪고 있는 고통의 십분지 일이라 실제 아파해 줄 수가 있는 가 말이다. 따라서 예술 작품의 감동 역시 진정한 의미에서 공유란 없다는 것이 수잔 손탁의 말씀 중 핵심일 것이다. 그렇다면 감동받고 싶어 안달난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수잔 손탁의 어떻게 감동받을 것인가 하는 따위의 글을, 어떻게 하면 나의 감동을 좀더 고상하게 꾸밀 것인가 고민하지 말고 그냥 가서 감동받을 만한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든지 말든지 하란 말씀이다. 고것이, 그런 말인게다.

AI에 대해서 이런 엉터리방터리 같은 말로 서두를 끌고 나오는 이유는 이 영화가 생각외로 칭찬해줄만한 부분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 머리로는 칭찬해줄 부분이 거의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는데(가령 주드 로와 오스몬드 군의 연기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특히 최근에 주드 로의 영화들을 잇따라 보면서 새롭게 주드 로의 진가를 발견해내가고 있는, 나의 성향으로 보아서는 음, 게리 올드만 이후 나를 이렇게 흥분시키는 배우는 주드 로가 정말 오랜 만이다. 근자에 내가 본 그의 영화들은 이렇다. 리플리, 에너미 엣 더 게이트, AI, 가타카, 로드 투 퍼디션 등등 그러고보니 주드 로 영화를 나도 꽤 많이 봐준 편이다. 가타카에서 그 제롬인가 하는 매력적인 녀석이 주드 로였다는 걸 나는 최근에 알았다. 주드 로! 너, 나한테 찍혔다.) 일단 이야기 구조가 매우 엉성한데다가 피노키오에 대한 오마주가 너무 강해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피터팬에서 이제 피노키오로 이어지는 동화 작가로 아예 나섰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거기에 수중으로 사라진 뉴욕의 놀이공원에서 고래 비스끄무리한 물체가 나타나던 순간엔 정말 최악이다라는 비명을 지를 뻔 했다. 무릇 이야기 비틀기의 기본 구조는 영화를 다 보기 전까지는 저 이야기의 원작이 뭐였더라 하고 고민하게 해주는 영화들이 대체로 성공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렇듯 노골적으로 의도를 보여주는 영화들은 이미 관객으로 하여금 감동을 절반 정도 접고 가라는 듯한 혹은 내가 어려운 애기하면 너희들은 아마 잘 모를 거야 하고 관객의 지적 수준을 개무시하는 작태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거기 마지막에 가서 2000년이나 지난 뒤 돌연 출현한 외계인. 음, 푸른 요정을 대체할 존재가 과연 외계엔이었군. ET에게서 주름살을 없애고 위아래로 죽 잡아늘인 버전의 외계인이 천사였다니....

스탠리 큐브릭이라면 이 부분에서 어떻게 했을 텐데 하는 짐작가는 부분들이 중간중간에 보였다는 것은 그만큼 아쉬움을 증폭시키면서 동시에 이 영화의 제작을 맡은 스필버그에게 드리워진 큐브릭의 그림자가 매우 짙고 크구나 하는 어려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가 끝나고 난 뒤의 나였다.

병신같이 왜 눈물이 나오느냐는 것이다.
이런 젠장.

서서히 기울어가는 해를 멍청히 바라보면서
어둠이 드리워지는 창가에 앉아
깊은 밤이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하염없이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어린 데이빗의 심정이.
영원히 어른이 될 수 없는 어린이 로봇. 데이빗.
그는 피터팬의 SF버전이었을까?
아니면 사람이 되고픈 피노키오였을까?

그도 아니면 우리 마음 속 기억 혹은 추억 속에 드리워진 어둠 속에 남겨진 나 자신이었을까.
나는 감정이입 되는 영화가 슬프다.
그래서 나는 신파적 인간A.I.(Adult Inadaptability = 성인부적격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