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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 - 시공 아트 012/ 프랭크 휘트포드 (지은이), 김미정 (옮긴이)/ 시공사(1999년)
에곤 실레(Egon Shiele, 1890 - 1918)의 그림 중엔 Embrace(Lovers II)란 그림이 있다. 나는 그 그림에서 어쩐지 마지막이란 단어를 연상해 낸다. 두 남녀가 부둥켜 안고 있는 어찌 보면 흔해 보이는 포즈임에도 저 그림에서 마지막 포옹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은 에곤 실레가 죽기 1년 전에 그린 작품이라서라기 보다는 저 그림 속 남녀가 부둥켜 안고 있는 자세가 어쩐지 절박해보이기 때문이다. 여인은 온힘을 다해 남자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있고, 남자는 그런 여인의 팔 뒤로 다시 여인의 어깨로부터 등까지 한데 모아 끌어안고 있다. 상체가 그렇게 붙어 있는데 비해서 하체는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어째서일까?
저 두 남녀는 어째서 저런 자세로 서로를 절박하게 안고 있는걸까? 그에 대한 해답을 내가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추측컨대 나는 최인훈의 <광장>에서 명준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라는 멋진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
『광장』에서 이명준은 <광장>을 찾아 월북했지만 그곳에서도 꿈꾸던 광장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는 대신 무용수 은혜를 만나 그 여자의 다리를 베고 눕는 것으로 절망과 허무를 이기고자 했다.
“사랑하리라. 사랑하리라.····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이 잔잔한 느낌만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이 다리를 위해서라면,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모든 소비에트를 팔기라도 하리라.”
그는 사랑에서 그 자신이 超克할 수 없을 것이라 믿었던 절망과 허무를 극복하려고 들었다.
“이 여자를 죽도록 사랑하는 수컷이면 그만이다.”
어쩐지 나는 저 그림에서 그런 수컷의 모습을 보았다.
에곤 실레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나는 두 권의 책을 샀다. "『에곤 실레』 - 프랭크 휘트포드 지음/ 김미정 옮김/ 시공아트 012/1999년"과 "『에곤 실레-에로티시즘과 선 그리고 비틀림의 미학』 - 박덕흠 지음/ 재원미술작가론 9/ 2001년"이 그것이다. 내 경우에는 약간 더 비싸기는 하지만 프랭크 휘트포드의 저술에 더욱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후자의 책보다 비평적인 면에서나 그밖의 면(표지, 내용, 도판 등의 면)에서 휘트포드의 책이 에곤 실레의 생애와 예술적 성취에 대해서 훨씬 더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휘트포드의 다른 책들까지 구해 보고 싶을 정도로 아주 좋은 내용이었다. 다만 몇 가지 옥의 티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편집자와 번역자의 실수로 생각된다. - 예를 들자면 제1장 8쪽 밑에서 5째 줄에 보면 "1866년 프러시아와 이탈리아로부터 연이은 승리를 얻어내자 국가의 균열은 치유되지 못한 채"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1866년에 벌어진 전쟁은 '프로이센 - 오스트리아 전쟁(일명 7주 전쟁)'으로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에 의한 독일 통일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쪽은 책의 기술대로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프로이센이었다. 그 결과로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통일 문제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 것을 약속해야 했고, 슐레스비히·홀스타인 두 공국을 프로이센에게 빼앗겼다.
제국이 몰락해 가던 시절을 빈에서 보냈던 유명한 전기 작가 스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의 회상에 따르면 "독신으로 지내는 친구들은 열이면 열, 창백한 안색으로 당황하여 나를 찾아오곤 하였다. 어떤 이는 매독을 이미 앓거나 감염되었을지 모른다고 불안해했고, 또다른 친구는 여자가 가진 아이의 유산 문제로 협박당하고 있었으며, 세 번째 친구는 가족 몰래 치료할 치료비가 없어서였고, 네 번째 유형은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여자에게 어떻게 돈을 지불해야할지 몰라서였다. 다섯 번째 친구는 윤락가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경찰에 신고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라고 할 만큼 당시의 빈은 극도의 혼란과 퇴폐 속에 있었다.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는 미래파 등이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터무니없는 낙관에 빠져 허우적댈 때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기초를 잃고 허무하게 몰락해가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도 에곤 실레는 대중적인 관심과 출세를, 아니 그의 작품으로 그것을 추구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안정된 생활을 추구하는 속물적인 욕망을 추구했다.
에곤 실레는 종종 궁핍함을 가장했지만, 이것은 그가 중산층 부르주아지의 가치관을 거부했기 때문이 아니라 위대한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가치를 거부한다는 코스츔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실레는 말쑥하게 차려입고, 돈을 헤프게 쓰고 다니면서도 가난한 척 했고, 화가의 고단한 삶,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와 자신의 후견인이 누린 보다 안락하고 평온한 삶을 원했다. 결국 자신에게 지극히 헌신적이었던 여인 발리를 버리고 부르주아 가정의 여인(에디트 하름스)를 선택하여 결혼한다. 과연 그는 행복했을까? 물론 그것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저 한 장의 그림을 통해 그가 결코 행복하지 못했으리라고 추측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난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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