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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6-02-17 18:35:32, Hit : 4040, Vote :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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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B.토비아스 -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가지 플롯/ 풀빛 / 1997년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가지 플롯
로널드 B.토비아스 지음, 김석만 옮김 / 풀빛 / 1997년 7월

얼마 전 TV에서도 해준 영화 "역도산"을 보면서 이 영화가 여러 흥행 요소들을 가졌으면서도 왜 결국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역도산"이 이른바 극영화의 기본 요소라 할 수 있는 플롯 구성에서 실패한 탓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지나치게 평이한 내러티브 구조 말이다). 로널드 B. 토비아스의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가지 플롯"은 그런 플롯에 대한 이야기다. 줄거리(내러티브)와 플롯의 가장 큰 차이는 사건 진행에 있어 시간상의 배열이냐, 아니면 인과 관계에 따른 배열이냐 하는 말로 간단히 정의되곤 하지만 실제로 플롯과 내러티브 사이엔 그렇게 명확한 구분이랄 것이 없기도 하고, 매우 강렬한 구분 요소들을 갖고 있기도 하다. 내러티브란 말은 그 자체로는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 서술을 일컫는 말이지만, 내러티브란 말 뒤에 내러티브 구성이니 구조니 하는 말이 붙으면 그 순간 말은 내러티브지만 실제로 지칭하는 것은 플롯에 더 가까운 것이 된다는 점만 놓고 보더라도 이 둘이 얼마나 헷갈리기 좋은 말인지 알 수 있다.

플롯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내가 종종 예를 드는 것은 재난영화들 아니면 영화 "멤피스벨"이나 "특전 유보트" 같은 영화들이다.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드리면 "멤피스벨"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 제8공군(폭격기)의 젊은 부대원들이 25번의 폭격 임무 가운데 마지막 임무를 무사히 치르는 과정을 다룬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영화 전체를 암시하고 있다. 고장낸 비행기를 수리하기 위해 기지 내에 대기하고 있던 대원들이 돌아오는 폭격기들을 환영하고 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돌아오는 비행기의 한 쪽 바퀴(랜딩기어)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결국 비상 착륙 도중 폭발하고 만다. "특전 유보트"에서는 잠수함 임무를 맡고 떠나는 유보트가 잠항 심도의 안전성을 체크하기 위해 시험 잠항을 하는 장면을 거의 첫 부분에서 보여준다. 이것은 앞으로 이 영화에서 나타날 위기가 어떨 것인지 관객들에게 미리 알려주어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그래서 헐리우드 영화 시나리오 작법의 첫 번째 계명은 영화가 시작하고 5분 이내 의미있는 사건을 보여주어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난 좀 별다른 관객이고, 독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결국 창작이란 소박하게 말해서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심리 게임이다. 누가 상대의 호흡을 알아챌 것인가, 혹은 상대의 호흡을 빼앗을 것인가 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익숙한 호흡에 길들여진 독자들을 적당한 정도로 낯설게 하면서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을 것인가라는 지점에서 창작자가 독자의 수준을 어디에 맞출 것인가가 결정된다. 자신의 작품을 좀 더 대중에게 많이 보이고 싶은 사람은 그 지점을 낮출 것이며, 전문적으로 단련된 독자층을 겨냥하는 사람은 낯설게 하는 정도를 높일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런 창작자의 겨냥이 종종 잘못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수히 많은 신파 정서 속에서 비평가들이 쓰레기 같은 드라마라고 비평한 드라마가 성공하는, 비평가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영화나 작품이 대중들에게 외면 당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얼마전 성공한 삼순이의 경우도 그렇다. 신데렐라 스토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약간의 새로운 요소들이 이 드라마의 성공 원인이라고들 말하지 않는가. 비평이란 그래서 종종 결과론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창작에 뜻을 둔 이들은 무엇이든 붙잡고 싶어하고,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영화나 희곡 혹은 드라마 작법(문학을 제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 주로 예를 들고 있는 것들 가운데 영화가 많아서 하는 말이다) 속에서 플롯이 어떻게 구성되고, 독자들이 얼마나 뻔한 플롯에 매번 눈뜨고 코 베이는 지를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따라한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왜? 무수히 많은 변수들이 그대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 책은 이런 방면의 흔하디 흔한 다른 책들에 비하자면 훨씬 더 읽을 만한 류의 책임에는 틀림없으며, 반드시 창작을 위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읽는 재미가 있다. 스티븐 킹의 "행복한 글쓰기"던가 그런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틀림없이 재미있어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