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에의 초대
피터 L.버거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1995년 5월
피터 L. 버거는 1929년 빈에서 출생하여 1946년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사회학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해온 인물이다. 버거가 "사회학에의 초대"에서 그 자신이 말하는 표현을 빌어 "엿보기를 즐기는 자(Peeping Tom)"로서 이야기하자면, 그가 1929년 출생하여 1946년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이력은 나에겐 상당히 중요한 근거가 된다. 그것이 내 개인이 주된 토양으로 삼는 인문학적인 토대이든, 아니면 지금 내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사회학적 관심이든 말이다. 어쨌든 그에 대해 궁금한 점 혹은 이 책을 잘 읽기 위해서라도 나는 지금 그가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사회학의 첫번째 지혜 "사물은 겉보기와는 다른 법"이라는 지혜를 원용해볼 필요가 있다. 비록 그것이 겉보기엔 역사학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버거가 1929년 빈(비엔나)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경제불황이 한창이던 시절,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구제국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는 말이 된다. 이해 칼 만하임은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를 처음 출간했다. 그가 10살 되던 해인 1938년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병합되었고, 그 이듬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독일이 항복한 것이 1945년 5월의 일이었으므로 그가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18살 무렵의 한 오스트리아 청년. 쇠락한 제국의 수도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이란 유럽의 격변을 거쳐(혹은 징병 당할 위험까지) 신세계 미국으로 건너간 청년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 꼭 저자와 나 사이에 일종의 심리 게임을 벌이는 습관이 있다. 그의 지적대로 사물은 겉보기와는 다른 법이며, 나는 그 사물의 이면을 엿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저자의 입장을 내 나름대로 비교분석해보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종종 교육자들은, 혹은 부부도 마찬가지고, 친구도 매한가지지로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이는 절대적으로 틀린 말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자는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르는 자일 뿐이다. 타인은 인생, 세상이란 낯선 길의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니 이 책 "사회학에의 초대"에서 사회학자 피터 L. 버거가 보이는 입장이 나름대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피터 L. 버거의 "사회학에의 초대"는 사회학 입문 과정에서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며, 생각하기에 따라 읽기 쉬운 책이지만 - 모든 입문서가 그러하듯 - 또한 읽기 어려운 책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 책은 교과서가 아니라 한 사회학자가 나름대로 사회학에 대한 생각들을 문학적인 양식으로 풀어낸 에세이(본래의 의미에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책에서 베버나 뒤르켐, 혹은 알프레드 슈츠, 미드, 짐멜 같은 다른 사회학자들의 이름은 물론이고, 저자의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들이 엿보이는 표현들은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들이 - 사회학에 대한 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 - 이 책을 읽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사회학에의 초대"란 제목 자체가 이미 충분히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버거는 이 책을 통해 사회학이란 무엇인지, 사회학이 어째서 사회과학, 즉 과학으로 분류되는지, 과연 사회학자는 일반인과 어떻게 사회를 인식하는지, 사회란 무엇인지 등등의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이에 대해 답하고 있다. 그것이 버거가 일반인 혹은 사회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이들을 위해 전략적으로 택한 방식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회를 읽어내기 위한 방편으로 수립되기 시작한 사회학 혹은 사회과학의 역사는 인문학의 역사에 비해 짧다. 사회학이 출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연현상에 대해 인간의 통제권이 확립되는 과학과 기술 발전(도시화와 산업화)이 있었다. 그제서야 인간은 비로소 자연현상이 아닌 사회현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사회학은 과거 중세시대였다면 신학이 담당했을 여러 몫들을 계승하고 있다. 즉,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사건들의 원인과 배경, 해결 방안 같은 것들을 모색하는 일 말이다.
사회는 객관적이며 외적인 사실로서 특히 강제력을 지닌 형태로 우리 앞에 마주 서 있다. 사회의 여러 제도들은 우리의 행동양식을 결정하며 심지어는 우리의 기대까지도 구체화한다. <본문 126쪽>
그런 점에서 인문학이 인간 개개인의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것이라면 사회학은 개별적인 인간이 아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개인과 사회의 관계,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법칙들(현상과 이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버거는 사회학 이론은 크게 베버와 뒤르켐의 입장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뒤르켐, 마르크스, 알튀세르, 푸코, 부르디외 등과 같은 구조주의적 입장, 즉 인간 개개인의 의지보다는 사회, 그 자체의 논리(마르크스라면 경제적 토대라고 불렀을)에 의해(그렇다고 인간의 의지를 무시했다는 말은 아니다) 규정된다고 보는 입장과 베버, 베르그송, 후설, 사르트르(물론 내 개인적으로는 키에르케고르와 쇼펜하우어, 니체 역시 여기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와 같은 자원주의, 인간의 주체적 의지를 강조하는 입장을 말한다. 물론 미드와 같이 양자의 상호작용에 의한다는 입장도 있다.
또다른 입장에서 보자면 실증주의적 입장이 있을 수 있을 것이고, 버거가 속해 있다 할 자유주의적 입장, 그리고 마르크스적인 입장이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가 버거가 패전한 추축국의 청년에서 자본주의의 풍요를 만끽하는 자유 신천지인 미국의 시민이 되었다는 점이 중요해진다. "사회학에의 초대"에는 유럽적인 풍부한 인문학적 교양에 대한 강조, 이 책의 부제 격인 "인간주의적 전망(A Humanistic Perspective)"가 강조되는데, 내 판단에 따르면 이는 버거가 유럽적(특히 독일적) 교양에 입각하여 이를 자유주의적 사회학으로 발전시켜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인문교육(liberal education)이 지적 해방(intellectual liberation)과 어원 그 이상의 관계를 가졌다고 가정되는 한에서 사회학의 가르침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가정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즉 교육이 순전히 기술적 또는 전문적인 면으로만 이해되는 곳에서는 사회학을 교과과정에서 제거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본문 231쪽>
자본주의 혹은 미국의 사회시스템에 대해 분명 버거 자신은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는 있으나 그렇다해서 그가 근본적인 변혁을 주장하는 입장, 마르크스적인 입장은 아니란 것이다. 그는 정치개혁에 비해 사회변혁이 좀더 근본적인 변혁이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의 토대를 이루는 경제토대를 강조하는 대신 좀더 관념적인 태도 - 지식인과 교육의 역할을 강조하는 - 를 취한다.
사회학적 이해는 상당한 정도의 각성(disenchantement)으로 이끈다. 각성된 인간은 보수적인 운동과 혁명적인 운동 양쪽 모두에게서는 변변치 못한 위험 인물이다. 전자에게서는 그가 현상유지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필요한 양만큼 쉽게 믿지 않기 때문이며, 후자에게서는 그가 언제나 혁명의 자양분이 되는 유토피아적 신화에 대해 회의적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본문 215쪽>
이는 또한 버거 자신의 입장이기도 하다. 버거의 입장 혹은 사회학은 이데올로기의 가면 뒤에 숨겨진 이면을 찾아내려고 한다. 그것들을 과학적인 절차(준거틀)에 따라 드러내려고 한다. 그러나 사회학은 단지 과학 혹은 과학적인 이란 말에 매몰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회학이 인간주의적 학문으로서 사회구조(혹은 사회라는 감옥)의 죄수가 될지도 모를 인간을 사회학적 각성의 과정을 통해 해방시키는 학문이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사회학은 근본적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학문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버거가 끊임없이 文史哲(인문학)을 사회학적 입장에서 호명해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문학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상상력을 길러주는) 학문이자 예술이며, 역사는 인간 사회가 그동안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를 이를 해결해온 이력을 보여주는 학문이고, 철학은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왜 살아야 할 것이냐는 궁극적인 질문을(비록 답은 해줄 수 없을지 몰라도) 던지게 만드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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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당장 당신이 살고 있는 신문기사 헤드라인의 이면에 갇힌 진실에 접근하고 싶다면 먼저 사회학을 공부해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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