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 이냐시오 라모네 외 지음, 최병권 외 엮음 / 휴머니스트 / 2002년 12월
어제인 2005년 3월 20일 일본 규슈 북쪽 해역에서 리히터 규모 7의 강진이 발생해 현재까지 1명이 숨지고 5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에 대해 우리의 대처는 지난 동남아 쓰나미 피해 이후 개선한다고 했음 에도 여전히 늑장 대응이 문제되었다. 미국이 지난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 이후 보인 대응 행보를 살펴보도록 하자.
사고발생 시각 및 관련 사건(2001.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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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각 한국시각 사고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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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08:45 오후9:45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에 첫 비행기 충돌
오전09:06 오후10:06 세계무역센터 남쪽 타워에 두번째 비행기 충돌
오전09:15 오후10:15 세계 주식시장 모든 선물·옵션 거래 중단
오전09:30 오후10:30 국방부 건물 폭발 발생
오전09:45 오후10:45 팔레스타인 해방민주전선(DFLP) 테러혐의 부인
오전09:55 오후10:55 백악관, 국무부, 재무부 대피령
오전10:00 오후11:00 세계무역센터 타워 첫번째 붕괴
오전10:05 오후11:05 미국내 모든 공항 비행기 이륙 전면 중단
오전10:10 오후11:10 미 의사당 건물에서 폭발 발생
오전10:15 오후11:15 국방부 건물에 비행기 충돌
오전10:15 오후11:15 뉴욕 유엔 본부빌딩 대피령
오전10:25 오후11:25 모든 미국행 비행기 캐나다로 돌림
오전10:30 오후11:30 세계무역센터 타워 두번째 붕괴
<자료 출처 : target=_blank>http://www.ebo.co.kr/america>
그로부터 한달여가 지나기도 전인 2001년 10월 8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을 시작했다. 뉴욕 현지 시각으로 오후 12시 정각, 한국 시각으로 오전 1시의 일이었다. 9.11테러가 발생한 직후 빈 라덴의 알카에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단체들은 즉각 테러 책임을 부인했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 관료들 역시 빈 라덴이 어떤 테러 활동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미국은 사건 발생 오후 즉각적으로 빈 라덴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이와 흡사한 사건으로 지난 1988년 12월 21일 팬암기 폭파 사건이 있었다. 런던발 뉴욕행 미국 팬암항공 소속 보잉747 여객기가 스코틀랜드 로커비(Lockerbie) 상공에서 폭발했다. 일명 '로커비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탑승자 259명 전원과 지상 주민 11명 등 총 270명이 사망했고, 조사결과 폭탄을 이용한 테러임이 밝혀졌다. 미국은 UN을 통해 리비아에 용의자 인도를 요청했으나 리비아는 이를 거부했고, UN은 리비아에 경제제재를 가했다. 로커비 사건이 발생하기 2년 전인 1986년 1월 미국은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를 발표했고, 같은 해 4월 서베를린에서 발생한 폭탄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리비아의 가다피 숙소와 벵가지의 주요시설들을 폭격한 바 있다.
리비아는 지난 1992년부터 미국에 대해 우호적인 제스춰를 취하며 제재중단을 요구하는 협상을 제의했고, 1999년 로커비 폭발사건 재판에 리비아인 두 명을 인도한다. 2001년 2월 이들에 대한 유죄가 확정되어 투옥되고, 리비아 현지에서는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다. 2004년 4월 3일자 "Socialist Worker"에서는 "리비아 정부는 나중에 희생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한다. 그 두 명이 유죄라거나 리비아가 폭발 사건의 책임자라는 것을 입증하는 실질적 증거는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리비아와 미국 사이의 외교관계가 최근에 와서야 호전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리비아는 지난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정보기관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여 지속적인 접촉을 가져왔고, 미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에도(가다피로서는 국내 사정이 자신의 정권 안보에 위협적인 상황-핍폐된 경제상황과 급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위협-을 모면하기 위해) 협력했다.
로커비 사건과 9.11테러를 동일하게 비교할 수는 없다. 국내와 국외에서 일어난 테러란 차이 이외에도, 희생자의 규모나 충격의 정도란 측면에 이 두 사건은 동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건에 대한 미국의 대응 방식에는 너무나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이 책 "아메리카 - 미국, 그 마지막 제국"이 로커비 사건과 9.11테러를 직접 비교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에 예시한 두 사건의 본질이 사실상 같음에도(미국인, 미국이 공격당했다는 점에서) 어떻게해서 다른 대응 방식이 출현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게 구성되었다. 그것은 이 책의 주요 내용이 9.11 사건 이후 미국이 어떻게 제국의 작동방식을 세계 만방에 공포하게 되었는지, 미국은 어떻게 제국이 되었으며, 어떤 제국인지를 살펴볼 수 있는 여러 근거들을 제시한다.
"아메리카 - 미국, 그 마지막 제국"에 대한 여러 신문 서평과 책 머리에 소개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인터넷 매체인 "Weekly SOL"이 네트워크를 맺고 있는 세계 24개국 각지의 50여 명에 달하는 필자(국내외)들이 2001년 9.11 이후의 시점에서 바라본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 대해 학술적인 논문의 깊이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 책에 담고 있는 내용은 저널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내용들은 9.11 사건 이후 변모한 미국, 제국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전세계 여러 지식인들의 즉각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고, 이 책의 의의 자체도 그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살펴본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지닌다. 즉, 이 책에 깊이는 없을지 몰라도, 세계의 반응과 지식인들 나름의 통찰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9.11 이후 미국의 즉각적인 반응은 이전의 테러 사건들에 대해 대처해온 (물론 테러 사건 이후 배후가 자신들임을 밝히는 테러단체들의 그간 관행과도 다른 사건이었지만) 미국의 관행과 크게 다른 방식이었다. 미국은 테러 당일 거의 즉각적이다시피 테러의 배후를 오사마 빈 라덴으로 지목했고, 불과 한 달도 안 된 시점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무력 공격을 가했다. 그리고 2003년 3월 20일부터 4월 14일까지(실제로는 현시점까지 지속되는) 이라크 전쟁을 치뤘다. 9.11 사건 이후 2년도 안 된 시점에서 일어난 미국의 무력 대응들이었고, UN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동의없이 치뤄진 침략전쟁이었다. 이 책의 저자들이 한결같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1988년의 시점에서 미국을 지칭했던 말들, '세계 경찰', '세계의 검투사', '세계의 해결사'와 같은 것은 이제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말들이 지칭하는 미국의 속성은 20세기의 유물이며, 냉전이 끝나고 국민국가의 국경을 허무는 세계화와 정보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제 미국은 더이상 국민국가(nation-state)들 중 우월한 지위를 가진 강대국들 중 하나가 아니라 제국(empire)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전의 관점-미국을 국민국가의 틀로 바라보는 것-은 더이상 유효한 분석틀이 아니며, 제국의 작동방식으로 미국을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 "아메리카 - 미국, 그 마지막 제국"은 모두 4장 '1장 마지막 제국, 2장 아케리카 슈퍼파워, 3장 민주주의와 제국 사이, 4장 세계에게도 신의 은총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제1장 마지막 제국과 제4장 세계에게도 신의 은총을" 부분이다.
제1장에서는 조나단 프리드랜드와 필립스 골럽, 이냐시오 라모네 등이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본질을 묻고, 제국이란 무엇인가란 오래된 질문을 되살려내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미국은 과거의 로마제국(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미국과 로마 제국을 비교하며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곤 한다)과 매우 흡사하면서도 몇몇 점에서 차이를 지닌다. 우선 압도적인 군사력(세계 국방비의 절반 이상을 사용한다)과 사방으로 열려있는 로마의 가도(인터넷), 현지 엘리트를 통한 대리통치 방식, 자국의 역사를 신화화하는 방식 등에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미국과 로마의 가장 큰 차이는 로마의 직접 통치 방식(속주)에 비해 미국은 직접적인 통치는 거의 구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며, 로마의 경우엔 가까이엔 파르티아와 같은 강력한 라이벌이 존재했고, 멀리 동방에는 로마보다 더 큰 제국(중국)이 존재했으나 현재의 미국엔 주변에 그 어떤 라이벌(미국 자신은 이런 가능성 자체를 사전에 봉쇄한다는 세계전략을 가지고 있다)도 존재하지 않는 유일무이한 슈퍼파워란 것이다.
이런 내용들이야 요새 인터넷 좀 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대충은 알고 있는 내용이다. 게다가 저널 나름의 한계가 좀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원하는 이들에겐 다소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단순히 저널 한 두 편이 아니라 각각의 주제별로 분류된 저널의 모음이라고 한다면, 거기에 내용상 겹치는 부분도 다소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최근의 조류를(비록 이라크 전쟁 발발 이전의 내용이란 한계는 있지만) 접할 수 있고, 세계의 반응이란 것이 외국어에 능통한 몇몇 이들을 제외하곤 주로 국내 언론들에 의해 1차적으로 걸러진 것이며, 이것이 또한 미국 중심의 것들이 주된 것이라는 한계를 고려해보면 이 책은 미국 내부의 비판적 시선 혹은 미국을 제외한 다른 세계 지식인들의 주장이라는 나름의 참신함도 함께 담아내고 있다.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노라면 종종 중립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이런 책이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고 비판을 가하곤 하는데, 우리가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 혹은 "제국의 선택"이나 새뮤얼 헌팅턴의 책을 읽으며 이를 중립적이지 않다고 비판하진 않는다. 그 이유는 이 책들이 애시당초 미국의 주장과 입장을 담고 있는 것이지, 대한민국 사람들의 정치적 의견이나 입장을 고려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종 우리는 우리가 처해있는 입장 자체를 망각하고, 미국의 입장을 우리의 입장가 착각해 미국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글이 아닌 내용을 보면서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가하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동양의 오래된 미덕 중용(中庸)의 의미는 물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용에서 말하는 중용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기계론적인 중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역(周易)"에서 말하는 '중정(中正)'의 의미와 같다. 즉, 중(中)을 얻었으면 그 중(中)이 늘 떳떳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용이란 이렇듯 양자의 주장 가운데 떳떳한 것을 택하여 자신의 중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지금 세계 힘의 균형은 어느 일방으로 확연히 기울어져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미국 일방주의에 휘둘리는 세계를 구원하고,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은 세계 인류의 양심적 네트워크에 의하므로 우리들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미국을 세계의 마지막 제국으로 연착륙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어제는 미국에 의한 이라크 침략 전쟁이 벌어진지 만 2주년이었다. 지금 이런 시점에서 중립적인 견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을 당신의 양심에 물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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