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곳에 살기 위하여 - 세계시인선 6
엘뤼아르 지음, 오생근 옮김 / 민음사 / 2002년 10월
1895년12월 14일 태어나서 1952년 11월 18일 사망하여 페르 라셰즈에 묻힌 시인. 폴 엘뤼아르!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호를 한 사람만 꼽자면 프랑스인들은 아마 "빅토르 위고"를 꼽아야 하지 않을까. 만약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사람들은 "알베르 카뮈"와 "장 폴 싸르트르"를 놓고 고민해야 할 거다. 이 고민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만약 시인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폴 엘뤼아르"를 꼽을 것이다. 1980년대를 살아야 했던 어떤 이들에게는 맑스의 고전적인 테마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고민을 떠 안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하나의 고전적인 테마를 알고 있다. 바로 랭보의 테마였던 "인생을 바꿔야 한다"는 고민이 그것이다. 랭보와 맑스의 테마 사이에서 평화로운 조화를 이루어 낸 시인이 있다면, 그는 아마 폴 엘뤼아르였을 것이다.
일명 "사랑의 시인"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시인 엘뤼아르는 동시에 저항의 시인, 정치적인 시인이었다. 그의 시에서 주요 테마가 된 것은 '사랑'이었다. 그가 쓴 저항의 시, 정치적인 앙가주망의 시 역시도 모두 테마는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여인"에서 엘뤼아르는 "그녀는 내 눈꺼풀 위에 있고/ 그녀의 머리칼은 내 머리칼 속에/ 그녀는 내 손과 같은 형태/ 그녀는 내 눈과 같은 빛깔"이라 노래하며 연인과의 합일된 사랑을 노래한다. 동시에 그는 "자유"란 시를 통해 "국민학교 시절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라고 노래한다.
엘뤼아르의 "자유"는 폭력과 전쟁, 죽음과 암흑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리얼리즘의 참다운 정신의 발현이었다. 그의 이런 정신은 문학사조상으로는 "쉬르 레알리즘"을 통해 발현되었다.그러나 그의 정신만큼은 멀리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쳐 1970년대 유신시대의 김지하는 "타는 목마름으로"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라고...
그는 파리 북쪽 교외에 있는 노동자 거리 생 드니에서 출생하였으나 비교적 유복한 중산층 출신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했던데다가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폐결핵으로 공부를 중단해야 했다. 1911년부터 1913년까지 스위스의 다보스의 요양원에서 지내며, 보들레르, 아폴리네르, 휘트먼의 시를 읽으며 스스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소년 엘뤼아르는 이곳에서 그의 첫 부인이자, 그에게 쓰라린 상처를 남겨준 러시아 태생의 한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여인은 훗날 '갈라'라는 애칭으로 불리우게 되는데, 갈라는 초현실주의자들의 한 사교 모임에서 화가 달리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때 엘뤼아르는 둘의 행복을 빌어주며 갈라의 곁을 스스로 떠난다.
갈라와 헤어진 엘뤼아르는 두번째 부인 마리아 벤즈(뉘쉬)를 만나 결혼하면서 쉬르레알리즘과 결별하게 된다. 엘뤼아르가 가장 "완전한 여인"이라고 예찬한 뉘쉬와의 사랑은 그에게 수많은 아름다운 시를 낳게 했고, 이런 영향력은 뉘쉬의 죽음 뒤에도 지속된다.
"나는 오래전부터 사랑이란 내 자유를 고통스럽게 희생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은 달라졌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는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도 않고 질투도 하지 않으며 그 여자는 나를 자유롭게 한다. 이제 나에게는 자유로와질 수 있는 용기가 있다."
엘뤼아르를 정치적 앙가주망의 시인, 저항의 시인으로 만든 것은 당시 세계를 위협하던 파시즘이었다. 그는 1936년을 전후하여 점차 사회적, 정치적 관심을 보이며 변모해 간다. 그는 "지금의 모든 시인은 그가 다른 사람의 생에, 공동의 생에 깊이 관여되어 있음을 주장할 권리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때가 왔다"고 쓴다. 그는 앞으로 다가올 시대가 시련의 시대가 될 것이며, 시인들을 비롯한 예술가들이 그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에 참여할 것을 부르짖었다. 엘뤼아르는 피카소에게 영향을 주었고, 피카소는 공산당에 입당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엘뤼아르는 자유를 위한 투사(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통지문
그가 사망하기 전날 밤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짧은 밤이었습니다.
아직 살아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손목의 피가 얼얼해졌습니다.
육체의 무게가 역겹게 느껴졌고
육체의 힘이 신음소리를 내게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공포의 밑바닥에서
그는 웃음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 옆에는 한 사람의 동지도 없었지만
복수해 줄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를 위해서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엘뤼아르는 "시인은 자기의 사상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그 사상은 진보를 향한 인간의 궤적 속에서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다." 라고 말하며 1944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항독비밀저항운동에 가담하여 싸웠다. 그는 작가국민위원회의 북부 책임자가 되어 비밀 출판물인 <심야총서>를 간행하고, 자유와 조국 해방을 위해 시를 썼다. 독일군 점령 아래 싸우는 프랑스의 항독 투사들에게 그의 시는, 그의 말은 무기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1946년 강연을 위해 스위스 여행 중 그는 한 통의 전보를 받는다. 아내 뉘쉬의 죽음이었다. 니쉬의 죽음으로 폴 엘뤼아르는 1년 동안 실어증 속에 빠져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엘뤼아르가 다시 기운을 찾게 된 것은 1949년 멕시코 세계평화회의에 참가했다가 여인 도미니크를 만나면서 부터였다. 그러나 그는 뉘쉬의 죽음으로 핍폐된 육체를 회복할 수 없었고, 1952년 과로와 협심증이 겹쳐 숨진다. 그의 유해는 전세계 지식인과 문인의, 무엇보다 자유와 평화를 사랑한 이들의 애도를 받으며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 묻혔다.
우리의 삶2
우리는 혼자서가 아니라 둘이서 목적지를 향해 가리라
우리 둘이 서로를 알게 되면 모든 사람을 알게 되리라
우리는 모두 서로를 사랑할 것이며 우리의 아이들은
고독한 자가 눈물 흘리는 서글픈 전설을 비웃으리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