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이나 설 명절 특집 프로그램 중에는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출연해 장기 자랑을 보이거나 그들이 바라본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이 자주 편성되곤 한다. 아마 이런 기획방향을 확장시켜 고정 프로그램으로 만든 것이 <미녀들의 수다>일 것이다. 조선왕조 500년, 유교의 가르침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반도에 터를 잡고 사는 민족은 우리 만 아니라 발칸반도나 다른 지역의 민족국가에서도 드러나듯 유난히 체면치레에 집착하는 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존심이 “킹왕짱”이다. 아마도 대륙과 해양의 양쪽으로 집중 공략 받기 좋은 지리적 위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륙 세력의 기세에 밀리면 호리병에 갇힌 처지가 되어 민족 자체가 흡수 통합되기 십상이고, 반대로 해양 세력의 기세에 밀리면 대륙 진출의 교두보, 병참기지가 되어야 하는 입장이니 말이다.
'일본인 꼰대(?)'가 들려주는 답답한 한국 이야기
모모세 타다시는 예전에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 따라잡는 18가지 이유』란 책을 내어 당대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외국인의 시선에 비춘 한국 사회상을 담는다는 기획물들이 연이어 출간되는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외세의 변화에 둔감하여 국권을 침탈당한 경험이 있는 민족이기에 특히 세계의 변화에 민감한 편이며, 글로벌 스탠다드와 상관없이 혹여 외국인들의 눈에 우리가 무슨 책잡힐 만한 무엇이 없는 고민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엔 그가 “다른 나라를 너무 의식하지 마세요”라고 한다. 그가 앞의 책을 내고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나는 앞서 모모세 타다시가 출간한 책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번 『여러분 참 답답하시죠?』를 보면서 앞서의 책까지 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결론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모모세 타다시 ‘선생’에게 내가 받은 인상은 “첫째, 그는 일본을 사랑하는 일본인이다. 둘째, 그는 한국도 일본 못지않게 사랑하는 일본인이다. 셋째, 그는 전반적으로 보수적이고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사람이다. 넷째, 이처럼 건강하고 균형 잡힌 보수라면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둘 필요가 있겠다”란 것이었다.
제목부터 절묘하다. 『여러분 참 답답하시죠?』 라니.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 중 태반이 답답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선출한 보수 세력도 답답해하고 있으니 그의 정책에 반대하고, 비판적인 세력이야 오죽 답답할까 싶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인데, 내가 더욱 더 답답하고 갑갑한 이유 중 하나는 이를 비판하는, 이른바 ‘좌빨’의 비판 역시 1980년대에서 1990년대를 거치며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이명박 정부와 이에 편승한 수구언론의 이념공세를 보고 있노라니 국민 대다수의 생각과 어쩜 이리도 정반대로 가는지, 그야말로 기가 막혀 상대할 가치도 없어 보일 지경이다.
대한민국은 왜 여기서 헤매고 있을까? - '프라이드'를 잃어버린 한국인들
모모세 타다시의 글은 가벼운 에세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그가 한국 사회에 체류해온 40여 년의 세월 속에 몸소 체험하고 느낀 부분들을 정리한 것이다. 물론 때로는 함께 일했던 과거 포항제철의 박태준 회장에 대한 애틋한 정서가 읽혀지기도 하고, 박근혜 씨에 대한 기대가 엿보이는 측면이 다소 거슬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에 대해 특별히 민감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냥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이지 과도한 예찬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먼저 한국인들 대다수가 품고 있을 이 같은 의문에 출발한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왜 대한민국은 여기서 헤매고 있을까?”
내가 보기에 한국의 경제력은 이미 선진국 수준이다. 세계 2백여 개국 가운데 11, 12위를 다투고 있으니 경제력으로만 따진다면 이미 선진국 아닌가. 그러면 한국이 선진국인가? 한국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아직 멀었다’는 대답부터 ‘곧 될 것’이라는 대답까지 다양하다. 경제 수준으로 보자면 선진국이 되고도 남고, 한국 사람의 잠재력은 선진국 이상이다. 그런데 왜 한국은 아직도 선진국이 되지 못한 걸까? <본문 6쪽>
언젠가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데칼코마니처럼 판박이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적이 있다. 그들이 노무현 정부를 비판할 때 즐겨 사용한 것 중 하나가 세계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우리만 과거에 집착하고 연연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이 그와 똑같다. 마음속에 스승이 없는 노무현 대통령이 남의 말 안 듣는 거나 고학으로 혼자서 자수성가했다고 늘 입이 닳도록 말하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남의 말 안 들어주기는 매한가지다. 둘 다 말하는 거 좋아하고, 결정적으로 대통령으로서의 품격을 보여주는데 실패한, 실패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모모세 타다시는 이미 지나간 대통령인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평가를 하는 대신, 아직 임기가 ‘짱짱하게’ 남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충고하고, 한국인들에게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충고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듯하다. 모모세 타다시가 한국사회에 던지는 충고를 한 마디로 응축한 것이 “일류가 되려면 품격을 갖춰라!”란 것이다.
지금 한국은 경제만 회복되면, 국민 소득이 늘어나면 선진국이 되고 저절로 일류 국가가 되는 줄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자꾸 더 많이 팔고, 더 파헤치며, 더 많이 지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 사회에 부족한 것은 그런 물량이 아니라 질적 성장이다. 물량 사회가 아니라 고급사회, 문화와 품격이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내가 말하는 고급, 품격은 ‘인간적’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본문 8쪽>
사실 모모세 타다시의 의문과 답변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미 머리말에 모두 드러나 있다. 그는 한국사회가 지난 10년간 잃어버린 것은 ‘경제’가 아니라 ‘인간미’이며 사람들이 이토록 공허해진 까닭은 지갑이 비어서가 아니라 프라이드를 잃어버린 탓이라고 말한다.
돈이 없어도 자신만의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다면 공허하지 않다. 그런데 요즘 한국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면 좋은데, 다른 사람이 ‘돈 없어도 괜찮다’고 하면, 그 말도 믿지 않는다.
‘돈이 곧 행복’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삭막해질 수밖에 없다. 늘 남과 비교하여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늘 남의 눈을 의식하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을 거두려 한다. 하지만 그런데 올인하면 끝내 만족할 수 없다. 늘 더 잘 사는 남의 꽁무니를 따라가야 하니까.
‘돈’이 ‘정’을 앞질러 가면 프라이드를 잃게 된다. 자존심 높은 한국 사람들에게 프라이드를 잃는 것처럼 치명적인 것은 없다. 포커판의 ‘조커’처럼 ‘돈만 있으면 오케이’가 되어버린 사회는 솔직히 매력도, 재미도 없다. <본문 27쪽>
실용주의도 '철학'이 있어야 하는 거다
만약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윗글 같은 내용이었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꼰대’스러운 책이 되었겠지만 모모세 타다시의 이야기는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통일 분야에 이르기까지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귀담아 들을 만한 충고를 던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제는 ‘근본주의 꼰대’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박노자 ‘옹’ 보다 훨씬 더 실용적이다. 서구에서의 ‘실용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라도 동양에서의 ‘실용주의’라 함은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수학호고 실사구시(修學好古實事求是)”에서 유래된 “實事求是(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추구한다)”의 ‘실(實)’과 경서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전해지는 『상서(尙書)』의 “정덕(正德)·이용(利用)·후생(厚生)·유화(惟和)”란 구절에서 따온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용(用)’이 합쳐진 말이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은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비견할 만하다고 말했는데, 이때 관중은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그 관중이면서 동시에 실용주의 정치철학의 대부로서의 관중이기도 하다. 관중(관자)은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넉넉해야 영욕을 안다”고 말했다. 실용이란 마땅히 이러해야만 한다는 ‘당위(當爲)’나 윤리(혹은 이념)가 아니라 실사구시, 이용후생을 말하는 것인데,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출범한 이명박 정부에는 실용주의가 상실된 지 오래다. 실용주의가 실종된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사실은 외교․안보 분야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년 동안 정부와 민간단체가 심혈을 기울여 구축해놓은 대북정책 덕분으로 주도권을 쥐고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호기를 맞이했다.
그래서 모모세 타다시는 “새 대통령은 미국보다 북한을 먼저 방문하라”고 충고한다. 취임 초에 해야만 남북관계가 향후 5년간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고, 정책의 일관성이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지난 정권에서 이루어낸 남북 협상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당선자로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운영할 때, 중국과 미국 등에 특사를 보내면서 북한은 뺐다. 나 같으면 중국과 미국에 특사를 보내기 전에 북한에 먼저 특사를 보내라고 충고하고 싶지만, 그러는 것이 중국이나 미국 같은 강대국에 눈치가 보인다면 동시에 특사를 보내면 될 일이었다. 그러면 국민들도 이 대통령의 주도력과 당당함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꼭 이번만이 아니라 한국 대통령은 으레 북한부터 방문하는 전통이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멀리 있는 강대국 미국보다 같은 민족이 사는 가까운 북한 땅을 먼저 찾아가 민족의 앞날을 구상한다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보통사람들도 새로운 자리에 오르면 우선 가까운 가족과 친척, 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부터 한다. 그 다음에 잘 사는 옆 동네 사람을 만나도 늦지 않다.
한국과 북한의 관계가 돈독해지고, 북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나라가 한국이 되어야 한다. 아직도 북한 뉴스는 미국발, 일본발이 많다. 왜 북한 뉴스를 다른 나라를 통해 듣는가. 앞으로는 서울발 북한 뉴스가 가장 빠르고 믿을 만한 소식이 되어야 맞다. <본문 119쪽>
더 나아가 모모세 타다시는 “김정일이 집권하고 있을 때 도와줘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척이나 실용적이다.
한국이 북한을 도와줄 때마다 “김정일 정권은 독재 정권이니까 북한 체제가 바뀌지 않으면 도와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데, 내 생각은 그 반대다. 오히려 김정일 정권이 확고하게 버텨주는 것이 낫다. 산업화를 시작하며 경제를 일으킬 때 정권이(특히 북한처럼 폐쇄된 나라에서) 자주 바뀐다면 투자에 따른 경제효과를 전혀 거둘 수 없게 되고, 오히려 혼란과 부패가 가중된다. 그러면 그 여파는 주변 나라에도 미치게 될 것이고,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아직 민주주의가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나라에서 산업화를 시작할 때의 경우다. <본문 151쪽>
이 책이 지난 8월(2008년)에 출간되었는데 필자 소개 글을 살펴보니 올해 나이 70세이고 1963년부터 일본종합상사 도멘의 한국 주재원으로 일했고, 1971년부터 15년 동안은 포항제철 건설현장의 현장책임자로, 현재는 미쓰이물산의 한국법인에서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런 경력을 지닌, 이 정도 연배의 어르신들(혹은 꼰대들)에게 나는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오랫동안 종합상사인으로 살아왔던 그가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이 한국의 경제다.
꼰대 어르신!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 보수주의자 맞으세요?
그는 지난 대선에서 후보 공약으로 추천할 만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소개해달라는 제의에 한 마디로 “한 해 소득이 3천만 원 이하인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면제”해주고 그 대신에 “대기업이서 세금을 더 많이 거둬 들이”라 충고 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대기업들이 지난 몇 십 년 동안 국가의 보호와 국민의 지원에 힘입어 급성장한 한국 대기업은 자기만 잘 해서 커온 기업이 아닌데, 돈 많이 벌었다고 자기네들끼리 노나 가지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떻게 임원들의 상여금이 몇 십 억 원에 달할 수가 있냐고 도리어 의문을 제기한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비해 많은 월급을 타가는 것만 문제 삼는 사회 분위기에서 진일보한 제언이다.
그동안 대기업이 사회를 위해서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재단도 만들고, 박물관과 미술관도 만들고,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돈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따져봐야 할 게 있다. 그런 일은 대기업의 미담으로 참 듣기 좋고 보기 좋은 일이지만, 세금이라는 좋은 방법이 있는데 왜 회사가 직접 그런 일을 하느라 또 경비를 들이냐 하는 점이다. …<중략>… 내가 서민 세금을 면제하고 기업세금을 올리라고 제안하는 것은 단순히 도의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하면 경제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서민들의 세금이 면제되면, 서민들은 면제받은 돈으로 무얼 할까? 한국 엄마들은 첫째 아이들에게 투자하고, 둘째 살림을 장만할 것이다. <본문 173쪽>
그는 뒤이어 대기업들은 경제연구소 같은 거 만드는데 돈 쓰지 말고 세금을 더 내라고 말한다. 대기업 경제연구소에는 뛰어난 학자와 전문가들이 몰리겠지만, 어디까지나 그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하게 되므로, 세금으로 연구소를 지원하면 당장에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기초연구가 축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한 기업이 투자하기 힘든 공곡의 이익과 관련된 부분은 세금만이 해결법이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부는 그와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는 중이다. 모모세 타다시의 글을 읽다보면 이 사람 보수 맞아? 혹시 진보정당의 구성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래의 대목을 보자.
한국 직장은 임금은 높지만 노동시간이 길다. 산업이 발달할수록 한 사람의 생산성은 점점 높아진다. 그래서 일자리는 더욱 부족해지고. 그런데 하루 여덟 시간 일하는 직장에서 하루 다섯 시간, 네 시간으로 줄이고 2교대, 3교대를 실시하면 어떨까? 그러면 일단 일자리가 늘어난다.
그럴 경우 회사 측은 임금부담이 늘어나는데, 직원들은 늘어난 여유 시간 대신 임금을 조금 낮추어야 한다. 예를 들어 35퍼센트 낮추었다고 치자. 이에 반대하는 직원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내 얘기를 더 들어주기 바란다.
일단 온 나라 직장의 임금이 똑같은 비율로 깎여야 한다. 나 혼자 임금이 삭감되면 불만스럽지만 모든 사람의 임금이 다 깎이면 불만은 조금 덜해진다. 더 중요한 것은 늘어난 자유 시간 동안 직원들은 자기 충전과 재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들은 각자 노동력, 몸값을 더욱 높인다. 직원의 능력이 향상되면 창의성이 빛을 발해 생산성이 더욱 높아지고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진다. <본문 187쪽>
이 사람은 말끝마다 시장과 경제를 말하는 보수주의자, 이른바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자유민주주의자가 맞다. 왜냐하면 그는 삼성의 차명계좌 비자금 폭로 사건이 너무나 한국적인 사건이었다고 말하면서도 선거 시즌에 유독 이런 사건이 집중되는 것과 그래도 그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이 이런 사건을 폭로하는 것에 대해 한편으론 용기로 높이 평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삼성이 비자금사건으로 수사 받는 것을 일본과 대만은 좋아했다면서 그것이 현실은 현실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건을 처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기업 수사는 ‘한꺼번에’ 그리고 ‘빠르게’ 매듭짓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기업의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 정말 조사를 해야겠다면 한꺼번에 해버리되, 빨리 끝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한 일본인이 한국에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실제 경험하면서 쓴 이야기이다. 그가 다른 나라 사람도 아닌 일본인이기에 우리가 느끼는 생각도 남다를 수 있다. 한쪽은 과거에 대해 정확하게 사과하고, 인류를 위해 공헌하는 보통국가가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불구국가이고, 다른 한쪽은 정상적인 민족국가가 되길 열망하지만 이념의 장벽에 막혀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마주보는 불구국가란 측면에서 한국은 일본을 바라보며 선진국이 되기엔 품격이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일본은 한국을 바라보면서 또 비슷한 비판을 가한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답답한 마음이 많이 가셨느냐고 한다면 결론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최근 국회 청문회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니 70년대~80년대 국회도, 아니 그 무렵 대한민국 정치 보다 민주화 이후 현재의 모습이 과연 얼마나 나아졌는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진보가 체질 개선 못하는 이유가 보수 때문인지, 보수 때문에 진보가 체질 개선을 못하는 건지 답답할 뿐이다. 소통이 가장 필요한 건 대통령과 국민이 아니라 어쩌면 진보와 보수일지도 모르겠다. 그놈의 당위와 윤리 좀 던져두고 그 보수주의자들이 좋아하는 확고한 국가관으로 서로 이야기 좀 해보자. 어떻게 하면 이 민족, 이 국가가 잘 살 수 있는지...
* 이 책에서 사회비판적인 다른 필자들의 글과 같은 신랄함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특별히 학문적 훈련을 쌓았다거나 현장의 운동판에서 잔뼈가 굵거나 외국으로 귀화하거나 망명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의 시선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직장인들 혹은 <조중동>을 읽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왔던 사람들의 시선과 겹친다. 우리 사회를 보면서 정말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진보라거나 보수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읽었을 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사실 우리 사회처럼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는, 무식한 (?, 지식이 아니라 상식이 없다는 뜻이다)보수도 드물다는 걸 확인케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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