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子曰 詩三百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시 삼백 편을 한 마디 말로 나타낸다면 생각함에 사특함이 없다는 것이다.”
「위정」 두 번째 장의 내용은 매우 간단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매우 심오하다. 공자의 “詩三百”이란 표현은 말 그대로의 3백 편의 시(詩)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경(詩經)』을 지칭하는 말이다. 『시경』은 『논어』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책으로 어떤 이는 『시경』의 편찬자가 공자 자신일 것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시경』이란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예전엔 공자의 표현대로 그저 “시(詩)” 또는 “시삼백(詩三百)”이라고 불렀으며, 육예(六藝)인 역(易), 서(書), 예(禮), 춘추(春秋) 등과 마찬가지로 ‘경(經)’이란 존칭은 사용되지 않았다. 전국시대 말기부터 ‘육경(六經: 詩, 書, 樂, 易, 禮, 春秋)’이란 표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후세에 이르러 ‘십삼경(十三經)’이라 불리게 되는 책들 중에서 『효경(孝經)』을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서명(書名) 뒤에 ‘경(經)’이 붙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시(詩)에 경이 붙기 시작한 것은 남송(南宋) 초엽 요강(廖剛)의 『시경강의(詩經講義)』부터라고 하는데, 이 무렵부터 육경 등의 경서에 ‘경’자가 붙어 높여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시경』의 시가 300여 편으로 정착되기까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한 것이 본래 춘추 시대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 불리어지던 민요를 중심으로 각 지방의 관리들이 시가를 수집하여 이를 모은 것이란 설이 가장 유력하다. 민심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채시관(采詩官)들이 임금의 명을 받아 저자거리에서 불리는 민요를 모은 것들을 공자가 편집하여 현재의 형태로 정리했다는 설이다. 실제로 공자가 『시경』을 편찬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이 장에서 ‘시 삼백’이라 하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이미 현존하는 『시경』의 형태가 갖춰졌다고 할 수 있다. 『시경』은 중국 최초의 시가총서(詩歌叢書) 격이며 중국 순문학의 시조에 해당한다. 『시경』에는 지금으로부터 주(周)나라 초기부터 춘추(春秋)시대 중기에 이르는 약 500여 년간의 시가 305편이 수록되어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본래 3,000여 편이었던 것을 공자가 추스려 311편으로 정리했다고 하는데, 본문까지 전해지는 것은 모두 305편이다.
『시경』에 수록된 300여 편의 시는 다시 풍(風), 아(雅), 송(頌)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남(周南), 소남(召南), 패(邶), 용(鄘), 위(衛), 왕(王), 정(鄭), 제(齊), 위(魏), 당(唐), 진(秦), 진(陳), 회(檜), 조(曹), 빈(豳) 등 15국의 민요를 담고 있는 풍이다. 어떤 이들은 풍을 ‘풍자(諷刺)’, ‘풍유(諷諭)’의 뜻을 지닌 ‘풍(諷)’이라고 풀이하기도 하였으나 현대에 와서는 중국어의 민간가요를 뜻하는 ‘풍요(風謠)’로 풀이한다. 전국시대 말엽부터 ‘풍’자 앞에 나라 국(國)을 붙여 ‘국풍(國風)’이라 했는데 여러 나라의 민요를 의미하는 말이다. 시삼백 가운데 절반인 160편을 차지하는 국풍은 시경의 백미(白眉)로 당대의 현실을 생동감있게 반영한 소박함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평가받는다.
그 내용은 주로 남녀간의 연애나 농경사회의 풍경, 사회모순과 현실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는데, <칠월(七月, 豳風)>, <벌단(伐檀, 魏風)>, <석서(碩鼠, 魏風)> 등은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분노와 한을 묘사하고, <보우(鴇羽, 唐風)>, <파부(破斧, 빈풍)>, <동산(東山, 빈풍)>, <무의(無衣, 秦風)> 등은 가혹한 부역과 병역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한을 <신대(新臺, 邶風)>, <남산(南山, 齊風)>, <주림(株林, 陳風) 등은 통치계급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 이외에도 남녀간의 사랑과 결혼에 대해 노래한 <건상(褰裳)>, <출기동문(出其東門)>, <진유(溱洧)>(이상 鄭風), <목과(木瓜), <상중(桑中)>(이상 衛風), <대거(大車)>, <채갈(采葛)>(이상 王風), <정녀(靜女, 패풍)> 등이 있다.
공자라 하면 “공자왈 맹자왈”하여 명분(名分)에만 치우친 이야기를 하는 답답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런 부분들은 후대 성리학적인 가르침만으로 공자를 해석하는데서 오는 오해란 생각이 든다. 『시경』에는 이처럼 당대 민중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이 담긴 ‘국풍(國風)’만 있던 것이 아니라 중원의 조정을 중심으로 숭상되던 정악(正樂), ‘아(雅)’도 수록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국풍’이 당대의 대중문화인 속악(俗樂)이라면, ‘아’는 오늘날의 궁중음악인 ‘아악(雅樂)’에 해당하는 것으로 의식가(儀式歌)였다. 그러나 민중들의 속악에 비해 아악은 대부분 당대 사대부들의 작품으로 허탈하고, 진지하지 못하여 예술적인 면에서 있어서 국풍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외에 ‘송(頌)’은 종묘에서 제사지낼 때 신을 찬양하거나 조상들의 은덕을 찬송하는 악시(樂詩)들이다. 과거 시(詩)가 오늘날의 문학에 해당하는 시가 아니라 노래인 시가(詩歌)라 할 때 국풍이 서정시라면 아(雅)와 송(頌)은 의전에 맞추는 전례시였던 셈이다.
공자는 아들 백어(伯魚)에게 이르길 주남(周南), 소남(召南)을 읽어 보았느냐면서 이 시(詩)들을 공부하지 않고서는 마치 담장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子謂伯魚曰 女爲周南召南矣乎. 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牆面而立也歟.
공자께서 백어에게 말씀하시길 “너는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였느냐?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지 않으면 마치 담장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으니라.” - <『논어(論語)』, 「양화(陽貨)」편, 10장>
공자는 어째서 시를 읽지 않는 사람은 담장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다고 했을까?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문사철(文史哲)’이라 하여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으로서 인문학을 강조해왔다. 그중에서 문학(文學)이란 다양한 조건 아래 놓인 인간의 반응과 행위를 이성과 더불어 감성적인 차원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해볼 수 있도록 하는 학문이자 예술이다. 공자는 문학(시)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인간의 심중 깊은 곳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살아있는 학문을 할 수 없다고 말한 것과 진배없다.
子曰 小子 何莫學夫詩. 詩 可以興 可以觀 可以羣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너희들은 어찌하여 시를 공부하지 않느냐? 시를 공부하면 감흥을 나타낼 수 있으며, 사물을 살필 수 있고, 무리와 어울릴 수 있으며, 원망할 수 있고,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길 수 있으며,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도 많이 알 수 있으리라. - <『논어(論語)』, 「양화(陽貨)」편, 9장>
또한 제자들에게도 어째서 시를 공부하지 않느냐면서 “감흥을 나타낼 수 있으며, 사물을 살필 수 있고, 무리와 어울릴 수 있으며, 원망할 수 있고,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길 수 있으며,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도 많이 알 수 있다”며 시 공부의 효용과 의미에 대해 강조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공자가 아들 백어와 제자들에게 시에 대한 공부를 강조했던 것은 물론 『시경』을 공부하란 말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강조했던 것이 사대부들의 정악에 해당하는 ‘아’가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속악인 국풍을 공부하라고 했다는 점이다. 이를 오늘날로 이야기하자면 공자가 제자들에게 대중문화를 공부하라고 요구한 셈이다.
「학이」편 4장에서 육예(六藝)에 대해 말한 바 있는데, 육예란 주(周)나라 시대에 행해지던 교육과목을 의미한다.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기(禮記)』, 『악기(樂記)』, 『역경(易經)』, 『춘추(春秋)』와 같이 사대부의 기초적 교양에 필요한 학문을 모아놓은 책들을 역시 육예로 불렀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유파에 해당하는 학문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각종 서적들을 두루 섭렵하도록 했는데, 이는 당시 제자백가들의 풍속과는 많이 다른 점이었다. 공자가 기르고자 했던 인재는 자기 문하(門下)의 제자들이 아니라 세상에 필요한 인재였기 때문이다.
『장자』 「천하」편에서는 유가의 가르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詩爾志, 書爾事, 禮爾行, 樂爾和, 易爾陰陽, 春秋爾名分.
시로써 뜻을, 서로써 정치를, 예로써 행실을, 악으로써 화합을, 역으로써 음양의 이치를, 춘추로써 명분을 계도했다.
각 구절의 앞에 나오는 한자어는 육예와 동일한 의미이며, 그 뒤에 나오는 한자어는 이와 같은 교육을 통해 얻고자하는 것들이었다.
공자가 “생각함에 사특함이 없다(思無邪)”고 말한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장르적으로 ‘시(詩)’란 꾸밈없는 진실한 마음(진정성)이 담겨 있는 것이라 말한 것일 수 있고, ‘시 삼백’에 담긴 백성의 진솔한 마음과 감정에는 사특함이 없다고 말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속뜻이야 어떤 것이든 스승으로서 공자가 제자들에게 시 공부를 강조한 까닭은 다음의 구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시 삼백 편을 외우고 있더라도 정치를 맡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사방의 나라에 나아가 혼자 상대할 줄 모른다면, 비록 많이 외우고 있다한들 무엇에 쓰겠는가?(通詩三百 授之以政 不達. 使於四方 不能專對. 雖多, 亦奚以爲.)<『논어(論語)』, 「자로(子路)」편, 5장>” 공자가 제자들에게 시를 공부하라고 강조한 참된 이유는 백성의 뜻과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을 키워 정치에 반영하고, 국가대사를 위해 외국에 나갔을 때 변설(辨說)의 효용을 위함이란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대중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위정자, 지식인은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것과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