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論語)-<위정(爲政)편>03장.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법제로써 이끌고 형벌로써만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형벌만 면하면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그러나 덕으로써 이끌고, 예로써 다스린다면 부끄러움을 알고 바로잡게 될 것이다.”
춘추전국시대를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라 하지만 정치철학적인 측면으로 구분하자면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한비자(韓非子)는 “二炳者刑德也(두 가지 권력은 형벌과 덕이다)”라고 했는데, 권력자가 가지고 있어야 할 두 가지 권력은 형벌과 덕이란 말이다. 물론 이때의 ‘덕(德)’은 유가적인 의미에서의 덕이란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물질적인 상훈(賞勳)으로서의 ‘은덕(恩德)’이란 의미가 더 크다.
‘형(刑)과 덕(德)’은 국가 통치의 중요한 요소로서 덕치(德治)를 주장하든, 법치(法治)를 주장하든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덕’을 좀더 중시하느냐, ‘형’을 좀더 중시하느냐에 따라 왕도(王道), 패도(覇道)로 구분되었다. 공자를 계승했으나 그보다 훨씬 급진적인 근본주의자였던 맹자는 “以力假仁者覇(힘으로 인(仁)을 가장하는 것을 패(覇)라 하고, 덕(德)으로 인을 행하는 것을 왕(王)이라 한다)”라 하여 패도정치를 비판했지만 그 역시 “罪人不孥(죄인을 처벌하되 처자에게까지 미치지 않는다)”라 하여 형벌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3항에서 금지하고 있지만 연좌제(連坐制)는 우리 기억에 아직까지도 생생한데, 사실 죄인의 연고를 따져 이웃까지 처벌하는 형벌체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오래된 제도였다. 맹자는 이것을 부정했다.
공자는 「위정」편 1장에서 “爲政以德”을 강조했는데, 3장에서는 패도와 비교하여 다시 한 번 덕치의 중요성과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 말하지만 사실 서구에서의 ‘법’이란 전제왕정(강자)에 저항해 시민(약자)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출발했다. 서구에서 위정자란 언제나 패자(覇者)로 규정되지만 동양에서 위정자란 북극성처럼 모두가 우러러 보는 대상으로 몸소 덕을 실현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본받을 수 있도록 하는 모범을 보이는 스승이자 어버이 같은 존재여야 했다. ‘君師父一體’란 단순히 ‘임금과 스승, 아버지는 같은 존재’란 의미가 아니라 이들을 통해 ‘하늘의 도리(天道)’가 몸소 체현되는 존재라는 의미인 것이다.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라 하는 ‘고조선’ 시대에도 이미 ‘8조 법금’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반고의 『한서(漢書)』에 수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8개 조항 중 3개항만이 전해지고 있다.
1. 相殺以當時償殺(사람을 죽인 자는 죽음으로 갚는다.)
2. 相傷以穀償(남에게 상해를 끼친 자는 곡식으로 배상한다.)
3. 相盜者男沒入爲其家奴女子爲婢 欲自贖者人五十萬(도둑질한 자는 남자는 그 집 종(奴)이 되고 여자는 계집종으로 만들고, 속전하려는 자는 50만전을 배상한다.)
법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미 법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사회가 복잡해지고, 개인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기 때문에 법에 의해 규칙이 정해지고, 그에 따르지 않으면 처벌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널리 공표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법률이 제정되기 전의 심판은 ‘신판(神判)’이었다. 중세 기독교의 마녀심판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기엔 암흑천지였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신에 의한 판결은 매우 공정하다고 믿었다. 비록 물에 빠뜨렸을 때 떠오르는 사람은 죄가 있어 물조차 거부한다는 단순한 믿음이긴 했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은 사후에 절대자에 의한 심판을 통해 ‘권선징악(勸善懲惡)’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이 발전하면서 심판은 신이 아니라 인간의 손으로 넘어왔고, 법이 신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법이 신을 대신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문제가 생겼는데 하나는 법의 권위와 정당성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다른 하나는 법의 조문에 없는 죄는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그것이다. ‘신이 없다면 죄도 없다’는 말은 반대로 신이 존재한다면 신의 섭리, 하늘의 섭리에 따라 천리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면 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법, 다시 말해 통치원칙이 신을 대신하는 과정에서 전제 군주들은 종교에서 권위의 원천을 찾았다. 동양에서 위정자는 천자(天子)로서 천문(天文)을 독점하고, 하늘과 직접 소통하는 제(天祭)를 올렸고, 서양에서 황제는 신의 대리자인 교회에 의해 권위를 부여받았다. 신을 대신한 통치자는 통치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법률을 제정하고 이에 따라 통치했으나 자신의 이해에 따라 법을 재단했다. 이처럼 권력자가 범죄와 형법을 마음대로 전단하는 것을 ‘죄형전단주의(罪刑專斷主義)’라 한다.
권력자들에 의해 법률이 마음대로 시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등장한 것이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법률이 없이는 형벌도 없다(nullum crimen, sine lege nulla poena sine lege)”는 원칙이다. ‘신이 없다면 죄도 없는 것’처럼 법률로 미리 규정하지 않은 범죄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라 하는데, 죄형법정주의가 등장한 까닭은 위정자에 의해 시민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될 위험 때문이었다. 법률이 없다면 죄도 없다는 것은 비록 권력에 밉보이더라도 법률에 의거하지 않고서는 어떤 처벌도 내릴 수 없으며, 처벌을 내리더라도 법에 의해 정해진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는 권력의 자기제한(自己制限)을 통해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사회가 복잡해지고, 급변하면서 발생하는 행위가 국민의 법 감정상으로는 분명히 죄에 해당하지만 법률에 의해 정해진 조문이 없거나 처벌이 너무 과하거나 미약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양 못지않게 발전했던 동양의 고대국가의 율령체계에서는 이런 문제를 인율비부(引律比附)라 하여 비록 어떤 죄가 율문(律文)에 정한 조문이 없을 지라도 전후사정과 조리를 고려하여 비슷한 조문과 비교하여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빼서 죄를 정하도록 했다지만 이것은 고대국가체제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근대국가체제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는 법이란 것이 벌레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일상생활을 세밀하게 규정하고 있어도, 반대로 너무 엉성해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또 아무리 법으로 규정하고 있더라도 권력자들은 법망을 피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한비자 역시 “法不阿貴, 繩不橈曲(법은 귀함에 아부하지 않고, 먹줄은 나무가 굽었다고 해서 구부려 긋지 않는다)”하여 법의 엄격한 적용을 강조하고 있다. 한비자의 말대로 법이 상하귀천을 따지지 않고 모두에게 공정하고 엄격하게 적용된다 하더라도, 다시 말해 '법'이 양심의 도덕률을 대신하는 상황일지라도 공자의 말대로 “民免而無恥(백성들은 형벌만 면하면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할 것이기에 조심해야 하는데, 그 법의 적용조차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무법(無法)천지는 아닐지라도 위법(違法)천지의 세상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처럼 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