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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즐겨 찾던 동네 서점의 주인아저씨는 좀 별난 사람이었습니다. 코딱지만큼 작은 서점 한 귀퉁이에 잘 팔리긴 커녕 들춰보는 사람도 거의 없는 여러 동양 고전들을 한 칸 가득 채워놓았었지요. 학교 파한 뒤 한동안 거의 매일같이 찾아가 앉아서 주인아저씨와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냈으므로 나중엔 서점 주인을 대신해 책을 찾아주기도 하고, 좀더 시간이 지나서는 아예 주인 대신 책장사 비슷하게 나서기도 했습니다. 여러 책들이 들고나는 서점이지만 좀처럼 동양 고전들은 팔려나가지 않았지요. 저는 그때만 하더라도 동양사상 보다는 서양철학쪽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그런 아저씨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았으며, 마치 동양철학하면 무슨 복술이나 점치는 정도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낮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편에 나오는 아래 같은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北冥有魚(북명유어) : 북명에 물고기가 있었다.
其名爲鯤(기명위곤) : 이름은 곤이다.
鯤之大(곤지대) : 곤은 크기가
不知其幾千里也(불지기기천리야) :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化而爲鳥(화이위조) : 이 물고기가 변해 새가 되었는데
其名爲鵬(기명위붕) : 새의 이름은 붕이다.
鵬之背(붕지배) : 붕의 등 넓이도
不知其幾千里也(불지기기천리야) : 몇 천리에 달하는지 알 수 없었다.
怒而飛(노이비) : 붕이 힘차게 날아오르면
其翼若垂天之雲(기익약수천지운) : 그 날개는 마치 하늘을 가득 뒤덮은 구름 같다.
是鳥也(시조야) : 이 새는
海運則將徙於南冥(해운칙장사어남명) : 바다 기운을 타고 남명으로 옮아가려 한다.
南冥者(남명자) : 남명은
天池也(천지야) : 바다이다.
齊諧者(제해자) : 제해는
志怪者也(지괴자야) : 괴이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諧之言曰(해지언왈) : 제해에서 말했다
鵬之徙於南冥也(붕지사어남명야) : “붕이 남쪽 바다로 옮아갈 때
水擊三千里(수격삼천리) : 파도는 삼천리나 솟구치고
搏扶搖而上者九萬里(박부요이상자구만리) : 붕새는 회오리 바람을 타고 위로 구만리까지 날아오르는데
去以六月息者也(거이육월식자야) : 6월의 바람을 타고 간다.”
<출처 : target=_blank>http://osj1952.com.ne.kr/interpretation/jangja/dl/1a1.htm>
이른바 “붕정만리(鵬程萬里)”란 말입니다.
붕이란 새가 한 번 날아오르면 구만리를 간다는 이야기죠. 오늘 아침부터 가슴이 답답해지는 일이 있었기에 저도 모르게 다시 찾아서 읽게 된 이야기입니다. 요사이 도올 선생이 “구약을 믿는 것은 성황당을 믿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하여 시끄럽던데, 성서 해석의 문제로 논쟁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것을 문학적 비유로 해석하는 이들도 많이 있는 것처럼 장자 역시 허무맹랑한 소리이기 보다는 호쾌무비한 상징과 비유들로 사람들을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하여간 장자의 소요유 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가 어렸을 때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더니 나이를 좀 먹어서 그런지 이제는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듯 시원해지곤 합니다.
유사 이래 수많은 인간들이 그들 자신의 견문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해왔지만, 신화의 세계이든 사유의 세계에서든 그 지평을 확장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뭐 아주 헤프게 말해서 뻥치는 일은 참 어렵죠. 도올은 일찌감치 한국 불교는 공부는 안 하고, 순 뻥 같은 이야기만해서 글러먹었다는 식의 비판을 한 적이 있는데, 도올 선생에 대한 호감 대 비호감의 문제를 떠나서 이런 비판 역시 일장일단(一長一短)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우고 또 배워도 우리가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견문의 폭은 한계가 있고, 이와 같은 견문은 도리어 시선의 자유로운 확장을 가로막기도 하지요. 장자의 붕정만리를 보면서 무슨 헛소리야 할 수도 있고, 그 장쾌한 이미지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는데, 예전의 저는 좁은 견문의 눈으로만 보려 했기에 장자의 이 기분을 미처 몰랐습니다.
물고기가 변하여 새가 되었다. 붕이라는 새는 등의 넓이만도 몇 천리가 된다. 금수강산이 삼천리인데 그 새의 등 넓이만 몇 천리가 되니 이 녀석이 우리나라 상공에 나타나면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 등장하는 외계인 비행체는 벼룩만 한 거죠. 붕(鵬)이든, 봉(鳳)이든, 풍(風)이든... 어떤 이는 이때의 붕을 바람, 즉 대기의 흐름 같은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던데, 중국어 발음으로는 모두 <훵(feng)>으로 이 셋이 모두 같은 소리값을 갖는다고 하더군요. 붕새는 그리하여 신의 언어를 전하는 사자(使者:심부름꾼)로서 바람을 타고 오가는 신비적인 새였습니다. 은대 갑골문에는 “하늘 임금(天帝)의 사자인 바람신(風神)에게 개 두 마리를 바친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왜 하필이면 개를 제물로??). 하여간 이와 같은 상상력이 주는 쾌감이 있고, 그 쾌감만으로도 장자는 읽을 만한 고전입니다. 뻥이든, 뿡이든 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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