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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기획자들의 고민 중 하나는 신선한 필자를 구하는 일이다. 특정 필자는 특정 출판사에서 자신의 책을 내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필자가 이미 상대해본 편집자가 신뢰할 만하다면 그 출판사와 계속해서 작업하길 희망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출판사가 발굴한 필자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출판사를 옮기게 되는 경우는 필자에 대한 대접이 소홀했거나 아니면 자신의 이미지나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실제로 첫 책 이후 독자들에 의한 필자의 평가는 필자의 명성을 증대시키므로) 좀더 나은 출판사로 옮겨가는 것이다. 만약 특정필자가 자신만의 팬(독자)층을 거느리고 있다면 출판사는 좀더 좋은 조건으로 필자를 영입하려 들 것이다.
어제 밤늦게 퇴근하여 집에 가니 집사람이 우석훈의 블로그에 갔다가 우연치 않게 '블로그에 쓴 글로 책 내지 말자'는 내용의 글을 읽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평소에도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 그 역시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 한윤형이 낸 책들이 그의 블로그에 기왕에 실렸던 것들을 편집해 출간한 것이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에 대해 한윤형은 자신은 그런 사실이 없으며 우석훈의 글에 의해 사실 관계가 왜곡될 우려가 있으니 사과해줄 것을 요청했고, 우석훈은 간략하게 사과하고 넘어갔다. 그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삭제(나중에 보니 전문을 삭제한 것은 아니고 한윤형을 언급한 부분을 수정)했다고 하여 '블로그에 쓴 글로 책 내지 말자'는 주장까지 철회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석훈이 한윤형에게 행한 오해(상대방의 책을 잘 읽어보지 않고 논평했다는)를 보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는 이미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전과가 있었다. 예전에 그는 "황해문화"에 실린 홍윤기(동국대 철학과) 교수의 글에 대해 오독한 뒤, 그에 대한 비평을 써서 다른 이들에게 반박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 반박글은 대자보에 실렸던 것으로 기억이 나서 찾아보니 마침 그때의 글을 구할 수 있었다(http://www.jabo.co.kr/sub_read.html?uid=19301§ion=sc3). 사실 이번 호에 한윤형의 글을 게재하면서 나는 '아흐리만' 혹은 '키보드 워리어'란 블로거가 한윤형이란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전에 그의 블로그를 찾아가거나 그의 글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책은 집사람이 사둔 것이 있다고 하는데, 책도 본 기억이 없다. 그러므로 단순히 이번 "황해문화"에 실린 그의 글만 놓고 평하자면 상당히 예리한 감각이 돋보이는 글이었다고 생각한다. 블로거로 갈고 닦은 감각은 대중에게 말 거는 지점을 잘 포착하고 있었다.
남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장점은 낄 때와 안 낄 때를 구분하는 감각에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편집장이 되었을 때의 나는 내심 상당히 자신만만했었고, 그런 것들은 은연중에 글에서도 묻어나왔던 모양이었다. 어느날 당시 편집주간이었던 서규환(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조용히 충고를 해주었는데, 지금도 나는 이 말을 고맙게 생각하고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내용인즉, 'XXX 씨는 재주도 많고,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웬만한 XX나 XX보다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분야에는 전문가의 영역이 존재하며, 글쟁이로 오래가고 싶다면 나설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잘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의 출현으로 과거엔 소수가 독점했던 글쟁이의 위치가 좀더 대중적인 지위가 되었다. 내 생각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글쟁이 부류는 평론가, 그 중에서도 영화평론가가 아닐까 싶은데, 가장 이득을 본 그룹은 '논객'이라는 새로운 글쟁이들이다. 물론 과거에도 글 잘 쓰는 논객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 시대의 '논객'이란 존재는 과거라면 소수의 라이선스를 취득한 글쟁이 스타들(작가, 시인, 교수)에게만 허용되었던 지면을 얻고, 때로 이들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린다는 점에서 최대 수혜자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종종 한국 사회에서 '논객'이라 분류되는 글쟁이들이 지나치게 과소비되는 존재들이란 생각이 든다. 한 때 뛰어난 '논객'으로 평가받았던 사람들은 종종 한두 번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그도 아니면 백날 같은 소리(물론 나는 이것을 김진석이 주장한 것처럼 '진영주의의 오류'와 동일시할 마음은 없다)를 반복한다는 이유로 비판받기도 한다. 또는 소모적인 논쟁 끝에 사라져간다.
인터넷시대의 논객들은 과거 필자와 독자 사이의 거리보다 좀더 가까운 거리가 주는, 대중적인 호흡을 가지고 있다는 강점을 잘 활용한 글쟁이들이다. 그러나 이 같이 가까운 거리가 주는 긴장은 완급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한다면 한순간에 바보가 되거나 공적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위험이 있다. 그것도 과거라면 묻혀버릴 법한 매우 사소한 언행이나 아니면 사적인 영역을 침범당하는 경우가 그렇다. 블로그든, 홈페이지든 열어놓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개개인의 유명도와 상관없이 그에 합당한 책임과 권리가 존재하는 법이며, 완전히 혼자서만 읽고 보는 사적인 영역의 글쓰기가 아니라면 그 모든 글들에 대해 글 쓰는 이라면 마땅히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은 일종의 딜레마인데, 글쟁이든 아니든 그것이 책의 형태로 엮이든 아니든 자신의 글에 대한 피드백(리뷰를 포함해서)을 갈구하는 것은 모든 이의 바람이지만 동시에 견디기 힘든 긴장이기도 하다. 때때로 건강한 소통은 그만한 보람으로 다가오지만 역시 예의없고, 적절치 않은 반응은 그만큼 소모적이기도 하다(물론 가끔 그런 노이즈마케팅을 자초하는 논객들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덧 인터넷 시대 초반을 빛냈던 '논객'들은 주류화되거나 그 시절의 위치를 이용해 좀더 전문적인 직업군(교수나 강사, 잡지발행인 등)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논객들의 세대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셈이다). 마치 젊은 '시인'이나 '작가'가 '교수'가 된 뒤엔 과거에 보여주었던 감수성을 더이상 보여주지 못하는 것처럼 '평론가'가 '교수'가 된 뒤엔 비평 대신 연구 논문에 집중하게 되는 것처럼 이들 역시 좀더 나아가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뱅뱅 도는 느낌을 주곤 한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우석훈은 조만간 낙향하여 몇 년은 휴식을 취하려고 한다고 들었다. 또 한윤형이 자신의 블로그에 어렸을 적에 글 잘 쓴다고 부추겼던 사람들이 원망스럽다. 이렇게 힘든 일일지 몰랐다고 하자, 누군가 유학가라고 했다는 댓글을 적었다는 이야기(내가 그런 거 아니지만 좋은 생각 같다)도 들었다.
과거 커뮤니티 사이트의 운영자로 꽤 오랫동안 활동했던 경험을 반추해 이야기하자면, 나는 한때 사회적으로 벌어지는 어떤 사안들, 갈등이 첨예한 사안일수록 뭔가 발언해야만 한다(해야만 할 것 같은)는 묘한 강박에 시달린 적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일개 사이트 운영자가 느끼는 강박이었다고 무시해도 괜찮지만, 좀더 유추해서 생각해보면 '논객'들이 느끼는 강박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본인 스스로가 원해서 '논객'이 되었건 아니건 간에 '논객'으로 오래 가는 방법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쉴새없이 공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정말 잘 알고, 쓸 수 있는 글만 쓰고 나머지는 거절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엔 공부해야 하므로 글 쓸 시간이 많지 않을 테고, 후자의 경우엔 스스로 가려서 잘 할 테니 많은 글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 참, 나는 블로그에 쓴 글로 책을 엮으면 안 된다고 하는 우석훈의 입장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수정 이전의 글을 읽진 못했지만). 무엇보다 나중에 수정된 글만으로 보면 발화의 대상이 자신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대체로 상관없다고 보는 편이다. 블로그에 쓰였던 글이므로 된다 안 된다의 문제가 아니라 책으로 낼 만큼 좋은 글이냐, 아니냐가 좀더 중요한 문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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