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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2000년에 내 나이 서른, 아내 나이 스물일곱에 결혼했지만, 2010년 딸 하율이가 태어날 때까지 십년간 노력했어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그 십년간, 그리고 아이 낳고 일이년간은 사는 것이 참 어렵고 힘들었다. 부모가 되려고 고생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막상 아이를 갖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과정도 무지막지한 고생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내 자식이라 참을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그 과정이 또한 사랑을 키우는 일이었음을 아이가 다섯 살이 된 지금에서야 살짝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내 새끼 귀한 만큼 남의 자식 귀한 것도 알게 되었다는 것이 그 과정의 교훈이라면 교훈이었다.
자식이 되는 일은 사전에 아무 준비 없이 가능한 일이지만, 부모가 된다는 건 많은 것을 버리고 희생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그토록 바라던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뿌리치고 도망가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과연 내가 아비로 가당키나 한 작자인지 돌아보게 된 일도 부지기수다. 또 주변을 돌아보면 양쪽 부모 멀쩡히 다 있어도 없느니만 못한 가정환경도 숱하게 보았다. 아비도, 어미도 없이 자랐던 내게 ‘정상가족’에 대한 환상만큼 그에 대한 환멸도 컸다.
그래도 이 세상에 ‘나’ 아니면 저 핏덩이가 앞으로 겪어야 할 고통과 슬픔을 생각하면 내가 나 하나만 생각해서 될 일이 아니란 삶의 무게로 와 닿았다. 아비도, 어미도 없이 자랐던 내 삶의 지나온 과정들을 내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아비로서의 자격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누군가의 아비 어미로 살았을 어떤 이들이 유민 아빠 김영오 씨에게 건네는 것이 공감과 연대의 그것이 아니라 이혼한 부모, 가난한 부모에 대한 멸시와 가당치 않은 모독의 언사를 거침없이 내뱉는 현실은 그러므로 나에게 충격이었다.
아빠들은 자식이 생기면 갑자기 수영이 배우고 싶어진다. 혹시라도 내 아이가 물에 빠졌는데, 내가 수영을 하지 못해 구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 때문이다. 그런데 눈앞에서 자식이 죽어 가는데도 국가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면, 그런 뒤 각계의 전문가들이 모여 앞으로의 재발 방지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고민하진 못할 망정유가족들이 바라는 제대로 된 진상 규명조차 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국민을 속이고, 감추며 내 아이가 왜, 어떻게 죽어가게 되었는지 그 진상을 밝혀달라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조차 묵살하고 있다. 도리어 그 아비를 욕보인다.
세상이 이러면 안 되는 거다.
한나 아렌트의 말은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였다. “모든 망명자는 동시대,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의 가장 전위Avant-garde를 의미한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세상과 자연, 우주에 대해 함께 기뻐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여길 때 비로소 우리의 인간성이 유지될 수 있다. 현실정치는 우리가 무엇을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에 따라 달리 형성될 수 있다.”
상대방을 나와 함께 하늘의 별과 들판의 꽃을 바라보며 기뻐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길 때 비로소 우리의 인간성도 유지될 수 있다. 과연 우리는 같은 인간인가? 과연 우릴 인간으로 여기긴 하는 건가? 정말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거다. 딸을 대학 교수 정도는 밀어 넣어줄 권력이 있어야 아비의 자격이 있다는 건가? 답해보라! 대통령은 어찌할 텐가? 힘없는 아비는 죽어도 괜찮은가? 또 죽여도 괜찮은가 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