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이자와 코타로 - 사진의 힘(The Power of Photography) | 타임스페이스(1997)
“보다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이 되고자 하면 할수록, 그만큼 보다 보편적인 것이 된다.”
- 다이앤 아버스
1.
사진을 찍기 시작한지 10여년이 되었지만 내가 가진 렌즈는 2개 이상 되어본 적이 없고, 카메라 바디 역시 한 번에 하나 이상 가져본 적이 없다. 처음 카메라를 구입했을 때 누구나 그러하듯 나 역시 로버트 카파, 유진 스미드, 도로시아 랭 같은 사진가를 꿈꾸었다. 포토저널리즘 혹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세계는 우리 시대 하나의 신화(神話)였으므로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 필름 카메라를 구입한 뒤엔 기계로서의 카메라를 이해하기 위해 수십 롤의 필름을 허비해야 했다. 그 뒤엔 필름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또다시 수십 롤의 필름을 낭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사진은 취미 이상의 것이 되기 어려웠기에 사진 촬영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부터는 필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한 롤 한 롤 정성들여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당시 즐겨 사용한 필름은 코닥의 T-Max 시리즈와 일포드사(社)의 흑백필름들이었다. 내가 사진을 처음 시작할 무렵에도 이미 흑백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해주는 곳들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필름을 들고 충무로를 들락거려야 했다. 필름 값과 현상 인화비에 주눅이 들어갈 무렵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했지만 디지털 카메라의 낮은 계조(階調, gradation) 표현 능력으로 인해 별로 구미에 맞지 않아 외면하고 있었다.
그 사이 디지털 카메라 기술은 일취월장(日就月將)하였고, 값싼 보급형 DSLR카메라의 등장으로 대중화에도 성공했다. 이제 디지털 카메라는 대중의 볼펜이 되었고, 블로그는 대중의 일기장이자 방송국이 되었다.
2.
이이자와 코타로는 1954년생으로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현재까지 사진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사진의 힘』에서 털어놓고 있는 고민은 사진에 대한 나의 고민, 사진을 진지하게 대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고민에 대해 말한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내 입장은 꽤 묘한 것 같다. 사진은 20세기 말 현재의 환경 속에 물이나 공기처럼 널려있고, 우리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그것들을 호흡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우리들은 사진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붙어 다니는 의미나 이야기를 소비하고 있고, 그것이 사진인가 아닌가는 아무래도 괜찮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기쁨이나 놀라움이나 혐오감과 같은 다양한 감정의 술렁거림을 일으켜놓은 다음, 곧 우리의 시계(視界)로부터 미끄러지듯 사라져버리고 만다. 같은 사진을 두세 번씩 반복해서 보는 일은 거의 없으며, 더구나 그에 대해서 이것저것 생각해보거나 말을 짜내는 일 같은 것은 있을 리 없다. <본문 11쪽>"
디지털카메라의 대중화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현대는 이미 이미지(image) 범람이다. 로버트 카파와 안셀 아담스의 후예들은 이미 차고 넘친다.
청송 주산지는 한 때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촬영코스 중 하나였다. 우리는 주산지가 언제 단풍에 물들며 어느 시간대에 새벽안개가 깃든 주산지의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지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어느 지점에서 주산지를 촬영해야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잡히는지도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순간에 촬영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제각각(이 말은 완전히 같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차이는 극히 미미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뛰어난 성능의 카메라와 포토샵 기능은 약간의 기술적 실수들을 가볍게 보완해줄 수 있다. 노출실수, 셔터스피드, 심지어는 초점의 불명확함까지도 어느 정도는 보완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그런 사진을 보면서 감동할 수 있고, 실제로 감동하고 있을까?
3.
이이자와 코타로의 『사진의 힘』을 관통하고 있는 메시지는 다이앤 아버스의 말 “보다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이 되고자 하면 할수록, 그만큼 보다 보편적인 것이 된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눈앞을 지나쳐가는 엄청난 수의 사진군 가운데에서 어쩐 일인지 마음에 걸리고 가슴 조이게 만드는, 어떤 종류의 느낌을 가진 사진의 수맥(水脈)이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낯익은 풍경처럼 무심히 통과시켜 온 이미지들 가운데에는, 어쩌다 눈길을 술렁거리게 만드는 이물(異物)이 섞여 있는 수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감각에 아주 작은 상처를 남기고는 이내 잊혀져 버릴 그런 이물들을 서로 짜맞추어보면 어떤 기묘한 모양이 떠오른다. 어쩌면 나는 그런 모양들을 바라보고 만지고 즐기기 위해서 지금까지 사진을 보아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본문13쪽>"
그는 범람하는 이미지들 속에서 자신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감각에 흔적을 남긴 사진들의 일관되고 보편적인 모습을 찾아 그것들이 사진의 힘이라고 명명(命名)하고 있다. 이이자와 코타로는 사진의 전통적인 여러 분야들, 예를 들어 초상(potrait)사진, 풍경, 픽토리얼리즘부터 아라키 노부요시 같은 연출사진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사진세계를 망라하여 분석하면서 이 사진들의 원형부터 변화하는 과정을 일탈(逸脫)이라는 관점에서 살핀다.
초상사진의 해체부터 포토저널리즘의 영역에 속할 전쟁사진의 표현방식과 기법, 검열과 표현의 자유 사이에 벌어진 충돌 양상들을 살피며 사진이 보다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이 되고자 시도했던 일탈은 동시에 사진예술이 나아가고자 했던 도전의 모습이었음을 밝혀내고 있다. 그러나 사진예술이 보다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이 되고자 할수록 다시 보편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음을 예리하게 분석해낸다.
사진이 예술로서의 본령(本領)인 창조적인 어떤 것이 되기 위해 가야하는 길 위에서 사진의 힘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은 이런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의해 단단하게 고착되어버린 사진, 현대사진예술이 처한 딜레마에서 벗어나 일탈과 도전으로 새로운 사진의 세계를 찾아가는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사진의 힘이 될 것이다. 그조차도 언젠가는 하나의 보편이 되겠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는 한 사진은 여전히 예술로서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이이자와 코타로는 말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