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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꽃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 최두석, 『성에꽃』, 문학과지성사, 1990
겨울이라 대학 때 읽었던 최두석 선생의 시집을 찾았다. 이 시집 『성에꽃』은 그의 두 번째 시집이었는데, 선생은 ‘꽃’의 심상을 즐겨 이용했다. 이후로 나온 시집들에서도 표제작은 꽃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오늘 문득 그의 시를 읽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상당히 많은 곳에서 당신의 시 <성에꽃>을 다루기에 한편으로 반갑고 씁쓸했다. 이처럼 여러 곳에서 다뤄진 까닭이 얼마 전엔가 수능 시험에 지문으로 활용되었던 탓인 듯싶었다.
요즘 친구들에게 이 시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살펴보다가 참 ‘이 놈의 문학교육은 21세기가 되어서도 여전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시의 갈래는 자유시, 서정시라고 해놓고는 시 해석에 있어서만큼은 일체의 자유도 허용하지 않는, 미용실에서 머리에 커다란 펌(permanent) 기계를 덮어놓고 열과 약물을 이용해 머릿결을 고정시키는 것처럼 시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이라고는 일체 허용하지 않는 방식 말이다.
내가 고교 시절, 청록파를 배우던 감각으로 요즘 아이들은 최두석 시인의 시를 읽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숨이 막혔다. 그렇게 시도, 시인도, 그리고 나도 숨 막히게 늙어간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