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한 중국 역사에 대한 최고의 해석자는 『춘추(春秋)』를 편(編)하여 쓴 공자(孔子)와 『사기(史記)』를 저술한 사마천(司馬遷)이다. 공자와 사마천은 모두 역사를 통치를 위한 실용적인 지도서라고 생각했다. 편년체로 서술된 『춘추』를 통해 공자는 과거의 인물과 사건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전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가 수립한 유학적 가르침을 역대 제왕들과 지배계급에 전수하고자 했다. 사회변화가 통치하는 개인이나 가문의 도덕적 자질에 달렸다고 보았던 공자의 사관을 사회학적으로 이해한다면 인간주의 사회학적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사마천은 음양이론을 통해 한 국가가 흥성하도록 이끈, 바로 그 요인들로 인해 쇠망의 길로도 갈 수 있으며 이의 반대도 가능하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구조주의 사회학적 관점에 가깝다. 물론 사마천 역시 각 왕조의 도덕과 윤리를 중시했다는 점에서는 공자와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중국사에 대한 현존하는 최고의 해석자 가운데 한 사람은 우리에게도 여러 저서들을 통해 잘 알려져 있는 조너선 D. 스펜스(Jonathan D. Spence)이다. 그가 자신의 아내 안핑 친 (Annping Chin)과 함께 중국의 역사를 사진 자료들과 함께 맛깔나게 버무린 것이 이 책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1 - 중국의 세기』이다. 이 시리즈의 두 번째인 『영국의 세기』에서 영국의 20세기가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에서 출발했다면, 중국의 20세기는 최악의 상황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20세기 동서양을 대표하는 대제국의 극명한 엇갈림을 보여준다. 과연 조너선 D. 스펜스는 공자에 가까운 해석을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사마천에 가까운 해석을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그만의 또 다른 해석 방식을 보여줄 것인지,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해석의 연장선에 놓일 것인가? 에 대해 궁금해 하며 첫 장을 열었다.
스펜스와 안핑 친은 중국의 세기를 모두 12장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중국의 역사를 좀 더 굵직한 형태로 구분지어보면 19세기 초엽부터 서서히 진행된 청 왕조의 종말, 식민지적 상황의 도래와 공화정 체제, 마오쩌둥에 의한 신중국 건국, 그리고 마오 이후의 중국이라는 네 개의 시대로 나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제1장 제국의 최후」는 첫 번째 시대인 청 왕조의 종말의 종지부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20세기의 진정한 출발은 1911년 10월 10일 무창(武昌, 우창)봉기에서 비롯된다. 신해혁명을 통해 청 왕조는 마지막 명운을 다하게 되고, 중국은 ‘삼민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멀고 험난한 민주주의의 실험에 뛰어든다. 영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인도라는 거대한 식민지가 필요했듯,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와 인구는 서구 열강과 아시아의 신흥 자본주의 국가 일본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식민지였다.
비록 서양의 어느 열강도 혼자서 집어 삼키기엔 너무나 큰 지역이었기에 완전한 식민지 상태로 전락하진 않았지만, 중국은 ‘동양의 병자(東亞病夫)’라는 역사 이래 사실상 최초로 민족적 수모를 경험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벌어진 1919년 5.4운동은 마오쩌둥과 같은 젊은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922년 7월 상하이의 중국공산당 창립대회에 참가하며 공산주의자가 된 마오쩌둥이 존재하기 이전에 그는 먼저 민족주의자였다. 이후 마오쩌둥은 1935년 공산당 내부의 치열한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이후 1976년 사망(올해는 마오 서거 40주년이기도 하다)할 때까지 중국 공산당의 최고 통치자였지만 언제나 민족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1920년 불과 열여섯의 나이로 프랑스로 건너간 덩샤오핑은 마오 사망 이후 1990년대까지 중국의 경제 재건을 이끌었다. 중국의 현대를 이끈 20세기의 지도자들이 본래의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었다면, 40년에 가까운 내전을 종결한 직후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과 대결하는 와중에 티베트를 침공하진 않았을 것이다. 중국의 티베트 침공은 결국 1951년 봄 티베트의 항복으로 마무리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중국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이전에 스펜스의 다른 저서들을 통해 중국의 근․현대사를 접해온 이들이라면 구태여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1 - 중국의 세기』를 읽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마오쩌둥보다 먼저 중국공산당의 지도적 위치를 점했고, 국공분열 이후 남창폭동(난창폭동, 南昌暴動)을 이끌었던 이립삼(리리싼, 李立三)의 얼굴을 실제 사진으로 보는 일은 쉽지 않은 경험이다. 어떤 이는 한미동맹이 흔들린다고 우려를 표하면서 최근 바뀐 경찰 제복조차 중국의 공안(公安)을 따라 한 것이라 주장한다. 대한민국 국립경찰의 제복이 중국의 공안을 흉내 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한 쪽은 미국을, 다른 한 쪽은 중국을 강력한 동맹으로 인식하는 우리의 조건이 서글픈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공자의 관점으로 보더라도 중국혁명을 이끈 지도자들의 면면은 비록 좋지 않은 몇몇 사례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은래, 주덕, 팽덕회 등이 잘 보여주듯 혁명의 대의와 인민에게 희생적으로 헌신했다. 이를 또다시 사마천의 관점으로 본다면 중국의 20세기가 최악의 상황에서 시작된 것은 근대민족국가 수립이 서구 열강에 비해 뒤처졌다는 요인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바로 이와 같은 쇠망의 요인에서 출발해 오늘날 21세기 미국의 일방적인 독주를 견제할 미래의 세력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서구식 근대화의 전제 조건이라면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민족국가의 건설이라는 세 가지 요건일 텐데, 중국은 산업화, 민족국가 건설(중국과 대만의 이른바 양안 문제는 남북분단 상황과 비교되기 어렵다)을 이루었고,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셈이다. 그러므로 이 두 나라는 거쳐야 할 관문이 아직까지 하나씩 남은 셈이다. 어느 것이 더 이루기 어렵고 힘든 과제일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 앞서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2 - 영국의 세기』와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1 - 중국의 세기』는 그 의미와 질적인 측면에서 가까운 좋은 지질과 사진을 담은 큼지막한 판형, 번역의 매끄러움 등등으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얻어야 마땅하지만, 전자는 몇몇 오탈자가 거슬렸고, 후자는 중국사임에도 불구하고 한자 병기 없이 외래어 표기만을 따랐다는 점에서 도저히 만점을 줄 수 없었음을 밝혀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