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 표정있는 역사 7
호사카 유지 지음 / 김영사 / 2007년 6월
단행본 출판은 아니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혹은 독자 입장에서도 출판기획이란 것을 생각할 때마다 가끔씩 김영사의 절묘하고 능란한 기획력에 감탄할 때가 있다. 이전에도 몇 번씩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출판은 다분히 영세사업이고, 조직화된 마인드보다는 빼어난 한두 사람의 출판기획자, 편집자에 의해 좌우되는 어떤 의미에서는 벤처기업에 가까운 속성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출판기획의 여왕’, ‘밀리언셀러 제조기’ 란 별명으로 불리는 박은주 사장은 이쪽 판에선 하나의 신화이기도 하다. 물론 다른 출판사라면 체면이나 이미지 때문에 거절했을 법한 부류의 책도 과감히 출판한다는 비판도 가능하겠지만, 또한 그것이 김영사가 출판업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포지셔닝이다.
영화판에 가면 자주 듣게 되는 “예술이 하고 싶으면 자기 돈으로 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김영사에도 어울리는 말이다. 포지셔닝(positioning)이란 말은 마케팅 영역에서 한물간 유행어이기는 하지만 소비자들의 인식 속에 차지하고 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의미한다. 포지셔닝은 소비자들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지만, 동시에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도 김영사가 주는 이미지는 절묘하다.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를 읽고 그에 대한 간단한 리뷰를 쓰려고 하면서 정작 책 이야기보다는 출판사 이야기만 해서 미안하지만, 나는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를 읽고 다시 한 번 김영사의 기획력과 마케팅 능력에 대해 감탄했다.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는 김영사가 “왕에서 노비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희로애락의 표정을 담아낸 새로운 감각의 역사서 시리즈입니다.”란 모토로 기획 출판되고 있는 “표정 있는 역사” 시리즈 중 일곱 번째 책이다. 이 기획에서 핵심은 “새로운 감각”에 있으며, 두 번째 핵심은 역사의 전방위를 대중적인 감각으로 다루겠노라는 것이다. 본격적인 연구서들이 낸 성과들이 밑바탕이 되어야만 가능한 것이지만 그것을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전하겠다는 마음이 없다면 그 성과들도 사장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달콤한 과실만 취하려 든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책을 구입하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다. 책값이 만원 미만으로 책정되어 있기 때문에 여름 한 낮 점심 먹고 돌아와서 잠시 읽는 소일거리로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고(실제로 다 읽는데 반나절도 안 걸렸다), 다른 하나는 조선 선비 vs. 일본 사무라이라는 주제가 약간의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앞의 경우엔 이 책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으로 다뤄준 신문기사에도 불구하고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뒤의 경우엔 책을 조금 읽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주제의 책들이 처음 나온 것도 아니란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약간 일반적이지 않은 리뷰를 쓰고 있는 까닭 중 하나는 한일관계를 다룬 책들에 따라붙는 리뷰들 역시 그런 류의 책들 만큼이나 뻔(?)한 리뷰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 책과 함께 주문해 도착한 윌리엄 맥닐의 두 권짜리 세계사 책을 조금 훑어보았는데, 세계사에 대한 초심자가 아니라면 생각보다 매력적이지 않았다(게다가 한 권으로 엮었으면 가격적인 부담도 적었을 텐데). 그런 점에서도 호사카 유지의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는 재미있다. 일단 필자 선정부터...
처음 필자 이름을 접했을 때 나는 그가 현재 세종대 교양학부에 교환교수로 와 있는 일본인 교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한국인이었다. 약간 말장난 같지만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 사람이지만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이지만 한국 사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지난 2003년 한국에 체류한지 15년 만에 한국인으로 귀환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일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이미 한국에서 꽤 여러 종의 책들을 출판한 저자이며, 그 대부분의 책들에서 일본 우익을 고발하고, 일본 역사를 우리에게 알리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그가 임란 때 조선으로 전향한 일본 장수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균형 잡힌 시선’이란 말은 참으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긴 하지만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는 그런 주관성을 넘어 균형 잡힌 시선을 확보하고 있다. 그것이 가능했던 까닭이 또한 이 책의 묘미이다. 그는 한일 양국의 차이를 손쉽게 문을 숭상하는 조선과 칼을 숭상하는 일본의 차이라거나, 민족성의 차이로 단정 짓는 대신 성리학이란 외래 학문을 조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일본에 전했는지, 이후 일본과 조선에서 성리학은 어떻게 수용되고 변화되었는지를 현대의 한일 양국의 문화적 차이까지 아우르며 차분하게 전하고 있다.
일본의 사무라이 교육은 이와 대조적이었다. 사무라이가 사무라이답게 되기 위해 무예를 연마하는 것이 우선 필수였다. 그러므로 스모(일본 씨름)가 장려되었고 말 타기, 활 쏘기, 검도 훈련, 수영 등을 기본으로 익혔다. 그리고 머리가 비어 있으면 안 된다고 하여 기본적인 유교교육을 받았다. 사무라이에게 예술적인 교육은 필수가 아니었다. 감수성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선비 교육은 상당히 우수한 교육제도였고 사무라이에게는 그런 부분이 결여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지금도 많은 학생이 어릴 때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운다. 감수성 교육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 반대로 체력훈련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조선 선비를 위한 특별한 교육제도가 없었지만 일본의 사무라이에게는 무예를 연마하는 교육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 <중략> … 이러한 한일 양국의 교육방식의 차이는 지금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의 체육에 대한 교육방침을 살펴보면, 한국은 조선 시대를, 일본은 사무라이의 교육방침을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중․고등학교에서는 인문계나 실업계를 막론하고 방과 후의 동아리활동을 장려하고 있는 데 비해, 한국의 인문계 중․고등학교에서는 동아리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본문 93쪽 - 97쪽>
호사카 유지 교수의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양국의 불행했던 과거의 원인을 성리학, 성리학 수용의 역사에서 찾고 있는 점이다.
그런데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에 걸쳐 일본에서는 조선에 대한 모순적인 태도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조선에 대한 동경과 동시에 경멸적인 태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17세기 후반에도 일본 지식인 사이에서 조선을 선진국으로 존경하는 자세는 이어졌다. 그 반면에 일본이 중국이나 조선보사 우수한 나라, 일본이 동아시아의 중심이라는 주장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 <중략> … 야마가 소코는 조선과 중국은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일본 천황의 혈통은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으므로 일본은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가장 안정적인 나라라고 주장하면서 일본이야말로 진정한 아시아의 중심인 ‘중국(中國)’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식으로 에도 시대 중기에는 일본을 아시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소위 ‘일본형 화이(華夷)관’이 형성되었다. <본문 186쪽>
성리학적 세계관에 입각한 화이관은 중국의 중화주의, 조선의 중화주의, 일본의 중화주의로 이어졌다. 조선의 지배계급인 선비들은 “성리학의 이상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외부에서 이물질만 들어오지 않으면” 되었기 때문에 쇄국주의로, 일본의 성리학은 충의에 기반한 것으로 페리 제독에 의한 강제 개항 이후 존왕양이를 주장하는 사츠마, 초슈 번의 반막부파 사무라이들의 막부타도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중 한 가지는 서구 제국주의와 근대화에 대응하는 한일양국의 반응을 외부(서구의 침탈 등)에 의한 수세적인 것에서 찾기 보다는 성리학이라는 내재적 요인에서 찾는 것은 신선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리학적 뿌리를 같이 하는 사무라이와 선비로 상징되는 한일양국의 지배계급의 차이가 근대화 과정에서 한일양국의 차이를 나았다고만 말하기엔 부족하다.
또 한 가지 니토베 이나조 같은 이가 서구사회에 사무라이의 사상, 즉 무사도(Bushido)를 널리 소개하였고, 이를 서구의 기사도처럼 승격시킨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문화사적으로 일본에서 오늘날과 같은 사무라이 상은 근대의 산물이란 비판 역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물론 서구의 기사도에 대한 비판 역시 서구 역사가들에 의해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호사카 교수는 이 같은 부분에 대해 거의 언급이 없는 점이 다소 아쉬운 부분으로 남을 듯하다. 각기 다른 역사,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한일 양국의 현재를 생각할 때, 이 둘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매우 다행한 일일 것이다. 과거 조선과 일본 사이에 통신사들이 다녀갔던 것처럼 오늘날 비슷한 듯 다른 양국의 현재와 문화를 번역해주는 귀중한 역할을 호사카 교수가 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여 쪽 내외의 적은 분량이 아쉬울 만큼 재미있고, 대중적인 눈높이를 겨냥한 이 시리즈가 꾸준히 계속되길 바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