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스트로의 쿠바 - 체 게바라와 함께 한 혁명의 현장
그레고리 토지안 지음, 홍민표 옮김, 오스왈도 살라스.로베르토 살라스 사진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12월
황매출판사에서 나온 『카스트로의 쿠바 - 체 게바라와 함께 한 혁명의 현장』를 주문해서 읽었다. 책이 처음 나온 것이 지난 2005년의 일인데 도서 정가가 67%까지 인하되어서야 비로소 발견하고 읽었다. 『체 게바라 자서전 -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의 삶』이 출간되자마자 구입해서 읽었던 걸 생각하면 내 개인적인 입장만 해도 피델 카스트로보다는 체 게바라에 대한 엄청난 편애인 셈이다. 물론 게바라 자서전은 작년 가을에 나왔으니 피델 보다 인하율이 높지 않은 게 당연하다. 어쨌거나 두 가지 점에서 피델보다 체가 좀더 제 값으로 팔리는 이유는 첫째 피델의 책보다 게바라의 책이 두껍다. 둘째 피델의 책이 나온지 더 오래되었는데 그동안 잘 팔리지 않아 재고가 좀 남았었다.
하지만 2005년에 나온 책이 무려 67%까지의 인하율로 인터넷서점에 등장한 것은 비록 이벤트성이라고는 하더라도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 정도를 나타내주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내 입장에서는 그 사이 절판되지 않았던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서점측에선 이 책을 “역사>혁명사”로 분류하고 있지만 좀더 냉정하게 따졌을 때 이 책은 로베르토와 오스왈도 살라스 부자의 사진작품집으로 분류되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아들인 로베르토가 아버지 때부터 기록해온 쿠바 혁명의 주인공들, 특히 피델을 중심으로 기록한 사진집이 바로 이 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의 부제로 함께 따라나선 게바라의 동지애는 눈물겹지만 상업적인 호명이기도 하다. 종종 부제(副題)가 제목보다 책 내용을 좀더 잘 알려준다는 이야기를 해왔는데, 이번 경우에는 책을 잘 설명해주기 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특히 일반 대중 독자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피델 카스트로가 미국의 턱 밑에서 쿠바를 수십년간 이끌어온 정치지도자이기 보다는 혁명가 체 게바라의 낭만성을 부각시켜주는 부록쯤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게바라를 일컬어 싸르트르(자기 외의 인간은 대부분 눈 아래로 깔고 보았던 좀생이 영감이 이토록 그를 이토록 높이 평가했다는 것이 더욱 놀라운 일이기도 하지만)가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 평한 이래 체 게바라는 여러 면에서 혁명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도처에서 게바라의 티셔츠와 모자, 심지어는 보드카까지 출시되었던 것으로 보아 게바라를 팔아 한 몫 보는 사람이 혁명의 후예들만은 아니었던 듯싶다. 살라스 부자의 사진집을 보는 내내 나중에 피델에 대한 전기 영화가 미국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다면 그 주인공은 당연히 리암 니슨의 몫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싶어졌다. 그 이유는 두 사람의 이미지가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리암 니슨이 연기한다면 최소한 피델의 군화 밑창에 수염 빠지는 약을 뿌려놓으려는 시도까지 할 만큼 피델을 제거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CIA의 우스꽝스러운 공작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피델이 더 이상 희화화 되는 일만큼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배려 때문이기도 하다.
혁명의 끝이 추해지는 것은 순수했던 젊은이가 추하게 늙어가는 모습처럼 처참하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모든 인간은 자신이 늙는다는 걸 종종 망각한 채 추해진 모습에만 집착하여 비판하곤 한다. 역사 이래 많은 혁명이 있었고, 많은 혁명가들이 요절했고, 혁명가들이 추해진 몰골로 나타나곤 했다. 요절의 이유는 혁명이 실패했기 때문이고, 추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권력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게바라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혁명에 성공했지만 권력에 집착하지 않고, 또 다른 혁명을 찾아 나섰다가 결국 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바라는 마치 제임스 딘이나 리버 피닉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스타가 되었고,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바람처럼 빠르게 살다 불꽃같은 명성을 남기고 아름다운 시체가 되어 사라진 체 게바라는 아름다운 시체를 남겼지만 죽은 뒤에 그의 불온성은 더욱 아름다운 상품으로 재탄생하여 스타벅스 커피 잔에 새겨진다. 그러나 피델은 게바라가 사라진 뒤에도 오랫동안 미국의 위협 앞에서 쿠바 혁명을 수호했고(물론 그에 대한 평가는 그가 사라진 뒤에 다시 시작될 것이지만 최소한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피델은 게바라보다 더 오랫동안 살아남아 그 불온성을 유지했다.) 쿠바 국민들 입장에서, 그리고 쿠바를 미래의 새로운 대안으로 보고자 하는 이들에겐 불완전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국가로 만들었다.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많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에서 쿠바인 의사들이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다. 사탕수수와 시가를 제외하고 이렇다 할 산업조차 부재했던 미국의 배설구이자 놀이터였던 쿠바를 오늘날 건강(?)한 국가, 주변 국가들의 존경을 받는 국가로 건설했던 피델 카스트로. 이제 그가 떠날 날도 멀지 않았다. 누구도 영원히 살 수는 없지만 게바라에 비해서는 더 오래 살았던 피델 카스트로의 삶이 최소한 추해보이진 않는다.
* 피델의 인간으로서의 수명 만큼 이 책의 재고 역시 얼마남지 않은 듯 싶다. 사두면 반드시 남는 책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