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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는 누구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즉흥적인 것이 강하다. 앞으로는 결정적인 타격이 있다면 모두 왼손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157쪽.
발터 벤야민의 매력은 모호함에 있다. 마치 예수나 석가모니가 그러하듯 벤야민 역시 비유를 즐겨 사용하지만, 자신의 비유에 대해 독자들에게 그리 친절한 편은 아니다.
벤야민이 이야기하는 '결정적인 한 방'이란 무엇이며 그것들이 모두 왼손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란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어떤 이는 이 왼손의 의미를 말 그대로 '좌파'로 해석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또 어떤 이는 좀더 추상적으로 이 왼손의 의미를 앞의 즉흥적인 것과 연계시켜 '낯섬, 즉흥'으로 보아 '전위(아방가르드)'나 '소수자(마이너리티)' 같은 다소 탈정치적인 용어들로 희석시키기도 한다. 또는 벤야민이 초기에 유대적 신비주의에 경도되어 있었다는 이유로 이 말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식으로 해석하기도 하더라.
나는 한 가지 사례를 들어 왼손에 의한 결정적 타격에 대해 말하겠다.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국가는 이를 은폐조작하려 들었다. 사실, 지금에 와서야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주장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던 시대에는 박종철의 죽음 이전에도 무수히 많은 죽음이 가려졌던 시대였으므로 박종철의 죽음 또한 가려질 수 있었다.
죽은 박종철은 말이 없는데, 고문수사 밀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당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어떻게 그처럼 당시 일을 소상하게 알고 성명서를 발표할 수 있었을까. 사제단은 끝내 침묵했지만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구속된 두 경관은 구치소에서 매일 울었다. 뭔가 이상했다. 두 경관의 옆방에는 인천사태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된 민통련 이부영 사무처장이 수감돼 있었다. 그에게 매우 '협조적인' 교도관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날마다 상황을 전달해주었다. 가족과의 면회 도중 두 경관은 계속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경찰 고위급이 날마다 면회를 왔다. 그들을 입막음을 위해, 회유하기 위해 면회가 계속된 것이다. 이부영은 마침내 사건이 은폐조작되었다는 것, 이것이 고위층의 치밀한 각본에 의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는 이 내용을 화장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써서 교도관을 통해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이 화장지 쪽지가 숱한 우여곡절 끝에 사제단의 손에 들어갔던 것이다.
왼손에 의한 결정적 타격이었다.
몽테스키외는 '형태'와 '내용'이 단단히 결합된 '총체'로서의 국가를 이야기했다. 몽테스키외의 위대함은 국가가 구조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이를 다시 '억압적 국가기구'(RSA)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ISA)라는 개념을 통해 재인식하는데, 오른손이란 이 두 가지 국가기구 또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국가체제(시스템)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에 저항하고자 하는 세력의 구조적이고, 과학적이며 이성적인 판단과 접근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감옥에 갇히자 매일 울며 지냈던 두 경관과 바로 그 옆방에 갇혀 있던 이부영, 그리고 그에게 협조적인 교도관은 일종의 '시스템 에러'이거나 '버그'인 셈이다.
이것은 다분히 억압적이고도 이데올로기적인 체제가 빚어낸 구조적인 그늘이지만, 동시에 운명적인 조합이었다는 점에서 즉흥적이다. 역사를 추동하는 힘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발터 벤야민은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체제를 지키려는 측이나 그것을 붕괴시키려는 측 모두 '왼손에 의한 결정적 타격'이란 결국 매우 인간적인 부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인데도 어느 순간 바위가 쩍하니 갈라져버리는 순간이 온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시위'란 다음과 같다. 시위만으로 저 견고한 체제가 붕괴하겠는가? 아니다. 그 정도로 손쉽게 형태와 내용이 단단하게 결합된 총체인 국가체제는 붕괴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위는 이들 지배계급과 체제에 하중을 가하고, 긴장하게 만들며 허둥대게 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그들 자신의 견고한 구조의 무게로 인해 무너지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