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명지"라는 개념의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의 개인적인 취향 탓이겠지만, 나는 감옥에 갇힌 사람들 혹은 한때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있다. 연민은 분명 동정이란 것과는 다른 말일 것이다.
내 홈의 어떤 이는 망명과 유배란 말은 결국 강요된 여행의 다른 말이 아니냐고 한다. 맞는 말이다. 망명과 유배, 그리고 감옥살이는 거주지의 이동이 제한되어 있다거나 혹은 특정 시공간에 사로잡힌다는 차원으로 보자면 여행이랄 수 없지만 우리가 여행을 단지 낯선 풍경에 대한 캡춰의 차원이 아니라 또 다른 시공간에 놓인 나, 즉 자아를 발견한다는 점에서 감옥은 유형을 거친 이들의 우울한 회고처럼 거대한 학교인 셈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자신과의 대면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오랜 동안 외부와의 단절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스스로와의 대면, 그리고 세계와의 대결을 거치며 때로 심신을 단련하거나 황폐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우리가 무언가 얻기를 갈망하며 떠났던 여행의 와중에 무엇을 얻기보다 무엇을 잃지 않아야 하는 지를 깨우치는 것이 여행의 더 큰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이란 결국 스스로가 이미 내린 결론을 확정짓는 제스추어이자 연극이지 실제로 여행을 통해 무얼 얻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학교에서 모든 걸 배울 수 없듯이 감옥이든, 망명지든, 혹은 다른 유형지에서도 우리는 때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
그들을 감옥에 가둔 이들 역시 그들의 물리적 세월을 허송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 였던 것이다. 그러나 때로 어떤 망명자, 유형자들은 그 밀폐된 시간과의 대결을 통해 새로운 세계, 때로 세상에 대한 구도의 길을 얻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이들에게을 엑조틱한 감상의 대상으로 감히 자신은 경험할 수 없었던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두고 바라본다. 어쩌면 나역시도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꽤 여러 종류의 감옥 혹은 망명자들이 쓴 글들을 읽는다.
한나 아렌트로부터, 발터 벤야민에 이르는 망명자들의 무거운 발걸음은 때로 좌절하고 때로 성공하면서, 나를 매혹하는 세계이다. 실패한 자객들의 열전을 읽는 것은 나에게는 일본 적군파의 일원이었던 다미야 다까마로의 글을 읽는 것과 비슷한 감흥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우리의 20세기가 미처 처분할 수 없었던 "신화의 시간"을 살아 낸 것이다.
나는 아직도 올한해 무슨 책을 읽고, 무슨 고민을 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다. 다산 정약용이 지은 "유배지에서 보내온 편지(박석무)"를 읽다보면 다산이 새해의 시작은 무슨 책을 읽을 것인지를 정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나역시 거의 10여년 전부터 새해에는 무슨 책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정하는 것으로 새해 첫 걸음을 시작하고는 했다.
때로 어떤 책들은 평생을 두고 고심하면서 보아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내 경우에는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선이 그런 류의 책이다. 글쎄 하시절 다 지내온 책들을 이제와서 끙끙거리며 보는 것으로 보자면 나는 덜떨어진 보수도 한참 보수인 셈이지만, 나에겐 남들이 너무나 자유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숨막히는 감옥살이의 연속으로만 여겨지므로 이 책들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볼 생각이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역시 말년을 망명자로 지새운 레온 트로츠키의 저작들일 것이다.
나는 예술에 대한 이상이 있다. 그 이상의 결핍은 가령 이런 것이다. 트로츠키 너는 왜 학자나 예술가가 되지 않고 혁명가가 되어 그렇게 죽어야 했는가 하는 아쉬움 같은 것이다. 그런 류의 책들은 이것말고도 많이 있지만 올 한해 나는 유배지를 전전해야 했던 이들의 책을 새로 읽거나 고쳐 읽거나 다시 읽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안토니오 그람시, 정약용, 신영복, 홍세화 그리고 한나 아렌트, 트로츠키, 발터 벤야민 등등이 될 것이다. 아직 어떤 이들을 세심하게 읽어갈지는 정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의 눈길은 야생초 편지에 이른다.
우리의 독서 인구라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지경인지 나는 이 책이 잘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 나는 연민 아닌 동정의 마음이 들었다. 그 역시 오랜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런데 나는 그에게서 박노해에게 느꼈던 그런 기분을 느낀다.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
그것은 마치 이전의 여러 메이저 언론들이 <완당평전>에 대고 지나친 상찬으로 일관하며 여러 독서관련 상들을 앞다투어 내려주던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야생초편지>, 모 방송국의 느낌표 선정도서로 선정된 것도 모자라 자신이 옳지 않다고 투쟁했던 체제와 사실상 동일한 언론 매체인 <조선일보>가 선정한 이 달의 책 선정에 선뜻 응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고민스러운 것이다. 나는 심지어 남의 이름을 빌어 자신이 직접 써서 언론 매체에 실리는 경우도 본 적이 있는데, 때로 언론이라는 우스운 권력에 기대어 부풀리기를 시도하는 책들, 혹은 언론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상을 주는 경우를 보며, 이 나라의 지성이란 것이 과연 무엇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느낄 때가 있다<중앙일보가 선정한 문부식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광기의 시대를 생각함』(삼인)>. 조중동이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베스트셀러를 조작하기도 한다.
내가 감옥에서 보내온 저자들의 저서 읽기를 비록 즐겨하기는 하지만 <야생초 편지>만큼은 저만치 밀어두고 읽고 싶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무릇 글이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그 글 저자의 삶이 자신의 글을 온 몸으로 증거할 때이기 때문이다.
옛 선인들이 한 인간을 판단하는 기분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강조한 것은 해석하기에 따라 그것이 정말 어떤 한 인간을 판단하는 적절한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기 보다는 그 기준들에 자신을 맞춰 보는 비교의 잣대로 삼으란 것이 아니었겠는가? 身은 단순히 풍채나 용모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자세와 올바른 몸가짐을, 言은 말의 들고 남에 있어 얼마나 조심스러워야 할지를, 書는 단지 글씨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글이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따지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행동으로, 말로, 그리고 글로 얼마나 자신의 생각을 고스란히 배신하는 행동을 하며 살고 있는가? 스스로 판단해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새해 벽두에 삼가 스스로를 돌아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