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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세계명작동화에 이런 내용이 있었는데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대충 추려 보면 어느 소년은 자기 집에 있는 난로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솜씨있는 장인의 작품인 듯 매우 아름답고, 귀중해 보이는 이 난로엔 온가족의 추억과 사랑이 담뿍 배어 있는 추억의 물건이었죠. 소년에게는 겨우내 추운 날씨를 견디게 해주는 고마운 보배였으며 해질녘 가족이 둘러앉아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게 만드는 장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의 부모는 가난을 견디다 못해 이 난로를 팔게 됩니다.
난로를 사러 온 관리는 소년의 부모에게 몇 푼의 돈을 지불하고 난로를 가져갔습니다. 소년의 가족은 오랜만에 흰빵을 사먹었고, 철제 난로를 하나 들일 수 있었습니다. 소년은 불기가 사라진 난로를 쓰다듬으며 슬퍼했습니다. 난로가 떠나는 날, 그 난로를 대신해 공장에서 멋없이 찍어낸 철제 난로가 그 빈자리를 차지했지만 소년은 먼젓번 난로가 보고 싶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소년은 난로가 실려간 기차역으로 나가 역무원 몰래 화차에 올라타 난로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갔습니다.
추운 겨울날이었지만 소년은 난로 품 안에서 편히 잠들 수 있었습니다. 소년과 난로가 실려간 곳은 정확한 국명은 나오지 않았지만 제 생각엔 프로이센의 어느 궁정쯤으로 추정되는 곳의 창고였습니다. 왕국의 창고엔 전국에서 실려온 귀한 물건들이 가득했습니다. 소년은 잠결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난로 뚜껑을 조금 열고 밖을 몰래 살폈습니다. 아무에게나 들키면 안되었기에 소년은 숨소리조차 죽이고 있었습니다. 선반 위의 은촛대가 말을 했습니다.
"나는 작센 지방의 유명한 장인이 만든 훌륭한 촛대로 그동안 어느 공작의 서재에서 그가 책을 읽는 동안 불을 밝혀 왔어, 그런데 어느날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온 램프에 내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지. 그리고 이곳까지 실려 오게 된 거야."
그러자 여기저기서 각종 물건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장인들, 예술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그들의 영혼을 쏟아부으며 만들었던 작품들이었기에 이렇게 영혼의 언어를 얻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거죠. 촛대는 한 귀퉁이 물건을 가리키며 "저 봐! 저 녀석은 우리를 흉내내서 만들어진 가짜야. 저 녀석에게는 우리처럼 영혼이 깃들지 않았기 때문에 벙어리일 수밖에 없어."라고 말입니다.
소년은 자신의 자랑스러운 난로가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습니다. 소년은 나의 난로가 말을 한다면 얼마나 멋있는 목소리로 이야기할까 상상했지요. 드디어 난로가 말했습니다.
"나는 실레스비히의 이름난 장인에 의해 만들어졌지. 한동안 궁정에서 임금의 발을 따뜻하게 덥히는 일을 했지만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가난한 직공의 가족들과 함께 할 때였어. 나는 그 가족을 위해 수프를 끓였고, 그들의 꽁꽁한 언 손과 발을 녹여주었지. 그리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을 함게 지켜보았어. 그들은 내 몸을 아껴주었고, 기름 걸레질을 해주어, 녹이 슬지 않게 해주었지. 이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그 소년이 보고 싶네."
그러자 창고 안의 모든 물건들이 옛주인 생각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소년은 난로가 자신을 그렇게까지 생각해준다는 사실에 감동했지만 너무나 춥고 배고픈 나머지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소년이 잠든 사이 왕국의 창고장은 임금의 명령에 따라 난로를 다시 왕궁 안 임금의 서재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난로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난로 안에서 잠든 소년을 발견했지요. 프리드리히 대왕은 소년을 불러 어떻게 그 난로 안에 있게 되었는지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소년의 집에서 난로를 사온 관리를 호되게 야단쳤습니다. 관리는 이름난 장인이 만든 난로를 아주 헐값에 속여서 사왔던 것입니다. 왕은 소년의 집안에 더욱 많은 돈을 지불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소년의 집은 임금이 제값을 치뤄주도록 한 덕분에 어린 동생들이 계속해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고, 밥을 굶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왕은 소년에게 이제그만 집으로 돌아가라고 이야기했지만 소년은 임금에게 말했습니다. 자기는 이 난로를 떠나서 살고 싶지 않다고요.
소년은 대왕의 배려로 궁정에서 난로를 관리하는 직책을 얻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대왕이 죽을 때까지 난로와 함께 궁정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동화작가가 계몽군주의 업적을 기리고 싶은 마음에서 창작한 내용 같은데, 그 무렵 어린 제 머리 속에서 참과 거짓의 개념, 예술작품에 있어서의 아우라란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준 최초의 계기가 아니었던가 싶더군요. 우리가 달력이 아닌 우리의 몸으로 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일년 열두달, 사시사철의 변화를 예전에야 시장에 나오는 푸성귀들의 변화로 느낄 수 있겠지만 어제, 저도 집사람이 사다 준 딸기를 먹었습니다만 그것을 봄의 징조로 느낄 수는 없을 겁니다. 하우스 딸기에서 봄의 징조를 느끼지 못하는 것. 그 안에 봄의 아우라가 없기 때문이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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