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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울 일석기념관에서 진행된 토론회에 참가해 전체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낀 감정은 일단 참담했다. 종합토론 시간에 한 마디 보태볼까 싶었지만, 질문보다 의견에 가까웠던 탓에 길이 막히기 전에 서둘러 돌아섰다. 현장에서 메모했던 것들이라 미처 정리되지 않은 나의 생각이지만 올려본다.
1.
2012년 10월에 발표된 국제출판협회(IPA)의 통계에 따르면 세계출판 1위 국가는 미국, 2위는 중국이고 한국은 12위이다. 1위 미국의 출판사 순수익이 43.7조원이고, 2위는 중국으로 15.9조원, 한국이 2.8조원인 것으로 발표되었다.
얼핏 생각하기에 한국 출판시장 규모가 작고 책을 읽지 않는다고 험담하기 쉽지만, 인구백만 명당 출간되는 신간, 개정판 종수로 보면 미국이 1,080종, 2위 중국이 245종인데 비해 한국은 849종으로 미국의 80%에 이르고 중국을 월등히 앞서고 있다.
이 통계가 보여주는 것은 한국 출판시장의 규모가 국가 규모에 비해선 결코 작은 편이 아니며 한국어 사용자(독자)의 수를 생각한다면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출판물들이 생산되고 있다는 뜻이다(물론 출판시장이란 파이의 크기는 확실히 감소추세에 있다).
2.
그렇다면 한국문학의 위기라거나 문학작품이 팔리지 않는다는 건 대관절 무슨 뜻일까? 지난 2012년말 모매체의 발표에 따르면 이른바 서울의 명문대학생(SKY)들이 읽는 책의 대부분 소설이라며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읽은 바 있다. 이 기사의 의도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소설을 읽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소설만 읽어서 문제란 말이다.
그런데 또다른 문제는 그들이 한국소설을 읽지 않고 외국소설을 읽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베스트 대여순위(그나마 사본 게 아니라 대여해서 읽은 것이다. 학생이 책 사볼 돈이 없도록 만든 사회 책임도 크다?)를 보면 외국작품들이다.
그런 측면에서 창비나 문동, 신경숙 사태의 본질은 분명 문학장 내부의 문제이지만, 토론회에 참가해서 지켜보는 과정에서 느낀 안타까움 중 하나는 모든 논의가 문학장 내부에 국한되어 진행되더라는 것이었다.
왜 오늘의 젊은 독자들은 한국소설을 읽지 않는가? 아주 단순화시켜 말하면 결론은 매우 간단하다. 읽을만한 작품이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사태의 원인은 사실 '창작의 빈곤'에 있다. 어떤 이는 '비평의 빈곤'에서 원인을 찾을 것이나 닭과 달걀 중 무엇이 먼저냐고 한다면 역시 창작의 빈곤이 더욱 큰 문제이다(사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관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더 유념해서 보아야 할 것은 과거 문학시장의 활황기(?)가 과연 존재했다면 - 어쨌든 지금보다 - 그 시장이 오늘의 토론회 자리에서 논의된 것처럼 과연 진지한 문학이며 진지하게 문학성을 논하게 될 그런 작품이었을까?란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
3.
한국사회에서 1980년대는 정치적으로 매우 잔인한 시대였지만, 문화적으로는 비교적 풍성한 시대였다. 1970년대부터 대학 교육에서 예술학과들이 편제를 제대로 갖추기 시작했고, 아카데미 내부에서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예술가, 예술가 지망생들이 졸업하기 시작하면서 문학판은 물론 예술판 전반의 수준이 향상되었다.
이것이 1990년대 이르면 여러 대학들에서 문예창작과들이 신설되기 시작한다. 기존의 전통적인 강세를 보였던 몇몇 예술대학 문예창작과가 아니라도 우후죽순처럼 대학의 여러 곳에서 이 과정들이 개설되었으며 이후 2000년대 들어 사설 아카데미들도 대단한 수준으로 확장되었다.
이것을 문학수요의 증대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산업적인 측면, 구조적인 측면에서 이 상황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문학이 어디 먼 나라 이웃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산업구조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일부분이라고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사실 이런 부분은 상당히 등한시되어 왔다.
대학에서 문예창작교육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과정에서 해마다 배출되는 소설노동자(소설가) 또는 소설노동을 지향하는 예비노동자군이 확대되었지만,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매체는 이미 포화상태이거나 감소추세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만고만한 문학잡지들의 창간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 불황 속에서도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봐야 한다.
한국의 출판시장 규모는 점차 감소하는 추세(독자가 줄어든단 말이다)인데 비해 생산자 또는 시장진입 대기자 수요는 줄지 않거나 진입장벽이 높은 상황에서 작가들은 시장(이 지점에서 착시현상이 발생한다)주도 세력 또는 지배세력이 뛰어난 작품이라며 비평으로 띄우는 일정한 경향성이 강화된다. 다시 말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시장교란이 발생하며 그 과정에서 비평적 긴장이 소멸되고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것처럼 출판권력에 복무하는, 또는 종속된 담론과 비평만이 과잉 유통되면서 폐쇄적 시장상황이 반복적으로 초래된다.
그 대표적인 양상이 이번에 불거진 '내용 없는 미문주의'이다.
4.
1980년대를 관통해오면서 문학장 내부의 분화는 골이 깊게 패였다. 한 부류는 과거의 연고주의 또는 이념적 진영주의가 동창생주의로 변질된 잔재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다른 한 부류는 규모가 확장되면서 자본의 논리에 침윤당한 상황이다.
본래 시장경제 논리에 따르면 우수한 상품은 보다 많이 잘 팔려야 정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본의 논리란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판매되는 상품을 꾸준히 생산해 일정한 이윤을 끊임없이 재생산해야 한다. 그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예측 불가능하거나 불확실성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이다.
문학출판사가 자본의 논리에 침윤당했다는 것은 다른 한 측면에서 안정을 희구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을 문학의 논리로 치환해보면 문학장에서 더이상 새로운 긴장을 끌어내는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는 노력 대신에 시장에서 안정적인 판매고를 올려줄 상품(즉, 그런 작가)을 선호한다는 뜻이다.
'문동(문학동네)'이 이번 일로 많은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기존의 문지와 창비 체제 사이에서 문동이 출현할 당시를 회고해보면 그것이 숨통처럼 느껴진 것도 사실이며 다른 한 편에서 문동이 보다 공격적인 마케팅(다른 말로 하자면 과감한 신인발굴)에 앞장선 측면도 분명히 존재했다.
도리어 이 경우에 창비는 매우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기득권 시스템(다른 말로 하자면 창비라는 출판사가 과거 70~80년대에 쌓아올렸던 문화적 권위에 의존)에 의해 이미 시장성을 확보한 작가들을 빨대처럼 빨아들인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인구론' - '인문학 전공자의 구할이 논다'는 현재의 상황에서 대학이나 기타 연구소 등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거나 그 과정에서 우수한(?) 능력과 인맥으로 기득권 세력에게 채용된 생계형 비평가(지식인 그룹)이 결과적으로 비평적 긴장 대신 상품으로서의 작가와 문학작품에 대한 마케팅 도구로 복무하게 되는 과정에서 비평과 출판권력이 시상하는 문학상은 작가적 생산능력이 떨어지거나 이미 전성기가 지났으나 명성만큼은 누구보다 높은 작가의 작품을 리패키징하여 상품으로 밀어내게 된다.
5.
문제는 이들 문학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지난 번에 김명인 선생의 글을 공유하며 <파이돈>의 한 구절을 인용해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들은 스스로 틀렸다는 사실조차 모를 만큼 거기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중독된 자들에게 성찰을 요구한다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가. 그들은 확신범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