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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는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과 우연히 겹친다. 해마다 그 날이 오면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외래문화 풍속을 지탄하며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을 들먹이며 이야기한다.
둘 중 어느 날을 마땅히 기념해야할 것인가를 굳이 이 자리에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각자 개인이 알아서 선택할 문제이고, 그날 하루 연인끼리 즐겼다고 해서 안중근 의사가 우리 역사나 마음에서 사라지는 것도 아닐 게다.
인간은 하루에도 수만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그날이 돌아오면 누군가는 또다시 안중근 의사를 떠올리라고 요구할 것이다.
얼마 전 읽었던 글 하나가 떠오른다. 뤼순 감옥에서 만난 어느 중국인 이야기이다. 안중근 의사의 사형은 1910년 3월 26일 뤼순감옥에서 집행됐다.
“이곳이 안중근 지사(志士)가 교살된 곳입니다.”라고 중국인 해설자가 설명하자 이야기를 듣던 한국인이 이를 고쳐 다시 말했다. “아, 이곳에서 교수형을 당하셨군요.” 그러자 해설자는 손으로 ‘아니다’라고 표시하면서 다시 설명했다. “일본이 교살(목 졸라 죽임)했습니다. 안중근 지사는 범죄인이 아닙니다. (교수형이 아니라) 교살을 당한 겁니다.”
‘교살’과 ‘교수형’의 차이는 단순히 말의 차이가 아니라 오늘날 한국인의 마음속에 잠재된 역사적 무의식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10월 26일이 어떤 날이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다수 사람들은 김재규가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던 1979년의 그 날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확하게 70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물론 앞으로도 발렌타인 데이 무렵엔 늘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 중요하게 언급될 것이다(그런데 일제에 의한 사형선고일이 어째서 그토록 중요한 의미인가?). 이것을 다행이라 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결국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은 발렌타인 데이에 더부살이하는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형선고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아도 정작 사형이 집행된 날(바로 오늘 3월 26일)을 아는 사람이 적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어느 역사를 기념할 것인가? 그것이 우리의 역사관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일이긴 하지만, 그 선택을 강제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무엇을 오늘 기억할 것인가? 그것은 단지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이기 이전에 그 시대의 정신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다는 리얼리티프로그램 <무한도전>의 PD가 안중근 의사와 이승만을 대비시키는 멘트를 방송이 아닌 그의 개인 SNS에서 할 수밖에 없는 시대...
안중근 의사는 참으로 여러 경로를 통해 호명된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와 그의 의거 자체를 기념하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의미를 내보이기 위한 경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병리적 현실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상징이기 때문이란 사실이 아프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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