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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속에 펼쳐진 혁명의 성공과 혁명의 좌절
- 마네(Edouard Manet)에서 세잔(Cezanne)까지
"프랑스 미술의 제3차 혁명의 물결(들라크르와의 제1차 혁명과 쿠르베의 제2차 혁명의 물결이 지난 후의)은 아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 - 1883)와 그의 친구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 E. H. 곰브리치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미술 작품은 인상파 화가들의 것이다. 인상파라는 이름은 1874년 사진가 나다르의 스튜디오에서 일군의 화가들이 가진 '화가?판화가협회'전에 대해 르루아라는 비평가가 조롱조로 붙여준 이름이었다. 이전의 사조들에 붙여진 이름이었던 '로코코, 매너리즘' 등의 이름이 그러했던 것처럼 "인상주의"란 이름 역시 일정한 시간적 흐름이 지난 뒤에는 그들 자신으로부터 먼저 인정받아 사용되기 시작했다. 19세기 하반기 여성 화가가 포함된 일군의 작가들은 이런 조롱조의 이름을 받아들여 스스로를 "인상주의자"라고 불렀다. 그 결과 20세기 미술의 기초를 마련했다.
쿠르베와 같은 사실주의 유파의 화가들이 프랑스 대혁명의 이상 속에 있었다면 마네로부터 세잔으로 이어지는 인상파 화가들은 혁명의 결과 속에 살았으며, 동시에 새로운 혁명의 와중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곰브리치의 표현을 빌자면 그들 자신이 시작한 "프랑스 미술의 제3차 혁명"이었고, 산업혁명, 도시화, 프랑스 2월 혁명의 좌절 속에 놓여 있었다. 우리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서양미술사에 펼쳐진 19세기의 혁명들을 살필 수 있고, 동시에 20세기의 미술과 사회가 어떤 형태로 발전해 나갈지 미리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마네와 세잔의 작품 각 2편씩을 통해 인상주의의 회화 혁명이 실제 사회 구조와 어떻게 결부되어 드러나고 있는가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과 루이 나폴레옹, 그리고 인상파
세계 역사상 대혁명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1789년의 프랑스 혁명과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이었다. 인상주의는 이런 시대적 간극 사이에 놓여 있다. 샤를마뉴 대제가 카롤링거 왕조를 개창한 이래 오랜 세월 동안 유럽은 절대왕정과 교회의 연합을 통해 절대군주들과 유럽을 다국적기업처럼 분할하는 왕조의 역사들로 가득차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그들을 지배하던 군주정에 반대한 투쟁이 성공을 거둔 것은 18세기 말에 이르러 등장한 새로운 현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거시적 관점에 의한 것에 불과하다.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프랑스 대혁명은 그저 주변의 여러 나라들에서 일어난 당시로서는 서로 별다른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든 사건들 중 하나였다. 북아메리카에서 영국 식민지로 개척되었던 미국이 독립을 선언하고 왕이 지배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 체제로 출범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유럽은 변방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프랑스인들은 부르봉 왕조(House of Bourbon) 국왕들의 전제정치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국왕은 잇따른 전쟁으로 세금을 부과했고, 정치적으로 성장한 프랑스의 중산층과 빈민들은 왕과 귀족의 무능한 정치에 불만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들에겐 대표자가 없었다. 그들의 분노에 불을 붙여 혁명으로 이끌어간 촉매가 된 것은 루이가 귀족들에게 세금을 면제해 준다고 선언한 일이었다. 결국, 1789년 7월 14일 거대한 군중이 파리의 감옥인 바스띠유(Bastille)를 휩쓸고 점거했다. 국왕 루이 16세는 프랑스 인민들이 자신들은 프랑스의 시민이지 더 이상 루이16세의 신민이 아니라 선언했을 때 분노했지만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했다. 혁명이 가속화되면서 파리에서는 무정부 상태가 벌어졌고, 국왕과 그 가족들은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헌법제정 국민의회는 봉건제를 폐지하고 구질서(앙시앵 레짐)를 철폐했다. 시민적 평등(식민지에서는 노예제가 지속되었으므로 프랑스 국내에 한함)을 이룩했으며, 공직과 관련해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권리의 평등을 확립했다. 공채를 청산하기 위해 교회 소유 토지를 국가에 귀속시킨 결정으로 광범위한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졌다. 부르주아들과 자영농들이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큰 이득을 보았으나 몇몇 농업노동자들도 토지를 살 수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은 인근의 다른 국가들에 의해 위협적인 요소로 판명되었고, 그들은 프랑스를 공격했다. 전쟁은 총재정부와 입법부 사이에 존재하던 적대관계를 더욱 악화시킨다. 혁명의 진전에 불안해하던 열강은 프랑스군의 참패에 용기를 얻어 제2차 동맹을 결성했고, 오스트리아·러시아·투르크·영국이 참여한 이 동맹은 1799년 봄과 여름에 걸쳐 대승을 거두었다. 프랑스로 돌아온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군사적 패배로 실추된 정부의 평판과 자신의 커다란 명성을 이용해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로 총재정부를 전복하고 통령정부를 수립했다. 그는 혁명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비록 그가 혁명의 종결을 선언했으나 그의 따른 정복전쟁으로 프랑스 혁명의 이념은 오히려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나폴레옹이 제거 당한 뒤 1824년 루이16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샤를 10세는 입헌 정치를 인정하지 않고, 구제도로의 복귀를 추구하는 극단적인 반동정책을 실시하였다. 결국 그 반동으로 1830년 프랑스의 부르주아 세력들은 샤를 10세의 왕정을 폐지하고, 루이 필립을 왕위에 앉혔다. 7월 혁명으로 부르봉 왕가를 대신해 왕위에 오른 오를레앙 공 루이 필립은 초기의 자유주의적 행보에서 10여년이 지난 후 다시 절대왕정으로 회귀하는 조짐을 보이다 1848년 2월 혁명으로 쫓겨나게 된다. 제2공화정이 선포되었고,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이 된다. 그러나 제2공화정은 혁명의 지속이 아니었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들과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혁명적 요구에 대해 정부는 강력한 진압에 나서 1만 명의 시민들이 학살당했다. 이 해 런던에서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다. 1848년은 유럽 전역에서 혁명이 발생한 해이기도 했다.
1848년의 혁명이 그 이전에 발생했던 혁명들과 구분되는 것은 이 때의 혁명이 퍼져나간 속도의 급속함과 지리적 범위의 광대함이었다. 이때의 혁명은 전유럽을 휩쓸었고, 남미로 이어졌다. 하지만 1848년의 혁명은 가장 확실하게 패배한 혁명이었다. 유럽에서 프랑스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구체제는 복귀했다. 그러나 혁명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혁명이 요구했던 사안들이 모두 거부당한 것은 아니었다. 혁명은 비혁명적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켜 나갔다. 혁명이 거부당한 것은 이것이 사회혁명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 당시 부르주아들이 더이상 혁명적 방법 말고 다른 형태로 요구하게 되었고, 지배권력 역시 이를 수용하는 형태가 사회혁명이라는 부담을 감내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1848년의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이었으나 부르주아들은 혁명 일선에서 물러섰다. 이후 유럽은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로 회귀했으나 사회적으로는 자유주의의 시대를 만들어냈다. 인상주의의 등장은 이런 토대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도판1. 마네,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1867, 캔버스에 유채, 252x305cm>
마네의 1867년 작품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을 보자. 이 작품은 잘 알려진 대로 마네가 직접 현장에 가서 그린 작품이 아니다. 여기엔 마네가 1848년 2월 혁명의 결과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잘 드러나 있다. 2월 혁명은 2월 혁명은 제2공화정을 출범시켰으나 대통령 루이 나폴레옹은 삼촌이었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전철을 밟아 황제가 되었다. 황제가 되었다고는 하나 그는 자신을 황제가 되도록 해준 부르주아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황제였다. 그 와중인 1862년 프랑스 군대가 멕시코인들에게 공격받는 일이 발생하자 나폴레옹 3세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막시밀리안을 멕시코 황제로 임명해 떠나보낸다. 그러나 나폴레옹 3세는 그를 위한 지원을 하지 않았고, 결국 멕시코 혁명군들은 1867년 5월 군대를 동원해 황제와 그의 장군 두 명을 포로로 잡았다. 처형은 1867년 6월 19일 이른 아침에 거행되었다고 하는데, 이 소식이 파리에 전해진 건 그해 6월 30일의 일이었다. 이 소식이 전해질 무렵 파리에서는 한창 세계 박람회가 개최되고 있었고,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소식은 나폴레옹 3세의 무능을 공포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마네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서둘러 그림 제작에 들어갔고, 때마침 개최되고 있던 자신의 개인전에 추가로 걸어놓으려고 했다. 마네의 이런 행동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돌출적인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이전까지는 당대의 사건을 묘사할 때마저도 과거의 역사에서 소재를 빌려와 은유적으로 그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이 당대에 그것도 현재 황제로 있는 나폴레옹 3세의 비위를 건드릴 것이 분명함에도 그려질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가 이전에 비해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동시에 2월 혁명의 결과가 좌절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이란 주제는 마네가 여러 번 반복해서 그린 주제였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도판 1>의 그림은 그의 네 번째 작품으로 사실상 마지막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이전에 그린 같은 제목의 다른 작품에서 총살을 집행하는 혁명군은 멕시코식 차양 넓은 모자를 쓰고 있지만, <도판 1>의 작품에 이르러서는 프랑스식 좁은 군모와 군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1808년 5월 3일의 학살, 1814년, 캔버스에 유화, 266 X 345 cm, 프라도 미술관>
처음에 그는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소식만을 전해 듣고 그린 것이고, 나중 것인 <도판1>은 사진을 보고 그것을 토대로 제작했다고 하는데, 이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그가 사진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이와 유사한 구도인 작품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 <1808년 5월 3일의 학살, 1814년, 캔버스에 유화, 266 X 345 cm, 프라도 미술관>과 비교해 보아야 한다. 고야의 작품 <5월 3일의 학살> 역시 실제 사건을 화폭에 옮긴 것이다. 나폴레옹 군대에 저항하다 학살당하는 에스파냐 민중들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 속엔 이미 한 차례의 총격을 받았는지 유혈이 낭자한 체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있고, 머리를 감싸고 있는 사람, 우측 한 가운데 마치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처럼 양 팔을 멀리고 항의의 몸짓을 보이는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총격을 가하는 병사들 역시 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마네의 작품 <도판1>은 총격이 가해지는 순간을 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적인 느낌보다는 어쩐지 정적인 느낌을 준다. 담벼락 위의 구경꾼들 역시 먼산 불구경하듯 그려진다. 병사들은 저런 자세로 사격이 가능할까 싶을 만큼 다리를 모으고 있어, 이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준다. 나폴레옹 3세는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과 관련해 일종의 보도통제를 실시했다. 그는 막시밀리안을 문명의 입장에서 멕시코 혁명군의 존재를 이에 대항하는 야만의 입장에서 그리도록 했다. 어떤 의미에서 마네는 이런 검열을 회피하기 위한 방식으로 정적인 느낌을 강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의미에서 마네는 나폴레옹3세가 요구한 문명과 야만의 대립이라는 보도통제에 항거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 정부가 요구한 이런 공식적인 표현 요구를 정중히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혁명과 도시화 그리고 과학의 발전
1850년대 들어서 영국의 면제품 수출물량은 이전의 같은 기간에 비해 2배로 늘어났고, 프로이센에서는 주식회사들이 신설되기 시작했다. 저렴한 자본과 가격상승에 따른 자본주의의 발전은 1853년에 일어났던 곡물가격 상승을 상쇄할 만큼 풍족해졌다. 유럽은 최초로 자본주의적 호황을 맞이했다. 사회 전체적으로 팽배했던 사회혁명의 분위기는 이런 호황을 통해 가라앉았다. 어쨌든 호황을 맞이한 당시 유럽 사회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놀라운 생산력이 벌어들인 엄청난 자본의 힘에 놀랐고, 사람들은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고, 다시 사람들을 찾아 유흥과 오락이 도시화를 부추겼다. 이 무렵 예술을 위해 쓰인 돈은 이전의 금액과 비교할 수 없었고, 돈의 출처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부르주아 혁명은 종래 예술이 왕과 귀족, 교회에 갇혀 있던 화가들에게 부르주아적 방식으로 돈을 벌게 해주었고, 그들이 힘써 노력한다면 스스로도 부르주아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부르주아지의 욕구는 한 개인으로서는 별개 아니라 할지라도 한 계층의 욕구로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들은 어떤 예술품들에 대해 그 이전과 비교해 전례없이 높은 가격을 매겼다.
밀레이(Millais)의 수입은 1868년 - 1874년에 빅토리아 중기의 파운드화로 연평균 2만 - 2만 5000파운드였다. 그 수입의 태반은 개바르, 플라투, 또는 그와 유사한 기업가들이 시작한 5실링 짜리 액자에 끼운 2기니짜리 복제품 수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프리스(Frith)의 <철도역>(1860년)은 그와 같은 부차적 권리로 4500파운드, 그밖에도 전시권(전시권)에 의해 750파운드를 벌었다.
<에릭 홉스 봄, 자본의 시대, 한길그레이트북스 13, 한길사, 2001. 531쪽>
예술은 성황을 이루었고,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한 예술가들 또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들이 결코 극악무도한 최악의 예술가들은 아니었다. 이 시기의 일급 예술가들이 안목없는 속물들 때문에 그들의 자유분방한 예술적 투혼 속에서 굶주리고 있었다는 것도 일종의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당대의 취향이나 기호에 저항하며 그네들에게 충격을 주고자 했던 예술가들, 다시 말해 작품이 팔리지 않는 예술가들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나 최소한 그들도 아직까지는 후세의 예술가들에 비해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이런 예술가들에게 상업적인 성공은 그들이 대중의 취향에 조금만 영합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20세기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마음 속 미술관에 새겨진 이들의 작품들은 대개 이런 대중적인 취향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이들의 것이었다(그것도 대부분은 프랑스인들의). 도미에(Daumier)와 쿠르베(Courbet)와 같이 혁명의 시대를 거쳐 살아남은 화가들과 1860년대 출현한 일련의 전위적인 작품들을 보여준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들이다. 마네와 세잔은 이 시기에 대량으로 그려진 회화들과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당대 존중받았던 화가들이나 일반 대중이 의혹의 눈길을 보내던 화가들이었다.
이렇게 부르주아들의 정치혁명은 왕과 귀족의 취미에 영합해야 했던 이전 시기에 비해 자유를 주었고, 과학의 발전에 따른 산업혁명은 예술가들에게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인상주의가 등장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이런 정치적인 자유와 더불어 풍요,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전이 뒷배경을 이룬다. 특히 최초의 성공적인 사진술인 다게레오 타이프의 카메라가 시판된 것이 1839년의 일이라는 것에 주목해보아야 한다. 카메라 의 발명은 빛을 통해 사물을 본다는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이런 인식은 사물을 그리는 것에서 빛을 그리는 것으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게 된다. 이런 인식의 전환을 이룩한 일련의 예술가들은 각기 다르지만 그들만의 탐구를 시작하는데 이들이 바로 우리가 뭉뚱그려 인상파 화가라고 부르게 되는 이들이었다.
<도판2. 마네, "풀밭 위의 식사", 1862-1863, 캔버스에 유채, 208x264cm>
그들은 빛의 효과에 대해 광범위한 인식과 성찰을 통해 빛의 운동 자체가 가장 큰 주제가 되었다. 사물의 표현은 이런 빛과 대기의 움직임에 종속되는 것이었다. 또한 인상파가 세계를 끝없는 변화의 연속으로 본 것은 도시적인 감성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산업화 이후 과거 소규모 농촌 공동체에서 볼 수 있었던 안정된 관계에 의한 소박한 인간관계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인상파 화가들은 이런 현대도시가 그려내는 삶의 불연속성, 익명성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이들의 회화가 도회적인 감수성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었다. <도판2>는 에두아르 마네만큼 당대에 여러 스캔들을 일으킨 화가도 드물지만 그 가운데서도 커다란 스캔들을 일으킨 작품이다. 작품엔 센 강변의 호젓한 숲을 배경으로 한 여자가 옷을 벌거벗은 채 있고, 그녀의 맞은편과 뒤편으로 말끔한 정장 차림의 두 남자가 앉아 있다. 화면 뒤편으로 속옷만 대충 걸친 여인이 물에 몸을 담근 채 씻고 있다.
만약 이들이 정숙한 관계라면, 즉 남편과 부인 그리고 그의 친구 부부라면 이렇게 옷을 벗고 즐길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이들이 아마 몸을 파는 여인이고, 남자들은 이들을 돈을 주고 살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부르주아 남성들로 판단했다. 전통적인 관념에서 누드란 미의 총화이자, 아름다움의 상징인데, 이 그림은 당대의 풍속화였다. 즉, 돈 좀 있는 도시 남자들이 유쾌하게 성을 소비하고 있는 광경인 것이다. 우리는 1510년 경에 그려진 조르조네. 타치아노의 작품 <전원의 합주>를 알고 있다. 마네는 이런 전통적인 작품의 구도를 빌려오면서, 요즘 말로 하자면 적당한 패러디를 가하고 있다. 이 작품은 도시화와 산업화 속에서 실재할 수 있는, 실재한다면 이럴 수밖에 없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격렬한 비난과 함께 살롱전에서 낙선했다. 아직 이 시대는 마네의 그런 솔직한 감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마네는 거의 말년에 이르기까지 살롱전의 심사위원회로부터 거부당하고,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추구한 빛의 효과를 신봉했고, 이를 꿋꿋이 밀고 나갔다. 1883년 5월 3일 마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앙토냉 프루스트, 졸라, 테오도르 뒤레, 모네 등이 관포의 끈을 잡았고, 드가는 비탄에 잠긴 나머지 이렇게 말한다. "마네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사람이었다"고. 이런 마네의 찬미자들 가운데 폴 세잔이 있었다. 그는 마네에게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언어를 배웠다. 그러나 그는 마네와 같은 '순간의 자극', 운동과 변화 보다는 다른 부분에서 더욱 큰 인상을 받았다. 후기 인상파(post-impressionism)는 1910년 영국의 그래프턴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를 보고 영국의 비평가 로저 프라이가 붙인 이름이다. 당시 이 전시회에 출품한 화가들은 세잔을 비롯해 드랭, 마티스, 피카소, 루오, 쇠라, 반 고흐 등이었다. 프라이가 붙인 이 명칭은 다소 포괄적인 형태로 뭉뚱그리고 있기는 하지만 또한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우리가 이 명칭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가 주는 혼돈처럼 이것을 "post"를 단순히 "후기"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 작가격으로 언급되고 있는 세잔은 빛과 외양에 대한 인상파의 집착에서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잔을 비롯한 후기 인상주의 작가들은 인상파를 어느 면으로는 계승하고 있으나 분명 이들을 극복하고 자신들만의 탐구를 해나간 인물들이었다. 우리들이 흔히 후기 인상파의 3대 작가로 언급하는 고흐는 자신의 내면을 분출함으로써, 고갱은 순수의 종합을 추구함으로써, 세잔은 조향의 구조를 탐구함으로써 인상파와는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
메를로 퐁티는 세잔의 작품세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하나의 정물화를 완성하기 위해 100회의 작업을 했고, 초상화를 그릴 때는 모델을 150번이나 자리에 앉혔다. 우리가 세잔의 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그 자신에게는 하나의 실험이었고 '그림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었다."
<이주헌,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2, 학고재, 2003, 376쪽에서 재인용>
<도판 3. 세잔, “레로브에서 본 생트빅투아르산” 1904-1906, 캔버스에 유채, 60x72cm>
세잔의 예술적 목표는 "진정한 그림으로 나아가려는 노력, 곧 불변의 법칙을 알고자 한 노력"이라는 것이다. 세잔이 평생을 두고 즐겨 그린 소재 중 하나는 생트빅투아르 산이었다고 한다. 그가 생전에 그린 생트빅투아르 연작은 유화가 44점, 수채화가 43점에 이른다. 세잔이 이 산에 그토록 집착한 이유는 변함없는 산이란 항구적인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인지도 모른다. 1839년 프랑스 남부 지방인 엑상 프로방스에서 태어난 세잔은 1861년 파리로 나와 그림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래 고향 엑스와 파리를 수시로 오가면서 예술가로서의 자기갱신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롱에 출품한 작품들은 줄기차게 낙선되는 불운을 경험했다. 그런 경험이 그로 하여금 이전의 다른 모든 유파로부터의 탈피를 모색하게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조형미학을 만들어냈다.
그가 이런 독자적인 조형미학의 길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던 데에는 당시의 사람들이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 탓이 컸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산업화에 따른 생산성의 향상과 그로인해 여가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된 사람들이 취미 생활로 택한 사진술 때문이었다. 초창기 사진술은 대개 회화의 대상 중 하나였던 초상화를 대체하는 형태로 나타났으나 점차 휴대용 카메라와 스냅 사진의 발전은 일반 대중과 화가들에게 우연한 광경과 예기치 않은 각도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런 사진술의 발전은 화가들에게 커다란 자극이 되었다. 기계 장치가 이전에 인간들이 수행하던 것보다 더 훌륭하고 값싸게 해낼 수 있는 작업들을 해낼 수 있는 데 이를 굳이 회화가 수행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화가들은 더욱 탐색과 실험에 몰두하게 되었다.
세잔의 “생트빅투아르산”(도판3)을 보면 화가 자신이 이 산을 자연의 외양 그대로 묘사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실제로 사실적인 형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이러저러한 색면이 어우러진 일종의 모자이크를 통해 우리가 지각이라는 인지구조를 통해 통제되기 이전의 순수한 시각경험이라고 보고 이를 재구성하도록 만드는 것이 화가 본연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도판 4. 세잔, “정물화”, 1890, 캔버스에 유화, 59.5x72.5cm, 오슬로, 국립미술관>
인상주의 화가들이 단순한 색채로 빛의 섬광을 표현한 것돠는 달리, 세잔은 원색으로 견고한 형태를 담아내고자 했다, 그는 원근법을 파괴했다. <도판4>는 세잔이 즐겨그린 사과가 있는 정물이다. 탁자 위에는 사과, 레몬, 도자기로 만든 우유병이 놓여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사과와 레몬을 그림 이 그림의 특이함을 찾아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세잔에게 있어서 대상이나 소재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형태와 화법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보이는 이 그림은 탁자가 아래로 쏠린 듯이 보인다. 사과의 색채가 실체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당시의 표현 기법사용으로 이런 방식은 미술사상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그는 원색을 사용해 사과를 실제보다 더 붉거나 더 푸르게 그리고 있다. 세잔은 모사를 추구하지 않았다. 대상들은 하나의 화면 안에 하나로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각각의 특성을 더욱 강조하여 현실감을 얻었다. 세잔은 르네상스 이래로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소위 자연의 충실한 모사라는 관례를 깨버렸다.
그의 이런 특성이 훗날 피카소와 브라크에 계승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가장 혁명적인 회화의 성공과 사회의 실패
인상주의 회화는 가장 성공한 사조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런 인상주의 사조를 배태한 사회가 가장 반동적인 사회였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인상주의 회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사실을 일반 대중들이 알아채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로 하여금 대상으로부터 몇 걸음 물러날 때 갑자기 기적처럼 화가가 기적처럼 경험했던 시각적 경험은 일반 대중에게도 전파되었다. 이전까지 화단을 지배하던 “품위 있는 주제, 균형 있는 구성, 정확한 소묘”라는 과거의 법칙들은 매장당했다. 이제 화가들은 앙시앵 레짐의 갑갑한 굴레를 벗어버리고, 오직 자신의 감각만으로 시도하고 책임지는 회화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을 비웃던 비평가들은 이제 종전의 비평이 누리던 권위를 결코 회복할 수 없을 것이었다. 인상주의 예술가들의 투쟁은 인정받았고, 이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려는 모든 도전적인 예술가들의 전설이 되었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규범을 찾아 나섰던 개척자들이었다. 비록 그들의 예술이 대중 혹은 부르주아, 자본에 기반한 유럽식 합리주의 종착역이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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